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부터 울리는 모 부장님, 과장님의 전화를 애써 무시하며 잠에서 깼습니다. 대충 씻고, 책 한 권 들고 집 앞 카페로 나왔습니다. 커피를 한 잔 다 비우고 나니, 정신이 말끔해졌습니다. 현실로 돌아와 부재중 전화가 걸려왔던 부장님께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참 웃긴 일입니다. 금요일 밤 열두시, 함께 보고서를 만들고 퇴근하며 나는 그들에게 존경심을 느꼈고, 동시에 참으로 미숙한 나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 감정들은 반나절도 채 가지 못하고 그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바뀌었습니다.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단순한 수면욕 하나 때문에, 내 이름으로 올라갈 보고서 하나 수정해주느라 늦게까지 고생한 그들을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말도 잘 안 통하고 제멋대로인 이십 대의, 2년 차 사원을 가르치고 있는 그들이 더 힘들지도 모릅니다.
나는 정말로 잘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아무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고등학교 때도 그냥저냥 공부해서 대학에 갔고, 대학에 와서도 할 줄 아는게 없어 그냥저냥 취업준비나 하다보니 어느덧 회사에 들어와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한 때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나에겐 회사원이 천직이 아닐까- 생각했고, 수많은 대기업들의 공채를 뚫어낼 때면 정말이지 나는 회사원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아닐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나름대로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때마다, 그들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그들을 볼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졸업하고도 나는 아직 학교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아직 친구들과 더 어울리기 좋아하고, 학교에서 보내던 그 시간들이 아직도 내겐 너무나 소중합니다. 아직까지도 시간이 날 때면 학교를 찾아가 학교와의 끈을 놓지 않고 싶어하고, 기대어 있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남아있을 수만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제는 내가 있는 이 위치에서 스스로 서봐야만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어느 사람들은 내가 회사의 노예가 되어, 마치 스톡홀름 신드롬이 찾아온 인질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거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할 줄 아는 것도, 잘 하는 것도 없기에 지금 내 자리에서라도 나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살아가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누군가에겐 삶의 의미이자 터전인 이 회사를, 2년차 사원인 나 따위가 함부로 폄하할 수 있다고 생각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내가 이 회사를 떠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내가 이 회사에 완벽히 녹아들고, 그들과 동등한 선에 서서 얘기할 수 있는 날이겠지요.
출근할 다음 주가 참으로 기다려지는 주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