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레스티아 공주님 왈 : "오늘 여러 일이 터질 거라는 건 익히 예상했었지만, 이건 아주 의외로구나."
"좋은 의미로 의외라는 건가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선버스트는 물었습니다.
"그거야 두고 봐야 아는 거란다."
"난 이제 죽었다..." 선셋은 벌벌 떨며 작은 목소리로 한탄했지요.
이런 모습의 선셋을 보며 셀레스티아 공주님은 한 쪽 눈매를 날카롭게 올렸습니다.
"이제 죽었다는 포니 치곤 생생히 살아있는 것 같다만.. 하긴, 그게 지금 제일 신경 쓰이는 점이지만 말이다."
선셋은 두 눈을 깜빡이며 자기 본체의 스승을 올려보았습니다.
"바...방금, 농담하신 건가요?"
"선버스트. 처음으로 네가 암말을 데려와서 대견하다 싶어 계속 지켜보고 있었더니, 이럴 줄은 몰랐구나."
태양의 공주님은 일단 선셋은 무시하고 말을 이었습니다.
"독립된 자아를 가진 개체를 생성하는 주문은 흑마법으로 취급된다는 사실은 아주 잘 알고 있겠지?"
"앗..네. 보통 이런 류의 주문들은 시전자의 영혼의 정수를 이용하던가 아니면--"
"혹은 다른 생명체의 정수를 이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지..
선버스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오-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사실 이건-"
"일단 너한테서 느껴지는 마력 장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니 네 정수가 소모된 것은 아닌 듯 하고.."
공주님의 눈초리는 점점 심각해졌죠.
"..이 암말을 생성하기 위한 영혼의 정수를 어디에서 끌어 온 거지? 솔직하게 대답하거라. 당장."
"저-절대 그런 게 아니에요! 애초에 전 얘가 자아를 갖게 될 줄도 몰랐단 말이에요!"
"말이 돼는 변명을 하거라. 그럼 저 아이가 겪고 있는 자아 정체성의 혼란이 다 네가 설계한대로만 행동하는 거란 이야기니 지금?"
"아-아니 그게.. 사실은, 행동을 설계할 시간도 없었어요.. 처음 생성되었을 때부터 쟤가 주문식이 잘못됐다면서 소란을 떠는 바람에-"
공주님은 표정을 바짝 찌푸리며 선버스트의 말 도중에 끼어들었습니다.
"그럼 장래 대책 없이 무작정 자아를 지닌 생명체를 창조했다는 이야긴데, 네가 얼마나 무책임한 짓을 저질렀는지 아느-"
"저기요! 무방향성 독립 복제형 개체 생성 주문을 썼는데 자아를 가진 생명체가 떡 하니 튀어나올 줄 누군들 예상이나 했겠냐고요!"
버럭 셀레스티아의 말을 막고 나선 포니는 다름 아닌 선셋이었습니다.
"독립 복제형 개체... 그 주문이? 지금 날보고 그 순수 이론뿐인 주문이 이런 고차원적인 창조물을 만들어냈다는 말을 믿으란 이야기냐?"
"단순히 이론뿐이고 성공 사례가 아예 없었다면, 대체 왜 그 주문이 고수준 마법 사용자를 위한 창조 마법 가이드북에 수록됐겠어요?! 심지어 수록된 책이 한 두 권이 아니구만!"
"허나, 실제로 그 주문은 한 번도 성공적으로 시전된적 없-"
"그거야 그냥 확률로만 따졌을 때의 이야기죠! 성공적인 시전의 사례가 여기 떡 하니 서 있는 거 안 보여요?"
"선셋..! 미쳤어?! 왜 스승님에게 시비를 거는 거야?"
선버스트는 필사적이었습니다.
"아니, 저 포니가 도통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발굽사레를 치며 선셋은 말을 이었습니다.
"근본적인 원인 제공자께서 내가 생성된 게 불가능하다는 듯이 말을 하고 계시니까 갑갑해서 이런다! 왜? 내가 별개의 자아를 가진데다가, 지금 내적으로 완전 혼란스러운 이유도 따지고 보면 저 양반이 음침하게 기숙사 암말 샤워실로 숨어들어가서 그런 거잖아, 지금!"
