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했다고 나랑 안놀아주는 사촌을 뒤로하고 추석에 혼자 책보다가 생각해본다.
그냥 독백체로 쓰겠음.
인간이 음악을 듣고, 음악을 만들고, 즐기게된 이유는 대체 뭘까
인간이 음식물, 섹스, 기타등등등을 즐기고 그걸 좋아하고 그것들을 애써 찾고 갖고자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있으면 생존과 자손번식에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정한 운율로 이어지는 소리자극을 즐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흔히 음악과 감정을 과학의 영역을 떠나 '미스테리' 라는 곳에 넣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들어 공상과학소설가 커트 보네거트는 자신의 묘비에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필요한 오직 하나의 증거는 음악이다' 라고 써놨다고 한다.
No music, no life라거나, 뮤직 이즈 마이 라이프라거나 하면서 음악을 신성시 하며 불가해한 영역으로 두기 일쑤다.
다윈도 1896년에 인간의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특징들 가운데 하나로 노래나 음악에 대한 사랑을 언급하기도 했다.
확실히 음악은 인간만의 쾌락이다. 음악은 가슴을 어루만져준다라는 말이 있지만 오직 인간의 가슴만 위로해 주지, 마당에 있는시골 할머니의 개나, 눈앞의 냥이나, 동물원에 있는 침팬치의 가슴까지 위로해 주지는 않는다. 이 말에 반박하기 위해 기타를 연주하면 냥이가 잠자코 듣고 있다는 뭐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냐옹이에게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과학 실험에서는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도 음악을 좋아한다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예를들어 위치마다 다른 소리가 나는 미로에 동물을 집어넣고 어느 위치를 찾아가는지 추적해서 좋아하는 소리를 알아본 실험이 있었다. 결과는 영장류는 자장가보다는 침묵을 좋아하고, 협화음이든 불협화음이든 음악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원숭이는 록음악을 들려주든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를 들려주든 관심이 없다'(McDermott, J., & Hauser, M. D. 2007. Nonhuman primates prefer slow tempos but dislike music overall. Cognition, 104:653-68.)
반면 인간은 누구나 음악을 좋아한다. 인간아기는 원숭이보다 실험하기 어렵고 까다롭다. 미로에 넣고 뛰어다니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아기에게 여러가지 소리를 들려주고 어떤 소리가 나올 때 고개를 돌린다거나 응시율이 달라지는지 관찰해서 아기가 선호하는 소리자극을 구별하는 방법은 있다. 결과는 아기는 불협화음보다는 협화음을 좋아하고 특히 자장가를 좋아한다고 한다. 오직 뇌손상을 입은 사람만 음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Sacks, O. 2007. Musicophilia: Tales of music and the brain. New York: Knopf.)
여겨까지 생각하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것이 바로 언어다.
언어또한 오직 인간만의 고유에 특성이다.
동물들도 벌이나 개, 원숭이를 예로들며 의사소통을 하지는 않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촘스키가 말했듯, 모든 인간언어에는 보편문법이라는 공통적인 제약규칙이 존재한다. 이 제약규칙은 고립된 언어인 크레올섬에서 생활하던 농아들이 만든 수화에도, 뉴기니원주민의 언어에도, 한국어에도, 아이슬란드어에도 모두 같은 형식으로 존재한다. 어떤 소리자극과 의미의 덩어리들이 정보를 특정한 방향으로 흘러가게끔 제한시키는 규칙덩어리들, 촘스키는이것이 바로 인간의 언어습득장치(LAD)라고 했고 생득적으로 배우지않고 타고나는 것이라고 여겼다. 실제로 침팬치나 고릴라에게 수화를 학습시키는 무수한 실험들이 있었고 침팬치들은 놀라울만큼 수화습득력을 보였으나, 아무리 수화를 한다고 해도, 의미를 담은 단어의 무분별한 나열만 있을 뿐, 인간처럼 구조화된 형태의 언어표현은 아무리 간단한 것이라도 습득을 하는것이 정말 죽었다깨도 불가능했다. 이를 바탕으로 제리포더 같은 몇몇학자들은 언어능력같은 고도로 발달된 인간의 능력은 아주 특수하게 설계된 모듈로 뇌에 조직화되어있다고까지 주장했다.
언어는 음악처럼 규칙적이고 반복적이며 제한된 수의 단위를 결합해서 계층구조로 된 배열을 무수히 생성할 수 있다.
하지만 언어는 의미있는 주장을 전달하는 수단이며,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의미있는 주장이 전달되고 있다.
반면에 음악은 감정을 전달한다. 예를들어 영화 죠스에서 상어가 나타날때 등장하는 음악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떠올려봐라…
하지만 음악은 구체적 의미에 관한 의사소통수단으로서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없다. 지극히 단순한 주장조차 가사없이는 전달하기가 힘들다.
음악은 소리로 즐거움을 주지만 언어는 그렇지 못하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언어능력에 어떤 주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 대뇌 좌반구(대표적으로 브로카, 베르니케영역)에 위치해 있다.
