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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역)선셋 리셋 제 14장 : 어여쁜 포니 공주님은 빛나는 것을..(상)
게시물ID : pony_917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기뮤식의노예
추천 : 3
조회수 : 82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10/01 00: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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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장 : 어여쁜 포니 공주님은 빛나는 것을 좋아해



캐이댄스가 얼굴을 붉히며 멀어져가는 걸 선셋은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똑같이 멍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샤이닝 아머를 돌아보며 선셋은 질문했다.

"쟤 대체 왜 저래? 희한하네.."

엄청 뭘 창피해하면서도 걱정하는 눈치던데.. 선셋이 뭘 아주 잘못한 것 같진 않지만.. 영 신경 쓰이기는 매한가지였다. 캐이댄스가 저러는 걸 선셋은 보기 싫었고 말이다.

이제야 생애 첫 순간이동의 충격에서 헤어 나온 샤이닝 아머는 선셋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글쎄, 화장실이 급해서 그런 건가.."

'얘가 진짜..' 말도 안 되는 추론에 선셋은 불만스럽게 두 눈을 옆으로 굴렸다. 하여간, 암말 한번 안 사귀어본 티를 내요 티를 내.. 키스하는 것도 어설프고 말이야. 연습 많이 시켜야겠네..

그래도 샤이닝 아머의 입술이 선셋의 볼에 닿을 때의 그 기분은.. 정말 좋았다.

자기가 직접 샤이닝을 침대 위로 밀어붙일 필요 없이 샤이닝이 자발적으로 해준 키스는 그런 기분이었다. 처음 캐이댄스가 샤이닝 아머에게 자격미달이니 어쩌느니 딴죽을 걸 때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결과만 따지고 보면 오히려 캐이댄스에게 감사하고 싶을 따름이었다.

샤이닝이 이렇게 노력해준 만큼 보답을 해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수동적인 성격인 얘 치곤 이정도면 엄청 애를 쓴 거였다. 공공장소에서 공주에게 키스하는 배짱 좋은 일을 저질렀다는 것도 잊지 말자. 이런 위업(?)을 이루었는데 고작 볼에 쪽 하고 키스해주는 걸로 퉁치기는 싫었다.

적어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을 서로 착 밀착시켜가면서 입속에 혀까지 들어가는 진하디 진한 키스와 함께 엉덩이도 마음껏 더듬게 해 줘야지... 선셋은 타들어가는 욕망을 서로의 포옹으로 발산하며 자신의 체취를 샤이닝에게 영원히 남기고만 싶었다.

흐뭇한 상상이 선셋의 뇌리를 가득 체웠다. 샤이닝 아머와 선셋의 거리는 점점 아찔해질 정도로 가까워지고 있었고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선셋의 정욕은 점점.. 해소되기만을 갈망하고 있었다.

만약 지금 샤이닝 아머가 관계를 요구한다면, 선셋은 거절할 용의가 전혀 없었다.

"샤이니. 1교시 쨀래?"

선셋은 샤이닝의 귀에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지금 나랑 같이 가면 보건시간 성교육 만점 받게 해줄 수 있는데.."

뜬금없는 선셋의 요구 탓인지, 아니면 귀가 유독 민감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샤이닝의 몸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저..서-선셋..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그러나 선셋을 막을 만큼 멍청한 자 그 누가 있으랴. 누가 보든 말든.. 아니, 사실은 누가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던 차였다. 학교의 학생들 앞에서 대놓고 샤이닝 아머가 선셋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당당히 각인시켜주고만 싶었다. 이 학교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유명하고, 가장 욕망이 넘치는 암말의 옆자리는 바로 학교의 멋쟁이들도, 운동선수들도 아닌, 귀여운 덕후: 샤이닝 아머의 차지였노라고.

하지만 샤이닝 아머는 명백히 불편해하고 있었으므로, 선셋은 샤이닝 아머의 심정도 약간 헤아려주기로 했다. 1교시까지는 시간이 약간 남았으니, 순간이동으로 다른 데로 가 볼까..

선셋은 짓궂게 웃으며 거의 일주일전, 샤이닝 아머와 만난 바로 그 주간에 학교 주변 여기저기에 심어놨던 비전 표식중 한 곳을 연상하며 뿔에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청록색 섬광과 함께 둘의 모습은 어느덧 학교 내에서 사라졌다.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선셋은 녹음이 우거진 곳의 잔디를 밟고 있었다. 나무의 그늘에 가려 주변에 건물 하나 안 보이는 한적한 곳이었다.

바로 이 곳, 캔틀롯 시 공원은 인간세계의 그것의 규모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했다. 하긴, 이 캔틀롯은 산 위의 도시인만큼 부지를 따로 내기도 어려웠을 테지만 말이다. 그래도 공원은 이른 아침 햇살을 받은 덕분인지 상당히 수려한 경관을 자랑중이어서 딱히 불평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날개 아래 바짝 껴안은 샤이닝 아머를 플어준 뒤 선셋은 미소를 지으며 샤이닝 아머를 돌아보았다. 아주 게슴츠레한 미소였다.

"자. 네가 불편해할까봐 공원으로 왔어. 아주 깊숙한 곳으로.."

이젠 공원에서 뭘 하면 좋을지에 대한 생각만이 선셋의 뇌 속을 가득 채웠다. 옥상의 딱딱한 바닥이나 빈 교실에서 하는 것보단 잔디 위에서 뒹구는 게 더 나은 선택일는지도 모른다.

선생님의 책상 위에서 몰래 하지 못한다는 게 영 아쉬웠지만 말이다. 위험부담이 높았지만, 그래도 선셋이 인간 세상에서 했던 것 중 가장 스릴 넘치고 아찔한 성관계 경험중 하나였다. 물론 인간세계에서 했던 그것은 무언가가 하나 빠진 기분이었다만, 그 무언가를 이제 샤이닝 아머가 채워 주게 되었으니까 뭐..

작은 태양의 공주는 유니콘에게 서서히 접근했다. 

"너와 나. 둘 뿐이야."

그럼 할 일은 딱 하나밖에 없지.

"엿볼 포니도 없고... 좋지?"

"서-선셋! 왜...왜 그런..."

샤이닝 아머가 황급히 부끄러워하는 목소리가 퍽 귀엽다... 곧 좋아 죽는 비명을 지르게 되겠지만...!

대답 대신 선셋은 아랫입술을 핥았다. 주어진 시간은 15분, 만약 샤이닝이 키스만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면 선셋은 키스보다 더.. 본격적인 일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선셋의 몸도 본격적인 해소가 필요했고 말이다. 아예 송두리째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셋 쉬머는 원하는 게 있으면 취하는 포니였다.

