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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용서받지 못한 자들의 섬 1~2
게시물ID : panic_904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자작익락
추천 : 4
조회수 : 83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9/03 14:5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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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준현은 눈을 떴다. 몸을 움직이려 하자, 으으으- 하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온 몸이 뻐근했고, 격한 운동을 한 것처럼 몸 온데간데가 근육통에 시달렸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 기억은 분명 배 위였다. 운 좋게도 당첨된 유럽 호화 크루즈 여행. 난생 처음 타보는 호화로운 객실과 말도 안 되게 고급스러운 음식들,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미녀들을 넋을 놓고 쳐다보며 마음껏 즐겼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파도가 그들을 덮치고……

쏴아아-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자욱이 낀 안개 너머로 바닷물이 밀려오고 있었다. 그가 누워있는 곳은 모래사장이었다. 하얀색이라기보단, 회색 콘크리트 빛에 가까운 모래사장. 그리고 그 옆에 놓인, 무언가의 파편으로 보이는 커다란 나뭇조각. , 그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조난이라고? 이 무슨 봉창 두들기는 소리란 말인가. 현실은 영화가 아닌데.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굽이치는 바닷물소리에 온 몸의 격통, 손바닥에서 만져지는 모래의 까끌까끌한 감촉까지 너무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일어섰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래사장 반대편으로 펼쳐진, 안개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울창한 수림. 이건 장난이 아니다. 실제 상황이었다.

“…으으으…”

옆쪽에서 누군가의 신음이 들렸다. 눈을 돌리자, 여자가 한 명 모래사장 위에 널부러져 있었다. 단정하게 쳐올린 숏컷에는 회색 모래가 군데군데 묻어 있었고, 허벅지 위로 다소 말려올라간 원피스 자락도 마찬가지…… 그는 거기까지 보다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런 상황이지만 도저히 저건 음보기 힘들었다. 대신 그 뒤에 널부러져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다행히도 남자 두 명. 한 명은 멧돼지같이 커다란 덩치였고 한 명은 날렵하게 생긴 사람이었는데, 둘 다 슬슬 깨어나려는 것 같았다.

으으시발…”

날렵한 남자는 일어나자마자 머리를 감싸쥐며 다짜고짜 욕부터 했다. 그리고는 멍청한 표정으로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더니, 외쳤다.

이런씨발!”

남자의 말에 심히 공감하는 바였다. 더불어 뒤쪽의 멧돼지는 일어섰는데도, 아무 말도 없이 멀뚱멀뚱 바닷가를 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뭐지…? 사태의 심각성이 이해가 안 되나.

뭐야, 우리. 조난당한거?”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요.”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와 나좀 괜찮은 여자들 좀 따먹어보려고 크루즈 탔더니…”

준현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저게 시발, 여자를 앞에 두고 할 말인가. 지금 아직 안 깨어났다고 막말하는 건가. 말하면서 눈앞의 여자를 훑는 꼬라지 하며, 상종하기 싫은 타입이었다.

으으꺄악!”

여자는 비명과 함께 일어났다. 그러자 놀랍게도 날렵한 남자가 가장 먼저 달려가 물었다.

정신이 드세요?”

“…?”

여자는 멍하니 남자의 얼굴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고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뭐예요?”

준현이 대답했다.

“…조난 된 것 같습니다, 저희.”

?”

여자는 경악한 얼굴이 되었다. 여자는 날렵한 남자의 도움으로 일어나선, 일단 그들끼리 모여 앉았다. 가운데엔 운 좋게도 그들과 같이 떠밀려온 가방이 네 개 있었다.

, . 미친…”

날렵한 남자는 연신 욕지거리를 내뱉었고, 멧돼지는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심각한 표정으로 바닥을 노려봤다. 준현도 막막하긴 마찬가지였다. 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일단, 통성명이라도 좀 하죠.”

날렵한 남자가 준현을 노려봤다. ‘고추 달린 새끼한테 알려줄 이름따윈 없다정도의 의미랄까. 준현은 점점 저 남자가 싫어지는 것 같았다.

“…, 전 은지요. 유은지.”

