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상부 미국을 제외한 세계의 최강대국, 한때 지구를 양분했던 강철의 나라, 소련입니다
그에 걸맞게 군사력 역시 장난이 아닌데요.소련에서 러시아로 넘어오면서 많은 변화(라고 쓰지만 몰락이라고 읽는다)를 겪었지만
여전히 세계 탑급의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군사에 관심 없는 일반사람들도 발틱함대니 흑해함대니하는 명칭들을 역사시간에 한번쯤 들어보셨을정도죠
<콱! 마!>
이는 현대에도 이어져(그래봐야 대전중의 소련해군은..ㅠㅠ) 1985년을 기준으로 본 소련의 해군력은 가히 절정에 달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잠깐 이떄 소련해군의 스펙을 살펴보면..
총병력 757,000명 항공모함 5척, 순양함 32척, 구축함 74척, 호위함 32척, 핵잠수함 227척, 디젤 잠수함 154척 이외에
400척을 넘어가는 초계정과 역시 100여척이 넘는 경비함 등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적의 주요 대도시를 공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의 장착 및 공격이 가능한 타이푼급이나 델타급 등의 잠수함이 80척이 넘었습니다.
막말로 어지간한 중소국가 정도는 해군만 움직여도 손쉽게 찜 쪄먹을 수 있는 정도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엄청난 군사력을 유지하면서 과연 사고가 없었을까요?최초의 핵 탄도미사일 탑재 원잠. K-19(나토 부여명 호텔급 1번함)부터
이미 삐걱거리기 시작했죠.
최강의 보복무기로 은밀히 바다를 누비며 조국의 명이 떨어지면 제국주의 미국의 심장에 기습적인 비수를 꽂아 버리고 넓은 대양으로 퇴출해버리는
K-19~! 당연히 여기에 거는 소련해군의 기대는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에 부응하여(?) 건조 당시부터 숱한 사고로 많은 사람을 잡아먹었으니..
코르크 접착 작업 중이던 근로자 2명이 화재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탱크 내부에서 내장 작업을 진행하던 근로자 6명이 질식사 했죠.
갑자기 미사일 커버가 지맘대로 닫히면서 역시 그 밑에서 작업중인 근로자 1명이 사망했습니다.
진수식에서도 이런 불안감은 이어졌습니다. 전통적으로 여자가 샴페인 병을 깨트리는 진수식에서 남자가 그 역할을 맡았고 그나마도 병이 깨지지 않았죠
불안한 마음은 현실이 되어 첫 출항에 나선 K-19는 물이 새기 시작해 급히 수리에 들어가는 추태를 보였죠
<K-19, 과부제조기, 히로시마>
그리고 1961년...
초계임무 수행 중 문제가 발생합니다. 잠수함의 왼쪽 원자로가 열교환기 순환용 펌프의 고장으로 멈춰버리면서 온도가 800도까지 치솟은겁니다.
이대로 진행하다간 원자로가 녹아서 함이 가라앉는 것도 문제였지만 진짜 문제는 그날이 7월 4일이었다는 점입니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이죠. 위치는 영국 남쪽 해안, 미국의 독립일에 적국의 핵잠이 같은 자유진영의 해역에서 핵공격을 가한다?
(물론 K-19입장에서는 공격이 아니지만)
이건 마치 일본 잠수함 우리나라 해역에서 광복절에 서울을 향해 미사일을 날리는거랑 동급의 충격입니다.
일단 적의 해역이니 떠오르지 않고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해 보려 노력했지만 실패한 K-19는 부상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이게 왠걸? 부상을 하였으나 엎친데 덮친격으로 안테나까지 고장나 있었습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 인류 역사상 가장 용감한 영웅들이 등장합니다.
급조한 냉각통을 방사능 방호수단이 없이 맨몸으로 들어가 원자로를 식히는 말 그대로 죽음이 결정된 결사의 임무에 자원한 것입니다.
이 7명의 영웅들은 기관실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방사능에 피폭되어 몸이 붕괴되어 갔지만 만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합니다.
이들의 희생으로 간신히 원자로를 식힌 K19는 기지로 복귀했지만
7명의 영웅들은 며칠안에 사망, 몇년뒤 14명이 방사능 피폭으로 사망, 이외 남은 승무원들도 평생을 갖은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당시 K19 승무원이었던 Ivan Kulakov, 가장 마지막에 사망(2014)한 최후의 승무원이었다.>
K19는 기지에 복귀한 뒤에도 문제여서 한동안 사방을 방사능으로 오염시기도 하였죠.