상대가 되는 포니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간에.... 잠깐...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자마자, 쌓아올려왔던 흥분이 거짓말같이 사라지고 죄책감만이 남았다. 지금 숫기 없는 얘를 잡아다가 의견도 제대로 묻지 않고 선셋 멋대로 휘두르고 있는 꼴이 아닌가? 어찌 보면 인간 세상에서 했던 짓보다 질이 나빴다. 전에는 없었던 물리력, 마력으로 억지를 부린 거나 다름없었으므로, 선셋의 심정은 더욱 더 참담해져만 갔다.

한숨을 쉬며, 선셋은 미안함으로 고개를 숙였다.

"미안.. 난 그냥..."

그냥 뭐? 널 이 자리에서 강제로 따먹어서 내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설명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그리고 애초에 왜 이런 식으로 샤이닝에게 '보상'을 해주겠다고 생각했던 걸까? 지만 좋자고 꾸며낸 허율 좋은 핑계가 아닌가?

"진짜 미안해 샤이니.. 학교로 돌아가자.. 미안.. 나도 모르게 예전.."

선셋은 고개를 좌우로 세게 저으며 말을 이었다.

"시-신경 쓰지 마. 가자. 빨리."

'진짜 이래서는 안 돼.' 선셋은 속으로 언성을 높여 자기 자신을 호되게 질책했다. 

예전 선셋도 이 정도로 막 나가진 않았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기만, 유혹, 조작, 위협 등의 수단을 가리지 않고 썼긴 해도, 언제나 넘어가선 안 될 일정 선을 그어두고 있었다. 때때로 물리적 수단도 쓰긴 했지만, 그건 언제나 강도나 빈집털이 같은 놈들에게서 자기보호수단으로 썼을 뿐, 인간 학생들이나 포니들을 협박하기 위해 대놓고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샤이닝 아머가 진지한 표정으로 선셋에게 물었다. "왜 그래? 선셋?"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거짓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런 자신에게 엄청난 거부감이 들었다. 샤이닝 아머에게 보답을 해준답시고, 순간의 성욕에 휩싸여 평생 용서 못 받을 짓을 저지르려고 했었으니까.

'아냐.. 그 정도는 아닐 거야...'

선셋은 속으로 자기변호를 시작했다. 전에도 이거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샤이닝 아머는 별 말 없었고, 그리고 스스로 너무 심하다 생각했을 때 그때처럼 알아서 제동을 걸었으니까. 예전과 달리 선셋은 권력욕에 심취해 모든 걸 차지하려고 눈이 벌게진 그런 괴물이 아니었다.

그렇게 선셋은 우두커니 서 있다가, 마침내 샤이닝 아머를 쳐다보았다. 아무 일 아니라고 그냥 은근슬쩍 넘어가고 싶었지만, 선셋의 마음 한편에서 크게 자라난 양심이 선셋의 이런 태도를 호되게 질타 중이었다. 결국 별 일 없이 끝났고, 또 선셋이 스스로 자제심을 발휘했다고 하더라도, 이걸 그냥 옆으로 치워두고 없는 일 취급하는 건 싫었다.

그래서.. 선셋은 긴 한숨을 내쉰 뒤, 힘이 풀린 눈으로 샤이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샤이니.. 이야기좀 할래?"

"저.. 근데.. 시간이.. 몇 분밖에.."

샤이닝은 쭈뼛쭈뼛 확답을 하지 않았고, 그 까닭에 선셋의 기분은 한층 더 가라앉았다.

"하-하-하지만.. 개근하는 것보단 네가 더 중요하니까.."

샤이닝은 선셋에게로 다가가 자기 몸을 착 붙였고, 선셋은 깜짝 놀라 샤이닝을 쳐다보았다.

"...빨리 끝낼 수 있지? 1교시 수업 종까지 약 10분남은 것 같으니, 빨리 안 들어가면 지각-"

더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선셋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무슨 새나라의 어린이신가, 어떻게 저리 멍청해 보일정도로 순진할 수 있는지... 정말 할 수만 있다면 아까 선셋이 느꼈던 자책감까지 섞어서 감정 섞인 앞발굽 한 방을 자기 머리에 내려찍어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리고만 싶었다.

물론..!

진짜 그런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선셋은 입으로 큰 숨을 들이쉰 뒤 내뱉었다.

일단은..

지금 닥친 문제부터 집중하는 게 좋겠다.

호르몬이 널뛰기하는 알리콘의 문제가 아닌, 오롯이 샤이닝의 문제 말이다. 일단 학생이라는 신분 상 출석 자체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테니 그 점은 이해해야했다. 그리고 샤이닝은 선셋이 빨리 이야기를 끝내주길 원했지만, 지금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다 하려면 시간을 멈추지 않고서야...

선셋은 잠깐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런 방법이 있었군!

"빨리 끝내줄 수 있어."

이렇게 말하고 나서 선셋은 잠깐 필요한 주문의 유효 범위를 대충 측량한 후, 뿔에 마력을 모아 샤이닝 아머와 자신의 주변에 마력의 막을 쳤다. 시전하는 중간에 운 없는 동물이 막 사이에 행여나 끼지 않도록 약간 신경을 쓰면서 말이다.

주문 시전이 끝나고, 선셋은 주문이 제대로 작용했는지 마력장 바깥을 살폈다. 제대로 된 것 같아 선셋은 벙찐 얼굴로 멍하게 서 있는 샤이닝 아머를 돌아보았다.

샤이닝 아머는 얼떨떨한 어조로 겨우겨우 말을 꺼냈다. "바...방금 뭐한 거..."

과학을 논할 시간이로군. 선셋의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았다. 음욕 같은 어두운 감정에 비해, 과학은 이성적이고 또 이론 자체만 두고 보면 순수했으니까.

"네가 지각할까봐 걱정하는 것 같기에, 한정 지역 시간 지체 마력장을 우리 주변에 걸어두고, 그 효력을 1000배로 증폭시켰지."

이렇게 대답하고 선셋은 이해를 도와줄 예시를 두런두런 찾기 시작했다. 그냥 주변에 널린 나뭇가지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 보다 더 확 와 닿는 예시를 찾아야만 했다.

"저.. 알아먹게 좀 이야기해줄래?" 샤이닝 아머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어조로 되물었다.

논문으로 내자면 100장 이상은 우습게 넘어가는 복잡한 내용을 요약하자니 갑갑했지만, 주문의 작동 원리를 세세히 설명하느니 차라리 결과만 딱 때서 설명하는 게 좋겠다고 선셋은 생각했다.