여자가 먼저 슬쩍 오른손을 들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전체적으로 아기 토끼 같은 인상을 주는 여자였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바들바들 떨고 있으니 더 그래보였다.

유 은지라, 유 은지씨. 이름 되게 이쁘시네요. 저는 한우현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 .”

그를 노려볼때와 딴판으로 남자는 씩 웃으며 유은지에게 악수를 청했다.

저는 고준현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은지와 악수를 한 뒤, 예의상 우현에게도 손을 내밀었으나, 우현은 못 본척 멧돼지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형님은 이름이 뭡니까?”

멧돼지는 그를 싸늘하게 노려보며, 씹어뱉듯 한 마디 했다.

“…잘들 노네. 이런 상황에.”

그 말에 단숨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우현은 손을 내민 채로 얼었다. 남자는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이용찬이다. 내 발목이나 잡지 마라.”

준현은 미칠 노릇이었다. 어떻게 남아도 이런 멤버들끼리만 남는단 말인가. 그나마 유은지라는 여자만 정상 같아보였다. 그렇다 해도, 여기서 불만을 토로하고 갈라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일단 무어라도 수습해보려고 했다.

“…일단 우리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죠.”

말을 꺼냈으나, 침묵만 감돌았다. 당연했다. 세상의 어느 누가 조난 당해본 경험이 있다고 대책을 갖고 있겠는가. 그 와중에 이용찬이 말도 없이 가방 안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저기요, 뭐 하세요?”

이용찬은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안쪽으로 들어갈 거다.”

한우현이 말했다.

아니 형님, 지금 아직 조난됐다고 정해진 것도 아닌데, 일단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는 편이…”

기다린다고 뭐가 나아지나?”

그의 말에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그들도 사실 알고 있었다. 그들과 같이 떠내려온 파편, 사방에 안개가 자욱이 낀 섬이런 짙은 안개 속이라면, 여기가 무인도가 아닌 이상 그들이 발견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준현은 똑같이 짐을 뒤지기 시작했다.

저도 같이 갑시다.”

불행히도 짐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다행인 것은 그는 생존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를테면 식량이라던지 밧줄, 정글나이프 같은 것은 하나도 들고 오지 않은 것이다. 대신 이 짐 속에는 과자 몇 봉지와 예비용 옷가지, 상비약이 한 통 들어 있었다. 그는 필요없는 잡동사니들을 빼고 가방을 등에 들쳐멨다. 다른 사람들도 어느새 각자 몫의 가방을 들쳐메고 있었다.

그럼 출발하지.”

일어서는 이용찬의 손에는, 정교하게 생긴 권총이 들려 있었다.

“…그거 진짭니까?”

아니. 비비탄.”

, 탄약을 장전하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퍼졌다.

위협용이라도 되겠지.”

 

 

섬 너머는 숲 속이었다. 숲 그림자와 짙은 안개가 겹쳐, 숲 속은 한 치 앞을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그들은 헉헉대며 앞으로 나아갔다.

, 괜찮으세요? 가방 저한테 맡기세요, 힘드시면.”

괜찮아요.”

그 와중에도 우현은 은지에게 열심히 찝쩍대는 중이었다. 이 와중에 저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준현은 애써 무시하며 앞으로 나아가는데에 집중했다.

숲은 아주 울창하다. 무인도답게, 오랫동안 버려진 거친 산길이었다. 산토끼나 멧돼지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인데, 꽤 오랫동안 걸었는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흔한 거미나 나방 같은 벌레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비비탄 총으로 말없이 쳐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용찬을 향해 물었다.

조난 상황이나 이런걸 좀 잘 아십니까?”

경험이 있으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며 눈앞의 가지를 들춰냈다. 그러자 눈앞에 물이 고인 물웅덩이가 드러났다.

오오…”

찾았다.”

준현은 그제서야 자신이 한동안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용찬은 먼저 웅덩이로 다가가, 물을 한 모금 머금고는 이리저리 굴리며 이상이 없는지 살펴보았다.

이상 없군.”