덕택에 K19는 히로시마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이후 조사결과는 정말 어이없는 것이었습니다.
건조 당시 사용한 용접봉의 조각이 냉각장치에 남아 있다가 문제를 일으킨것이죠.
이후에는 잘 써먹었냐구요? 아니죠. 그러면 이 글에 오를 리가 없죠.
1969년 미국 잠수함과 충돌하지를 않나 1972년에는 큰 화재가 발생해 20여명이 넘는 승조원이 사망하지를 않나
여러가지 크고 작은 사고를 쳤습니다. 물론 그럴때마다 우리의 소련해군은 끝까지 수리해서 써먹었죠.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였으니 이후에도 K-8 비스카야만 침몰 사건(승조원 전원 사망), K-429 캄챠카 반도 침몰 사건(30여명 사망) 등의 크고 작은 잠수함 사고가 있었죠.
그러다가 1986년 미국의 도움으로 살아난 소련 해군의 체면을 있는데로 구긴 잠수함 사고가 발생하였으니..바로 K-219가 친 사고입니다.
<K219>
1986년 10월 3일 버뮤다 해역에서 항해중이던 K-219는 어이없는 사고를 당하고 맙니다.
미사일 사일로의 커버가 제대로 닫히지 않은 상황에서 잠항을 시도하였다가 바닷물이 유입, 미사일의 액체 연료와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대폭팔을 일으켰죠.
그러자 함장은 급히 원자로의 폐쇄를 결정하는데 여기서 또다시 영웅들이 나옵니다.
원자로 폐쇄 작업 도중 3명의 수병이 죽고 1명의 수병이 피폭당하죠.
이쯤되면 소련의 군인들이 정말 고달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_-;;;;
하지만 이들의 희생이 무색하게 함내로 유독가스가 퍼지기 시작했고 결국 함장은 퇴출을 결정합니다.
그나마 다행이도 이 소란에 놀란 미 해군이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덕에 승조원들은 별 피해없이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소련 해군>
다음은 그 유명한 K-278 콤소몰레츠 침몰 사건입니다.
이 배는 당시 소련 해군의 최신예 잠수함으로 청년 공산 동맹원이라는 뜻의 콤소몰레츠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죠.
이는 상당히 영예로운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K-278은 실험적인 성격이 강한 배로 선체의 대부분이 티타늄으로 되어 있었고 때문에 1024m까지 잠수한 기록이 있는
당시로서는 최고의 잠수함이었죠.
하지만 소련의 악몽 높고 전통있는 침몰의 저주를 피해가지는 못했습니다.
1989년 4월 7일. 위치는 바렌츠해로 노르웨이의 앞바다
평온히 정상적인 항해 중이던 콤소몰레츠의 함장은 잠수함 뒤쪽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습니다.
급히 해치를 닫고 10여분만에 부상했지만 이미 화재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
서서히 잠수함은 가라앉기 시작했고 승조원들은 배를 포기하고 탈출을 시작했습니다.
다행이도 노르웨이에서 구조대가 출발했죠.
그나마 그게 희망이긴 했지만 문제는 수온이었습니다. 빠르게 도착한 항공기에서 보트를 투하했지만 물에 있던 50여명의 승조원들을
다 싣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대부분의 수병들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하고 맙니다.
전체 승조원 69명중 27명만이 목숨을 건졌죠.
반면 콤소블레츠은 탑재하고 있던 2발의 핵어뢰와 함께 심해 1680m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일단 소련 잠수함의 침몰이야기는 여기가 끝입니다만 러시아 역시 이 전통(?)을 이어받았습니다.
2000년에 있었던 K-141 쿠르스크 침몰 사건이 대표적이죠.
사실 우리가 평소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육상의 원전 못지 않게 바다도 위험합니다.
위에 쓴 사례이외에도 침몰한 핵잠들이 심해에서 방사능을 내뿜고 있죠.
언젠가는 수습해야 할 수많은 인류의 실수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전 글에 의외로 많은 실수가 있더군요. 글자로 틀리고..죄송합니다. 글 쓸때 좀 졸렸거든요..-_-;;
다음부터는 깔끔하게 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자료 보충 및 오류, 출처 보완, 오탈자 및 맞춤법 등의 지적은 댓글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