"시간을 멈췄어."

별 것 아니라는 어조로 말하며, 선셋은 마력장 밖에 보이는 공중에서 멈춘 새를 앞발굽으로 가리켰다.

선셋이 가리킨 쪽에 있는 멈춘 시간 속의 울새를 바라보며, 샤이닝 아머는 경악에 찬 표정으로 선셋을 쳐다보았다. 겁에 질린 표정인지, 아니면 그냥 대단해서 그러는 건지 선셋은 알 수 없었다.

둘 중 뭐가 되었든 선셋은 불편했다.

샤이닝 아머가 마치 범접 못할 걸 쳐다보는 것처럼 선셋을 쳐다본다는 이 사실이 말이다.

"이-이-이게 가능해?"

평소대로라면 기쁘게 대답해줄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지금은 별로 기쁘지만은 않았다.

"뭐... 최근까지만 해도 불가능하긴 했지."

전학 수속을 기다리는 동안 하릴 없이 새로이 얻은 마력을 이래저래 굴려보다가 알아낸 사실을 이야기하며, 선셋은 잔디밭 위에 앉았다.

"근데.. 어.. 절대 이 막 바깥으로는 나가지 마. 위험하거든.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어."

마력장의 경계면을 약간 더 확장시키며 선셋은 말을 이었다. 

"힉! 알았어!"

샤이닝은 겁이 난 듯 선셋의 곁에 바짝 붙었다. 이 얼어붙은 시간의 속에서, 둘의 체온과 호흡만이 고립된 듯 흐르고 있었다.

"그나저나.. 뭘 이야기하고 싶다는 건데?"

샤이닝 아머의 질문에 선셋은 하마터면 주문의 제어를 약간 흐트러뜨릴 뻔 했다. 대체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좋을지 이걸..

이야기해야할 게 너무나 많았다. 캐이댄스의 일부터, 선셋도 이퀘스트리아에 계속 있고 싶지만 떠나야만 한다는 거랑 트와일라잇의 일, 그리고.. 샤이닝 아머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게 머저리 같은 이유까지.. 꾹 눌러 담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옛 성격이 샤이닝 아머랑 같이 있을 때 튀어나온 바람에, 선셋은 '내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나.' 하는 회의감까지 들 정도였다.

그래서 선셋은 특히 샤이닝 아머를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에 대해서는 꼭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다.

샤이닝 아머도 꼭 알아야 했다.

"네가 널 여기 왜 데리고 왔을 것 같아?"

영 종을 잡을 수 없는 듯, 샤이닝 아머는 대답했다. "어... 이야기 하려고?"

처음에 선셋은 내 볼에 뽀뽀한 용기가 가상해서 상 삼아 한번 대주려고 했노라라고 있는 그대로 말하려고 했다. 제대로 키스하는 법도 가르쳐주려고 했었다. 볼에 쪽 하고 끝내는 건 선셋 입장에서는 키스도 뭐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것도 중요한 거 싹 뺀 자기변명에 가까웠다. 정작 샤이닝 아머를 구석에 몰아넣고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오길 대놓고 유도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던 건 선셋 본마였다. 아무리 그동안 머뭇거리기만 하는 샤이닝에게 애간장이 다 녹았어도 이건 할 짓이 아니었다.

그래서, 선셋은 샤이닝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응당 그래야만 했었으므로.. 

다 끝나고 샤이닝이 선셋을 혐오하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샤이니는 선셋의 곁을 떠나 캐이댄스에게 선셋에 대해 말할 테고, 그렇게 캐이댄스와의 우정도 끝장나는 거고, 결국 셀레스티아는 선셋을 '다시' 한 번 쫒아낼테고, 그러면...

아니.. 단계적으로 몰락하는 미래에 대한 미친 예상은 일단 접어두자.. 선셋은 심호흡을 하며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여기서 같이 섹스하자고 온 거야."

샤이닝은 화들짝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선셋은 헛웃음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날 싫어하기 시작했군..

"키스로 시작해서, 서로 몸 좀 더듬거리다가.. 분위기 타면 제대로 한 판 해볼 생각이었지 원래는..."

강제로 범하는 대신 유혹이라는 방법을 썼다고 해도, 결국 선셋이 원하는 방향으로 강제하는 거나 다름없으므로 순전히 선셋의 잘못이었다.

샤이닝 아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얼굴은 이미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있었다.

"뭐-뭣?!"

저 두 눈동자에 가득 담긴 경악도 곧 멸시와 분노로 바뀌겠지.. 하긴, 눈앞에 선 진면목을 알게 되었는데 무얼 더 바라겠냐만은..

작은 태양의 공주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판이 엎어진 걸 상관도 않고 여전히 육욕을 요구하고 있는 자신의 육체가 한심했던 까닭이었다. 

"더 최악인 게 뭔 줄 알아? 여전히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는 거야.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심지어 까딱 잘못했다간 널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당장 너랑 이 자리에서 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다고 지금!"

선셋은 공중에 멈춰 있는 날씨 관리 페가수스를 올려보며 말했다. "망할.. 나 진짜 한심하네.."

곧, 선셋의 어께에 가벼운 무게감이 느껴졌다. 측은한 표정으로 샤이닝 아머가 선셋의 어께에 앞발굽을 올린 거였다. 선셋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샤이닝을 쳐다보았고, 샤이닝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선셋.. 왜 이런 이야기를 해? 한심하다니 누가? 너 같이 멋진 포니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데."

저 바보, 난 너를 구해주려고 이러는 건데 왜 자꾸 달라붙고 난리야! 아 정말 짜증나!

"너, 나에 대하서 잘 모르는구나?"

선셋은 네 다리로 일어나 표정을 있는 대로 찡그렸다.

"고작 일주일 만난 것 가지고 아는 체 하지 마! 너, 전에 나 만나봤어? 아주 괴물새끼가 따로 없었거든?! 남이 괴롭든 말든 내가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다 가져갔고, 다른 포니들을 순전히 재밌다는 이유로 부려먹고 쓰레기 내버리듯 버렸다고! 근데 제 버릇 못 버리고 또 이러고 있으니.. 내가.. 아 씨발!"

아침 이슬에 잔디가 상당히 축축히 젖은 것도 아랑곳 않고 선셋은 자리에 푹 주저앉았다. 하필 꼬리를 깔고 주저앉는 바람에 황급하게 꼬리를 뺐고 대단히 쪽이 팔린 나머지 온 몸을 잔뜩 움츠렸다.

시간이 멈춘 세계는 바람조차 불지 않았다. 나직하게 깔린 적막함을 뚫고 샤이닝이 머뭇거리며 운을 떼었다.