일행은 일제히 다가와 허겁지겁 물을 마셨다. 기절해 있는 시간이 꽤 길었던 듯, 참았던 갈증이 밀려온 탓이었다.

부스럭.

무언가 이질적인 소리를 들은 건 그때였다. 준현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들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좀 더 멀리서 들려온 듯한

.

아까보다 더욱 가까이서 들려오는 소리. 일행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돌린 채로 굳어버렸다.

크르르-

온통 새까만, 거대한 그림자가 걸어다니는 듯한 형상. 그러나 그 형태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팔다리와 온몸을 비집고 나온 의 형상으로 보이는 부위들이 수십, 수백 개가 달려 있었다. 그림자는 팔에 달린 거대한 칼을 휘둘러, 눈앞의 나뭇가지를 뚝- 부러뜨리곤 준현을 노려봤다. 믿기지 않게도, 눈만은 완벽한 인간의 형태였다.

크아아-!”

히익!”

유은지가 숨을 삼켰다. 그게 신호였다. 녀석은 팔을 휘두르며 그들을 향해 돌진해왔고, 그들은 뒤돌아 정신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녀석이 풀을 베고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

준현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걸 느꼈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때리고, 나뭇잎이 눈앞에 달려들었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아래로, 아래로만 달렸다.

, .

녀석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다행히도 녀석의 발은 그리 빠르지 않은 듯했다. 때맞춰 숲이 끝나고, 눈앞에 해안가가 펼쳐졌다. 그 순간.

!

등뒤에서 터진 굉음과 함께, 녀석이 날았다. 아차 했을때는 이미 눈앞에 녀석이 내려앉은 뒤였다. 크르르- 하는 낮은 으르렁거림. 녀석이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캬악!”

녀석이 총알처럼 발사됐다. 준현이 그걸 피한 건 순전히 운이었다. 준현과 은지의 사이로 녀석의 거구가 광풍을 일으키며 지나갔다. 우당탕-! 하는 소리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녀석이 지나간 진로의 모든 나무와 풀들이 난폭하게 잘리고, 짓밟혀 있었다. 이제는 녀석이 그냥 그림자가 아니라, 날아다니는 초대형 분쇄기계처럼 보였다.

“…이런 미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도망은 실패했다. 맞서싸우는 것? 말같지도 않은 소리. 그렇게 난폭하게 나무둥치에 처박히고서도 생채기 하나 없이 일어서는 녀석이다. 불안감이 밀려왔다. 다른 이들도, 그리 달라보이지 않았다. 오직 그와 용찬만이 다급하게 주위를 살펴보고 있었다. 무언가, 뭐라도 좋으니 저녀석을 상처 입힐 수 있는 게 있다면

절그럭.

어느새 그의 손엔 식칼이 들려 있었다. …뭐지?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으아압!”

그는 무작정 녀석을 향해 식칼을 던졌다. 식칼은 엉성한 궤도를 그리며 녀석을 향해 날아갔다. 녀석은 비웃듯 자신의 팔을 들어, 식칼을 튕겨내려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서걱-

식칼이 녀석의 팔을 베어버렸다.

캬아아악!”

짐승의 울부짖음이 숲을 뒤흔들었다. 까만 액체가 절단부위에서 꿀렁꿀렁 흘러나왔다. 녀석의 눈이 일순 분노로 물들었다. 그리고는 무작정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런, 젠장-! 도망치려던 순간.

콰직

둔탁한 굉음이 녀석의 머리를 꺾어버렸다. 용찬이었다. 그의 손에는 권총 한 자루가 총구에서 새까만 연기를 피워올리고 있었다. 그가 들고 있던 비비탄 총과 똑같이 생겼지만, 총구부터 끝가지 온통 새까만 색이었다.

괴물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하며 그들을 향해 마구 칼을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아까의 총격으로 중심이 흐트러진 듯, 조준은 계속해서 엇나갔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들에겐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꺄아악!”

으악!”