근데 언어능력이란 것은 사실 ….단순 의미전달 그 이상으로.. 훨씬 복잡한 것이라, 타이밍, 톤, 리듬감, 운율등등등...꽤 많은 능력을 필요로 하고 따라서 그에 해당하는 소뇌나 우측뇌도 모두 언어능력과 관련해서 작동을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좌반구에 언어능력과 연관된다고 여겨지는 부위와 정확히 대칭되는 우반구 부위에도 언어능력을 담당하는 부위가 있는데, 이 부위가 하는 역할은 언어의 정서적 요소를 담당한다는 것이다.(이 글을 쓰게 만든 계기가 된 그림임)
놀라운 것이……
우반구에 있는 이 부위들이 좌반구의 언어 조직화 요소와 거의 완벽하게 대칭을 이룬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언어의 이해, 즉 수용을 담당하는 좌반구의 베르니케영역과 정확히대칭을 이루는 우반구영역이 손상되면 말의 정서적 측면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생기는 실어증이 나타난다…'
어떤 말이 담고 있는 억양이나 운율이 기쁨에 찬 표현인지, 슬픈 표현인지, 분노에 찬 위협적 표현인지 알아먹지를 못하게 된다. 이런 실어증을 aprosodic이라 한다.
반면 언어의 표현과 관계된 브로카영역에 정확히 대측으로 해당하는 우반구 부위들이 손상되면 말을 할 때 억양과 운율을 살려 감정을 실을 수 없게 된다.
..
억양(intonation)과 운율(prosody)는 단순한게 아니라 엄연히 언어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요소다. 특히 수화 공부를 좀 해보면 이 점을 이해할 수 있다.(표정이 언어의 의미전달에 한 부분이 된다)..확실히 언어는 의미전달만 하는게 아니라, 억양, 톤, 운율등으로 무언가 감정적인 요소까지 전달한다. 음악처럼 말이다.
여기까지 본다면 음악과 의미전달을 가능케 하여 사회적응을 일으키는 언어능력은 감정이라는것이 끼여들어가서 분명히 모종의 어떤 관계를 형성한다는걸 알 수 있다.
1. 언어는 의미전달을 한다.
2. 음악은 감정을 전달한다.
3. 감정표현도 언어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4. 언어에서 운율과 톤, 억양을 담당하는 요소는 우반구에 좌반구의 언어능력과 관계되어 조직화된 부위와 완벽히 대칭을 이룬다.
5. 음악도 억양, 톤, 운율과 비슷한게 있지 않나?
이것들이 다 무슨 관계일까...
사람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그것이 끼여들어간 대상물을 아주 특별하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마찬가지로 음악도 그렇고..심지어 음식물도 그렇다. 사람이 단맛이나 짠맛, 신맛, 단백질, 질감 등 맛을 느끼는 감각적 요소는 사실 단순하고 한정적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느냐 같은 top-down적인 과정에서 그 감각입력을 새로운 경험으로 채색해버린다.
예를들어 소프트아이스크림과 프로즌요거트를 사람들은 눈감고 구분못하지만 자기가 먹은게 프로즌요거트라고 믿으면 뭔가 몸에 더 좋은 것이거나 더 맛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뇌의 보상계도 그런 믿음에 맞게 활성화된다. 좋은 요리사의 조건은 음식의 기본적인 맛도 맛이지만 먹는 사람이 아주 특별하고 좋은 음식을 먹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기교도 한몫한다. 그래서 음식의 담음 이라던가 플레이팅이라던가 신경쓰는것 아닌가? 나쁘게 말하면 속이는 마술사같은 기교이고 좋게 말하면 예술이다. 그래서 요리를 식품을 다루는 화학이나 정밀한 과학 그 이상의 무엇(분자요리에 반감이 있는 요리업계 사람들이 흔히 이런 말을 쓰더라)이라던가 예술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마치 추석날 할매가 어제 해주신, 내가 어린시절 옛날에 추억의 한 부분인 특유의 할매표 탕국처럼 말이다.
아무튼 언어가 왜 발생했는지에 관해 얘기를 꺼내는, 내가 아는 주요 두 이론가는 스티븐 핑커와 다니엘 레비틴이다.
스티븐 핑커는 치즈케익이론이란걸 꺼내며, ..치즈케익처럼 인류의 생존에 필요해서 치즈케잌이라는 것이 탄생한게 아니듯 우연한 사건이란거다. 특히, 치즈케잌이란게 자연상황에서는 찾아보기가 매우 힘든 감각적 흥분을 일으키는 것들의 집합으로...인류의 생존에 꼭 필요한 당분과 지방, 단백질 등..기분좋음 버튼을 누르는 보상중추를 자극하는 물질들이 다량 섞여있는 혼합물이고 치즈케잌이란 대상물은 그 생존에 필요한 물질들의 부산물에 불과하단 것이다. 음악또한 그런 부산물이라는 논지다.
반면 다니엘 레비틴은 음악에서 '움직임'이나 '운동'을 강조하면서(실제로 음악을 들을때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운동피질이 활성화된다) 과거 원시시절 인류로 하여금 공동체와 이어주는 기능을 함으로써 사회적응의 한 유형으로 진화했다고 한다.
저 주장이 담긴 스티븐 핑커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라거나 다니엘 레비틴의 "뇌의 왈츠"같은 책을 솔직히 읽어보진 않아서 그 이상은 모른다…
하지만 음악과 언어는 분명히 '감정'이라는 측면이 끼여서 모종의 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꼭 보면, 나같은 어설픈 학생이 어떤 아이디어를 어렴풋이 떠올리면…..
그게 조금 그럴듯하지 않은 경우 : 그냥 엉터리
그게 조금 그럴듯 한 경우 : 옛날 다른 학자들이 이미 꺼낸 닳을대로 닳은 아이디어를 나 혼자 다른방식의 말로 신나게 뒷북 치는 중
이 두가지 중 하나더라.
이 경우도 분명히 후자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