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
네가 떠났던 날은
고대의 찌꺼기가 녹아 내리는 날이 아니었다
시린 눈물이 구슬이 되어 쌓이는 날도 아니었다
천칭의 이름에 모두가 옆으로 쓰러지던 날도
결실을 말하는 입으로 돌아서는 발끝을 가리는 날도 아니었다
네가 떠났던 날은
나비의 날개가 서로 부딪히던
하다못해 바위의 이끼마저도 꽃을 피우던
그런 날이었다
너의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웠던지
나의 손등과 손바닥의 색이 서로 다른지
잡히지도 않는 바람으로 벽을 세운 이가 있는지
구하지도 못한 자물쇠에는 차가운 녹이 슬고
새로 맞췄던 옷도 낡아 부서져 내린다
차라리 네 손에 박힐 굳은살을 애써 무시했더라면
당장 목구멍을 넘어갈 밥 한 숟갈을 더 신경 쓰고
공단 입은 손길 대신 벼리고 벼린 손가락질이 더 익숙했더라면
그럼 네가 떠나지 않았을까
멈추지 않고 맞물리는 톱니바퀴처럼
이제는 누구도 너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너의 미소를 보지 않는다
나의 부름은 후회일 뿐이고 나의 미소는 기만일 뿐이니
너로만 중심이 전부 차버린 나는
소금이 핀 땅의 고목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