"잠깐! 네가 그건 어떻- ...아니 아니 내 말은.. 내가 애초에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잖니?"
"어머나~ 세상에! 그러세요?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하실 건데요?!"
선셋은 입고 있던 드레스 자락을 와락 들쳤습니다. 노란색과 붉은 색이 조화된 태양 모양의 큐티 마크가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공주님은 잠시 멍한 얼굴로 선셋의 큐티 마크를 쳐다보았죠. 선버스트는 자리에 주저앉아 안절부절 이마를 문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군. 그런 거였나.."
무언가를 제멋대로 납득한 듯 공주님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정말 기발한 장난이었다. 선버스트. 이거, 오랜만에 된통 골탕을 먹었구나."
"이건 뭐..." 건조한 어조로 선셋이 말했습니다.
"하마터면 완전히 속아 넘어갈 뻔 했군요. 맥락 없이 생성되어 자아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생명체 연기를 이렇게 잘 해내실 줄이야.. 이 큐티 마크는 날 흉내낸 건가요? 완전히 닮지는 않았지만 정교한 분장이로군요. 참으로 인상 깊은 연기였습-"
"그만!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 없으니까 잠자코 있어 봐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치는 셀레스티아 공주님의 말을 선셋이 가로막았습니다.
"뭐...라고?"
"도대체 뭐가 이해가 안 돼서 이러시는 거예요? 선버스트가 무방향성 독립 복제형 개체 생성 주문을 찾아냈고, 그 주문식을 복제된 결과물이 매개가 되는 암말의 잔류 마력에 따라 변형되도록 계량한 후에, 그 매개체가 될 암말의 갈기를 구하러 기숙사 암말 샤워실에 숨어들어갔는데 하필 구해온 게 당신의 갈기털이어서 내가 뿅! 하고 태어났다는 게 그렇게 이해가 안 가세요? 잘 생각해 봐요!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잖아요!"
"우리 그냥 불가능하다고 치고 넘어가면 안될까? 응?" 선버스트가 중얼거렸습죠.
"넌 그럴지 몰라도 난 안 그러고 싶거든?! 그래. 만에 하나 그 주문이 성공적으로 시전된적이 없다고 쳐. 그럼 넌 이론 만으로만 전해지던 주문을 실제로 시전한거나 마찬가지야! 이런 업적은 스승님에게 적극적으로 어필을 해야 할 것 아냐! 이 갑갑아!"
공주님은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발동 주문식이 언제나 주문 핵심 마력을 덮어버리는 탓에, 창조물 분야의 대가라는 스타스윌의 항수법을 대입해도-"
"아니, 이 주문을 쓰는데 다들 스타스윌식 항수법을 썼다구요?! 그러니 될 리가 있나!"
선셋 쉬머는 뿔의 마력으로 여러 가지 확률을 계산한 숫자 형상을 만들어 셀레스티아 공주님 앞에 내밀었습니다.
"이 주문의 발동 주문식은 발동 후에 기하급수적으로 퍼지게 되어있는데, 스타스윌식 항수법은 마력이 일직선으로 통할 때를 상정한 이론이잖아요! 그러면 미도우브룩 식 마법부여 공식을 사용했어야지, 뻔한 문제 아니에요?!"
"미도우브룩.. 미도우브룩은 보통 사물이나 자연물에 쓰이는 이론이지, 창조된 생명체에 대입되는 이론은 아니잖니?"
"물론 문서상으로야 그렇게 나와 있지만, 이론 혼합이라던가 응용을 해볼 생각을 해 본 포니가 이퀘스트리아에 한 필도 없었을 리가요. 정말 오랫동안 살면서 그 두 가지를 응용했단 예시를 한 번도 못 보신 거예요?"
셀레스티아 공주님은 대꾸를 하려다가 문득 말이 막힌 듯 약간 머뭇거렸습니다.
"... 그러고보니 700년 전 변방의 마녀 하나가 하던 말이 생각나는구나. 자기가 창조한 *'거울 연못'과 그 효과에 관해 부단히도 설명해대던데..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고 가정해도, 네가 독립된 자아를 가지게 된 이유는 여전히 설명이 되지 않는걸."
