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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사람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길 바랐다. 당신과 나, 누군가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 아닌, 남들도 다 겪게 되는 그런 평범한 일. 우리 나름대로는 특별하다 소중하다 생각했었지만, 결국엔 시간에 닳아버린 그런 흔한 사람들일 뿐이었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그 후로도 이따금 그는 미안함이 묻은 연락을 보내곤 했으나 나에게는 참으로 의미 없는 말들. 화를 낼 수도, 안타까워할 수도 없었기에 그래 알았어. 밥 잘 챙겨 먹어. 하고 평소와 같은 인사들로 대화를 끊어냈다. 그러고 나면 다시 일상은 평범히 흘러가고 어제, 그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을 근근이 자아낸다. 단지 한 가지가 바뀌었을 뿐인 생활 속에서 난 그의 죄책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늦은 밤 충동적으로 나선 산책길에서 밤 깊숙이 빛나는 꽃나무 아래를 홀로 걸었다. 마침 그의 전화가 울렸지만, 받지 않고 그냥 두었다. 몇 번을 울리다 울리다 끊어지고는 다시 울리지 않는 전화에 무언가가 툭 하고 풀려나간 기분이 들었다. 꽤 오래 걸어 다닌 통에 살짝 열로 달뜬 몸이 기분이 좋아 몇번이고 몇번이고 꽃잎들 그 아래를 걸었다. 그날 밤 떨어지는 봄 그 밑으로 많은 것들을 두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