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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에 핏빛이 피었다 ㅡ 첫 번째 항차
게시물ID : panic_908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환상괴담
추천 : 18
조회수 : 1620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6/09/26 00:52:30
<3>
 
똑똑똑.
선장실 출입문을 두드리는 높낮이와 간격에 따라서 방문자의 용건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짐작이 가곤 한다.
말은 들어봐야 알 일이지만, 짐작하기엔 나쁜 쪽에 가까웠다.
 
" 들어와. "
 
왕이 허락했다.
작은 사회, 세일러피아 왕국의 선장인 그의 집무실에 들어오기를 윤허했다.
 
" Sir. "
 
왕에게 경의를 표하는 자는 어찌된 일인지 잔뜩 겁먹은 표정이었다.
 
" 내가 무슨 일로 자넬 부른 것 같나? "
 
" ... "
 
" 안 들리나? "
 
" 캡틴. 들립니다. "
 
" 그게 대답이야? "
 
" 그게... "
 
" 두 말 할 필요도 없군. 어디부터 어디까지 아는지 하나도 빼놓지 말고 다 얘기해.
만약 조금이라도 거짓을 보고한다면 다음 항구에서 배를 내리게 될 거야. 명심해. "
 
" 캡틴! 제가 아는 건 아주 조금뿐입니다. 물론 안 좋은 일로 부르신 건 압니다,
벌써 모르는 사람이 없겠죠. 제가 아는 것에 대해선 모두 이야기하겠습니다. "
 
" 뭘 알고 있지? "
 
" 아시다시피 어제 선내 회식이 있었고 평소 회식에 참여하기 힘든 저녁 당직자들을 위해
이등항해사와 이등기관사가 8시간 당직을 섰습니다. 저는 이등기관사의 당직을 보좌하는 기관원이구요. "
 
" 그래서? "
 
" 4시까지 연속된 당직을 마친 후 잠깐 눈을 붙였다가 7시에 다시 일어났습니다. 이상하게도 배가 고파 눈이 떠졌습니다.
식당에 가자 어제 회식을 마친 뒤 자고 일어난 선원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습니다.삼등항해사가 술을 많이 마셨다고...
갑판원들과 술 마시기 대결을 했다더군요. "
 
" 계속해. "
 
" 과음한 나머지 선원들에게 업혀서 방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까지 들은 저는 별 생각없이 이른 아침을 먹은 뒤
바람을 쐬러 상갑판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삼항사가 핸드레일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
 
" ... "
 
" 저는 속이 불편해서 토를 하는 줄로만 알고 어제 대단했다고 들었다는 농담을 했습니다.
그런데 삼항사가 이상했습니다. 저를 겁내했고, 다가오지 말라고 소리쳤어요. 자세히 보니 울고 있었습니다. "
 
" 울고 있었다? 삼항사가? "
 
" 예. 씻지도 않은 듯 했습니다.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었고 전혀 당직을 올라갈 채비가 되어있지 않았어요.
핸드레일을 넘어 바다로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다가오지말라고 했지만 저는 그녀가 위험해보여서 다가갔고,
그녀를 잡아당겼어요. 그러자 그녀는 보일러실 쪽으로 도망쳤습니다. "
 
" 왜 보일러실이지? "
 
"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겁에 질려있었어요. 뒤가 낭떠러지라는 사실은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놀라 다가가자 그녀는 더 빠르게 도망쳤고, 손 쓸 틈도 없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
 
" 그 뒤에 어떻게 했지? "
 
" 바로 조타실로 전화를 걸어 보고했습니다. 그 뒤 선내방송이 울렸고, 현장에 누구도 접근하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고,
선장님께 호출을 받아 올라왔습니다. 제가 말한 건 모두 진실입니다. "
 
" 하나 묻지. 어제 누가 삼항사를 방에 데려갔나? "
 
" 갑판장과 갑판원 둘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아는 건 갑판장입니다. "
 
" ... 우선 그 갑판원 둘을 파악해서 오라고 해. 그런 다음 자네는 당직을 서러가도록 해. "
 
" 알겠습니다. 캡틴. "
 
선장은 기관원을 보내고 난 뒤 깊은 고심에 빠졌다.
선내 사망사고ㅡ. 처음 겪는 일은 아니지만 그 충격은 언제나 끔찍했다.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조타실에서 하루 두 번은 꼭 만나던 동료의 죽음을 생각해보라.
단순히 '선원 1명 사망'이란 문장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느낌이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불규칙하지만 빠른 속도로 노크가 들려왔다.
놀라서 달려온게 분명했다.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 같은 소리다.
 