*역주 : Too many pinkie pies 에피소드를 참조하세요.
"그것부턴 기숙사 샤워실을 몰래 들락거린 당신 잘못이죠."
선셋은 가슴팍을 문지르며 말을 이었습니다.
"보통 암말의 잔류 마력을 썼다면 용량이 부족해 그 결과물도 아주 한정된 기능을 가질 수밖에 없었겠죠. 하지만 선버스트가 날 구축할 때 쓴 게 하필 몇 천 년 이상을 산 강력한 마력을 가진 알리콘의 갈기털 이였던 탓에 주문이 증폭되어서, 원래는 시전자의 명령 수행 정도만 겨우 할 창조물의 지능이 시전자 본체의 수준으로 껑충 뛰어오른 데다가, 심지어 나를 구축했던 핵심 마력이 닮아지기는커녕 점점 강력해지고 있다고요! 보통 유니콘의 신진대사처럼요! 이래서 내가 자아 정체성에 위기를 겪고 있는 거에요! 누구 씨 덕분에 주문의 위력이 기댓값 이상을 한참 초과하지만 않았어도 이럴 일은 절대, 절대, 절대 없었다고요!"
선버스트는 그 자리에 바짝 쪼그라든 채로 입을 열었습니다. "그거 참... 유익한 설명이었어.. 음..."
"네가 추가 설명을 할 수 있는데도 묘하게 조용하더구나." 선버스트를 보며 셀레스티아는 질문을 던졌죠.
"무서웠거든요.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싶지 않아서.."
"아니 네가 왜 무서워해? 흑마법으로 태어난 존재라고 의심받아보지도 않은 주제에! 정화 명목으로 잿더미가 될까봐 내가 얼마나 살이 떨렸는지 알아?"
선셋은 인상을 팍 쓰며 따졌습니다.
"실은, 너를 어디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일주일간 연금해두고 네가 흑마법의 영향으로 엇나가지는 않을지 동향을 살펴볼 생각이었다만.. 진정한 네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심리 요법도 포함해서 말이다. 어흠.. 포니를 잿더미로 만들다니.. 당치도 않은 말이지."
"돌덩이로 만드는 건 괜찮고요? 그럼?"
"... 포니에게 그런 적은 없잖니."
"왜 자꾸 셀레스티아 스승님에게 시비를 거는 거야? 이 정도면 됐잖아!"
"나도 몰라! 겁도 나고, 어쩐지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분했던 데다가, 스승님이 암말 샤워실을 기웃거린다고 생각이 퍼뜩 든 순간 정신이 대략 멍해져서... 혹시 암말 취향이신거야?"
순간 아차 싶었는지, 선셋은 셀레스티아를 돌아보았습니다.
"아니, 그게 잘못이란 말은 아닌데요.. 그래도 소름끼치잖아요! 학생들이랑 나이 차가 얼만데 왜 거길 출입하시는지-"
"사실 거기엔 변장을 하고 들어갔단다. '공주'라는 직함에 구애받지 않고 다른 포니들과 어울리기 위해서지."
셀레스티아 공주님은 건조한 어조로 해명했습니다.
"대체 왜요? 부족한 거 하나 없는 분이 뭐가 아쉬워서!"
"대신, 오로지 공주란 지위로밖에 포니를 평가할 줄 모르는 이기적이고 아둔한 자들 사이에 둘러싸여있기도 하잖니."
선셋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선버스트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논리대로라면 너도 공주겠네? 축하한다 야."
"그래 그래.. 하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선버스트는 말을 이었습니다.
"흑마법 안 쓴 것도 증명이 되고 했으니까.. 그럼 저 감옥에 안 가도 되는거죠?"
"대신 네가 설계한 주문식을 내가 확실히 분석하기 전까지 가택 근신 처분을 내릴 테니 그리 알아두어라. 네 행동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져야 하지 않겠니? 그나저나 이 아이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이름은 정해두었고?"
"...선셋 쉬머라고 불러주세요."
