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노 OST - 비익련리(比翼連里) (Lovers)
[출처]다음 블로그 - 딴산
글쓴이:한터 님
[2차 출처]이종격투기
1. 한글은 창제자가 알려진 최초의 문자이다?
아니다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에도 누가 만들었는지 분명한 글자들이 있다
< 창제자를 알 수 있는 한글이전에 만들어진 문자들>
㉠ 파스파 문자 : 몽고의 라마교 승려 파스파(1235∼1280)가 1269년 쿠빌라이 칸의 명령으로 몽골어를 쓰기 위해 표음문자인 파스파 문자를 만들었다.
㉡ 태국 문자 : 1283년 태국의 수코타이 왕국의 랑캄행 대왕이 태국 문자를 만들었다.
㉢ 키릴 문자 : 9세말 불가리아에서 만들어진 문자로 그리스의 선교사 키릴로스가 만든 글라골(Glagol) 문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현재 러시아 문자의 모체가 되었다.
2. 일본 호류사(法隆寺)의 금당 벽화는 고구려 담징 스님의 작품이다?
당시에 일본에 종이와 먹을 전해준 고구려 승려 담징의 그림이 아닐까하는 말을 전 고려대교수 이홍직이 추측성의 글을 남긴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3. 의자왕은 3천 궁녀를 거느리고 살았다?
윤승한(尹昇漢)이 지은 소설 《김유신》(野談社, 1941년)에서 등장하면서 이후 대중가요의 가사에도 의자왕과 3천궁녀가 등장하게 되었고 의자왕의 방탕과 사치를 증거하는 중요한 소재로 가공된 3천궁녀가 인구에 회자되었던 것
4. 문익점은 목화씨를 붓 뚜껑 속에 몰래 숨겨서 들여왔다?
15세기 후반 김굉필(1454~1504)이 문익점의 공적을 찬양하는 시를 쓰면서 潛자를 하나 넣으면서 비롯된 말 (그냥 목화씨 가져온거임, 당시 원나라 반출금지 품목에 목화씨 없음)
5. 태종이 보낸 함흥차사를 이성계가 죽였다?
왕자의 난으로 이복동생들을 죽이고 이방원이 권력을 잡자 태조 이성계는 궁궐을 떠나 이곳 저곳을 배회하다가 함흥으로 떠나고, 함흥에서 조사의가 반란을 일으키자 다급해진 태종이 박순, 송유 등을 파견해서 반란을 막으려고 했고 이 과정에서 박순, 송유는 반란군에 피살되었을 뿐
6. 고려장은 고려의 풍습이다?
일제시대를 한국에서 고등학교 교사였던 일본인 미와 다마키(三輪環)가 [傳說의 朝鮮]이라는 책에서 ‘불효식자(不孝息子)’에 고려장 풍습을 소개했는데 이것이 가장 오래된 고려장 관련 문헌이다. 뒤에 조선총독부가 [조선동화집]을 편찬하면서 ‘어머니를 버린 남자’ 이야기를 수록했는데 이것이 구체적인 고려장 이야기가 되었다.
7. 율곡 이이는 10만양병설을 주장했다?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기록한 실록에는 이이의 10만양병설이 없다.
이이가 죽은 뒤 13년 - 1597년 정유재란 당시에 이이의 제자였던 김장생(金長生)이 스승의 일생을 추모하며 쓴 [율곡행장]에 10만양병설이 처음 등장한다.
이후로 이이의 학통을 계승한 서인정권이 득세를 하면서 이정구의 [율곡시장], 이항복의 [율곡신도비명], 송시열의 [율곡연보]등에서 10만양병설이 구체화되었는데 김장생의 [율곡행장]보다 65년 뒤에 편찬된 [율곡연보]에서는 각도에 8만 도성에 2만의 군병을 양성하도록 주장했다고 나오는 것이다.
8. 서희는 말로 강동6주를 얻었다?
강동6주는 고려의 땅이 아니였고 요나라의 땅도 아니였다. 고려는 요나라에 조공무역을 하는 대신 강동6주에 살고있는 여진족을 몰아내고 고려사람이 그곳에 살아되 된다는 허락을 얻은 것이다.
고려: 조공을 바칠테니 내가 강동육주에 사는 놈 쫒아내고 내가 들어가 살아도
뭐라고 그럼 안됨!
요: ㅇㅇ
의자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