" 들어와. "
 
" 선장님. 제가 어제 삼항사를 데리고 방에 갔습니다. 조타수인 레니도 함께였습니다.
삼항사는 여자 선원을 위해 잠금 장치가 별도로 설정된 방에 살고 있었으니 그녀가 가진 특수한 열쇠말고는
열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갑판장이 마스터키를 받아와서 열었습니다. 저희는 삼항사가 눕는 걸 본 다음
다시 나왔습니다. "
 
" 천천히 말해도 좋으니 정확하게 얘기해. 그럼 갑판장이 나오는 건 봤나? "
 
" ... 그게. "
 
" 못 봤나? "
 
" 그, 마스터키를, 일항사가 받아오라고 해서... 갑판장 방에 갔었는데 갑판장은 방에 없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만나서 열쇠를 받은 다음 반납했습니다. "
 
" 방에서 나온 다음엔 잤다는 이야기군. "
 
" 예. 캡틴. "
 
" 몇 가지 이야기를 들었어. 삼등항해사는 오늘 아침에 울고 있었다지. "
 
" ... 모르겠습니다. 술을 먹은 것 때문일지도요. "
 
" 그녀의 방은 딱 세 사람이 열 수 있어. 나와 일항사가 각각 마스터키를 가지고 있고, 그녀가 자신의 전용 열쇠를 들고 있지.
그녀의 방 화장실에서 이게 나왔는데. 뭔지 보이나? "
 
" 콘돔 아닙니까? "
 
" 잘 아는군. 선원들에게 나눠준 콘돔이지. 선원들에게. 난 사관들이 외국에서 매춘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아예 금지시켰지. 하지만 선원들에겐 굳이 그렇게까진 하지 않았어. 대신 콘돔을 나눠주라고 지시했지. 삼항사에게 말야. "
 
" ... 예. 저도 받았습니다. "
 
" 일인당 몇 개씩 줬나? "
 
" 다섯 개입니다. "
 
선장은 조타실로 전화를 걸었다.
수습반을 꾸리느라 갑판원들과 함께 내려간 일항사 대신 이항사가 휴식 없이 10시간째 당직을 계속 서고 있었다.
 
" 이항사. 선내에 방송해. 삼항사가 이번 항차에 나눠준 콘돔, 전부 다 가지고 오라고.
갯수는 다섯 개. 사용했을리는 없어. 내가 알기로 이 배에 동성애자는 없으니까. "
 
곧 선내방송이 울렸고,
선장 앞의 갑판원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 왜 가만히 서있나? 가서 가져와. "
 
" 선장님! 저는, 그게-.. "
 
" 자네가 죄가 없다면 갑판장을 불러 얘기하면 될 일이지. 가서 콘돔이나 가져와. "
 
" 그냥 말하겠습니다. 대신 하선만은 시키지 말아주십쇼, 캡틴... "
 
" 하선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걸 보니 각오는 된 모양이군. "
 
그제야 선장은 다시 조타실에 전화를 걸어 방금의 명령을 취소시켰다.
눈물을 흘리며 얼굴이 시뻘개진 채로 울고 있는 선원에게 벼락이 내려치듯 선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 네 우는 얼굴 보고 싶어서 부른 게 아니니까 울음소리 닥치고 얘기나 해! 삼항사한테 무슨 짓을 했냐고! "
 
" 캡틴, 실수였습니다! 술에 취해서.. 술에 취해서 세 명이 돌아가며 삼항사를 겁탈했습니다.
삼항사는 술에 취한 상태였습니다. 저희도 술은 취해있었지만... 하지만! 실수입니다. "
 
" 실수? 판단은 뇌가 하는거지, 아랫도리가 하는게 아냐. 그건 실수가 아냐. 계획이었지.
네가 저지른 모든 일을 보고해. 무슨 생각이었고, 어떻게 행동했고,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죗값은 피할 수 없을거다. "
 
" 갑판장이 먼저 얘기한 겁니다, 그 사람만 아니었어도... 저희도 처음엔 정말 열쇠만 받기 위해서
간 거였습니다. "
 
선장의 고함소리가 그 뒤로도 몇 십번이나 D갑판을 쩌렁쩌렁 울려댔다.
그 뒤를 이어 몇 명의 선원이 더 선장실을 들락날락거리고서야 오전의 사태는 종료되었다.
 
