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애들이 있잖아. 이 애는 잘될 것 같다 하는 그런 애들. 다른 아이들보다 유난히 마음이 따뜻해서 잘 되면 좋겠다 싶은 애들. 이 아이도 그래. 내가 울고 있는데 자기가 먹고 있던 사탕을 쥐어주더라니까? 그걸 주면서 뭐라고 했는지 알아?
-아프지 말래.
-게다가 머리도 좋더라니까. 내가 무거운 짐 좀 들어달라니까 자기는 약해서 도움이 안될거라며 다른 어른들을 불러오려고 가는거 있지?
-얘는 틀림 없이 큰 사람이 될 거야, 분명.
남자는 따뜻하게 웃으며 내게 주절거리다 손에 들고 있던 것을 휘둘렀다. 어찌보면 대충인, 그저 아무 생각도 의미없는 움직임이었지만 남자의 손에 들린 것은 칼이었다.
피분수가 솟았다. 어린 아이의 목에서 치솟는 피와 분수. 피로 이루어진 분수...... 그 모습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그곳에 있던 모두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남자는 모두를 비웃으며 빈정거렸다.
-아, 그런데 이제는 없네? 어쩌지?
아이의 목에서 나는 바람소리와 고통에 찬 울음을 남자의 웃음이 덮었다.
-아아아악!
탕!
탕!
탕!
탕!
탕!
총 소리가 들리고 남자의 몸은 조금씩 허물어져 갔다. 남자의 몸에 총알이 하나하나 박힐때마다 남자는 비굴한 모습이 되다가 결국엔 아이의 몸 위로 겹쳐져 쓰러졌다.
[한 낮의 인질극, 인질 7살 A양 사망.]
[인질 A양, 할머니와 같이 살아...]
[행방불명 상태였던 A양의 부모 나타나]
[A양 사건 범인 가족,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A양 사건 범인, 학창시절부터 왕따당해]
[A양 사건 범인의 집에서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 대량 발견돼]
[전문가 인터뷰 : 폭력적인 게임이 뇌에 미치는 영향]
[납치 목격자 5명, 아무도 신고 안해....]
[무능한 경찰, 제압에 소극적]
[앰뷸런스 길 터주지 않아 후송에만 40분]
[인질 확보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과잉대응 논란, 인질극 범인의 몸에 실탄 7발 발견.]
[과잉대응 경찰은 평소 정신적인 문제 호소. 현재는 사표 내고 잠적!]
[경찰총장 유감 표명]
범인 대신 피해자인 A양의 이름이 붙은 커다란 비극적 사건에 기자들은 열띤 얼굴로 자극적인 기사를 뽑았다. 사람들은 콧김을 뿜으며 기사를 읽고, 욕을 했다. 살아생전 아이가 방치되었을때는 관심도 가지지 않던 이들이 아이가 죽자 급격히 관심을 가졌다. 네크로필리아들 같으니. 젊고 불의에 화가 났던 나 역시 그 맘때쯤에는 욕을 계속 짓씹었던 것 같다.
아이의 부모는 나타나서 아이의 목숨값을 받아갔고 얼마 후 사라졌다. 자극적인 이야깃거리가 되어 세상을 뒤덮고, 모든 것은 사회의 탓이었다. 사회의 탓이었기에 누구도 책임지려하지 않았고, 책임져야할 사람도 죽었다.
들끓던 것도 잠시, 얼마가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은 다시 조용해졌다. 다른 사건을 기다리며. 그리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A양이 어떤 아이었는지, 범인인 남자가 어떤 놈이었는지, A양이 어떻게 죽었는지, 범인에게 누가 총을 쏘았는지, 총을 쏜 이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그 때 총을 쏜 것은 D경사였다. 그는 짐승우는 소리로 울부짖으며 남자를 향해 총을 갈겼는데, 정신을 차린 동료들이 그를 말리러 갔을 때 이미 그는 총에 장전된 실탄을 이미 다 사용해버린 상태였다.
과잉진압 경찰을 인터뷰하러 온 취재기자들이 경찰서로 바글바글 몰려들자 그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얼굴로 사직서를 냈다. 그나마 친하게 지내던 내가 말리자 고개를 저으며 부양할 가족도 없다고 답했다.
그 말대로 그는 부양할 가족이 없었다. 천애고아에 흔히 말하는 독거남이었다. 그러나 C경위가 조심스레 속삭인 말에 따르면 한 때는 그 역시 가정이 있던 몸이었다. 다만 가정을 이룬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쪽에 유전적인 병이 있어 몸이 약해 아이를 낳고 얼마가지 않아 죽고, 그렇게 세상에 나온 아이 역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병사했다고.
