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스포 많음]
[밑에 눈물 펑펑 흘릴 수 있는 영화를 추천해달라는 글을 보면서...]
어느정도 나이를 먹다보면 억지로 눈물샘 자극할려고
온갖 장치들을 나열한 영화들에 대해 내성이 생기기 시작한다.
역으로 눈물은 커녕 오히려 그런 영화들을 보며 짜증을 내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되는데...
바로 이때가 그 내성이 마음속에 자리잡힌 시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내성에도 불구하고 아주 그냥 사나이 눈물 쏙 빼놓은 영화가 3편 있었다.
그 중 가장 슬펐던 영화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다.
엔딩크레딧 올라오면서 오열하며 눈물 흘렸던 내 자신이 너무 신기해서
겨우 마음 달래고 "아니...이 영화가 뭐길래, 피 한방울도 안나올 것 같은
냉혈한 소리 많이 들은 내가 이리도 눈물을 흘렸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공대생 기질을 발휘하여 한번 파보았다!!
인간(동물)은 사랑받고 싶어하는 기본적인 욕구가 있다.
흔히들 삐둘어진 아이를 보면서 "쟤는 부모님께 사랑을 못 받았나봐."라는
말을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심리적인 측면에서 볼때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일종의 관심을 비뚤어진 행동으로 끌기 위함인 경우가 있기 때문인데...
마츠코도 여기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늘 아버지의 사랑을 불치병 앓고 있던 여동생에게 뺏겼다고 생각했던 그녀.
유일하게 아버지의 관심을 끌수 있었던 동시에
미소를 짓게 해드리던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표정.
그 표정을 습관적으로 짓는 것에서 관찰할 수 있다.
그만큼 마츠코는 사랑에 목마른 아이였다.
[아버지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 기괴한 표정을 짓는 마츠코]
마츠코의 비극은 어느 순간 줄줄이 찾아온다.
학교 내에서 일어난 도난사건에 이상하게 엮인 그녀는
선생직에서 억울하게 잘리게 되는데...
엎친데 덮친격 "아버지의 사랑을 뺏은 너의 존재 때문이야."라며
가족 모두가 보는 앞에서 병든 여동생마저 미친듯이 목조르는 걸
제지당하다 집을 영원히 떠나게 된다.
그리고 가족에게서 찾지 못한
자신을 진정 사랑해 줄 이를 찾아 긴 여정을 떠난다.
여기서부터 그녀에게 거쳐간 남자들이 차례로 소개된다.
젊은 미용사를 제외한 나머지 남자들은 사회에서 통용될 수 없는
제대로 어긋난 사랑들이였지만 영화는 그것을 즐거운 하나의 이벤트처럼
아주 화려하게 뮤지컬적인 요소들로 포장하고 있어 그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들을 한층 극대화시킨다.
특히 "Happy Wednesday"라는 곡에서 유부남과의 사랑을 이리도 유쾌하게
표현할 수 있는가 싶을 정도로 기발하며 개인적으로 꼽는 명장면 중 하나이다.
[뮤지컬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그렇게 번번히 사랑에 실패한 마츠코.
친오빠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인지하게 되는데...
여동생은 죽기직전까지 언니인 마츠코를 그리워했으며
죽어가면서 했던 마지막 말 또한 "언니, 어서와."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파란만장하게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찾았건만
자신을 진정 사랑해준 사람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거늘...
그런데 그 사람을 목조르면서까지 진심으로 증오했으니...
동생의 사랑을 알아주지 못한 마츠코는 그대로 무너져내리다 못해
폐인이 되어버린다.
[여동생의 죽음에 대해 듣고 눈물흘리는 마츠코]
울컥했던 첫 대목이다. 뒷통수 제대로 맞은 느낌이랄까?
왜 이리도 사랑운이 없을까, 왜 이리 남자운이 없을까
생각했는데 사랑운이 없는게 아니였다. 알아차리지 못한 것 뿐이였다.
바로 이 씬에서 많은 관객들이 마츠코에게 이입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지독한 인생인데도 불구하고 모두와 닮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가 마츠코처럼 인생이 이리 난장판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사랑에 한번쯤은 실패한 경험이 있었을 것이며
정작 당연시 되는 가족의 사랑,
늘 곁에 있는 당연한 것으로 치부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츠코와는 상황이 다르다.
감독은 지금이라도 고마워해야한다고
그리고 사랑을 사랑으로 돌려줘야한다고 관객에게 꾸준히 설득한다.
마츠코처럼 시기를 놓치기 전에...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
영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 한단계 더 나아간다.
사랑이 메말라가고 있는 각박한 현실을 대변해주는 마츠코의 죽음.
감독은 우리에게 묵직한 돌직구를 날린다.
희망과 꿈마저 짓밟히고 있는 사회,사랑과 관심없이 자라나는 아이들...
겨우 잡은 한가닥의 희망 앞에서 그런 아이들에게 허무맹랑하게 살해당하는 마츠코
우리에게 전하는 일종의 경고 처럼 느껴진다.
우리마저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미래에 우리의 모습은 마츠코와 별반 다를게 없을 것이라며 충격요법을 주고 있다.
그래도 감독은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녀가 즐겨부르던 희망찬 동요와 함께 하늘나라로 걸어올라가는 마츠코.
비록 서툴더라도, 실패했더라도 그리고 그 대상이 못났더라도
세상에 깊숙히 심어놓고 간 사랑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당신에게도 "사랑을 실천하시오. 실천하는 이는 이리 이름답습니다"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하늘나라에서 서로 반갑게 맞이해주는 마츠코와 그녀의 동생을 번갈아 비춰주며...
["타다이마." "오카에리."]
우리가 이 영화를 (만약에 흘렸다면) 보고 눈물을 흘린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후회로 인한, 성찰에 의한, 안타까움으로 인해 등등 복합적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그만큼 위대한 것이다. 많은 생각을 해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마츠코의 상황과 사건들은 모두 억지스러울지는 몰라도
마츠코의 감정 만큼은 우리에게 진심으로 다가왔기에 그리고 우리를 대변해주기에
그녀의 일생이 이리도 슬프게 느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