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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전에 헤어졌네요.
그냥 빨리 털어버리려고 쓰는 글이에요. 신경쓰지 마세요.
1. 이 남자는 나를 단 한번도 데리러 온 적이 없다. 매 번 내가 그 남자의 집까지 갔어야 했고, 그 남자는 항상 게임하는 뒷 모습으로 인사했다.
내가 내 차를 남자의 집에 놓고 직장에서 일을 하고 데리러 와달라고 했을 때 몇 번 데리러 왔다. 그 때마다 얼굴이 퉁퉁 부어있고 화가 난 남자의 기분을 풀어줘야 했고, 너무 서러웠다.
가끔 남자의 집에 들어가면 쪼르륵 나와서 안아주던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생각하니 눈물이 나려고 하니까 패스
2. 이 남자는 나와 데이트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난 통통했고 지금도 통통하다. 매 번 나에게 살을 빼라고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돼지(ㅋㅋㅋ). 난 정말 열심히 살을 뺐다(운동X, 굶기0). 같이 밥 먹으면 음식 남기는 꼴은 못 보면서 살을 빼라고 하는데 어쩌라고. 당시에 62키로였고, 지금은 57키로다.(키 : 166) 넌 나에게 인간 승리를 안겨주었다.
이건 추측이지만, 이 남자는 나를 창피해 했던 것 같다. 최근에서야 자기 친구들에게 여자친구라며 보여주는 걸 보면, 살은 위대함.
+)한 번 나가려면 온갖 짓을 다 해야 겨우 나가주었다. 그게 힘들어서 나중에는 나도 밖에서 데이트 하는걸 포기했다.
3. 데이트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
내가 9를 내면 1을 냈다. 난 1도 많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학생이고, 나는 직장인이다. 내가 버는 돈이 많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피시방 갈 돈 아껴서 단돈 만원이라도 데이트 비용에 쓰길 바랬다. 예를 들면 영화 비용 전부와 팝콘값, 저녁 식사까지 내가 내야 했다. 하지만 데이트를 따로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자의 자취방에서 배달음식을 시켜먹는게 데이트의 대부분이다. 그 배달 음식 값도 무시하기 어려워, 혼자 감당하기에 부담이 될 때가 솔직히 많았다. 한 번 만날 때 마다 10-20만원은 나갔다. 엄마랑 아빠가 과자 사오라고 할 때마다 돈이 없어서 못 사간다고 한 나년을 매우 치고 싶다.
4. 2와 이어지는 내용일 수 있지만, 항상 여자 얘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
난 운전하는게 싫어서 내 차로 움직이지만 남자에게 운전을 맡긴다. 어린데도 운전을 잘해서 내가 정말 좋아했다.(연하)
이 남자는 운전대를 쥐고 엑셀을 밟으며 주변을 스캔한다. 내 기준 통통한 여자가 지나가자, 돼지년이라고 한다. 여드름이 좀 있거나, 객관적으로 평범한 얼굴을 보면 못생겼다고(실제로는 그 이상의 단어) 말한다. 면박을 주자 여자들은 왜 저런걸 귀엽다고 하거나 감싸주는지 모르겠다고 이 남자는 말한다. 그리고 가슴이 큰 여자를 보면 와 가슴 봐, 다리가 예쁜 여자를 보면 여자 다리는 저래야지, 라며 품평을 내린다. 듣기 싫어 죽는 줄 알았다. 그리고 점점 난 내 몸과 지나가는 여자들을 비교하게 된다. 그 말을 들을 때 마다 참 많이 슬펐다. 그러면서 내가 자존감이 낮다고 했다. 난 너에게 사랑받고 싶었는데, 넌 그런 날 지켜주지 않고 항상 헐뜯었다는걸 잊었나보다.
5. 정해진 자리가 존재한다.
이 남자는 자기가 싫어하는건 죽어도 안 한다. 나는 나가서 놀고 싶은데 죽어도 안 나가겠단다, 그래서 정해진 자리가 있다.
그 남자는 항상 자취방 컴퓨터 앞에 앉아있고, 나는 침대에 어설프게 누워서 티비 채널만 돌린다. 외롭다고 징징 거리면 게임하다 말고 와서 뽀뽀해주고 갔는데 등신처럼 그 때는 너무 좋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이 너무 외롭고 쓸쓸했다. 그 기분이 아직도 너무 많이 남아있다.
