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회식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문득 조금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오유 게시판에 글을 적습니다.
요즘 다들 행복하신가요?
"그럼"이라고 생각이 드신 분께는 별 도움이 안되겠지만,
"아니"아고 생각이 드신 분은 내가 잠시 시간을 내서 남에 고민 한 번 들어줘야지 라는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그리고 "아니"라고 생각이 드신 분 중에
본인이 컴플렉스로 똘똘 뭉쳤다는 분은 더욱 더.
93%, 핸드폰, 교육
위에 다섯가지 키워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실까요?
이미 눈치가 빠른 분이라면 감이 오셨겠지만
제 인생에 큰 이벤트를 키워드화 해 놓은 것 입니다.
- 93%
이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겠나요?
제 중학교 3학년 내신성적입니다.
네. 저 공부 지지리도 못하는 꼴통이였습니다.
머리에 든 것도 부족하고 가진거라곤 더더욱 없어서
그 흔한 수학여행도 못 다녀왔습니다.
학원 다니지 않아도 교과서 위주로 예복습만 열심히 해도 된다?
물론 가능한 이야기죠. 근데 제 견해는 조금 다릅니다.
일단 주어진 환경이 다른거에요.
가난한 친구와 여유가 있는 친구는 공부에 집중 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가뜩이나 예민하고 민감한 학창시절
용돈은 제한되어있는데 친구와 어울리려면 식당에서 서빙이라도 해야하고,
공부는 해야겠는데 지하 단칸방 집에 돌아가면 앉을 책상 하나없이 부모님들은 언성 높이고 계시고,
학원은 꿈 꿀 수도 없고.
이게 저는 현실이라 생각해요.
다른 누군가는 핑계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절대적으로 공부도 여유가 있는 사람이 하는거지 여유가 없으면 먹고 살기에 급급해서 공부도 힘이 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중학교 내내 바닥을 치다가 저는 실업계 중에서도 문제아들로 알아주는 그런 실업계에 진학을 합니다.
고등학교 생활? 뻔하죠.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학교에서 비행을 일삼고 하교후엔 아르바이트해서 용돈 마련하느라 바쁘고
그렇게 1,2학년을 보내다가 꿈 하나가 생깁니다.
의류매장에서 VMD(비쥬얼 머천 다이저)로 근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어요.
어머님께서도 동대문에서 어렷을 적 부터 옷 장사를 하셨는데
피는 못 속이나봐요.
근데 대학을 나와야 제가 꾸는 꿈에 조금 더 가까워 질 수 있겠더라구요.
그래서 고3때 돈이 없어서 수학여행도 못 간 형편이지만 어렵게 대학을 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고
결국 은행에서 학자금대출을 받아요.
마냥 좋았어요. 4년제도 아니고 유명한 전문대도 아니지만,
내가 관심있어하는 분야를 공부할 수 있다는게.
근데 입학식 전 날 어머니는 절 부르셔서 이야기하십니다.
우리 집 형편에 대학은 맞지 않는 것 같다.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못 들은 채 하고 입학식 날 학교에 갔어요.
그리고 결국 입학포기원서를 쓰고 그대로 돌아왔어요.
돌아오는 전철에서 얼마나 울었는지를 모르겠어요.
하도 울어서 눈이 부었는데 어머니께 보여드리기 싫었어요.
보나마나 대학가지말라라는 말을 한 당신 마음도 힘들텐데
자식이 울어서 눈 탱탱 부은걸 보면 더 마음 아파하실까봐.
그래서 밤까지 공원에 앉아있다가 아무 일 없던 척 집에 들어가서
"나 그냥 대학 안가려고. 나 공부 안할거같아."
라고 이야기하고 어머니가 못보게끔 침대 한 켠에 누워서 엉엉 울었어요. 이제 무얼해야하나. 어떻게 해야하나.
그렇게 학교에 가지 못한 채 일자리를 알아보던도중
동네 핸드폰가게에 구인구직 광고를 보게 되었어요.
- 핸드폰
당시 하루에 12시간 일하고 일주일에 하루쉬면 월급 80만원을 받을 수 있었어요.