" ... 다들 점심은 먹었나? 음식이 많이 남았더군. 조리장이 애써 요리한건데 아쉬운 일이지.
하지만 오늘만큼은 이해해. 오늘 밥이 넘어가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
 
점심식사 후 당직자를 제외한 전 선원이 휴게실에 모여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왁자지껄한 회식이 펼쳐졌던 휴게실이 오늘은 장례식장에 가까울 정도로 침울해보였다.
말하는 사람, 아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선장뿐이었다.
 
"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해당 인원들은 감옥에 보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집에 처자식이 있는 점, 오랫동안 항해한 점을 감안하여 하선 대신 징계 수위를 높이는 걸로 할거야.
사건에 연관된 당사자들은 계약기간 동안 상륙 금지다. 특히 갑판장. 부끄러운 줄 아시오. "
 
갑판장의 낯빛이 흙처럼 어두웠다.
 
" 다른 배로 전선을 시킬 수도 있어. 회사에서 쫓아내지는 않더라도 이 배에서 쳐다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이번 항차가 회사에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을거요. 우리 회사 선단이 몇 번이고 안전검사에서 지적을 받았고
이번에 우리가 받게 될 검사에서 한 번 더 지적당할 경우 회사 선단 전체에 대해 강도 높은 검사 명령과 함께
회사의 신용 자체가 의심받게 되니까. 애써 쌓아놓은 위상이 검사에 걸리는 반나절만에 모두 무너질 수도 있지.
선주들과 임원진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는 시점이오. "
 
선장은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더니,
누군가의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린 다음에야 입을 뗐다.
 
" 행위에 대해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징계하되, 결과 자체는 추락사야. 타살이 아니라, 실수에 의한 실족사.
회사에는 실족사로 보고하고, 선내에서 일어난 '폭력' 사건에 대해선 징계위원회없이 구두로 말한 내용에 따라 징계하겠소.
모두 반성해야 합니다. 짐승 같은 실수 때문에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청춘이 죽어야합니까? "
 
갑판장은 고개를 푹 숙였다.
반성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조금 안도하고 있었다.
대쪽같은 선장 성격에 당장 회사에 하선 요청을 하지나 않을까 우려했더니 이게 웬 떡인가.
회사의 영업을 좌우할 중요 검사를 앞둔 덕에 몇 개월 남지도 않은 계약기간만 참으면 된다는 조건이라니?
실실 미소가 나오는 걸 참느라 얼굴이 빨개진 터였다.
 
" 일항사. 아무리 선내 분위기가 엉망이더라도 밥은 먹어야 일을 하니까 갑판원들과 함께 식사하도록 하게.
오후엔 보일러실에 가서 민진이 수습하고... 상병보고서 작성해야 하니 현장사진은 많이 찍어두게.
괴롭겠지만 부탁하네. 회사에는 우선 위성전화로 보고할테니까 현장 수습도 서둘러주고.
시신이 부패하기라도 하면 유족들 볼 면목이 없어. "
 
" 알겠습니다. 선장님. "
 
밥을 억지로라도 먹으라는 선장의 명령이 있었지만 음식물쓰레기통은 그 날따라 넘칠듯 솟아있었다.
누구 하나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분위기와 맞지 않게 하늘은 맑아도 너무 맑았다.
 
" 보일러실에 가기 전까지 최대한 바닥은 보지 않는 편이 좋아. "
 
들것, 흰 천, 그 외 수습을 위한 도구들이 선원들의 손에 들려 보일러실 바닥을 향해 내려갔다.
내려갈수록 냄새가 느껴졌다. 후덥지근한 열기를 머금고 더 선명해지는 건 피비린내였다.
 
" 우윽. "
 
바닥이 가까워지자 피가 군데군데 튀어 말라붙어있었다.
살점도 밟히곤 했다. 구역질 소리가 더 자주 들려왔다.
 
" ... 삼항사. 미안하다. "
 
참혹한 장면이었다.
머리통이 완전히 으깨져 훤히 드러난 목뼈 위론 얼굴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사방으로 튄 부산물 사이로 터져버린 빨간 눈알 두 쪽이 제자리를 굴렀다.
 
" 으웨엑! "
 
결국 누군가가 참지 못 하고 양동이에 구토하자 너도 나도 달려와 더 이상 토할 것이
없을 때까지 토를 해댔다.
 
일항사 역시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으나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배테랑인지라
겉으론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또 구토를 참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대신 식은 땀을 뻘뻘 흘리는 그는 갑판장이었다.
삼등항해사 민진을 가장 처음 겁탈한 남자, 그녀와 똑같은 나이의 딸이 있는 남자.
 
