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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스톱
휴지끈이 제법 긴 남정네들이라면 성인용 영상물 속에서 문화 간의 차이도 분석할 수 있다. 서양물로 통칭되는 미국AV(Adult Video)의 경우 등장하는 남성들이 훤칠한 외모에 근육질이 대부분이다.(100%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경향이 강하다는 말이다.) 슈퍼맨으로 대표 되는 미국의 남근숭배주의가 AV에도 드러나는 것이다.
그에 반해 동양물로 대표 되는 일본의 AV에는(일본의 AV가 동양AV의 선두주자이자 대표라는 것은 아무도 부정 할 수 없다.) 마르고, 못생기고, 늙고, 뚱뚱하고, 여드름 많고, 머리가 벗겨진 남자들이 대거 출연한다. 이렇게 찌질해 보이는 남자가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농락하는 모습으로 보며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미국남자는 자신을 슈퍼맨으로 상상하며 당당한 자신이 멋진 여자를 품는 망상에 대리 만족을 느끼지만, 일본남자는 형편없는 남자들의 모습에 자신을 대입하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스미마생(濟みません)정신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일본의 AV에는, 차마 여자에게 말도 걸지 못하는 머저리 남자들을 위한 스토리도 준비되어있다. 투명인간이 된 찌질한 남자가 아무도 모르게 여자를 취한다던가, 시간을 정지시켜서 아무도 모르게, 심지어 당하는 본인도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일을 치르는 등의 구성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짓거리는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엄연한 성폭력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얼간이 남자들은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여자와, 몸과 마음의 교감을 통한 행복을 느끼려 하기 보다는 이러한 망상에 몰두하기도 한다.
K는 일본AV를 숭상하는 대단한 망상가였다. 그가 망상에 몰두하는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차라리 그 힘을 사용하여 수백 테라비이트에 달하는 일본AV를 수집하는 것으로 끝냈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K는 AV에 나오는 망상을 현실에서 실현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것을 일부 이루어냈다.
차라리 평범하게 소개팅을 하고, 여자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고, 데이트를 하고, 키스를 하고, 운우의 정을 나누는 것이 훨씬 쉬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남자는 지천에 널렸지만, 여자를 안고 싶다고 투명인간이 되거나 시간을 멈추는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은 K가 유일하다.
16살의 K는 인터넷의 무한한 바다를 통해, 투명인간이 되어 여자들을 농락하고 다니는 초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에 깊은 감명을 받은 K는 필사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시험 성적이 아닌 지식을 위한 공부!
K는 투명인간을 만들어낼 방법을 찾기 위한 공부를 16살 때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K의 첫 성공은 K가 22살 되던 해에 이루어 졌다.
“성공이다! 드디어 성공이야!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신체조직을 투명화 하는데 성공했어.”
기뻐 날뛰는 K의 몸에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는다. 눈썹도 보이지 않는다. K의 옆에서 왠 스핑크스 고양이 한 마리가 K를 경계하고 있다. 이들은 무모증이 있거나 털을 깎은 것이 아니다. K가 발명한 화학약품과 기계를 이용하여 모든 털을 투명하게 만든 것이다. K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보았다. 분명히 머리카락이 만져지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꼭 머리카락도 투명화 해야 하나? 그냥 다 깎아버리면 되잖아.”
동료 Y가 툭 던지는 말에 K는 얼어붙었다. 그러게. 털을 투명하게 만드는데 까지 연구를 지속한 시간은 무려 6년이다. 안 돼. 이 헛소리를 받아들이면 내가 지는 거다.
“무슨 소리야. 털을 깎아도 모근이 남아 있잖아. 허공에 털뿌리가 둥둥 날아다니면 그게 얼마나 이상하겠어?”
“모근 째 뽑지. 아무리 털이 많아도 6년은 걸리지 않을 거야.”
이번 지적에 K는 진심으로 사색이 되었다. 하지만 Y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농담이야. 모발을 투명하게 하는 기술을 베이스로 하면 다른 신체조직을 투명하게 만드는 작업은 훨씬 쉬워질 거라고. 그런데 너 어떻게 이런 단순한 장난에 매번 넘어 가냐? 네가 진짜 천재인지 바보인지 잘 모르겠다.”
