옵션 |
|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가 가지고 다니는 최첨단 무기가 나오지도, <본시리즈>처럼 화려한 액션이 나오지도 않는, 그저 자신을 스파이라고 주장하는 스파이가 나오는 스파이 영화. 스즈메는 평범한 가정주부다. 뭐든지 보통이고 눈에 잘 띄지도 않는 평범한 일상에 회의를 느끼고 있을 무렵. 우연히 스파이 모집 공고를 보고 스파이에 지원하게 된다. 스파이가 되고 싶어 찾아갔던 집엔 평범한 부부가 살고 있었고 부부는 평범한 스즈메야말로 스파이에 제격이라고 말한다. 스즈메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스파이 활동을 시작하며 묘한 두근거림을 느끼는데….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는 독특한 코미디 영화이다.(이하 <거북이>) 평범한 일상에 지친 가정주부가 스파이가 되며 겪는 이야기를 주인공의 목소리로 들려주며 어처구니 없는 내용을 한없이 진지하게 이야기한다.(하수구가 커다란 오징어 때문에 막혔는데 그것을 기념으로 가지고 있다고 자랑한다거나 경찰들이 모여서 체조하는 모습 등.) 그럼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었을까?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평범함’이다. 주인공인 스즈메는 거북이에게 밥이나 주고 집안 청소하면서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사는 평범한 인물이다. 반면 마을에 있는 스파이들은 뛰어난 인물이지만 평범한 모습을 추구하며 평범함 속에 묻혀 산다. 세계에서 라면을 가장 잘 끓이지만 어중간한 맛을 내기위해 노력하는 라면집 아저씨와 평범한 부부처럼 보이는 스파이 부부. 평범해 보이지만 무서운 암살자인 두부가게 아저씨. 그냥 개미에게 밥을 주며 소일거리를 하는 할머니처럼 보였지만 비밀의 문을 지키는 케르베로스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할머니. 이들은 비범한 인물들이지만 평범을 가장하며 살아간다.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던 스즈메에게 스파이 활동은 일상에 두근거림과 활력을 준다. 집에서 청소를 해도 스파이 활동이며 마트에서 평범하게 장을 보는 것도 스파이 활동이다. 매일 하는 똑같은 일이지만 인생이 활기로 가득찬다. 그리고 그것을 보증하는 것은 냉장고 안에 있는 스파이 활동 자금 500만엔. 스즈메에게는 스파이 활동이 비범해지는 새로운 일상이었다.
스즈메가 평범한 일상에서 비범한 일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스파이 활동이라는 의미부여보다는 '자신의 선택’이었다. 스즈메는 매일 거북이게에게 먹이를 주는데 이 행위는 본인의 선택이 아니었다. 남편이 맡기고 간 일이었다. 심지어 결혼하게 된 것도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남편이 프로포즈한 것을 홧김에 받아서 한 것이었다. 그런 스즈메가 처음 ‘선택’한 것은 스파이모집 공고에 전화를 걸고 스파이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스파이 활동 자체가 그녀의 선택에 비롯된 것이니 그 전과 같은 일상이라고 해도 새로운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스즈메가 마을 전기를 끊는 장면에서 확실히 볼 수 있는데 이 마을에 전기가 끊어 진 것은 두 번이 있었다. 한 번은 쿠자쿠가 스즈메를 위해서 전기를 끊은 것, 또 한 번은 스즈메가 스파이들을 위해서 전기를 끊은 것이다. 스즈메는 자기가 좋아하는 가토의 모습을 보고 싶어 했고 쿠자쿠는 그런 친구를 위해 마을의 전기를 끊어주었다. 어린 스즈메는 자신이 원하는 것(목욕후 가토의 모습을 보는 것- 이런 것을 좋아하다니 스즈메도 훌륭한 숙녀로군)을 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지 못했다. 그 행동을 대신해 준것은 쿠자쿠였고 쿠자쿠의 선택은 쿠자쿠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스파이가 되기로 선택한 후 스즈메는 스파이들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송전선을 끊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것은 스즈메가 이제 스스로 인생을 선택하고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물에 빠진 가토의 아이를 구하고 500만엔을 받은 것도 눈여겨 볼만 한 점이다. 가토의 아이가 물에 빠졌을 때 상황은 스즈메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스즈메는 스파이로서 자신의 정체를 최대한 숨겨야 했고 가토의 아이를 구하는 것은 일약 영웅으로서 마을에 자신을 알리는 일이나 다름없다. 만약 스즈메가 스파이활동을 위해 아이를 구하지 않았더라면 스즈메는 스파이 활동이라는 또 다른 타성에 길들여 진 것에 불과할 것이다. 스즈메는 가토의 아이를 구하고 500만엔의 포상금을 받았다. 이 500만엔은 처음 스파이 활동을 시작할 때 받은 돈과 정확히 일치한다. 처음 받은 돈이 스즈메로 하여금 자신이 선택한 스파이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하고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라면 가토의 부인에게 받은 500만엔은 스스로 아이를 구하고 표창을 받은 것으로 스파이 활동이 아니어도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였음을 말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스파이 혐의로 프랑스 감옥에 갇히게 된 쿠자쿠를 구하기 위해 캐리어를 싸고 여행을 떠나는 장면에서 스즈메가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도와줄 수 있는 독립된 인격체이자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까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장면을 꼽자면 스파이 소집방송이 떨어지고 두부가게 아저씨가 라면가게에 찾아와서 같이 라면을 먹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라면가게 아저씨는 자신을 위해 최고의 라면을 끓이고 그것을 두부아저씨와 같이 나눠 먹는다. 두부아저씨는 이런 실력이 있으면서 어중간한 라면을 만들었다고 아까워하지만 라면가게 아저씨는 본인의 선택이라는 말을 한다. 최고의 라면을 만드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 바로 자신의 선택을 지키고 실행하는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이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핵심이 있는 부분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자신의 선택대로 살고 있는가? 먹고 살기 힘들고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자신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인생은 재미없고 지루하다.
만약 인생이 지루하다면 나는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고민해보자.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
Do It Your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