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0년 7월 나당연합군에게 의자왕이 투항을 하였지만, 백제는 바로 간판을 내리고 폐업 신고를 한 게 아니었어. 비록 중앙정부는 없어졌지만, 왕족, 장군, 백성들이 힘을 합쳐 4년간 백제부흥운동을 전개 하였어. 이 4년간의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위해 이름도 낯선 주요 등장 인물의 간단한 소개부터 하려고 해.
부여융 : 의자왕의 아들. 조국의 심장에 칼을 겨누게 되는 비운의 세자
흑치상지 : 백제의 장군으로 백제 부흥운동의 불씨를 일으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인물.
복신 : 의자왕의 사촌동생으로 백제부흥 운동의 한 축을 담당. 이름에서 풍기듯 인생에 복선이 깔린 인물
도침 : 승려출신으로 흑치상지, 복신과 함께 백제부흥 운동의 삼두마차 중 한 명. 침술과는 전혀 무관함.(오늘 아재 개그 지수 급 상승)
부여풍 : 백제의 구 왕자. 의자왕이 집권 초기에 정적이 될 만한 사람들을 배에 실어 일본으로 강제추방 시켜 버려서. 백제멸망 전 까지 일본에서 30년간 가택연금 생활.
소정방 : 나당연합군의 총 사령관. 당나라 장수로서 백제유민 인종청소를 지시.
지금으로부터 천 년도 전인 660년 7월 찜통 같은 더위가 시작 될 무렵,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은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공격해. 참고로 신라 백제는 같은 민족끼리 왜 이렇게 싸우나 의문을 가지실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 마디 하자면. 이 때는 같은 말만 사용했지 같은 민족의 개념도 없고, 신라와 백제는 지금의 한일보다 더 한 앙숙이었어. 신라의 우방은 당나라이고 백제는 왜 와 더 긴밀한 관계를 유지 하고 있었던 거지.
막강파워 나당 연합군에 사비성이 위태롭게 되자. 의자왕은 결단을 내려.
“ 부여융아. 이건 아니여! 여서 이러고 있다간 너도 나도 다 죽겄어. 어여 웅진 성으로 피하자고.! 니 어디 다친 데는 없지?”
“괜찮아 유 아부지. 가서 맘 단디 부여잡고 다시 시작해 유”
사비성보다 더 요새 같은 웅진성 으로 일단 몸을 잽싸게 피한 의자왕 부자는 웅진성 성주 예석진의 극진한 대접 속에 도주로 인한 피로를 풀게 되었어.
의자왕 부자가 잠든 걸 확인 한 후 예석진은 정예부대원을 데리고, 왕과 세자의 침실로 쳐 들어가.
“ 워때유? 몸도 피곤한데 맛있는 거 처 먹고 목욕까지 하고 나니 잠이 살살 쏟아지쥬?”
“ 이제 인나유! 나랑 같이 당나라로 가서 맘 편하게 살아유. 백제는 이미 끝났잖아 유”
왕궁인 사비성을 버리고, 찾아간 성이 웅진성 이야. 이 성의 성주라면 상당한 위치에 있었을 텐데, 예석진은 양 손에 백제의 왕과 세자를 헤드락으로 끼고 당 나라 진영으로 투항을 해.
이 즈음 나당연합군 원수 소정방은 왕이 없던 사비성을 손 쉽게 함락했고, 웅진 성으로 피신했던 의자왕과 세자는 자신들의 신하에게 잡혀 당 나라로 끌려 가게 되었어. 백제의 수도와 행정부는 모든 기능을 상실했어.
한편 소정방은 명분도 없는 남의 나라 전쟁에 참전을 하니, 한 몫 잡자는 생각과 함께 자신의 굶주린 부하를 달래기 위해 백제 유민들을 상대로 마음껏 광기를 내뿜도록 허락해.