K는 Y를 노려보았다. 훤칠한 키, 탄력 있는 멋진 몸매, 예쁜 얼굴. Y는, K가 투명인간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2년 전 K의 연구소로(명칭만 연구소지 자택의 지하창고) 무턱대고 찾아와 함께 연구를 진행하는 젊은 여자다.
K못지않은 뛰어난 두뇌와, K는 흉내도 내지 못하는 과감한 돌진력을 가지고 있어 투명인간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K는 투명인간 연구가 성공하면 가장먼저 Y가 목욕하는 욕실에 숨어들어 그녀의 알몸을 실컷 즐길 예정이다.
“자 계속 진행 해보자. 털이 됐으니까 다음에는 피부, 혈관, 근육, 뼈, 혈액은 물론 뱃속에 들어있는 똥오줌까지 투명하게 만들 수 있을 거야.”
Y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기초적인 투명화 기술이 하나 확립되자, 그 응용의 속도는 매우 빨라졌다. K가 25살이 되는 해 K와 Y는 드디어 인간의 몸 전체를 투명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Y는 환호 했다.
“성공이야! 드디어 성공이야. 몸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지는 담즙이 계속 눈에 보여서 골치였는데 이제 완벽해. 내 눈에 K네가 전혀 보이지 않아. 성공이라고.”
“Y. 나도 안보여.”
“그래 K. 너는 확실히 안보여. 투명인간이야.”
“그게 아니라 내 눈이 안보여.”
“아니 왜? 빛의 굴절률만 없앴을 뿐 원래 신체기능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텐……. 아!”
“아? 뭐가 아야? 뭔데.”
“네 망막.”
“아!”
조리개와 렌즈가 없어서 지나치게 많은 빛이 필름을 비춘 카메라의 사진에는 무엇을 찍었는지 형태를 알아 볼 수 없이 허연 화면만 찍히게 된다.
생물은 홍채와 수정체가 조절하여 받아들이는 빛을 망막이 인식하고 전기신호로 바꾸어 뇌에 전달한다. 하지만 지금 K의 홍체와 수정체는 완전히 투명하다. 말하자면 카메라의 조리개와 렌즈가 없는 셈이다. 망막으로 전달되는 빛의 양과 굴절률을 조금도 조절 할 수 없으니 지금 K의 뇌가 인식하는 시각은 그저 허연 빛덩어리 뿐이었다.
‘이게 무슨. 내가 왜 투명인간이 되었는데! 목욕탕에서 Y의 알몸을 몰래 훔쳐볼 수 있어야 한다고!’
사물을 완전히 투명화 한다는 것은 엄청난 기술이다. 그러나 투명인간이 되었을 때 앞을 보지 못한다면 K에게 이 발명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고작 이런 이유 때문에 K는 완전히 좌절했고, Y는 K가 좌절하는 이유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둘은 엄청난 발명을 이루어 낸 거야. 사실 난 네가 존경스럽기까지 해. 그런데 고작 여탕을 훔쳐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이렇게 폐인이 되어야 해?”
히키코모리처럼 방구석에 처박힌 K에게 Y는 설득도 하고, 위로도 하고 협박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차라리 K가 Y에게 알몸을 보여 달라고 말했더라면 Y는 K 앞에서 옷을 벗었을 것이다. 하지만 K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남자에게 더 이상 무언가를 해주기 싫었다. 넌덜머리를 느낀 Y는 결국 K를 떠났다. K는 투명화기술의 권리 일체를 Y에게 양도한다는 서류에 아무렇지도 않게 서명하고 다시 방구석으로 들어갔다.
이후 K의 생활과 함께한 것은 인터넷뿐이었다. 얼마나 날자가 지났을까? 2달? 10년?
K의 시간감각이 모호해질 무렵, Y는 투명화기술을 통해 세계적인 부호가 되어있었다. 인터넷 뉴스에 간혹 보이는 Y의 얼굴은 여전히 젊고 예쁜 것으로 봐서 10년이 지나간 것은 아닌 것 같다. 사진속의 Y가 웃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눈부셨다.