은지와 우현은 기겁하며 도망쳤다. 와중에도 용찬은 침착하게 총탄을 재장전하며 준현에게 눈짓을 했다. 눈짓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이런 x…”

준현은 욕을 씹어뱉으며 녀석의 몸통 너머, 그의 칼이 떨어진 곳을 향해 달렸다. 녀석은 막무가내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목덜미에 훙- - 하고 칼날이 일으키는 바람이 느껴졌다.

쿠득!

총탄이 다시 한 번, 녀석의 어깨에 명중했다. 주춤대고 물러난 틈을 타, 준현은 몸을 날려 바닥의 칼을 낚아챘다. 그리고 녀석을 향해 달렸다.

흐아아아-!”

서걱, 하는 절단음. 허공을 가른 것처럼,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칼날은 그림자의 배를 확실히 갈라버렸다.

키에엑-!

쏟아지는 검은 액체. 녀석은 믿겨지지 않는다는 눈으로 그를 보다가, 털푸덕-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검은 액체가 피의 웅덩이처럼 바닥으로 퍼져나가, 그의 발에 닿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 죽은건가.”

준현은 거친 숨결을 내뿜었다. 믿기지 않는 눈으로 그의 손에 들린 칼을 바라보았다. 검은 액체에 푹 담궈진 칼날과, 검은 액체가 잔뜩 묻은 그의 팔뚝. 몸뚱이에도 꽤나 튀어 있었다. 내가, 이런 걸 했다고…? 벌레보다 큰 건 죽여본 적도 없는데? 녀석의 몸뚱이는 여전히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눈동자는 여전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름끼칠 정도로 사람과 닮은 눈동자였다.

“…, 형님. 괜찮으십니까?”

도망갔던 유은지와 한우현이 멈칫멈칫 그를 향해 다가왔다. 용찬은 괴물의 시체를 보고도 무심한 얼굴로 괴물과 고준현과 손에 들린 총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일단 여기를 벗어나지.”

그의 말에 고준현은 멍청히 고개를 끄덕였다.

 


2.

 

 

의문 첫번째.

저 괴물은 무엇인가.

“…애초에 생물이긴 한 겁니까, 저거.”

움직이고 있으니 생물은 생물이겠지.”

그들은 숲 인근의 모래사장에 모여, 토의를 나누기 시작했다.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다. 그나마 짐 속에 있던 식량과 물도 숲 속에 다 내팽개치고 나온 상황이었다.

아니 근데 형님들, 제 말을 들어보십쇼. 제 생각엔 저게 뭐든 별로 문제가 안 돼요. 왜냐면 형님들이 있으니까! 그 놈들도 단숨에 끝내버리셨잖습니까? ~ 역시 형님들은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은지도 그렇게 생각하지?”

, …”

유은지는 구정물을 피하는 표정으로 우현의 손을 피했다. 준현은 미심쩍은 얼굴로 그의 몸을 보았다. 검은 액체가 문신처럼 그의 피부에 스며들어 있었다. 다른 데에 닦으려고 해도, 바닷물로 박박 닦아봐도 지워지지 않았다. 마치 그의 몸의 일부가 된 것처럼. 게다가 윤곽 외에 몸의 세부가 전혀 구분되지 않는, 마치 그림자 같은 녀석의 모습그건 숲의 어둠 때문에 착각한 게 아니었다. 마치 빛을 완전히 빨아들인 것처럼, 뻥 뚫린 구멍처럼 완벽한 어둠으로 이루어진 생물. 그런 건 영화 속에나 나와야 맞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의 손에 들려있는 단검. 언제 어디서 나온 건지도 모르는 물건이기에, 미심쩍은 것 이상으로 기분이 나쁘다. 애초에 뭘로 만들어졌길래 나무둥치에 처박히고도 멀쩡한 녀석의 배를 한 방에 갈라버린단 말인가?