"저.. 요점을 벗어난 것 같은데.."

문득 샤이닝 아머가 던진 말에, 선셋은 샤이닝 아머를 돌아보았다. 사려 깊은 눈빛으로 샤이닝 아머는 선셋을 살피고 있었고, 그 바람에 선셋의 가슴은 또 한 번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계속 날 신경 써 주는구나.. 난 그럴 자격도 없는 포닌데.. 

"대체 왜 그래? 왜 자꾸 그런 말을 내게 해주는 거야?"

혹시나 이러면 그만둘까 싶어 선셋은 샤이닝 아머를 노려보았지만, 샤이닝 아머는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샤이닝의 눈빛을 못 이기고 고개를 숙인 건 선셋이었다.

선셋은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 중이었다. 왜 샤이닝에게 자신의 본질에 관한 진실을 털어놓았을까? 샤이닝 아머랑 헤어지려고? 만약 선셋이 그걸 진심으로 원했으면 그냥 깔끔히 해어지고 말았지 이런 궁상은 떨지 않았을 것이다. 샤이닝을 속여온 죄책감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데 쓸데없이 육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선셋의 이성의 최후통첩인 것일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미-미-미안."

선셋은 사과를 하며 뿔에 마력을 집중했다. 둘을 둘러싼 차원이 이지러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말 못해.. 당장 학교로 돌려보내줄게."

겁 주는 게 안 통한다면, 마법을 사용하면 잠깐 동안은 샤이닝 아머가 깊게 알려고 드는 걸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근데 그래도 점심심간에 샤이닝은 물론이고 캐이댄스까지 가세해 또 이거 비슷한 소동이 반복되겠지. 하긴, 고민 있는 친구의 고민을 해결해주는게 친구가 할 일 아니던가..

하지만... 선셋은.. 샤이닝 아머가 필요치 않았...

'아냐!' 눈을 깜빡여 눈가에 어린 눈물을 숨기며 선셋은 속으로 외쳤다.

'샤이닝 아머가 필요해. 진심으로. 친구도 되고 싶고, 애마도 되고 싶어. 걔의 모든 걸 가지고 싶은데 왜!'

그렇다. 언젠가는 샤이닝 아머랑 헤이질 수밖에 없었지만, 샤이닝 아머가 과연 선셋에게 어떤 의미였는지에 관해서 자기 자신을 계속 속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샤이닝 생각으로 선셋이 정신이 흐트러져서 주문의 시전이 평소보다 더 늦어진 덕분에, 샤이닝 아머는 시전이 완료되기 전 아슬아슬하게 선셋의 뿔을 앞발로 감쌀 수 있었다. 아주 강하게 끌어안은 건 아니었지만, 주문을 취소시킬 정도로는 충분했다. 선셋의 시야는 순식간에 샤이닝 아머의 흰색 몸통으로 가려졌다.

"이러지 마."

굳건한 어조로, 샤이닝 아머는 선셋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지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네 곁에 있어야 될 것 같으니까. 자. 자. 괜찮아. 괜찮아. 화낼 필요 없어. 괜찮아."

저 차분한 목소리.. 선셋의 등골이 왠지 모르게 오싹했다. 샤이닝은 뿔에 올렸던 발굽으로 선셋의 갈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전에도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있는 듯한 발놀림이었다. 샤이닝 아머의 체취가 선셋의 감각을 휘감았다. 하지만 음습한 욕구는 더 이상 없었다. 저번에, 샤이닝 아머의 방에서 단 둘이 있었던 때처럼 샤이닝 아머의 품에 평생 안겨있고만 싶었다.

물론 둘의 관계가 어떻게 끝날지는 선셋 본마가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비단 이것뿐만이 아닌 어머니가 주는 사랑, 가장 친한 친구, 마법, 선셋의 삶의 목적까지.. 한 달 조금 못 되는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걸 다 놓고 떠나야만 했다.

그래야만 했으니까. 트와일라잇이 원래대로 우정의 공주로 자라나려면, 선셋 쉬머는 원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했으니까..

막막한 절망감이 선셋의 심리를 압도했다. 다시금 눈앞이 흐려졌다. 코를 훌쩍이며 고통에 가득 찬 탄식을 내뱉은 뒤, 선셋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샤이닝 아머는 어께를 내밀었고, 선셋은 그 어께에 기대 목을 놓아 울었다.

모든 게 다 불공평했다. 여러 고생을 해 가며 다시 찾게 된 행복은 순식간에 사라지게 될 헛되고 뒤틀린 환상에 불과했다. 어머니도 잃게 될 것이고 친구들과 샤이닝도 잃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걸 희생하는 대가로 선셋이 얻는 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싸구려 임대 아파트? 세계의 존망보다 게임의 승패를 더 중요시하던 멍청한 유인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세계? 허울뿐인 학교 공주의 직위? 싫어.. 가고 싶지 않아.. 선셋은 한사코 마음속으로 거부했다.

샤이닝은 계속 선셋을 껴안고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다. 모든 게 괜찮게 풀릴 거라고 계속 선셋의 귀에 대고 속삭여주었다.

그럴 리가 없었지만.

상반된 두 개의 감정 사이에서 선셋은 갈등 중이었다. 괜찮을 리가 없잖아! 라고 버럭 소리 지르고 싶었다. 절대 샤이닝의 말 대로 괜찮게 끝날 리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샤이닝의 따뜻한 품 안에 안겨 단호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를 받고 있자니.. 이 상황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선셋은 차마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몇 분.. 아니, 몇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선셋은 울음을 그쳤다. 선셋의 격한 감정 표현이 좀 잦아들었어도 샤이닝은 계속 선셋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선셋을 달래고 있었다. 이윽고, 선셋이 숨을 좀 고른 것 같아서 샤이닝은 선셋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제 기분 좀 풀렸어?"

선셋은 대답을 미루고 눈을 감으며 잠깐 동안 샤이닝 아머와 함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즐겼다. 샤이닝 아머의 심장이 뛰는 소리는 그 가슴에 품고 있는 마음씨만큼이나 자상하고 잔잔했다.

"약간은.."

자신의 눈물로 이미 흥건한 샤이닝 아머의 털에 얼굴을 묻으며 선셋은 대답했다.

그리고 선셋은 샤이닝 아머를 다시 보게 되었다. 어떻게 저렇게 완벽한 대처를 할 수 있는 거지?

"샤이니.. 저... 어디서 그런 걸 배웠어...? 아니.. 그게 있잖아.. 엄청 익숙한 일인 것처럼 막 그러길래..."