‘Y의 모든 것을 내가 볼 수도 있었는데…….’
하지만 3차원의 Y는 더 이상 K의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떠나 버렸다. K는 담담한 심정으로 2차원의 여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2차원을 해매는 중 K는 16세 시절 시청한 AV의 투명인간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의 새로운 초인을 만나고 말았다. 그 초인은 시간을 정지시키는 기계를 가지고 있었다. 시간을 정지시켜 모두가 멈춰버린 시공간에서, 세상의 그 누구도 심지어 당하는 본인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껏 모든 여자의 육체를 즐길 수 있는 사상최강의 초인을 보게 된 것이다.
K는 당장 떨치고 일어나 시간을 정지시키는 기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작 6개월 후. K의 인간을 초월하는, 망상에 대한 집착은 고작 6개월 만에 시간을 정지시키는 기계를 만들어 내었다. 엄청난 기능을 가진 기계와 어울리지 않게 시간을 멈추는 기계는 탁상시계 정도의 크기로, AA건전지 2개로 작동한다.
최초로 만들어진 시간정지기계를 작동시킨 K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에 당황했다. 분명히 시간이 멈춰야 할 텐데. 어찌 된 거지? 몇 번의 시험 끝에 K는 기계를 작동 시키는 동시에 기계안의 건전지가 완전히 방전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시간 자체를 멈추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시간의 흐름을 멈출 때 K의 시간도 같이 멈춘다는 것이 문제였다. 기계를 가동하면 시간 정지 기계를 제외한 모든 것의 시간이 멈추었고, 그 상태가 지속되며 기계의 건전지가 전부 방전이 되면 시간정지 상태가 풀리는 것이다. 배터리가 다 방전되기까지 시간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략 3~4년 정도 지속되는 것 같다. 그러나 K에게 그 3~4년은 찰나조차 되지 않는, 말 그대로 순간일 뿐이다.
다시 석 달이 지났다.
그동안 K는 시간과 차원의 왜곡된 좌표를 잡아내는 복잡한 수식 공식과 함께 씨름 했다. 그 누구도, 설령 Y가 와서 살펴본다고 해도 이해 할 수 없는 무언가를 K는 기어이 찾아내고 말았다. 드디어 시간이 정지되는 일탈의 공간에서 자기 자신을 제외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K는 당장 Y의 회사로 달려갔다. 그리고 마침 많은 비서진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고급자동차에서 내리는 Y를 보았다.
‘이제 내가 너의 모든 것을 가져 주마.’
K와 Y의 거리는 대략 10m정도. K는 Y를 노려보며 기계의 작동스위치에 천천히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리고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K와 Y의 눈이 마주쳤다.
시간이 멈췄다. 도심 속의 모든 혼잡한 소리가 단번에 사라졌다. 질주하던 자동차의 바퀴, 바람에 흔들리던 나뭇가지, K를 알아보고 당혹스럽게 변해가는 Y의 표정 등 모든 것이 멈추었다. 그리고 K는 그 모든 변화를 아니 그 완벽한 정체를 분명하게 목격했다.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K는 기쁨의 환의를 내지를 수 없었다.
숨이 막혔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시간이 정지한 공간에서는 공기의 움직임마저 완벽하게 멈춘다.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노력해도 K의 허파로는 단 한모금의 공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K는 기계의 정지 버튼도 누르지 못했다. 움직임이 고정된 공기 속에 처박힌 K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K 주변의 공기는 마치 단단하게 굳어버린 콘크리트라도 되는 듯이 K의 온몸을 붙잡고 있었다.
K가 의식을 잃고 절명할 때 까지 고작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직 일억 분에 일초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다. 사망한 K의 폐와 장기 내부에는 약간의 공기와 세균이 남아있었다. 그 세균들은 K의 몸을 천천히 갉아먹기 시작했다.
Y는 출근길에 먼발치에 서있는 남자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단박에 K라는 것을 깨닫고 살짝 긴장하는 순간, 갑자기 K의 몸이 반 쯤 썩은 백골로 변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