“…나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용찬의 손에 들려있는 권총 역시 그가 들고 온 비비탄 총과는 하등 상관 없는 물건이었다. 비비탄 총은 도망치면서 진작에 버렸다. 그가 한 건 저 그림자를 조질 무기를 간절히 바랐고, 어느 순간 그 총이 손에 들려있었다는 거다. 용찬의 손이 능숙하게 움직이며 총기의 가늠좌와 내부 약실, 탄알집 등을 확인했다. 그러나 어디를 찾아봐도 탄약은 커녕, 탄이 발사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와아. 진짜 신기하네요, 이거. 겉보기엔 평범한 칼처럼 생겼는데…”

말을 하며 슬쩍 준현의 손에서 식칼을 가져가려는 우현. 준현은 저도 모르게 칼을 쥔 손을 슬쩍 뒤로 뺐다.

“…에이, 잠깐만 보려고 한 건데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실까.”

그는 녀석의 사근사근하게 웃는 낯이 마음에 안 들었다. 특히 저 째진 눈. 단춧구멍만한 탓에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와중에도, 녀석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계산이 돌아가고 있다는 건 짐작이 됐다. 그는 대답 없이 그의 무기를 챙겼다.

“…, 저기.”

여지껏 조용히 있던 유은지가 손을 들어올렸다.

여기는 대체 뭐 하는 덴가요?”

마지막 의문점. 머릿속에 온갖 영화 같은 추측이 난무했다. 어느 나라의 비밀 생체 실험장, 핵폭발로 인해 변이된 섬, 현실이 아닌 다른 차원…… 그러나 무엇 하나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상황이 워낙 말이 안 되니, 저런 허황된 추측조차 허황된 거라 장담할 수 없는 상황. 결국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그럼 이제부터 어떡하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세 가지다.”

용찬이 손가락을 세 개 들어보였다.

, 식량, 거처.”

물은 아까 찾았다. 식량은 적게나마 그들이 버리고 온 짐 속에 있었다. 그리고 이런 탁 트인 해안가는 결코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숲으로 다시 들어간다.”

 

 

사삭.

조용한 숲 속에 그들의 발자국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들은 신중하게 나아갔다. 앞뒤에는 각각 준현과 용찬, 양옆은 은지와 우현이 맡아 사방을 경계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그들은 각자 숲에서 발견한 굵은 나뭇가지를 호신용으로 꼬나쥐고 있었다. 한동안 그들 사이에는 긴장된 숨소리만 오갔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했다.”

그들은 지친 숨을 내쉬며 호숫가 위에 주저앉았다. 장시간 사주경계는 정신적으로 매우 지치는 일이었다. 진짜로 죽을 수도 있으니, 긴장감과 신경과민도 한 몫 했고.

이야~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용찬 형님은 어떻게 이렇게 능숙하십니까? 꼭 예전에 조난이라도 한 번 당해보신 것처럼…”

입 다물어라. 목소리에 반응해서 올 수도 있다.”

“…아 예, 알겠습니다. 형님 말씀이라면 따라야죠~”

용찬은 사근사근 웃는 우현을 째려보곤 말을 이었다.

여기서 10분간 휴식 후 거처를 찾아나선다.”

충분하지 않은 휴식시간이었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 괴물이 나왔던 호숫가에 오래 있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형님.”

우현이 준현에게 다가와선 그를 조심히 불렀다. 얘는 언제 어디서 날 봤다고 형님형님 거리는 걸까.

비결이 뭡니까?”

?”

그 칼 말입니다.”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저도 모른다고.”

에이, 그러시지 말고. 지금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데, 저도 그걸 얻으면 전력에 보탬이 될 거 아닙니까.”

아니 모른다구요. 내가 알았으면 진작 알려줬지.”

우현이 준현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 거 되게 째째하게 구시네. 됐습니다.”

준현은 답답해 죽을 노릇이었다. 아니 없다면 없는 거지, 왜 말귀를 못 알아먹는 거야? 그리고 저기 이용찬은 놔두고 왜 나한테 와서 지랄이야? 내가 만만해 보이나?

그러나 그런 불만을 토로할 시간은 없었다.

사삭.

온다.”

이용찬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 경계태세를 잡았다. 준현은 자신의 식칼을 꽉 쥐었다.

사삭. .

소리는 한 곳에서만 들려오지 않았다. , , 양 옆…… 이윽고 셀 수 없이 많아지는 발소리들. 그리고 호수 너머에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찌직.

