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베글들을 살펴보는 와중에 시끌벅적한 게시물 관련글들에서
제목과 같은 댓글을 보았네요. "애를 왜그렇게 싫어하냐" 는....그 댓글을 읽다가 문득 저도 제 자신에게 똑같은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그러게...난 애를 왜 싫어하지?' 하고 말이죠.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나와있듯이 네, 저는 애를 싫어합니다;;
애뿐만이 아니라...담배냄새도 싫어하고, 고양이도 싫어하고, 폭력적인 사람도 싫어하고,
거짓말하는 사람도 싫어하고, 귀찮은거 싫어하고, 일베도 싫어하고, 메갈도 싫어합니다.
사실...글을 쓰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좋아하는것보다 싫어하는게 더 많은거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하네요.
아무튼, 좋고싫고의 판가름으로 정리하자면 전 분명히 애를 싫어합니다.
하지만, 여타 다른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선 온라인이고 오프라인이고 당당하게 싫다고
말을하는 반면 '고양이와 애들' 에 대해선 잘 표현하지 않습니다.
고양이(동물)와 애를 싫어한다고 하면 이기적이고, 냉정하며, 인정머리없는 인격장애자
취급을 받기 일쑤여서 말이죠.
그래서, 현실에서 시시때때로 눈앞에 들이밀어지는 아이들 사진이나 고양이 사진들을
보며 맘에도 없는 소리들을 해야될때가 많습니다.(강아지는 좋아합니다)
이런 저에게 온라인이 오프라인보다 좋은점은 바로 현실에서처럼 느닷없는 강요가 아닌
자발적 선택이 가능하다는 점일겁니다.
싫어하는 애나 고양이의 사진이나 게시물을 피할수있어서 스트레스를 덜 받을수 있다는.
그런데...그 작은 선택지조차 낚시신공으로 낚아버리니 애를 싫어하는 입장에선 짜증이
날법도하건만, 그런 사람들에게 또 묻습니다. 도대체 왜 애를 싫어하는데? 하면서.
처음의 질문을 조금 바꿔보겠습니다.
나는 왜 애를 싫어하게 된걸까? 로 말이죠...위에 글을 쓰면서 생각을 하는동안에 제가
처음부터 애를 싫어한게 아니라 살면서 점점 애를 싫어하게 됐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아이와 관련된 이런저런 수많은 불쾌한 경험과 기억들로 인해서 말이죠.
어린애와 관련해서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이있었길래 그러냐고 호통치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크건작건 불쾌한 기억들이 쌓이다보면 싫어지는게 당연한게 아닐까?생각됩니다.
불행하게도, 저에게있어서 아이와 관련된 불쾌한 기억은 굳이 캐캐묵은 오래된 기억까지 끄집어낼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일상에서 수시로 만나게되는 경험입니다.
그예로 바로 이틀전에 겪었던 일을 하나 말해볼까요?
약속이 있어서 모처럼 곱게 차려입고 약속장소로 향하는 지하철 안이었습니다.
한시간이상 지하철을 타고 가야하는 거리였는데 다행히도 지하철에 탄지 얼마안되어
바로 자리가 나길래 기분좋게 앉아서 노래를 들으며 가다가 깜박 잠이들었더랬죠.
얼마나 졸았을까? 잠결에 누가 허벅지를 문지르는 느낌이 들더니 느닷없이 걷어차는 바람에
깜짝 놀라 눈을뜨고 주변을 살피니, 바로 옆자리에 애기엄마가 두세살정도 되어보이는
남자아이를 포대기에 안고 앉아있더군요.
문제는...애기엄마가 아이를 자기랑 마주보게 안고있어서 애의 양다리가 옆좌석에 앉은
사람들 허벅지를 발로 퍽퍽 쳐대고 있었다는 겁니다.
갓난애기가 양말신은 발로 계속 쳐대도 유쾌하진 않을 상황인데, 하물며 신발을 신고있는데다
그 신발을 신고 제법 요기조기 돌아다녔는지 제 흰색 원피스 한쪽 허벅지부근을 이미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더군요.
얼른 가방으로 아이발과 제사이에 방어벽을 만들면서 아이엄마에게 주의를 주었습니다.