"내 동생 정신과 상담의에게서 배운 거야. 트와일리는 일주일에 2번 정도 공황 발작을 일으킬 때가 있거든.. 그럴 때마다 꾸준히 옆에서 자기가 도와주겠노라고 응원을 해주는 게 좋다고 하더라.. 그리고.. 미안.. 네가 힘든 걸 빠르게 눈치 채지 못해서."

선셋은 한숨을 쉬며 샤이닝에게 자신의 몸을 완전히 기댔다. 왜 쟤가 나한테 사과를 하는 거람?

"사과는 뭘.. 바보짓 한 내가 먼저 사과해야지.."

샤이닝은 말없이 선셋의 콧잔등에 짧은 입맞춤을 해 주었다. 깜짝 놀란 선셋은 수줍게 양 볼을 붉혔다.

"선셋... 그럼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차근차근히 이야기해 줄 수 있어?"

이번에는 속절없이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왜 아까까지 목 놓아 울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직접적인 답변은 할 수 없었다. 제발 떠나지 말아달라고 선셋을 붙잡는 포니들을 무시하면서 인간 세계로 떠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미안.. 못 하겠어 샤이니.. 공주님들만의 일이야. 이해 좀 해줘."

샤이닝 아머는 대답이 없었다. 묵묵히 선셋을 끌어안고 있을 뿐이었다. 샤이닝이 옆에 있는 게 선셋은 마냥 좋았다. 펑펑 울어 감정적으로 완전히 지친 상태였으므로 타오르던 성욕은 이미 불이 다 꺼진 상태였다. 그냥 샤이닝과 함께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을 뿐...

"그나저나.. 아까 너의 말에 대답하자면, 솔직히 난 네가 일주일 전 어떤 포니였는지는 전혀 신경 안 써. 내가 아는 선셋 쉬머는 누구도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날 구해줬고, 속은 썩이지만 사랑스러운 내 동생의 평생소원도 들어줬고, 그 누구보다 우리 엄마를 공손하게 대해준 포니니까."

침을 꼴깍 삼키며, 샤이닝의 말은 잠시 멎었다.

"저..그...그리고.. 좀 야한 주제로 넘어가자면... 아깐 거짓말 안 하고 나도 속으로 은근히 바라고 있긴 했었거든."

샤이닝은 잠깐 눈을 깜박거리며 말을 이었다. 

"허.. 캐이댄스 말 대로네. 생각 하고 말을 하니까 말이 더 잘 나오네. 어-어쨌든, 너 혼자 일방적으로 하고 싶은 건 아니니까.. 음.. 너무 죄책감 느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야. 기왕 말이 나와서 하는 이야긴데, 가끔가다 머릿속에 네 모습만 떠올라 주체를 못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난.. 음.. 알지?"

다행히 선셋의 정욕에 다시금 불이 붙기엔 선셋은 이미 감정적으로 녹초가 된 상태였다. 이미 내면의 갈등으로 인해 선셋의 내면은 만신창이인 상태였으니까. 게다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샤이니.."

선셋은 속으로 할 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비록 평소보다 오래 걸렸긴 했지만 말이다. 포니끼리 껴안고 있는다는게 이렇게 좋은 일일 줄이야..

하지만 이런 편안한 상황에서도, 선셋은 여전히 긴장 중이었다. 샤이닝에게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에 담고 있던 생각을 폭로해버린 이후로 계속 그랬다.

"무슨 소리야? 간단하지 않다니?"

선셋은 한숨을 쉬고 두 눈을 꾹 감았다.

'제발.. 이 이야기가 다 끝나고 날 무서워하지 말아주길..'

물론 이러면 샤이닝과 헤어지는 일이 더 쉽겠지만, 가급적 샤이닝 아머가 곧 떠나게 될 선셋에 대해 좋은 기억만 남겼으면 하는 게 선셋의 바람이었다.

"...내가 얼마나 강한지, 너도 잘 봐서 알지?"

"하하.. 응."

"내가 알리콘이 된 이후 얼마나 육체적 능력이 강해졌는지 스스로 실험해봤어. 뭐, 너도 오늘 아침에 내가 약한 지진을 일으키는 걸 봤겠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야.. 변화하면서 내 육체의 마력 연결이 어떻게 꼬였는지는 몰라도, 내가 격한 감정을 느낄 때마다 마력으로 강화되는 육체의 물리력을 잘 제어할 수가 없어. 까딱 화가 나서 발굽이라도 내려쳤다간 뭐... 사비로 재난복구기금을 마련해야할 정도이고, 하늘을 날면서 약간 흥분이라도 했다간 내 날개에서 터져 나오는 풍압 때문에 날씨가 바뀌고 말아."

선셋이 제체기 한번 잘못해도 샤이닝 아머가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고 있는데도 샤이닝 아머는 미동조차 없었다. 심지어 샤이닝의 몸에 기댄 선셋의 귀를 타고 들려오는 맥박도 전혀 변함이 없었다.

"..정말.. 종이로 만든 세상 속에서 사는 기분이야.."

샤이닝은 가만히 선셋의 갈기를 쓸어주었다.

"너무 네 자신에게 엄격한 것 같다. 나도 다친 적 없고, 트와일리도 다친 적 없는데."

싱긋 미소를 지으며 샤이닝은 말을 계속했다.

"쯧, 심지어 그 때 벅도 그냥 의식을 잃는 선에서 그친 것 같구만 뭐."

하지만 선셋의 속은 전혀 편해지지 않았다.

"그거야 그 땐 확실히 자제 중이었으니까. 널 처음 만났을 때도 자제 중이었고. 근데 우리가 계속 만날 때마다 자제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으니 그게 문제야. 자칫했다간 네가 크게 다칠 수도 있으니까. 망할.. 그냥 내가 가만히 대주고 있는다고 해도, 내가 너무 세게 조이는 바람에..  네... 거기가... 음... 망가질지도 모르고.."

비로소 샤이닝 아머의 온 몸이 공포로 바짝 움츠러들었다.

그럴 만 했다. 선셋도 별로 마음을 두지 않았다.

어떤 수말이라도 저런 반응이었겠지.

"아...!"

여전히 선셋을 쓰다듬고는 있었지만, 샤이닝 아머의 목소리엔 불편한 낌새가 역력했다. 샤이닝은 이제 뒷다리를 기묘하게 오므리고 있었다. 아마 저 안에 숨긴 내용물도 바짝 오그라들었을 것이다.

"아...아직 모르는 거잖아.. 그치?"

거시기가 박살나는 것보다 더 정신 나간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 선셋은 까르르 웃었다. 