뉴트리아보다 조금 더 커다래 보이는, 쥐 형상으로 보이는 그림자 생물. 야생 동물인가…? 싶은 순간.

찌이익!

사방에서 쥐떼가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자 무기를 쥐고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어설프게 휘두른 칼날에 운 좋게 한 마리가 걸려 두 동강나고, 힘껏 휘두른 나무몽둥이에 튕겨나갔다. 총알은 착실하게 한 명씩 머리에 명중했다.

이런, 젠장!”

그러나 중과부적. 사람 상반신만한 쥐들은 수십 마리인지 백 단위인지 모를 만큼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고, 나무몽둥이에 얻어맞은 쥐들은 잠시 나가떨어지기만 할 뿐,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달려들었다.

아악!”

우현이 팔뚝을 물고 있는 쥐를 떨쳐내려 온 몸을 흔들어댔다. 그러나 악력이 어찌나 억센지, 상처가 벌어지고 피가 울컥울컥 솟아나오는데도 녀석은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떨어져, 씨발! 떨어지라고!”

상처에서 불길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걸 본 녀석의 눈이 뒤집어졌다.

이 새끼가!”

-

녀석의 주먹이 쥐를 강타했다. 키이익- 하는 쇳소리를 내며 떨어져나간 쥐는 광대 한 쪽이 함몰된 듯 보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우현의 손에는, 방금 전까지 없었던 새까만 반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그걸 보는 우현의 눈이 기이하게 번뜩였다.

“…이 새끼들, 다 뒤졌어!”

녀석은 물 만난 고기처럼 밀려오는 쥐떼의 한 가운데로 돌진했다. 쥐떼를 향해 무언가의 울분을 방출하듯, 미친듯이 주먹을 휘둘러댔다. 쥐들의 머리가 터지고, 배가 우드득 꺾이며 검은 액체를 쏟아냈다. 수십 마리의 쥐떼들이 녀석의 몸을 할퀴고, 물어뜯고, 긁힌 상처를 냈지만, 그럴수록 녀석은 미친 짐승처럼 날뛰었다. 검은 액체가 녀석의 몸을 뒤덮었다.

 

, 별거 아니네~”

마치 상쾌한 운동이라도 끝낸 듯한 표정으로 그는 어깨를 풀며 일행에게 다가왔다. 그의 주변에는 어디 한 군데가 터지고 으깨진 쥐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용찬마저도 눈을 찌푸리며 그를 쳐다봤다.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솔직히 이번에 무사히 넘긴건 거의 저 덕분 아닙니까?”

히익.”

유은지가 겁먹은 표정으로 용찬과 준현의 뒤에 숨었다. 우현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진 듯 보인 건 착각인가.

“…짐 챙기고 가지.”

예이, 예이.”

아무도 말하지 않았는데, 녀석은 선두에 섰다. 준현을 한번 쓱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불쾌감이 들었지만, 준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녀석도 근접전에 일가견이 있는 듯 하니까. 내가 맡든 녀석이 맡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들은 짐을 들쳐메고 행군을 계속했다.

아니 근데 아까 저 좀 쩔지 않았어요? 솔직히 여기 애들, 이 무기만 있으면 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녀석의 말에 대답하는 건 유은지 뿐이었다. 녀석은 소풍이라도 나온 것 마냥 경계도 소홀히 했다. 앞을 제대로 보라고 해도 돌아오는 건 내가 다 때려부술 수 있으니 괜찮다는 대답 뿐. 보다 못한 이용찬이 한 마디 했다.

닥쳐라.”

에이, 왜 그렇게 민감하게 구십니까? 뭐든 나오면 제가 다 쓸어버리면 그만인데. 혹시겁나십니까?”

용찬의 총구가 우현의 관자놀이에 닿았다.

닥쳐라. 머리에 구멍 나기 싫으면.”

우현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씨발, 존나 유세부리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돌아섰다. 용찬은 녀석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기분 탓일까, 녀석의 몸이 조금 짙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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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게에는 처음 글을 올려봅니다.


아직 부족한 점도 많고 미숙하지만, 심심풀이 정도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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