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런 글을 쓰세요?"
희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허허..."
희진의 앞에는 꽤 많은 나이에도 여전히 머리숱이 풍성한 정 작가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앉아있었다.
출판사 대표인 지인을 물리도록 설득한 끝에 이뤄진 만남이었다.
정작가의 집은 아담하고 깔끔했다. 글쟁이 집에 있을법한 고급스러운 원목 탁자가 인상적이었다.
소파 끝까지 아슬하게 당겨 앉은 희진은 대답을 재촉하는 눈빛을 보냈다.
"......"
웃음으로 무마하려 했던지 정 작가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자세를 고쳐앉았다.
"진심으로 궁금해요. 그런 글을 쓰시는 비결이 뭔지."
"글쎄... 솔직하게 말하면 거만해보일 수 있겠는데."
"팬이잖아요. 다 이해해요."
정 작가는 희진쪽으로 몸을 당겨 앉고서 팔꿈치를 무릎에 괴고 두 손을 맞대었다.
"음. 글재주는 타고난다고 생각해요. 노력으로는 안되는 무언가가 있거든. 나는 운이 좋게도 재능이 있었고 그걸 사람들이 알아봐준 거리고 봐요. 솔직히 노력을 그다지 많이 한 편은 아니에요. 아, 너무 솔직했나?"
정 작가는 멋쩍어하는 웃음을 지으며 등을 기대어 앉았다. 일순간 그의 얼굴에 거만함 같은 것이 스쳐갔다.
"감사해요. 솔직하게 말해주셔서. 제가 하던 생각과 똑같네요."
"어떤? 재능은 타고난다는?"
"네, 세상엔 노력만으로 안되는 일이 많잖아요. 오늘 여기 온 보람이 있네요."
"생각이 정리됐다면 다행이에요. 희진씨도 글을 쓰신다고?"
"쓰고는 있는데 생각만큼 안되네요."
"메일로 보내준 글들 읽어봤어요. 기왕 하는거 솔직한 말 한마디 더 해도 될까?"
"...어떤 거죠?"
희진은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귀를 기울였다.
"글쎄, 뭐랄까. 희진씨 글은 깔끔한데 사람을 끌어당기는 맛이 없어요. 작가가 되고싶어 한다던데. 김 대표가 걱정을 하더라구. 친구가 저걸로 먹고살겠나 싶어서 그런가. 글은 취미로 가져가는 게 어때요? 팬이라고 해서 솔직하게 말해주는 거예요. 희진씨는 재능이 없어."
반짝이던 희진의 눈이 흐릿하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내뱉은 목소리는 보다 단호했다.
"걱정마세요. 저한테 방법이 있어요. 글쓰기는 포기 안할겁니다."
정 작가는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재 구경할래요? 나는 오는 손님들마다 서재는 항상 구경시켜줘요."
서재로 발걸음을 옮기는 정 작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희진은 무릎 위의 묵직한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짤그랑 금속성의 소리가 울렸지만 정 작가는 이를 듣지 못했다.
희진의 지하 자취방은 곰팡내가 나고 어두웠다.
하지만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춰져있었다.
미리 주문해둔 커다란 싸구려 사무실 책상위의 바리깡과 톱자루, 종류별로 놓인 숟가락들이 눈에 들어왔다.
희진은 사람 머리통만한 검은색 가방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이것만 먹으면 된다. 내 믿음은 틀리지 않았어. 희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가방이 열리고 윙윙거리는 바리깡이 숱많은 머리카락을 헤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