6. 난 네 화풀이 상대, 넌 내 속앓이 상대다.
난 남자친구라고 불렀던 이 남자에게 의지할 길이 없었다. 일이 힘들어서 힝 힘들어ㅠㅠ 라고 카톡하면 징징거리지마 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외에도 몇 번이가 심정을 토로했지만, 내 편이 된 적은 정말 극소수에 불과했다. 난 위로가 너무도 필요했다. 정말로, 진심으로.
하지만 이 남자는 나에게 퍽으로 잘 징징거렸다. 수업이 힘들다며 징징, 과제가 많다며 징징, 아는 친구가 없다며 징징. 이 남자는 내가 먼저 이 남자를 좋아한 걸 악용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를 잘 이용했다. 나는 악 소리도 못 하고 이 남자가 뿜어대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전부 짊어지고 일을 해야했다. 실은 운동 1도 안하고 살이 쭉쭉 빠졌으니 내 스트레스는 오죽했으랴.
7. 헤어지게 된 계기는 무척이나 사소하다.
이 남자가 카톡 프로필을 여자 사진으로 바꿨다. 참으로 사진 찍는걸 싫어해서 5개월 정도 사귀는 동안 내가 건진 사진은 몰카 뿐이다. 이 남자가 사진을 싫어해서 나에게도 사진을 요구하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을 한 내 대구리를 퍽퍽 세게 치고 싶다. 난 나도 한 번 차지해보지 못 했던 남자의 프로필 사진에 있는 여자의 사진을 보며 화가 났고, 프로필 다른 걸로 바꿔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연예인 사진이며(누가 봐도 일반인 사진 같아 보인다. 아직도 그 사진에 대해서는 확인이 안 되고 있다), 내 팬심을 이해해 달라고 한다. 내가 이해해 달라고 하는건 1도 이해할 생각이 없는 독불장군이 이해를 논하니 화가 났다. 난 바보같이 프로필 사진이 바뀌고 나서 카톡을 보지 않았다. 남자는 평소처럼 수업 시작 전, 수업 끝난 후 꼬박꼬박 전화를 주었다. 내 상황과는 맞지 않았지만 기분은 좋았다. 날 좋아한다고 착각했다.
고민하다가 프로필 사진을 친구에게 보여주었다. 친구는 분개하였다. 난 그 동안 받은 상처로 너무 지쳐있었고, 여자친구라고 불리는 내가 싫다고 해도 저걸 꿋꿋하게 쓰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여자라던가, 다른 여자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헤어질 때(2시간 전) 바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듣고 흔들렸다.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지만 한 번만, 딱 한 번만 날 잡아줬으면 아마 내가 이 글을 작성하는 똑똑한 일은 없었을거라고 생각한다. 황당한 얼굴로 이렇게 헤어질 수 있냐고 말하는걸 듣고 안아주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고 싶었다.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하고 내미는 손만 붙잡고 악수 했다. 남자는 나에게 미련을 두지 않았다. 여자로써의 나에 대한 마음은 여전하지만, 애인으로써는 아니다 라고 말하는데 웃음이 났다. 이 남자의 마음이 떠나가고 있는지 눈치 없는 나는 몰랐다. 근 1주일 내내 숨도 못 쉴 만큼 싫어하는 짓만 했는데, 그게 자신이 나에 대한 애정을 찾기 위해서라고 한 것 같다.(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여하튼 끝내 붙잡지 않았다. 다음에는 직장인을 만나라고 했다. 미안하다고, 받기만 해서 미안하다고 한 뒤에. 받는 사랑만 하라고 했다. 다신 볼 일 없으니 잘 지내라고 대답해주었다.
차 안에서 1시간 반 넘게 울었다. 머리가 아프고 눈도 뜨겁다. 속이 참 시원하다. 그리고 미련맞게 엄청 아프다.
내가 나 좋자고 날 좋아하지 않는 너를 억지로 옭았다. 너는 그냥 거기에 응해준 착한 남자라고 생각한다. 난 내가 너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난 너를 견뎌내지 못했다. 난 지금도 너를 좋아한다. 너에게 먼저 헤어지자고 했지만, 그래도 너를 너무 좋아한다.
행복해져라. 너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