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이었다. 나는 경춘선 첫 차를 타러 신촌에서 야간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류장 한 켠에 못 다 마신 커피가 담긴 플라스틱 컵들이 한아름 보였다. 길 건너로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이 한 둘도 있었으나, 이미 차보다 사람이 적어 놓은 시간이었다. 정류장 오는 길 군데군데, 간밤의 토사물들로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오가는 택시들마다 날 향해 경적을 누르는 바람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는 참이었으므로 나는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담배갑을 꺼내 한 대를 빼 물고 불을 붙였다.
첫 모금에 밭은기침이 나오기에 나는 집앞에 섰던 목련나무를 생각해버렸다. 돌배꽃은 진작 져버리고 개나리도 초록으로 사라질 즈음에, 짧은 봄도 이제 끝이다 싶을 무렵이면 목련은 되레 제 가슴을 활짝 열었댔다. 힘껏 편 내 손바닥보담도 큰 꽃잎이었다. 그 모양을 보고 동리 어른들은 저게 함박꽃이라고도 했으나, 어머니 말로는 이상스레 꽃이 파다할 뿐 그것 역시 목련이라고 했다. 봄이 가고도 조금 더 지나 이제 마루 아래 디딤돌 께로 여름 해가 닿으면, 그 때에야 목련은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늦은 봄비에 모담아 우수수 떨구는 벚꽃과는 달랐고, 사철을 꿋꿋이 매달려 버티는 운동장 옆 무궁화와도 달랐다.
흙을 대이면 반나절도 안 돼 갈빛으로 흐려지는 모양새가 슬플만도 했으나, 정작은 어머니의 열심으로 나는 그런 꽃잎파리를 본 적이 별로 없다. 가을 겨울마다를 잔기침으로 잉잉대는 자식을 보기가 힘겨웠던지, 어머니 눈물이 고 꽃잎 하나하나를 모아 정성스레 말려놓았기 때문이다. 이파리 한 장마다를 일일이 펼쳐 그늘에 잘 널은 덕에, 책장 한 구석 한지로 베베 싸놓은 꽃잎들은 가을까지도 삼베 적삼마치 고운 상아빛으로 남아 있었다.
서리가 내리고 널어놓은 빨래에 안개가 스밀 때면, 어머니는 그것들을 뜨거운 물에 우려 금방 비운 밥그릇 옆에 올려 주셨다. 박하 향 오르는 그 뜨거운 차를 들기가 싫어 나는 울상도 지어 봤으나, '마셔야 기침을 덜하지.'하며 이마를 쓰다듬는 손길에 이내 씁쓰레한 목련차를 조금조금 삼키곤 했다.
우리 가족이 세 들어 살던 기와집은 몇 년 전에 헐렸다하고 담장 밖 목련나무는 벌써 옛적에 베어졌는데, 나는 이제 예순을 바라는 우리 어머니 얼굴로 여적 활짝 핀 목련꽃을 바라보니 이상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