"그래. 선셋 쉬머 양이 이 땅에 태어난 책임은 너한테도 일부분 있으니 말이다."
"그... 그게 맞겠죠.. 네.."
"앞으로 전 어쩌죠? 뭘 어떻게 하실 계획이신데요?" 선셋이 물었습니다.
"일단은.. 나도 잘 모르겠구나. 생각을 해봐야겠군. 허나.."
공주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네가 진정 무방향성 독립 복제형 개체 생성 주문의 산물이라면, 선버스트의 기억을 일정 부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겠구나. 그렇지?"
"일정 부분이라뇨? 전부 다죠."
"너를 내 제자로 받아들이는 것도 고려해봄직 하겠군.."
공주님은 호흡을 크게 한번 한 뒤 말을 계속했습니다.
"슬슬 갈라 회장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구나. 필시 다른 포니들이 선셋에 관하여 궁금해 할 테니, 내 나중에 따로 너희 둘을 상석에 불러 선셋으로 하여금 무슨 동기로 선버스트를 만났는지 이야기를 시키도록 하겠다."
선버스트는 두 눈을 깜빡였습니다. "저-그-그래도 될런지 모르겠는데-"
"괜찮네요 그거." 머뭇거리는 선버스트를 대신해 선셋이 대답하고 나섰죠.
"그-그-그-그-그치만 쟤랑 나는.. 그게..."
"아까 내가 둘러댄 것보다 더 좋은 변명거리 꾸며낼 자신 있어?"
반박을 하려다가 말이 막힌 선버스트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습니다. "...못 할 것 같다.."
셀레스티아 공주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습니다.
"자, 이제 일단락되었으니 먼저 실례하마. 내가 자리를 비웠다고 귀족들이 호들갑을 떨고 있을게 뻔하니.."
그렇게 둘만 남겨두고, 공주님은 갈라 회장으로 돌아갔지요.
"..이렇게 됐네."
"응.."
"...설마 나까지 제자로 받아들이고 싶어 하실 줄이야."
"근데 너.. 이미 스승님 제자나 다름없는 입장 아니었냐?"
"아마도? 아니면 예전 이야기일지도.. 나도 원래는 너였으니까.. 아.. 햇갈리네 이거.."
"그러게."
선셋은 잠시 말 없이 자신의 발굽만을 바라보았습니다.
"만약에 말이야.. 내가 스승님의 가장 뛰어난 제자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뭐?"
"아무리 내가 복제품에 불과하더라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걸 입증할 수만 있다면.."
"아.. 그럼... 어..."
선버스트는 안경을 바르게 고쳐 쓰고 말을 이었습니다.
"나쁠 건 없겠네. 내가 평소 할 만한 짓은 절대로 아니긴 하지만-"
"!!.. 그럼 해 보겠어... 해내고 말 거야!"
"아... 잘 해봐 그럼.."
그렇게 둘은 자리에 앉아 무도회장의 거대한 문을 바라보았습니다.
"... 우리 지금 데이트하고 있는 건가?"
먼저 말문을 연 것은 선셋이었지요.
"비슷하겠지. 뭐.. 애초에 데이트 하는 시늉 한번 내려다가 이 소란이 났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흠! 흠!"
"뭔데?"
"내가 만약 자아가 없었다면... 지금쯤 우린.. 알지?"
"뭘 알아?"
"...지금쯤 키스라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아... 그... 그랬을까?"
"해보자 그럼."
"뭣?!"
"키스.. 해보자고... 딱 한 번 정도는 괜찮잖아? 어렵게 생각하지 마... 난 암말 버전의 너나 다름없으니까."
"어...음... 아... 알았어... 해보자.."
몇초간, 둘은 어색한 시선으로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이윽고, 둘은 서로를 향해 고개를 점점 숙였죠.
마침내, 둘의 입술이 맞닿았습니다. 그렇게 4초 정도 흘렀으려나요..
서서히, 둘은 입맞춤을 풀고 상대방을 바라보았습니다.
"...윽... 역시 존나 이상하네 이거." 선셋이 말했습니다.
"동감이다.. 다시는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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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스폰드! 완.
다음작 선쉽드! 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