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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가정의 일본 피로연
게시물ID : wedlock_48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hromental
추천 : 14
조회수 : 2057회
댓글수 : 21개
등록시간 : 2016/09/26 17:45:39
벌써 네번째 글이네요 ㅠㅠ

첫 글을 시작할때 이렇게 몇 번씩이나 적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했는데

사실 첫,두번째(이것도 그다지..) 글에 비하면 긴장감이나 입술이 마르는 이야기가 아닌지라

적는 저의 입장에서도 부담으로 다가옵니다..ㅠㅠ 그렇다고 없는 일을 만들어서 적기는 싫고..

이번에도 딱히 무슨 큰일이 벌어졌거나, 긴장 탈만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냥 궁금해 하시는 분이 계실것 같아서 적어봅니다^^ 기대 하지 말고 봐주세요

한국에서의 결혼식, 신혼 여행까지 무사히 마치고 귀국. 본격적으로 일본 피로연에 대해서 궁리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일본의 결혼 문화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와이프가 하라는 데로 움직이려고 하고 있었죠

일단 결혼식은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 되었었고, 와이프는 피로연에 대해 '그냥 친척들이랑 간단하게 밥 먹는 거야' 라고 설명.. 제 머리속에서는 그냥 처가 식구들과 식당에서 둘러 앉아 얘기나누며 식사나 하는 거구나.. 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대략 시간이 어느정도 걸릴까?"
"4~5시간?"
'?!'

아니.. 술먹으면서 1,2,3차 가는 것도 아니고 4~5시간이라니.. 도대체 뭘 하길래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리고.. 와이프가 하나하나 준비하는 것을 보면서, 결혼식이라는 그런 보여주는 행사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결혼식을 할때 말한마디 없었던 것이 아니었구나..일본에서 결혼식을 하는 거였다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할 사람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껴 좀 슬프기도 했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결혼식을 올리는것에 대해.. 가장 크게 반대 했던 이유는 비용 문제 였습니다

한국과는 다르게 어마어마 한 비용이 들고(장인어른 주변에서는 5천만원 썻다고..), 그 비용 회수를 위한 하객이 거의 없을 거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에죠..

물론 그 부분에 있어서 모두의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피로연만 진행 하는 것으로 마무리 했지만 한국 결혼식 준비할때와 다르게 열과 성을 다해 준비 하는 와이프 앞에서 저는 웬지 죄인같았습니다.

서로가 어떻게 자라왔고,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결혼하는지에 대한 영상물을 직접 제작 하며(저는 이부분에 대해 실력이 깃털만큼도 없기 때문에 아무런 도움이 안됨), 피로연 장소에 대해 여러 군데를 문의 하고 그중 최종 후보지 5군데에 대해 자신이 직접 갈 수 없으므로 어머니에게 실사하여 동선, 구조, 분위기, 조명 등의 사진을 받아 추리며 하객들 좌석 배치, 명함, 메뉴 구성, 선물, 편지 등 모든것 하나하나를 자신이 준비했습니다(그 이외에 여러 기억 안나는것 까지..)  

옆에서 보고 있던 제가 "아니 뭔 준비할게 이렇게 많아..?" 고 말하자
"이정도는 기본임, 님은 노래 하나 부를 준비 하삼"
"넵.."

제가 일본어를 한다고 해봐야,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정보 수집을 할 정도는 안되었기 때문에 달달한 디저트나 가끔 사주는 정도로 서포트 했습니다

그렇게 피로연날짜는 다가오고..

이틀전 일본으로 출발!

하루 전날 오전에는 와이프 머리 정돈을 위해 미용실..3시간 걸린다고 해서 주변 관광하러 갔다가 미아될뻔..일본엔 와이파이 터지는 곳도 별로 없어서(타카마츠 시내는 헬입니다 헬!) 당최 연락을 할 수가 없더군요.. 와이파이 포켓의 존재를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것을..  머리를 끝내고  장인 장모님과 같이 다음날 입을 턱시도, 웨딩드레스(결혼식도 아닌데 왜..ㅠㅠ), 일반 드레스.. 등을 맞추러 대여점으로 가니 마침 성인식 기간이라 키모노를 대여하러 오는 여성들도 많이 있더군요

"저거 하나 빌리는데 100만원임"
'...?!'

저도 턱시도를 골라야 하는지라 옷 진열대쪽으로 갔는데
"온 김에 다 입어보고 결정 하지 뭐"
"아니 지금 이게 몇갠대?!"
"지금 뭐라고 했음?"
"아니다 데스"

제 옆의 와이프는 웨딩 사진찍을때 턱시도를 같이 고르던(결혼식때 입을것도 보통 같이 고르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종류 자체도 많이 없었지만, 제가 고른 턱시도에 대해 별 말을 하지 않았죠
이제와서 보면 그때 한국은 다 이렇게 입는구나.. 하면서 가만히 있었던것 같습니다..

1. 진열되어 있는 옷의 상하의를 하나 입니다(진열장에 양복 상하의 20여개)
2. 상하의를 입고 안의 조끼를 종류별로 돌려가며 걸쳐본다
3. 앞, 좌, 우, 뒤 의 사진을 각각 하나씩 찍는다

반복적으로 몇번을 했더니 너무나 지쳐버렸던 나머지 짜증도 났지만 낼수는 없었고(장인 장모님도 눈을 부릎뜨고 옷을 보고 있었음), 제 옷을 고르는데만 한 2시간 걸린것 같습니다(제가 참을 성이 없는건가요?ㅠ
ㅠ 한국에서 결혼식용 턱시도 고를때 20분도 안걸림)

하지만 저만 고르는 것이 아니죠? 와이프 웨딩드레스 고를때는..OTL..

