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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외계인
“그걸 우리 아이 머리에 씌우겠다고? 네가 지금 제정신이야? 우리 애 태어난 지 이제 하루밖에 안 지났어. 지금 이게 엄마가 할 짓이야?”
남자의 목소리에는 심각한 분노마저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 분노의 방향은 모호했다. 바로 어제 자신의 아들을 낳아준 아내에게 분노하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의 아내는, 자식들의 영어발음 좋게 만들기 위해 자식의 혀를 수술하는 왜곡된 교육열을 가진 다른 엄마들과 비슷한 실수를 하고 있는 것 뿐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아들에게 화는 내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아내가, 어제 태어난 아이의 머리에 씌우겠다는 저 흉측한 물건에 화를 내야 할까? 남자는 그냥 모든 외계인들에게 화를 내기로 했다. 이 모든 일은 빌어먹을 외계인 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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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외계인이 지구에 나타났다. 신장 178cm에 체중 79kg. 평범하지만 깔끔한 정장을 입은 그 외계인은 얼핏 보면 거의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지구인과 모습이 흡사했다. 아마도 자신의 고향에서 공무원노릇이나 하며 평범하게 살았을 이 중년남자 외계인의 특별한 점은 그 출몰 장소였다. 그 외계인은 고도 3,000m에서 갑자기 나타났고, 아무런 도구없이 지상으로 맹렬한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낙하를 끝낸 외계인은 모 초등학교 운동장 한복판에 직격했고, 당연히 온몸이 박살나며 즉사했다.
많은 인류가 기다리고 있던 역사적인 퍼스트컨텍트(first contact)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이 외계인들은 혈액형도 DNA형질도 지구인과 비슷하여 이 시체가 외계인인줄 아무도 몰랐다.
이후 외계인들의 낙하는 꾸준히 계속되었다. 다행히 외계인 전부가 고도 3,000m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운 좋게 강이나 바다 50m쯤 위에 나타나는 외계인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첫 번째 외계인이 지구에 떨어진 후 지금 까지 낙하한 외계인은 수는 대략 2만이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중 추락에서 살아남은 외계인은 1,000명 이하이고, 지구인에 의해 무사히 구조되어 지금까지 살고 있는 외계인은 200명 남짓이다.
지구인들은 처음에는 외계인들을 싫어했다. 아침에 출근하러 주차장으로 갔는데 박살난 자신의 자동차와 피범벅이 된 외계인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면 누구나 외계인을 싫어하게 될 것이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면 문제없겠지만, 대도시 한복판에 떨어지는 외계인들의 몸뚱이는 큰 사회적 문제를 낳았다. 철도나 도로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교통이 마비되는 것은 물론이고, 큰 사고를 초래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외계인을 만났다는 흥분과 호기심보다, 교통체증에 더 짜증을 내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점점 추락하는 외계인들의 수가 줄어들고, 이 외계인들의 평균 IQ가 450이라는 것이 알려지며 외계인들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사히 지구인들에게 구출된 외계인들은 고작 2~3일 만에 자신이 구출된 지역의 언어를 완전히 마스터하고 대화를 시도했다. 외계인들은 자신이 왜 지구에 와서 낙하를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일상생활을 하는 중 갑자기 의식을 잃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추락하고 있거나 지구의 병원이었다고 한다.
또 다른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은 이 외계인들의 과학문명은 지구보다 크게 발전한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IQ 500이상의 사람들이 넘쳐나는 곳이지만 이 외계인들의 별에는 컴퓨터의 발달이 매우 더딘 것으로 알려 졌다. 3살짜리 아이도 원주율을 10만 단위 까지 계산할 수 있다 보니, 자동계산장치의 발달에 사람들이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 환경, 경제, 복지 등의 문제에는 지구보다 몇 배는 앞서 있는 듯 했다.
외계인을 구출한 각 국가는 외계인들의 능력을 조심스럽게 자기들의 나라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5주년 계획, 10주년 계획 이라 이름 붙은 각종 국가사업들을 몇 개월 만에 뚝딱 해치우는 이들의 놀라운 수완에 각 나라의 수장들은 환호했다. 어떤 외계인은 볼펜 한 자루와 암산만을 통해 보다 효율적인 핵분열 공식을 만들어 냈고, 또 누구는 안전하게 암을 완치시킬 수 있는 항암제의 분자식을 고안해 냈다.
