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째 밥을 주며 호감을 쌓아오던 노랭이 글로 일전에 베오베도 갔는데요,
이틀전 밤에 담요 속에서 너무 잘 자는 노랭이를 보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납치(?)를 시도했어요.
담요에 싸서 안은채로 한 손으로 엉덩이 받치고, 다른손으로 등 토닥거리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10분 정도 천천히 걷는데도 노랭이는 꼼짝도 않고 잤어요.
엘리베이터 기다리는데 깨서 '냐~' 하긴 했는데 몇마디 하지도 않더라구요.
이동장이나 박스에 꽁꽁 싸매서 담아와야 한다는 분들이 많으셨지만,
저는 데려올 때는 스트레스 안주고 아주 자연스럽게 데려오고 싶어서 기다렸었거든요.
근데 이번에 아주 자연스럽게 집까지 데리고 올 수 있었어요.
남편은 자다 깨서 노랭이를 안고 있는 저를 보더니 오늘이 그 날이구나 하며 잘 데려왔다 했어요.
제가 작년 이맘때쯤에 13살 된 강아지 급성 암으로 보내고 계속 너무 힘들어했거든요.
CT, MRI 다 찍고 생검하고 결과받으려 미국에 조직검사 보내고 했는데 소용 없었어요.
검사 나오기도 전에 별로 돌아갔거든요.
여튼, 제가 상실감이 너무 커서 많이 힘들어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매일 밥주러 나가서 놀다오는거 보며 데려오라는 얘기를 계속 했어요.
매일 밤 나가면 한시간씩 있다 오니 그럴만도 하겠죠.
여튼, 발바닥,엉덩이, 입주변 물티슈로 닦아주고, 몸통도 예의상 물티슈로 한 번 훑어줬어요.
현관 앞에 가더니 냐~ 하고 울었는데요, 이때 데려온게 좀 미안해졌어요.
하지만 이미 12시 다 되어가는 시각이라 내보낼수도 없고 해서 일단 밤을 보내기로 했어요.
크게 울지는 않았는데요, 냐~할 때 안아주면 바로 괜찮아졌어요.
안아서 집 구경시켜주니 눈이 조금 반짝거리기도 했구요.
일단 화장실이 없으니 박스에 배변패드 남은거 한 장 깔고 신문지 찢은거 넣어줬어요.
부엌에 물도 한 그릇 떠놓구요.
혼자 좀 적응할까 싶어서 놔두다가 냐~하면 바로 가서 다시 안아줬어요.
밤에 자야 하는데 아직 목욕도 안시키고 병원 검사도 안받아서 일단 바닥에 이불 깔고 누웠는데요,
옆에 앉혔더니 와서 부비고 만져달라더니 코골고 잤어요.
그래도 아직 좀 위생상 걱정되어 바구니에 담요 깔아서 넣었더니 완전 늘어지게 잤어요.
그렇게 저는 밤새 노랭이 신경쓰며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동물병원에 갔어요.
강아지 보낸 후 이동장은 동생한테 보내서 이동장이 집에 없어요.
집에 볼링백이 하나 있어서 지퍼 5cm 정도만 열고 거기 넣어서 갔습니다.
볼링백이 그리 작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불편했겠죠.
집에 올 때 이동장 하나 사서 거기 넣으면 되는거고, 올 때 모래랑 화장실도 사오려고 했어요.
근데, 의사가 안데리고 오는게 좋다고 하는거에요.
이미 자리도 잘 잡고 잘 먹고 잘 크는 애인데 데려오면 스트레스 많이 받을거라더군요.
외출냥으로 현관문 열어두고 키울거 아니면 그냥 돠두라고 하더라구요.
저는 몇달동안 서로 마음이 통했다 생각해서 데려온건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좀 슬펐어요.
고양이가 영역 동물이라 스트레스 받는다는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얘는 다를거라 믿고싶었겠죠.
하지만 저역시도 사실은 밖에서 뛰고 점프하고 뒹굴고 하다가 좁은 집에 들어와서 갑갑해하며 어쩌나 걱정 많이 했어요.
나 좋자고 얘를 답답하게 하는건 아닐까 고민도 많이 했구요.
근데 의사가 똑같은 얘기를 하더라구요..
이미 고민하던 문제인데 의사에게서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슬프고 조금 미안하고 그런 마음이었죠.
아 근데 의사쌤은 좋은분이셨어요. 정말 고양이 생각해서 그러신거에요.
그러면 일단 치석이 걱정되는데 스켈링 해서 내보내는건 어떠냐 했더니 어차피 양치질 못해줄거면 하지말라 하셨어요.
그래도 제가 신경 너무 쓰이고 구충제같은거라도 하고싶다 했을때도 좀 회의적이셨는데요, 결국은 햇어요.
그나마 다행인건 노랭이가 건강하다는걸 확인했다는거에요.
귀도 완전 깨끗하고, 털도 상태 좋대요.
목욕 시킨거냐 물어보시더라구요. 길에 사는데 이정도로 깨끗하다니.. ㅎㅎ
한 살 정도밖에 안되었다 하셨을때는 진짜 놀랐어요.
밥 준게 5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그동안 다 큰 고양이인줄 알았거든요.
그러고보니 애가 첨 볼 때보다 큰것 같기도 하고.. 저는 살이 좀 쪘다고만 생각했거든요.
한창 클 때 잘 먹어서 무럭무럭 자라 5.3kg 뚱냥이 되었나봅니다.
하지만 결론은 풀어주는게 낫다는 말씀에 다시 노랭이를 가방에 넣었어요.
늘 밥 주던 곳으로 가서 노랭이 풀어줬더니 바로 냄새 맡더라구요.
저는 노랭이가 저 미워져서 바로 가버릴줄 알았거든요.
근데 안그랬어요. 제 곁에 한참 머물다가 한참 따라오며 배웅해줬어요.
중간중간 안아주고 만져주고 하면서 배웅 받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러고나니 맘이 또 허전해졌어요.
남편한테 여차저차 말했더니 의사말 믿지 말라고, 걔가 너 좋아하는거라고, 다시 데려오라더군요.
저는, 아니다. 나는 걔가 행복했음 좋겠다. 나라도 갑갑할것 같다.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어요.
낮에 좀 슬퍼하다가 어제 저녁에 다시 밥주러 나갔는데요,
노랭이가 또 달려오네요.
여느날처럼 좀 만지다가 밥주고 담요에 싸서 재웠어요.
한참을 코를 골며 자는 애를 깨우는데 다시 잠들고 다시 잠들고 하더라구요.
오분 더를 몇 번 하다가 결국 깨워서 놔두고 일어섰어요.
눈에 잠이 그렁그렁 하는 애를 두고 오니 맘이 안좋죠.
뭐, 그렇게 노랭이 납치사건 2탄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어젯밤부터 생각이 너무 많네요.
이정도면 동네에서 이쁨받는 고양이인데, 개인의 욕심으로 데려오는건 좋지 않을거라는 말씀이랑,
얘가 없으면 찾는 사람들 있을거란 말씀이 계속 맘에 걸려 다시 데려오지를 못하겠어요.
쓰고나니 엄청 길게 썼네요.
저희집 왔던 노랭이 사진 몇 장 첨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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