소정방의 묵인 아래 당 나라 군사는 백제의 재산과 백성들을 유린하고, 백제 유민들은 지옥을 눈 앞에서 경험을 하였어. 이 당시 집에 도어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초가삼간에 불을 지르면 꼼짝없이 밖으로 나와야 하고, 밖에는 짐승 같은 당 나라 병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나라의 컨트롤 타워를 잃은 백제 유민들은 방 한 구석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산 송장과 다름이 없었어. 백제의 멸망은 기정 사실이 되었고, 백성들은 차라리 질긴 목숨 빨리 끓어져 눈 앞에 펼쳐진 지옥에서 탈출 하고 싶었을 꺼야.
이 때 혜성처럼 등장한 장군이 흑치상지였어.
흑치상지는 180이 넘는 키에 조상대대로 국방부차관급의 벼슬을 지내던 인물이야. 조선시대 양성재라는 학자는 신라의 김유신, 고구려 을지문덕, 백제는 계백이 아닌 흑치상지 라고 평 할 정도 였어. 백제 백성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던 인물이 분명했지. 이런 자가 최 측근 부하 10여명만 데리고, 임존성에서 백제의 컨트롤 타워를 자처하고 백제부흥의 깃발을 꽂으니, 10일만에 3만여 명이 휘하로 모였다고 해. 앉아서 죽으니 흑지상지 장군 밑에서 싸우다 죽자는 백제 유민들이 의기 투합을 한 거야. 아내 잃은 남편부터 아들 잃은 어미, 부모 잃은 고아들까지 모두가 임존성에 모여 미친 독기를 품고 나당연합군을 벼르고 있었을 꺼야.
이때 의자왕의 사촌동생인 복신은 승려 도침과 함께 주류성을 근거지로 하여 백제 유민들을 모으며, 백제부흥운동에 동참을 하게 돼
“ 머데유? 흑치상지가 일어났슈? 내가 왕족이고 백제의 주류인데, 가만히 있음 안돼쥬,”
복신과 함께 백제부흥운동의 한 축을 이룬 승려 도침도 보통 인물은 아니야. 신분은 승려지만 장수 못지 않게 전투에 일가견이 있었고, 종교 지도자로서 백제유민들을 이끌 수 있었기에 왕족인 복신이 함께 했던 거지..
복신이 출정식 때 연설로 인해 주변 20여 개 성이 백제부흥운동에 참가 하게 돼.
“ 소문들 들어 알고 있쥬? 나당연합군이 딜을 했데유. 당 나라 군은 백제 백성들 다 죽이고 재산까지 다 가지고 떠나면, 우리 땅은 신라 놈들이 차지 하기로 했대 유. 어차피 가만 있어도 우린 다 죽어유. 그럴 바엔 우리 다 같이 싸워서 백제를 다시 찾아 오자구유”
백제유민 인종청소에 대해 소문으로만 듣던 백제 유민들은 왕족의 말에 소문을 기정 사실화했어.
이 기세로 승승장구 하던 백제부흥 군은 한 때 빼앗긴 사비성까지 포위를 하는 등 기세를 잔뜩 올려. 이때 도침이 복신 에게 은밀한 제안을 해.
“ 이봐유 도침, 당신도 왕족이긴 하지만 적통에 더 가까운 건 일본에 쫓겨 가 있는 부여풍이에유. 이렇게 분위기 좋을 때 백성들의 단합을 위해서는 얼굴 마담이 필요하다구 봐유. 어차피 일본에서 30년이나 있었는데 다시 돌아와도 정치기반도 없고, 우리가 적당히 이용해 먹고 버리쥬!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백제 유민들에겐 구심점이 필요해유”
“ 이런 땡초가 머리는 팽팽 잘 돌아가내. 그리하쥬 머. 대신 백제를 찾으면 왕은 당연히 내 차지유”
이렇게 해서 의자왕에 의해 일본에서 가택연금 되어 있던 부여풍이 바람에 실려 백제부여운동의 눈 속으로 재 등장을 해.
과연 부여풍은 복심과 도침의 의도대로 꼭두각시 노릇을 해 줄 것인가? 이 들은 또한 국민영웅으로 떠 오른 임존성의 흑치상지와 힘을 합쳐 잃어버린 백제를 다시 찾을 수 있었을까?
2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