하지만 장인어른, 장모님 앞에서는 힘든 티를 낼수가 없죠!, 매번 새로운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표정을 몸

으로 표현하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피폐했던 시간이 지나고 지나 한창 날이 밝을때 도착 했던 곳을 어둑

어둑 해진 시간에 나왔습니다.(나올때 오너가 무릎꿇고 내일 뵙겠습니다 하는데 부담이..)

다음날 사진핏을 위하여 저녁은 매우 간단히~

대망의 피로연날..

아침 일찍부터 옷 대여점에서 옷을 챙기고, 레스토랑에 도착! 식순 챙기고, 영상 준비하고, 손님들 선물 
세팅 하고.. 정신없이 준비하고 있으니 한분씩 친척분들, 친구들이 들어옵니다

장소는
   
      친척   친척   친척   친척   친척  친구
신랑                             
신부                             
      친척   친척   친척   친척   징인장모님

이런 식으로 세팅 하고 처남은 일어서서 사회, 영상, 음악등을 세팅 하고 있었습니다

자리에 착석하여 준비한 영상을 보고, 축배를 들고 식사를 하다가 친척들 한사람씩 저희 자리로 와서 로테

이션 식으로 인사, 이야기... 저야 친척분들을 알리가 없으니 딱히 이야기 할 것은 없었고, 와이프와 이

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결혼 안하고 혼자 살줄 알았더니 드디어 하는 구나 라고 말하는 분도..)

도쿄에서 신간선을 타고(비싼데!!) 와준 친구분들과도 이야기.. 이게 시간이 제일 많이 걸리더군요

그 다음엔 저희가 자리로 하나씩 가서 잘 부탁 드린다고 술, 음료 따라 드리고..

참고로 식사는 코스요리로 진행 되었습니다.  다행히 이탈리안 음식들이라 입맛에 잘 맞았죠
(저는 일본 가정식은 입맛에 잘 안맞습니다.. 이후 처가와 가족여행 갔을 때 그것 때문에 힘들었음)

그렇게 피로연은 막바지로 흐르고.. 축가+부모님을 향한 편지를 읽는 시간..

와이프가 편지를 읽어가는 동안 장인어른은 양 무릎에 두손을 꽉진 정자세로 듣고 계셨지요(저는 장인어른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손은 조금씩 떨렸고.. 미동도 하지 않으셨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결혼식에서 딸을 배웅하시면서도, 절을 할때도 표정변화가 없으셨지만 이때만은 달랐습니다.  제가 쳐다보지 않았다면 울고계시는지도 몰랐을겁니다.  그리고 장인어른의 답사..

"먼저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저희 딸 결혼하는데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xx가 어렸을때.."

그렇게 장인어른은 말을 이어가지 못하셨습니다.  몇번을 목을 가다듬어도 도저히 읽으시지를 못할 것 같으셨던것 같은지 장모님을 툭툭 치셨고, 장모님은 우시면서 끝까지 답사를 마치셨습니다.

제 생각에는 장인어른은 한국에서 결혼할때.. 자신이 생각했던 결혼과 너무 차이가 크고, 주위가 매우 씨끄러워 정신없기도 해서 딸이 결혼을 한다는 것을 크게 못느끼신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안정되고 자신의 친척들과 함께한 그 자리에서, 비로소 딸이 떠나가는 것을 느끼신것 같았습니다.  

원래 장인 장모님은 와이프가 필리핀에서 일 마치고 들어오면(계약직이었으니까) 1년이라도 같이 카가와에서 살자고 제안 했다고 들었습니다 (학교도, 일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했었기 때문에 집에 있었던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뭔 정체도 알지 못하는 한국 남정네와 결혼 한다고 하니 너무나 서운했다고 합니다. 해외 여행 한번을 가본적 없으셨던 장인 장모님께 한국은 너무나도 먼 나라였고, 앞으로 보기가 힘들어질 거라는 생각에 눈 앞이 깜깜했지만, 딸이 선택한 길을 막을 수는 없었고 허락하셨던 겁니다.
지금은 생각보다 한국이 가깝다는 것에 다소 안심하고 계십니다(특히 지금은 저가항공 직항이 생겨서 명절로 따지면 버스타고 친정 가는것보다 더 빠름)

그렇게 피로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 안에서 장인어른은 장모님께 운전을 맡기고 고개를 묵묵히 숙인채 조수석에 앉아계셨습니다.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가는날 

"피로연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측 사정이긴 하지만 안 할수도 없고.."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되고, 와야 되죠"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장인 어른은 사위가 일본에서 피로연을 따로 할 필요가 없지만 어쩔수 없이 하니까 참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피로연 한다고 결정 하시고선 와이프에게 처음 물어보신게 "너 신랑은 올 수 있으시데?"

지금까지도 장인 장모님께서는 저에게 극 존칭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제가 말을 편하게 하시라고 말씀을 드리는 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이것을 거리감이라고 정의 해야 할지, 사위에겐 조심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하시는 건지 제가 알길은 없습니다.  매주 전화를 드리고 아직 까지는 "아.. 허허" 로 대부분의 대화가 도배되지만(가끔가다 아리가토 정도), 계속 하다보면 말도 편하게 하시고,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날이 올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피로연은 잘 마무리 했습니다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하고, 결혼 게시판에 행복한 글만 가득한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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