내 힘으로 공부를 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기왕이면 내가 벌어서 학교다니는거니 조금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자 일본유학을 알아봤어요.
신문장학생 제도도 있고 아르바이트만 열심히하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초기 유학자금 1,000만원 모으기를 시작했어요.
악착같이 1년을 모아서 800만원 가까이 모으고,
유학준비를 시작했어요.
근데 집에 안좋은일이 생겨서 모아둔 돈 그대로 부모님에게 넘기게 되었어요.
어쩌겠어요. 가족인데.
결국 모아둔 돈 부모님에게 드리고 군에 입대하게 되었어요.
제대 후 다시 일을 시작해서 공부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병원에서 교대로 근무하며 낮에는 변기 뜯어고치고,
밤에는 배관수리하며 1년을 보냈고
다시 천만원을 모았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어린나이에 얼마나 못배웠으면 변기나 고치러 다니니 라고 말하는 눈빛
병원 내 금연장소에서 흡연하시는 분께 여기는 금연장소이니 흡연을 자제해달라는 말 한마디했다가 돌로 맞고 오히려 병원 이미지에 해를 끼쳤다고 찾아가서 직접 사과..
9개월 일하니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가 한 웅큼 빠지더라구요.
그래도 그만 둘 수는 없었어요. 3개월만 더 일하면 한달치 월급인
퇴직금이 나오니.
그렇게 1년을 채우고 천만원을 모아서 다시 유학준비를 합니다.
원하는대로 워킹비자를 받아서 일본에 가게 되었어요.
꿈만 같았어요. 내 의지대로 삶을 꾸릴 수 있다는게.
근데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구요. 제 실수였어요.
도무지 혼자 힘으로는 일본에서 전문학교에 다니면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더라구요.
결국 9개월만에 다시 귀국 후 일자리를 찾습니다.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핸드폰 판매직에 다시 들어가게 되었어요.
- 강사
그렇게 재취업 후 돈을 벌어서 장사를 하던,
다른 분야를 공부해야겠다 마음먹고 직장을 다니게되요.
핸드폰을 판매하려면 일반 소비자가 아는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생각보다 공부를 많이 해야합니다.
통신사 자체적인 교육이 주기적으로 있는데
그 때 다시 가슴 뛰는 일을 찾게되요.
저렇게 사람들 앞에서 정장입고 멋진 명찰달고 누군가를 가르친다면 얼마나 보람될까 라는 생각을 하게되었어요.
그 이후로 강사가 되고자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어요.
결국 3년만에 원하는 통신사에 최연소로 입사한 강사가 되었고,
지금은 적지 않은 연봉을 받으며 방통대를 다니고 있어요.
직업 특성상 늘 말로 하다가 글로 표현하려니 참 힘드네요.ㅎㅎ
참 재미있지 않나요? 대학도 못 나오고 내신 93%의 꼴통 실업계 학생이 누군가를 가르친다는게.
나는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잘산다라고 이야기 하고 싶은게
아니에요.
제가 진정 드리고 싶은 말씀은 작은거 하나하나에 진심으로 즐길 줄 알아야해요.
김정운 교수가 써낸 책처럼 노는만큼 성공한다. 즉 경험한 만큼 보이고 즐길 수 있다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 누군가는 폰팔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강사라는 꿈이 생긴 이후부터는 정말 핸드폰에 관련해서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노력하려 했어요.
직종이 중요한게 아니에요.
본인이 얼마만큼 가슴 설레이고 진정 즐길 수 있는 일을
찾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커피를 한 잔 마시더라도 피곤하니 한 잔 빨아야지가 아니라,
이 커피는 무슨 원두를 쓰고 어떠한 방식으로 내렸고
이런식으로 내가 경험하는 일들에 최선을 다해서 즐겨야해요.
그렇다보면 더 알고 싶어지고 즐기다보면 그런게 꿈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최소한 불행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술 한 잔 했더니 참 두서없네요 ㅎㅎ
다들 편안한 저녁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