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주원장 中 주원장이 이선장에게 천하통일 계책을 묻는 부분. )
적벽 대전으로 조조의 천하통일 계획이 좌절되고 유비가 형주를 석권한데 이어 기세를 몰아 서촉을 먹고
한중공방전에서 조조를 물리치며 동천(한중)까지 장악했을 때 당연히 유비는 재정비 마친 뒤 바로 관중으로 나아갔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유비는 한중왕에 등극하라는 제갈량의 건의를 받아 들여 왕에 등극하였고
그 귀중한 수년의 시간을 허비하다 위,오가 연합하여 형주를 공략하자 관우를 잃고, 장비를 잃고
복수전에 나간 이릉 대전에서 국력을 모두 소진한 뒤 유비 자신도 최후를 맞이합니다.
제갈량이 건의한 한중왕의 즉위는 너무도 이른 것이었습니다.
군벌의 수장인 유비가 장착하여 왕이 되는 것은 왕도, 신하도 모두 그간의 보상을 받는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왕이 된다는 것은 왕궁을 새로 건설해야 하고 육궁을 만들어 후궁제도를 만든 다는 것이고
전국 각지에 새로운 관부를 개설하여 관리를 임명해야 하며
그간 건국에 공이 있는 장수들에게 각자의 지위에 맞는 작위와 관직을 내리며 막대한 비용을 써야 합니다.
한중왕에 등극한다는 것은 당장 관중으로 나아가 전쟁을 치룬다는 행위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이전에 생존을 위해 투쟁하고 기호지세로 급성장하는 집단의 구성원에게 그간의 공적을 인정하고 안락을 줌으로써
성장을 위한 집단의 추진력도 사그러들게 합니다.
과거 유방의 경우 항우로 부터 한왕에 임명 되었을 때 그가 한 일은 왕부의 건설과 작위 수여가 아닌
시급하게 관중의 3진을 멸해서 중원으로 나가는기 위한 전쟁준비에 매진했고
군벌시절이던 한왕 시절이던 유방은
항우를 죽여 천하통일을 이룰때 까지 결코 전장에서 떠난 적이 없습니다.
유비가 한중왕이 된 후 성도에 기거하며 왕궁을 짖고 후궁제도를 만들고
형제들을 오호대장군으로 봉작하며 왕의 지위를 누린것과 큰 차이가 있죠
유방은 이미 관중을 얻었음에도 전쟁을 단 한시도 멈추지 않았는데
유비는 고작 서촉만을 얻었으면서 칭왕하여 전쟁을 멈췄습니다.
그 등극의 효과는 바로 나타났습니다.
북벌을 통해 조조를 격파하고 한중왕에 즉위하며 유비가 칭왕을 하자 천하는 주목했으며
심지어 과거 생존을 위해 유비와 손을 잡은 오나라까지 유비를 두려워하고 경계하게 됩니다.
그 결과 위와 오의 연합으로 이어져 형주는 되려 협공을 받게 되고 가장 중요한 요충지를 상실함은 물론
가장 중요한 장수였던 관우 역시 동맹국인 오나라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관중 조차 얻지 못한 고작 익주 한 귀퉁이를 얻고 칭한 한중왕의 지위는
그 익주의 왕으로 유비세력을 고착화 시켰고
시간이 지나 지방정권으로 전락하며 멸망한 유비세력의 운명은 사실 이때 결정되었습니다.
유비의 한중왕 즉위가 패착이었음을 교훈삼아
이와 반대로 행함으로써 천하을 통일한 자가 있습니다. 주원장이죠
1300년이 흐르고 후한 말과 똑같이 펼쳐진 군벌의 난립이란 난세속에
북방 원나라 조정과 함께 천하에는
진우량 - 주원장 - 장사성 3개의 세력이 3각 구도를 이루고 있었고
가장 강력한 세력은 진우량이야 말로 유비가 조조를 바라 보듯
주원장이 천하통일 위해 제거해야 할 가장 중요 적대국이었습니다
주원장은 이때 등극을 미룬다는 계책을 받아들여 몸을 숙입니다
북으로는 원나라 조정에 항복하고 동으로는 장사성에게 몸을 숙여 낮춰
이들의 경계심을 최대한 누그러트린 다음
오직 진우량과의 일전에만 국력을 다해 치뤄 이를 제압하는데 성공합니다.
우선 큰 적을 제압한 실리를 얻은 후 명분을 찾는다
주원장을 그렇게 진우량에 이어 장사성과 원조정을 순조롭게 토벌하였고
천하통일을 이룹니다
유비가 이전까지 급성장하다 한중왕 등극을 정점으로
몰락하게 된 것은 너무 이르게 열매를 따서 아닌가 합니다.
어찌보면 유비가 한중왕에 등극하는 그 순간
제갈량이 예언 한 천하 삼분지계는 완성되었을지 모르지만
사실상 유비의 천하통일도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