그는 눈 앞에서 다시 한 번 눈 앞에서 어린 아이를 떠나보내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 아내의 임종을 보내고, 아내가 남긴 딸을 키우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딸을 떠나 보내고, 또 눈 앞에서 딸 또래의 아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무력히 바라보는 심정은 어땠을까.
내가 그를 붙잡았을 때, 그가 돌아보자 나는 그대로 살해당한 사람의 눈과 마주했다. 방아쇠를 당긴 것은 그였음에도 그는 몇 번이고 살해당한 사람처럼 나를 무심히 보았다. 생선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삶에 관심이 없는 비릿한 죽은 눈으로.
나는 그를 말릴 수 없었다. 그는 그렇게 떠나갔다가 한 달 뒤 그는 강원도 깊숙한 곳의 한 모텔에서 발견되었다. 시체로.
꽤나 죽지 않을 것을 두려워한 모양이었다. 연탄을 피워놓고 목을 매달았다. 그리고 그는 멋지게 시체가 되었다. 그의 지갑 속 너덜너덜한 사진 속 가족들에게 돌아가게 된 것을 축하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이 아니라 기도 압박에 의한 질식사였다. 연탄은 실패했지만 그의 목에 걸린 목메달은 그를 가족 곁으로 보낸 것이다. 혀가 늘어진 그는 행복한 표정이었다.
세월이 흘러 20년이 지났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 때로 돌아가곤 한다. 놈이 따뜻하게 웃으며 아이가 큰 사람이 될거라고 칭찬하던 그 때로.
얘는 틀림없이 큰 사람이 될 거야, 분명.
한 손에 칼을 들고 놈이 당당하게 주장했다. 저걸 휘두르다가 아이는 목에 구멍이 뚫려 과다출혈로 죽을 것이다. 긴장하며 놈을 노려보았다.
A는 똑똑한 아이답게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얼굴로 내게 묻는다. 이 다음 나는 어떻게 되나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하지? 나는 멍청이처럼 누가 답을 내주길 바라며 옆을 본다. D경사는 혀를 쭉 길게 빼민채 나를 비난한다.
총을 쏴! 놈의 몸에 갈기지도 못하냐! 머리는 50점, 배는 100점!
남자는 혀로 칼을 핥으며 나를 비웃는다.
넌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았잖아? 실은, 너도 시체가 좋은거 아냐?
아니야!
킬킬거리는 소리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총을 만지작해보지만 들어올리지는 못한다. D경사와는 다르게 지금의 나에겐 처자식이 있다. 학원비와 급식비, 공과금을 생각하면 과잉진압으로 잘릴 수는 없다. 남자는 그럴줄 알았다는듯 헤헤 웃으며 팔을 휘두른다. 조잡한 몸놀림이었지만 손에 들린 것은 칼이었다.
피분수가 일어난다. A는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운다. 남자는 웃는다. D경사는 비명을 지른다. 그 사이의 난 울지도 웃지도 그렇다고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는 상태로 입술을 깨문다.
아저씨.
경찰 아저씨.
구멍이 뚫린 목을 손가락으로 막으며 아이가 내게 다시 묻는다. 쓰러지며 우는 얼굴로 야무지게 질문했다.
나는 뭐가 되었을까요?
글쎄, 시체가 아닌 무언가였겠지. 나도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네가 그렇게 물어오면 항상 곧 이 악몽에서 깬다는 것은 잘 알지. 안도하며 뒷말을 흐렸다. 20년 동안이나 시달린 악몽은 항상 똑같은 내용이었다.
찌르고, 피분수. 울고 웃고 비명지르고.
A든 D경사든 범인이든 얼굴도 목소리도 기억나지 않는다. 20년의 세월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 20년 동안 비슷한 사건은 얼마든지 일어났다.
그러나 이 상황만은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잊을만하면 경고라도 하듯이 계속 꿈속에서 재생되고 반복되기 때문에. 리모콘이나 차키처럼 이 기억도 편할 대로 잃어버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쭈그려앉아 고개를 숙였다.
D경사가 울부짖으며 범인에게 총을 갈기는 동안, 깊은 산 속 옹달샘이 아닌 자신의 피 웅덩이에 엎어진 A를 본다.
마주보고, 듣기 위해서.
피 속에서 A라는 여자아이가 죽어가며 울음 속에 내뱉은 말을. 나중에 큰 사람이 될지도 몰랐던 작은 여자아이가 마지막 숨과 함께 내뱉은 짧은 그 한 마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