아이가 발로 자꾸 차니 아이를 돌려서 안으시면 어떻겠냐고요.
제 흰치마에 흙발로 얼룩을 만들어놓은 상태를 보았으면서도 유난떤다는 듯이 그러더군요.
조금있다 내릴껀데, 아이돌려 안으려면 끈을 푸르고 버클풀고 해야해서 귀찮으니 좀 참아주면
안되냐구요. 흰옷에 묻은것도 툭툭 털어내면 금방 털리는 먼지니까 티도 안날꺼라면서.
미안하다 소리 한마디없이 이런저런 변명부터 하길래 입씨름해봐야 기분만 더 상하겠다싶어서
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칸으로 옮겼습니다만...이런 작은 경험들이 쌓이고 쌓이다보니
이제는 애가 싫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위의 경험을 읽으신 분들중에는 고작 그런거가지고 유난이냐는 분들이 분명 계실겁니다.
또, 그건 애가 잘못한게 아니잖아. 애 부모가 개념이 없는거지...애는 죄가 없는데 그런 이유로
애를 싫어하면 안되지 하는 분들도 분명 있을테고요.
네...맞습니다.
캣맘때문에 피해를 본 기억이 강렬해서 아무 잘못도 없는 고양이가 싫어진거고
무개념 부모들때문에 애가 싫어진거지, 원칙적으로 생각하면 고양이도 애도 아무잘못이 없으니
싫어하면 안되겠지요.
하지만...저는 미성숙한 인간인지라, 캣맘이나 무개념 부모들에게 그런 민폐행동을 하게 만드는
원인도 싫어지더군요.
넌 애를 안낳을 줄 아느냐, 니 새끼 낳아봐라, 저런것들이 지가 애를 낳으면 아주 죽고 못살더라. 등등.
애를 싫어한다그러면 나중엔 이런 악담아닌 악담(?)들을 퍼부어대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온라인에서건 오프에서건 애를 싫어하단 소리를 안하고 살았는데... 정말 신기한건 말이죠;;
애들은 이런저를 너무 좋아한다는 겁니다 ㅠ
조카들이건, 옆집애건, 친구들 애건, 길가다 보게되는 생판 남의 집 애들이건...대체적으로
열에 일곱은 저한테 호감을 보인다는거죠.
시선이 느껴져서 모른척하고 있어도 어찌나 끈질기게 자기랑 눈맞춰 달라고 쳐다들 보는지;;
결국엔 못이기고 눈을 바라보면 까르르 웃거나 넉살좋은 애기들은 안아달라고 양손을 뻗으며 몸까지
기울여 옵니다.
조카나 친구애는 지인들이 제가 애를 싫어하는걸 아는지라 안아주라는 소리를 안하니 다행인데
생판 모르는 남의 애들이 오히려 더 문제입니다.
젊은 엄마들 같은 경우는 그나마 어머, 우리애가 낯을 가리는데 신기하네요 호호. 하면서
안아주라고 떠넘기지는 않는데...옆에 할머니나 연세가 좀 있으신 분들이 계시면 영락없이
저렇게 좋아하는데 한번 안아주라고 강요들을 합니다 ㅠ
마지못해 받아 안으면, 침이 잔뜩 묻은 손으로 제옷을 끌어당기며 제 얼굴을 만지작 만지작ㅠ
애기들이랑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이뻐하는 사람을 안다는데...그거 안맞는거 같더라구요;;
어쩌다 베오베에 유아랑 고양이랑 관계없는 글인줄 알고 열어봤다가 그 댓글때문에 많은 생각이
들어서 나는 애를 왜 싫어할까? 고민해보다 제 경우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는데...
전, 사실...제가 애를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애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게 좀 걱정이 됩니다.
그리고, 요즘 젊은 부모들의 행동과 개념들을 볼때 앞으로 애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날것 같아서
그것도 걱정됩니다.
결론을 어찌내야할까 모르겠는데...암튼, 애를 좋아해주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저절로 애가 이뻐보이고
좋아졌으면 저도 좋겠습니다. 정말로요.
그런데...아마도...힘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