" 갑판장님. 수습하십쇼. 그리고... 삼항사에게 사과하세요.
죽었을지라도 듣고 있을 겁니다. 사과하세요. 상병보고서 작성을 해야하니 올라가겠습니다. "
 
" ... 아, 예. 그러시소. 수습은 지가 애들하고 할테니까 올라가서 일 보이소. "
 
신발 밑창이 온통 붉어져있다.
묵묵히 자신의 빨간 발자국을 바라보며 올라가는 일항사의 뒤로 계속 구역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 해가 제법 기울었다.
검사를 앞두고 갑판에 해야 할 과업은 산더미인데, 민진의 시신을 수습하는데만 반나절이 걸리고 있다.
피가 얼마나 튀고 또 굳어버렸는지 흰색 페인트칠을 해놓았던 바닥이 빨갛게 보였다.
물걸레를 짜서 닦고, 또 닦고, 살점과 뼛조각을 줍고, 붉은 양동이 몇 개를 10층 높이 위의 갑판으로 옮기고
또 옮기고ㅡ.. 모두의 정신이 지치다 못해 미쳐간다. 
 
이윽고 누군가 외쳤다.
 
" 망할 년, 차라리 뒤질거면 바다에 떨어지면 깔끔하게 갈 거 아냐, 왜 사람 힘들게 여기 떨어지냐고! "

<4>
 
" ... 일단 전송은 했어. 이항사, 나 잠시만 쉬다올테니 조금 더 수고 부탁하지. "
 
" 그러십쇼. 많이 괴로우실텐데요. "
 
" 어차피 자네나 나나 후배 잃은 건 똑같아. 주변에 지나가는 배는 없으니 조타수한테 맡겨놓은 다음
내 컴퓨터에 들어있는 상병보고서하고 물품청구 보고서에 오탈자 있는지 좀 봐줘.
혹시 빼먹은 부분 있으면 체크해놨다가 나 올라오면 인계해주고. 역시 사람 죽는 거 본 날은 제정신은 못 되는거야... "
 
" 쉬십시오. "
 
" 그래. 늦지 않게 올라올게. 마라톤 당직 시켜서 미안해. 곧 선장님도 당직 서실테니 맞교대하더라도...
아..., 조금 쉬다 오면 얘기하지. 내려갈게. "
 
" 예. "
 
갑판원들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시신을 수습하는 현장의 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전해져온다.
모두 격앙된 채 두서없는 말을 쏟아내고 있다.
광기가 무전기를 통해서도 느껴질 정도라 섬찟하다.
 
해양대학을 다니던 시절, 몇 번 스친 적이 있었다.
캠퍼스에서 예쁘기로 유명한 탓에 그녀를 흠모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이등항해사 자신의 동기들도 몇 번 집적대다 포기하기도 했고ㅡ.
여자 해기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맞서 누구보다 열심히 학교 생활하던 후배이자
배에 와서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일하던 동료였는데...
어째서 이렇게 되버린걸까.
 
이항사는 그녀의 어리지만 의젓했던 모습을 생각하며 아주 잠깐 현실을 잊었지만
일항사가 부탁한 검토 작업을 위해 삼등항해사 김민진 실족사 경위 보고서를 열자마자 지독한 장면과 마주해야했다.
 
피가 고슴도치 가시마냥 보일러실 바닥 전체에 낭자한 와중에 굴러다니는 눈알이라니.
 
" 크윽...! "
 
차마 더 보지 못하고 파일 보기를 종료했다.
오타고 뭐고 그 민진이라는 걸 납득할 수 없었다.
저렇게 죽어서는 안 되는 인재였다.
자신을 선배, 선배하며 따르던 동생이었다.
 
그러나 머릿속에 박혀버린 두 눈동자가 계속해서 뇌리에 떠올랐다.
잊자, 생각하지 말자ㅡ.
급히 커피를 한 모금 마셨지만 이항사는 바닥에 커피를 한움큼 뱉고야 말았다.
 
' 어째서 '
 
커피에서 피비린내가 잔뜩 느껴졌다.
분명 아무 이상없는 커피일텐데.
마실 생각이 사라진 탓에 브릿지 옆문으로 나와 바다를 향해 컵을 기울였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방울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지만 입안에 남은 커피는 여전히 찝찝한 느낌을 안겨주고 있다.
 
선상생활 중에 이렇게 기분 나빴던 적은 처음이다.
아주,
지독히 불길한 느낌이 든다.
 
 
 
ㅡ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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