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1980년대에 무려 7억 5천만명이 시청한 동명의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를 기초로 저술한 책의 이름이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필독도서에 끊임없이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 책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멀게만 느껴지던 우주의 모습을 상상하게끔 해줬다. 청소년에게 권하는 과학 교양서 중 1순위를 놓치질 않는 명저, 코스모스. 하지만 왜 이 책의 제목은 코스모스일까? 코스모스, 슈뢰딩거의 고양이니 상대성 원리니, 듣는 순간 머리가 아파올 정도로 정감없는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코스모스’라는 단어를 듣고 책에서 다루는 광활하고 끝없는 우주가 상상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코스모스라고 하면 길가에 피어있는 자줏빛 꽃, 가을의 도로변에 핀 코스모스를 먼저 떠올린다. ‘질서와 조화를 지니고 있는 우주 또는 세계’는 생각도 않고 말이다. 그렇다면 왜 칼 세이건은 책이름을 생소하기 그지없는 코스모스라 지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먼 타국의 계절화인 코스모스와 동음이의어라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선 아니었을 것이다. 코스모스, 사전적 의미에서 보듯 질서와 조화, 법칙에 관한 이름이다. 만일 저명한 천문학자가 놀랍게도 인문학적 재능까지 지녀 대중의 관심을 이끌기 위해서 였더라면, 책의 이름으로 코스모스라는 단어의 대척점에 있는 카오스를 쓰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책을 사러온 누군가가 난생 처음 보는 단어보단 익숙한 단어에 이끌릴테니 말이다. 여기서 나는 감히 칼 세이건이 이 책의 이름을 코스모스로 지은 것을 추측해 보려한다. 아마도 그는 코스모스라는 단어에 담긴 법칙이라는 뜻에 매료된 것은 아니었을까? 온 우주를 관통하는 법칙, 이 법칙이라는 것을 찾는 것이 지나치게 커다란 우주를 탐구하는 인류의 유일한 항법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우주를 갈망하는 것일까? 어딘가에는 있을 인류가 아닌 지적 생물체를 찾기 위해서? 망가져가는 지구를 떠나 다른 곳에 정착하기 위해서? 나는 그 이유를 근원을, 뿌리를 찾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진화는 인류로 하여금 삼라만상에 대하여 의문을 품도록 유전자 속에 프로그램을 잘 짜놓았다. 그러므로 안다는 것은 사람에게 기쁨이자, 생존의 도구이다.’ 우리는 항상 왜라는 말을 달고 산다. 왜 배는 시간이 지나면 고픈걸까? 왜 태양은 동쪽에서 뜨는 걸까? 왜, 왜, 왜, 어린 아이가 모든 것을 궁금해 하듯 왜를 수십번 반복하다 보면 닿는 곳이 있다. 근본, 뿌리, 기원.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의 뿌리를 궁금해 한다. ‘우리가 지구 생명의 본질을 알려고 노력하고 외계 생물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애쓰는 것은 실은 하나의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두 개의 방편이다. 그 질문은 바로 ‘우리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이다.’ 낳아주신 아버지의 삶을 궁금해 하고, 내가 태어난 나라의 역사를 보고 배우며, 우리는 우리의 기원을, 인류의 기원을 궁금해 했다.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인류는 이 궁극적인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 땅을 파 화석을 캐고 이론을 정립했다. 그 결과, 인류는 아담의 갈빗대에서 나온 것이 아닌, 영장류에 가까운 호모 사피엔스에서 진화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뿐만 아니었다. 영장류의 조상인 포유류의 등장과 파충류의 등장, 어류의 등장. 그리고 최초의 생명체 유기화합물의 등장까지, 우리는 기원을 찾아 끊임없이 역행했다. 우리는 진화의 산물이다. 미생물조차 되지 못한 유기물덩어리에서 번갯불로 태어난 우리는 수십억년에 걸친 진화로 여기까지 도착했다. 필요가 없어진 꼬리를 자르고, 무거워 날지 못하게 되자 날개를 잘랐다. 두발로 걸어감에 따라 척추는 곧게 세워졌으며, 두 손은 무언가를 쥐기 위해 섬세하게 길어졌다. 우리는 복잡한 구조를 지닌 회중시계처럼 위대한 설계자가 설계도면 대로 작성한 것이 아닌, 수십억년 동안 환경에 적응해가며 진화해 온 것이다. 하지만 몇몇 혹자는 위대한 만물의 영장이 손톱때보다 작은 유기물 덩어리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중 관대한 사람들은 그 최초의 조약돌을 신이 던졌다고 하지만 말이다. 때문에 인류는 지구가 아닌 하늘로 관심을 돌린다. 그렇다면 지구는 어디서 왔고 태양은 어디서 왔냐고. 반론을 제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인류의 기원지가 지구였듯, 지구의 기원을 알기위한 당연한 의문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질문, 최초의 시작을 향한 끝없는 역행, 인류는 아직도 질문을 던지고 있다. 보이저 1호를 태양계 밖으로 던지고, 수많은 정보를 대기권 밖으로 내보내며, 빛을 발하는 항성의 빛을 관찰한다. 그렇기에 이 책의 제목은 카오스가 아닌 코스모스라고 생각한다. 혼돈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지만 법칙은 후대에서 후대로 남겨져 작지만 큰 한걸음을 남긴다.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중력을 통해 어떻게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지 알 수 있었고, 기름칠한 쇠공을 움직이게 하는 관성을 통해 인공위성이 우주로 나갈 수 있게 됐다. 우주로 띄운 망원경을 보니 행성과 항성도 마찬가지였다. 수성과 금성은 태양에 이끌려 회전하고 있었고, 태양 또한 우리 은하의 중심을 향해 공전하고 있었다. 질서와 조화, 그리고 법칙. 그렇다. 우주는 법칙으로 이뤄져있었다. 기원에 관한 끝없는 질문 끝에 알게 된 사실이다. 평평한 줄로만 알았던 지구는 둥글었고, 세상은 지구가 아닌 태양을 중심으로 돌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최초의 폭발, 빅뱅에 대해 상상하고, 초기의 우주를 그린다. 그렇기에 책의 제목은 카오스가 아닌 코스모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