"그러긴 해. 그래서 학교 끝나고 난 뒤 도구들을 여러 개 사서 실험을 해볼 생각이야. 내가 절정에 달할 때 과연 가해지는 압력은 얼마 정도며, 물체의 강도는 또 어느 정도여야 안 망가지는지."

제 입으로 털어놓고도 정말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선셋은 배시시 웃었다.

"그..그...그... 그거, 정말 좋은 생각 같다...참..."

스스로도 정신 나간 소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샤이닝은 비꼬거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구석 없이 동의를 해 주고 있었다.

"엥?"

"그 실험.. 좋은 생각 같다고. 네가.. 어.. 나랑... 만약.. 할 때를.. 대비해서..."

샤이닝의 두 볼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선셋은 샤이닝이 귀여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흠~ 생각 좀 하고 말하라는 캐이댄스의 조언이, 막상 야한 이야기가 나올 땐 실천이 잘 안 되는 모양인가봐?"

샤이닝의 홍조가 더 깊어지는 걸 보며 선셋은 얇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불현듯 캐이댄스에 생각이 미치자 선셋의 기분은 다시 가라앉았다. 이런 좋은 친구들을 두고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자니 속이 아려왔지만.. 이것만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샤이닝의 실연의 충격을 완화할 방법은 딱 하나 있을지도 모른다.

"...널 진짜 좋아하더라."

"누-누가?"

갑자기 화재가 바뀌어 적응이 안 되는 듯, 샤이닝 아머는 말을 다시 더듬거렸다.

"캐이댄스."

샤이닝 아머의 표정만 봐도 그 생각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걔가?!"

"왜?"

"캐이댄스가 날 좋아한다고?"

눈을 반쯤 감고 뚱한 표정을 지으며 샤이닝 아머는 되물었다.

"불과 2분전만 해도 나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얘가?"

선셋은 쀼루퉁하게 두 눈을 옆으로 굴렸다.

"누군 네 앞에서 소리 안 질렀나.. 자기주장 강한 알리콘을 처음 만난 것처럼 그런다?"

씨익 웃으며 선셋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캐이댄스가 너보고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의미로 애정 섞인 잔소리를 하는 거지."

'지금 그대로도 완벽하긴 하지만.. 독려를 해 줄 필요는 있겠군.' 선셋은 생각했다.

"그리고, 야. 너 경비대에 입대할 생각이라면서? 훈련 교관이 하루 종일 심하게 쪼아댈 텐데, 이 정도도 못 견디면 어떻게 해?"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목소리라도 낮춰줬으면 ... 잠깐... 방금 걔가 날 좋아한다는 게, 네가 날 좋아하는 것처럼 좋아한단 이야기야?"

그렇다고 대답을 하려고 하다가 선셋은 망설이고 있었다.

이게 맞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선셋은 곧바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 선을 넘으면 돌이킬 수 없음을 선셋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또 포니간의 관계를 함부로 조종중이군.. 나만 없으면 모두 만사형통이라는 게 사실일지도 몰라.'

하지만 선셋이 떠난다면.. 샤이닝 아머의 상처를 어루만져줄 포니가 꼭 필요했다. 사려 깊고, 자상하고, 끈질긴, 그러면서도 샤이닝 아머가 실연의 아픔을 딛고 제 정신을 차리게끔 독려를 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셋은 주저하는 마음을 털어버리고 명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니까? 어쩌면 나보다 더 널 좋아할지도 몰라."

여러 번 남자들과의 관계를 정리해본 경험에 따라 선셋은 미리 밑밥을 깔아두었다.

"너한테 잔소리를 하는 것도 아마 네가 걔한테 관심을 별로 안 가지니까 답답하고 짜증나서 그러는 거겠지. 내가 너한테 그런 쪽으로 관심이 있는 건, 달리 말하자면 걔도 너한테 그런 쪽으로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니까."

샤이닝 아머는 선셋 쉬머를 더 꽉 끌어안으며 머뭇거렸다. "나...난.. 네가 있는데-"

"알아. 그래도..."

선셋은 몰려오는 감정을 애써 진정시키며 입을 다시 열었다.

"가..가끔 생각하는 건데, 너한테는 나보단 캐이댄스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 걔는 더 예쁘고, 친절하고, 착하기까지 하잖아. 나중에 네가 결국 걔랑 사귄다고 해도.. 뭐 어쩔 수 없지.. 걔가 나보단 훨씬 나으니까.."

샤이닝은 묵묵히 선셋을 계속 끌어안고 있었지만, 캐이댄스에 대한 암시가 어느 정도 먹혀들어갔으리란 걸 선셋은 예상할 수 있었다.

"...아냐. 넌 캐이댄스보다 훨씬 멋진 공주님인걸."

받을 자격 없는 칭찬에 선셋은 한숨을 쉬었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이미 그러기엔 너무나 피곤했다.

큰 하품이 나왔다. 샤이닝의 몸을 배게 삼아 잠에 빠지고 싶었다.

"샤이니.. 잠깐만 이러고 있으면 안 될까? 나 피곤해.."

"어... 그럼, 시간은 얼마나 남았는지.."

"수업 종 칠 때까지?" 선셋은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피곤하긴 했지만, 현재 잔여 마력으로 시간 정지 주문을 얼마나 더 연장할 수 있을지는 충분히 계산할 수 있었다.

"2달 정도 걸릴걸.."

그리고 선셋은 땅 위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처음 부려보는 어스 포니의 마법은 신기하고도 기묘했다. 별로 의식하면서 마력을 조작하지 않아도 선셋의 발 아래로 흘러내린 마력은 땅 위에 돋아난 잔디를 거의 고급 침대나 다름없을 정도로 부드럽고 윤기 있게 변화시켰다. 알리콘으로 승천하기 전엔 미처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너 편할 대로 해 그럼.." 샤이닝 아머는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셋은 샤이닝의 가슴에 얼굴을 더 깊게 파묻은 뒤 바짝 무거워져오는 눈을 감았다. 