그러자 외계인들에 대한 지역구분 분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국토가 넓기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은 외계인이 추락한 국가에서는 추락한 장소에 따라 외계인의 소속이 이루어져한 한다고 했고, 비록 국토는 좁지만 경제력을 갖춘 나라는 외계인들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계인을 둘러싼 세계대전이 거의 형체를 갖출 뻔했다. 하지만 이 외계인들은 뛰어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여 최소 26개국이 동시에 참전하려했던 전쟁을 막았다. 외계인들은 버려진 무인도에 자신들의 자치 구역을 만들고 철저한 아나키스트이자,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첫 번째 추락이 있고난 후 5년, 이제 각 요직마다 프리랜서 외계인이 활동하고 있지 않은 국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지구인들은 연구했다. 살아있는 외계인들의 신체를 검사하는 것은 물론 추락으로 사망한 외계인들의 몸을 샅샅이 조사했다. 조사하면 조사 할수록 외계인들의 신체구조는 지구인과 흡사하다는 결론만 나올 뿐이었다. 외계인들은 두개골의 형태만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지구인과 같았다. 하지만 어떤 부분을 조사해도 외계인의 뛰어난 지능에 대한 이유는 알아낼 수 없었다.
그동안 외계인과 지구인 사이에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도 있었다. 아주 복잡한 법적공방을 통해 법적으로 인정받은 이종부부도 탄생했다. 하지만 이종간에는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아이가 생기지는 않았다. 외계인들의 그 뛰어난 머리로 연구해도 외계인과 지구인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는 방법은 발견할 수 없었다.
외계인들은 보석이었다. 그것도 희소성이 대단히 높은 보석. 그들의 지능은 IQ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대단히 현명했다. 그래서 그들의 언행에는 기품이 있었고, 귀족적이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외계인처럼 되고 싶어 했고, 언제나 그러했듯이 지구인들은 자신의 원하는 것의 내면보다는 겉모양부터 따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시도는 조금 위험했다. 외계인과 지구인의 외형적인 차이점은 특정부위의 골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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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면 우리애도 IQ가 500이 될지도 모르잖아.”
“인터넷어서 아무런 근거도 없이 지껄여 대는 찌질이들의 말을 믿는 거야? 그러다 애가 다치면 어떻하려고!”
“지금 해야 해. 며칠만 더 지나도 뼈가 굳어서 늦는다고 했다고. 이 교정기가 얼마짜리인지 알기는 해? 이걸로 애 뼈를 미리 잡아두면 우리애도 외계인처럼 된다고.”
“정신 차려! 계들은 우리랑 종이 달라. 종(種)이!”
“다르긴 뭐가 달라? 거기 뼈 모양만 빼면 우리랑 똑같다구 하더라. 계들 혈액형도 우리랑 같아서 수혈도 가능하데. 다른 거는 뼈 모양 뿐이야. 이것만 교정해 주면 우리애도 똑똑해 질 거야. 생각해봐 지금 전세계에서 외계인들을 서로 스카웃하려고 난리잖아. 우리 애도 그렇게 될 거라니까.”
“집어치워. 그 잘난 뼈교정을 하다가 죽은 애도 생겼어. 너의 그 똑똑한 인터넷 병신들은 죽은 애 이야기는 안해주냐?”
“그거 다 조작이야. 지구인들 까지 똑똑해지면 자기들 희소성이 줄어드니까 그거 막으려고 외계인들이 사건을 조작한 거야.”
“입 다물어. 설령 우리 애 뼈 모양을 바꿀 수 있다 치자? 그렇다고 지능이 올라가겠어? 평생 병신이라고 왕따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출산 후 아직 몸도 추스르지 못한 아내를 남자는 진지하게 후려치고 싶었다. 아내의 손에는 작고 네모난 플라스틱교정기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저 교정기 안에 아기의 머리를 강제로 끼워 넣어, 아기의 두개골을 네모나게 만들겠다고 한다.
외계인들은 모두 박스 모양의 육면체 두개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