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한달 전 부터 계속되는 환청에 미칠것만 같았다.
그동안 몸에 그 어떠한 이상도 없이 건강했던 그가 이 말도안되는 환청을 듣게 된 것은
지난 달 잠을 잘 때, 지나치게 섬뜩하면서도 선명한 꿈을 꾼 이후부터였다.
남자는 그 꿈이 어떤 꿈이었는지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 꿈이 상당한 공포감을
자신에게 안겨줬다는 느낌만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남자는 평소에도 굉장히 깔끔한 성격이어서, 하루에 꼭 한번 이상은 샤워실에서 20분이상씩
몸을 씻어야만 제대로 된 하루를 시작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이 환청은 정말 고역 그 자체였다.
평소에는 아무 이상도 없지만, 이상하게 화장실만 들어가면 그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감어'
'감어'
여성으로 여겨지는 목소리로 계속 들리는 이 알 수 없는 두 글자,
남자는 욕실에서 몸을 씻을 때 마다 일분에도 몇 번씩 들려오는 이 괴상한 소리때문에 미칠것만 같았다.
병원을 가보고 청력테스트도 했지만, 그 어떤 이상한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병원에선 단순 피로에 의한 신체의 과민반응이니,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라 했지만,
그 괴상한 소리는 그 후로도 두 달이 넘도록 그를 괴롭혔다.
혹시 집에 귀신이 들린게 아닐까 해서, 용한 퇴마사를 불러 집을 살펴보게 했지만,
퇴마사 역시 무언가를 잡아내진 못했다.
남자는 '감어'라는 단어에 의미를 두었다.
감어가 대체 무슨 의미일까, 사전을 찾아봐도 그런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뜻은 하나뿐이다.
'감다'라는 단어를 나에게 명령조로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는 스스로도 그럴싸하다고 느꼈다.
감다에는 머리를 감거나 눈을 감는것등 여러가지 뜻이 있는데, 그 목소리가 화장실에서만
들리는 것을 보니, 필시 이 행동을 하면 그 목소리가 사라질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는 샤워를 할 때 항상 눈을 감고 샤워를 했고, 머리도 유난히 신경써서 감기 시작했다.
'감어'
'감어'
'감어'
'감어'
하지만, 그 이상한 소리는 전혀 사그라들지 않았다.
남자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이사를 하기에 이른다.
그는 인근에 있는 저렴한 원룸을 계약해 급히 짐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새 집에 모습이 어느정도 완성됐을 때, 남자는 조금은 편안해진 마음으로 샤워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감어'
'감어'
또 다시 그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거야!! 원하는게 뭐냐고!!!!"
남자는 그 이후로 급속도로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다니던 일자리를 무단으로 결석하고, 매번 술을 마시며 집안에서 하루종일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허공을 응시하거나 벌벌벌 떨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반 즈음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도 씻는것만은 포기 할 수 없었다.
'사우나, 사우나를 가자'
남자는 사우나라면 이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우나를 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 동굴같은 사우나의 환경에서 그 목소리는 더욱 더 증폭돼 그의 귀를 찢어발길듯이 울리고 있었다.
"아아아악!!!!!!!!!!!!!!!!"
샤워를 하다 말고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는 그를 보며, 사람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사우나를 나와 집으로 가는길에 실과 바늘을 사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곧장 집안의 화장실로 그것들을 들고 들어갔다.
어김없이 들려오는 그 소리.
"대...대체 나한테 원하는게 뭐야..."
'...'
'감어'
'감어'
'감어'
"이 썅년아!!!!!!!!!비겁하게 숨어서 지껄이지만 말고 나와!!!!!!!!!!!!!!!"
하지만 그 무엇도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다.
'감어'
'감어'
남자는 크게 소리를 지르더니, 이내 가만히 서서 차분히 바늘구멍에 실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그래 내가 잠시라도 화장실에서 눈을 뜨는 것 조차 싫은거야...그치? 그렇지???"
그는 미친사람처럼 눈을 크게뜨고 흰 이빨을 드러낸 모습으로 거울을 쳐다보고는,
스스로에게 대답이라도 하듯 미친듯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끄덕 거렸다.
그리고는 스스로 실을 꿴 바늘로 자신의 눈을 조금씩 꿰매기 시작했다.
굴곡진 세면대로 붉은피가 뚝 뚝 떨어졌다.
"끄으으..끄으으아아아아악..!!"
남자가 한쪽 눈을 다 꿰매고 난 후, 반대쪽 눈을 꿰매려고 하는 그 순간,
그간 목소리만이 들렸던 여인의 모습이 그 앞에 있는 거울속에 비추며 드러났다.
그리고 남은 한 쪽 눈으로 그 모습을 본 남자는 이제야 모든것을 알겠다는 듯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기 시작했다.
쾅!!!!!!!!!!!!!!!!!!!!!!!
문이 거친 발길질에 부서지는 굉음과 함께 무장을 한 여러명의 남성들이 집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강석현!!! 당신을 살인 혐의 및 시체유기 혐의로 긴급 체포한다! 사망한 윤영선이 어제 밤 강변로 도랑에서
발견됐고, 부검과정에서 손톱안에 당신의 혈흔과 DNA가 발견됐어!!"
반장으로 보이는 형사가 빠르지만 명확하고 큰 목소리로 읊조렸지만, 집 내부는 조용했다.
"선배님, 이미 도망간 것 같은데요"
"젠장! 야!! 저 화장실 문 열여봐!!"
그들이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자, 따뜻한 물로인해 뿌연 연기가 가득 차 있는 내부가 들어왔다.
"강석현!! 당신을 긴급 체포한다!"
하지만 내부에선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잠시 후, 밖에서 들어온 차가온 공기에 의해 뿌연 연기가 사라지자, 욕조에 한 남성이 축 늘어져있는 것이 그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의 왼쪽눈은 실로 꿰메져 있었고, 그의 목은 샤워기 줄에 감겨있었다.
한 형사가 그의 맥을 조심스레 짚어보더니, 이내 고개를 살짝 저었다.
"이미 죽었습니다."
"사인은?"
"아마도 이 줄로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 근데 이새끼 눈은 왜이래?"
다른 형사가 세면대에 있는 피묻은 실과 바늘을 보고는 대답했다.
"으 미X놈..아무래도 스스로 눈을 꿰맨거 같은데요?"
"뭐?"
그의 상태를 조심스럽게 살피던 형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참 기묘하네요. 전 애인을 욕실에서 샤워기줄로 목졸라 살해한 사람이,
자신도 똑같은 방법으로 자살을 하다니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