이건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였다. 선셋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파국을 맞기 전에 마지막 단 한 번이라도 연모하는 포니의 체온을 가까이서 느끼고자 하는 욕망을 공주는 거부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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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교시 수업 종료 종이 울렸다. 플뢰르 드 리는 책가방에 주섬주섬 교과서를 집어넣고 친구들과 함께 교실을 나섰다. 3교시가 친구와 같이 수업을 듣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그 다음 어퍼 크러스트는 지루하디 지루한 경영학 수업을 들으러 가고, 새시는 약간 좀 뭐랄까.. 잘못 소문이 퍼졌다간 명망 깎이기 딱 좋은 직업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새시의 큐티 마크가 의류 관련이긴 하지만, 왜 한사코 재봉술 수업을 듣겠다는 건지 플뢰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패션 업계가 캔틀롯에서 사회적으로 높은 취급을 받는 집단이긴 했지만, 모델과 의류 제작자 사이엔 매울 수 없는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한 필의 친구가 같은 업계쪽으로 진로를 정해줘서 플뢰르는 안심이 되었다. 같은 업계에 각자 다른 위치에서 서로를 도와가며 같이 올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 한 포니가 의상을 제작하고, 다른 한 포니는 그 의상을 입고 마음껏 런웨이에서 그 자태를 뽐내 둘이 서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가는 것이다. 이런 게 바로 진정한 절친의 의미가 아닐까?

절친이라.. 옛 기억이 떠올라 플뢰르는 미소를 지었다. 몇 년 전, 플뢰르는 여타 또래 암말들처럼 자신이 성 정체성을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서로 실험을 해 본 적이 있다. 그 결과... 둘은 그냥 친구사이가 편하다는 게 증명되었고, 둘은 그냥 절친사이로 쭉 남게 되었다. 또한, 플뢰르의 부모님도 플뢰르가 캔틀롯 상류층과 선을 봐 결혼하기를 원했고, 거기에 대해선 플뢰르도 별로 반항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다 플뢰르의 미래를 위해서 그러시는 것일 테니.

"지금 무슨 생각해?"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동안, 새시가 플뢰르의 곁에 다가와서 불쑥 말을 건넸다.

새시의 얼굴엔 걱정하는 낯빛이 가득했기에, 플뢰르는 친구를 안심시키기 위해 활짝 미소를 지으며 옅은 웃음소리를 냈다.

"미안. 잠깐 옛 추억 떠올리느라 여념이 없었네."

플뢰르는 방금 말을 건 친구를 쳐다보았다... 누군가가 빠진 것 같았다.

"크러스트는 어디 갔어?"

"그 얘가 가십이라면 사족을 못 쓰잖니. 선셋 공주님에 대해서 새로 뜬 핫 가십이 있다기에 앞뒤도 안 살피고 무슨 일 인지부터 알아보러 갔다니까 글쎄.. 3교시 수업 시간에 보재."

선셋 쉬머 공주. 그 이름만 들어도 플뢰르의 몸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어제 그 '불편한 만남' 이후로 플뢰르는 선셋 쉬머에 대한 여러 가지를 알아봤는데, 들리는 풍문만 해도 뭐 이런 포니가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어마무시했다. 일단, 셀레스티아 공주님의 학교 최우수 성적 학생이었으며, 마력의 강도는 그 학교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수들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는데, 이게 전부 선셋이 공주로 승천하기 전부터 떠돌던 이야기였다! 학교 먹이사슬의 최정점에서 군림했다는 점은 얼핏 플뢰르와 유사했으나 일단, 선셋과 플뢰르는 일단 다니던 학교의 급부터가 달랐고, 군림을 위해 주변마를 이용한 소셜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했던 플뢰르와는 달리, 선셋은 오직 독고다이 뿔 하나로 학교를 휘어잡았다.

선셋에게 도움 따윈 필요가 없었다. 이제 알리콘까지 되고 말았으니 그 힘은 끝 간 데를 찾아볼 수도 없다 하겠다.

하지만 선셋의 마력보다 더 두려웠던 게 뭐냐면 공주로써 선셋이 휘두를 수 있는 사회적 영향력이었다. 사실상 말 한마디만 해도 이퀘스트리아의 정치판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플뢰르의 아버지가 선셋 쉬머 공주의 기자회견이 실린 신문을 보면서 말씀하시기론 이 제법 강단이 있는 공주가 등장한 뒤, 곧 있을 이퀘스트리아-그리폰스톤 회담 때그리폰스톤과의 무역협정을 재조정하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고 했다. 

구토 왕의 쇄국 정책 때문에 그리폰스톤의 경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고, 인접국인 이퀘스트리아는 마도적 차원으로 그리폰스톤에 계속 경제적 지원을 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지원을 해 줘도 이렇다 할 개선 여지를 보여주지 않는 그리폰스톤에 환멸을 느낀 수많은 포니들이,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을 성미의 새 공주가 배째라식으로 나오는 그리폰 사절의 기를 팍 꺾어주기를 바라며 지지입장을 표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플뢰르가 작은 태양의 알리콘의 성질을 건드렸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선셋은 패션계 유명 인사에게 '저 암말 맘에 안 들어요.'라고 한마디만 하면 땡이다. 그 한마디에 플뢰르가 패션 계에 품었던 꿈도, 포부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해서, 공주와의 만남이 상호간에 유쾌하지 않게 마무리된 이후로 플뢰르는 한동안 선셋 앞에서 몸을 사리기로 했다. 이 선셋 쉬머란 포니는 벌레처럼 플뢰르를 밟아버릴수 있기에.

바퀴벌레 밟듯 자신을 밟는 선셋의 모습이 연상되자, 플뢰르는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덜어버렸다. 그리고 여전히 염려하는 얼굴로 자신을 살피는 친한 친구에게 서둘러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럼, 지체 말고 빨리 교실로 가자."

그렇게 두 필의 상류층 포니는 다음 수업이 있는 곳으로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반 정도 가고 있을 무렵, 새시가 문득 플뢰르에게 질문을 던졌다.

"드레스 선물하면.. 받으실까?"

"뭣?" 플뢰르는 의문에 가득한 눈길로 새시를 쳐다보았다.

"선셋 공주님말야."

순간, 플뢰르는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 했지만, 새시가 바로 마력으로 부축을 해준 덕분에 웃음거리가 될 일 없이 자세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네가 선셋 공주에 대해 걱정하는걸 내가 뻔히 눈치 못 챘을까봐.. 그렇게 그 포니가 걱정된다면 선물로 환심을 사 보는 건 어떨까?"

본능과 수없이 쌓여온 습관이 무의식적으로 새시의 제안을 넙죽 받아들이려던 플뢰르의 뇌에 제동을 걸었다. 그랬다간 다들 플뢰르가 선셋에게 먼저 굽히고 들어간다고 오해할 테고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려 셀레스티아 공주님의 수양딸 정도나 되는 포니를 대놓고 적대했다간 국물도 못 찾으므로, 플뢰르는 애써 웃으며 벌벌 떨려오는 몸을 진정시킨 뒤, 억지로 밝은 척을 한 티가 풀풀 나는 목소리로 새시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거. 참. 좋은 생각인 것 같다. 하하."

어느 새 둘은 연금술 교실 앞에 도착했다. 교실 문을 열며 플뢰르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자신이 어쩐지 민망스러워, 선셋의 흠집을 양분 삼아 자신의 자신감을 보충할 생각으로 새시를 돌아보며 물었다. 

"근데 어퍼 크러스트가 들은 가십이라는 게 대체 뭘까? 선셋 공주에 관한 거라고 하던데.."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선셋 공주가 최근에 캐이댄스 공주랑 함께 데리고 다니는 그 수말 있잖아. 그 수말 안색이 지금 영 안 좋은걸 보니 혹시-"

"너흰 그 소문의 장본마 앞에서 대놓고 뒷담화를 하는 아주 대담한 취미가 있나보다?"

둘은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보았다. 두 쌍의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졌다. 선셋 공주가 연금술 교실 제일 뒷자리의 구석에 앉아 날카로운 눈빛으로 둘을 째려보고 있었다.

아뿔싸! 제일 뒷자리에 앉아 있어서 눈치 채지 못 했었나?! 왜 하필 이런 곳에.. 하긴, 유니콘 학교에서 최고 수재였다면 굳이 앞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는데 열과 성을 다 하지 않더라도 높은 성적을 받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테니...

제 친구와 긴장에 찬 시선을 교환한 뒤, 플뢰르는 작은 태양의 반신에게로 다가왔다.

"저.. 공주님.. 제 말은 그게 아니고.."

선셋은 꼴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리더니,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나 둘을 지긋이 쏘아보았다. 그리고 둘 주변을 느린 속도로 돌며 입을 열었다.

"1호기, 2호기는 보이는데.. 3호기 어디 갔어?"

선셋의 어조에는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두 포니에 대한 경멸이 가득 실려 있었다.

압도적인 분위기에 플뢰르와 새시는 완전히 질려버리고 말았다. 공주의 흠집으로 자신감을 보충하려고 하다니.. 내가 대체 왜 이런 생각을 했담?

가까이에서 노려만 보고 있는데도 플뢰르는 졸도할 것만 같았다. 그동안 매우 비싼 연금술 미용요법을 받아 늘씬하게 쭉 뻗은 다리를 가진 덕에 키로는 선셋에 비하면 전혀 꿇리지 않았지만, 키만 컸을 뿐 선셋의 전체적인 체형에 비하면 나약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플뢰르는 더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3...3호기라뇨?"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플뢰르가 물었다.

"알잖아. 약간 뚱뚱한 애."

새시와 플뢰르는 동시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어퍼 크러스트는 지금 가십을 수집하고 있답니다. 공주마마. 아마도 그 애의 흥미가 다 충족되기 전 까진 교실에 오지 않을 것 같은데요.."

짜증에 찬 한숨이 공주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둘을 한 대 맞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바짝 움츠렸다.

"..할 수 없군. 야. 너희 둘. 할 말이 있어. 그냥 넘어가줄까 했는데 도저히 기분이 언짢아서 안 되겠다."

공주의 어투는 메마르기 그지없었다.

"어떤..주제로..말씀이지요?"

플뢰르는 곁눈으로 오른쪽에 걸린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수업종이 울리기까지 2분 전. 교수는 그것보다 더 늦게 도착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학기 내내 그랬다.

"일단 내 뒷담화를 깐 것도 깐 거지만 뭐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일단 내 친구 캐이댄스 이야기부터 좀 하자. 걔가 너희들이 소위 보호해준답시고 설쳐대는 탓에 그동안 기분이 엄~~~~청 안 좋았다더라?"

선셋은 숫째 으르렁거리며 말을 이었다.

"참 나. 지들이 뭐라도 되는 줄 아나. 캐이댄스가 다른 포니랑 이야기 하는 걸 멋대로 차단하고 지랄이게. 그렇게들 생각들이 없나? 뇌를 셋이서 세트로 벌레에게 파 먹히기라도 했어? 응?"

플뢰르는 또 한 번 마른침을 삼키며 공포에 가득 찬 눈동자로 작은 태양의 여신을 올려보았다.

"저-저흰 그냥 그분을 도와주려고 했던 거에요 공주님! 천박한 부류의 포니들이 캐이댄스 공주님이 전학 오신 첫날, 단순히 그 분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그 분의 뒤를 계속 밟기에 어쩔 수 없이-"

"흥! 그러시겠지. 그리고 다른 포니들과 대화를 단절시켜놓으면 너희들 입맛에 알맞게 캐이댄스를 조종하기 쉬워질 테고! 내가 바본줄 알아?! 너희 수법은 다 꿰고 있어! 나도 그동안 너희 같은 방식으로 해 온 짓이 오죽 많았으니까!"

공주는 플뢰르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쳤다. 그것만으로도 플뢰르의 몸 전체가 불에 타는 것만 같은 아찔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곧, 선셋은 한숨을 푹 쉬더니 이빨을 부득 갈며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뭐.. 그 덕분에 너희 같은 머저리들도 구제의 여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뭐랄까.. 약간 누그러진 어조였다.

"그래서 기회를 한 번 줘 볼까 해. 가서 캐이댄스에게 너희들이 한 짓에 대해 잘못했다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와. 안 그랬다간 아까 감히 내 면전에서 뒷담화를 한 벌까지 포함해서 너희들의 내면의 모습과 외면의 모습이 영영 일치하도록 만들어주겠어."

공주의 선고가 끝나자, 새시는 겨우 용기를 내 마음에 걸리는 것 하나를 공주에게 질문했다.

"저.. 공주님.. 내면과 외면이 영영 일치하도록 만든다는 게 대체..."

"제일 못생기고, 소름 돋고, 사회적으로 영영 외면당할 만한 생물을 하나 상상해봐."

선셋은 플뢰르와 새시를 거의 고개로 찍어 누르다시피 하며 말을 이었다.

"캐이댄스가 너희 사과를 안 받아들이기만 해 봐라. 그 모습으로 평생 살 각오를 해 두는 게 좋을 거야."

경악! 한창 그에 해당되는 생물을 연상 중이었던 플뢰르의 머릿속을 채운 감정이었다.

노새?!?

그러니까, 캐이댄스 공주가 사과를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면 선셋 공주가 그 자리에서 즉시 플뢰르와 새시를 더럽고, 악취 나고, 구역질 날 정도로 못생긴 노새로 바꿔버린다는 이야기인가? 기제류 중 가장 못생겼기로 악명 높은 그 생물로?!

플뢰르와 새시, 누가 먼저라 할 거 없이 공포에 찬 비명을 지르며 교실에서 뛰쳐나갔다. 이제 둘의 명줄은 캐이댄스 공주에게 달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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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정도로 컷.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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