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브금)자작 소설-연애 튜토리얼 4(완)
게시물ID : animation_3973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자작익락
추천 : 1
조회수 : 28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8/26 00:58:05
옵션
  • 창작글
  • 외부펌금지

BGM: Ahnri Kumaki- Hello Goodbye & Hello

1편 보러가기
http://todayhumor.com/?animation_396663


2편 보러가기
http://todayhumor.com/?animation_396782


3편 보러 가기
http://todayhumor.com/?animation_397093


4.

 

 

유민은 눈앞의 꽃밭을 바라보았다. 정원길을 따라 벤치가 몇 개 놓여 있고, 양옆으로 빨갛고 노란 꽃들이 제법 분위기 있게 피어 있었다. 그의 학교 안, 연인들이 많이 찾는다던 산책로다. 모쏠인 유민이지만, 놀랍게도 딱 한 번 이 장소를 걸은 적 있었다. 그것도 선배하고 단 둘이서.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유민은 과에는 적응을 잘 못했지만, 유정 선배와는 그래도 꽤나 친해졌다. 수업이 많이 겹친 탓에 밥을 같이 먹는 날도 점점 늘었고, 선배가 심심하자며 수업을 째자고 꼬신 날엔 어딘가로 둘이 놀러가기도 했다. 혹시나 날 좋아하나? 같은 의심을 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주제를 너무나 잘 아는 유민은 그 의심을 금방 눌러버렸다. 무엇보다 이 관계가 깨지는 것이 싫었으니까.

한창 여름방학 시즌이었을 무렵, 유민은 선배가 심심하다며 꼬신 덕에 얼결에 선배와 하루 놀게 되었다. 영화관에서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오락실에서 신나게 총싸움도 해 보고, 카페에서 둘이 앉아서 수다를 떨며 커피도 마셔보고데이트 아닌 데이트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날따라 그는 평소와 다른 말을 하고 싶어졌다. 선배가 그에게 이렇게까지 잘해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단순히 친구이기 때문인지, 어쩌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만, 선배가……그를 좋아하는 건 아닌지.

그래서 저녁을 먹고, 이곳으로 이끌었다. 그가 혼자 머릿속으로 수백번이나 돌린 고백 시뮬레이션의 배경 중 한 장소. 딱 지금처럼, 밤에 가까워져 날은 어둑했고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때마다 긴장감이 커졌다. 머릿속에선 수없이 많은 고백 멘트들이 휘몰아쳤다. , 선배 좋아해요. 선배는 저 어떻게 생각하세요? 선배, 좋아해요. 선배를 더 알아가고 싶어요. 선배…… 어느것도 볼품없어보였고, 불완전해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산책로 한가운데에 도착했을 때. 그의 사고는 멈춰버렸다. 선배는귀여운데다가,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MT 첫날, 이름도 모르는 후배가 혼자 뒷구석에서 찌그러져있는 걸 위로해줄 정도로. 그래서 과에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그들에 비하면, 그는 볼품없는 후배 1이다. 후줄근한 티셔츠나 걸쳐입은, 꾸밀 줄도 모르는 찌질한 범생이.

그는 입을 열었다.

“…~ 여기 정말 좋죠?”

애써 웃으며 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걸었다. 모든 게 부자연스러울거란 걸 알면서도, 선배를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유민아.”

선배가 그를 불렀다.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

“…나한테 할 말 없니?”

그는 돌아본 채 굳어버렸다. 두려운 침묵이 흘렀다. 그의 입술은 1미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선배의 눈빛은 낮게 가라앉았다.

“…없구나.”

모든 걸 망쳐버렸다는 낭패감. 주워담을 수 없다는 후회. 자책. 자조. 그는 선배가 고개를 돌려버리는 순간에도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먼저 갈게.”

선배는 그 길로 떠났다. 당연하게도 선배를 잡을 용기 같은 건 그에게 없었다.

그리고 1주일 후, 7 22. 그는 동기 성현과 선배가 사귀기 시작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가 생각한 가설이 맞다면, 선배에게 그 날의 기억은 없을지도 모른다. 이 세계의 나는, 아마도 원래 세계의 선배의 남자친구인 성현의 자리를 대체한 것일 테니까.

이 세계의 인과가 가장 그럴듯한 방식으로 아귀를 맞추는 방식이라면, 이미 연인이 있는 사람의 연인을 가장 손쉽게 바꾸는 법은 무엇일까. 두 사람의 운명을 바꿔치기하는 것이다. 유민은 성현이 되고, 성현은 유민이 되고. 인생 전부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성현이 그녀와 연인이었던 시간동안, 성현이 한 일은 유민이 한 일이 되었을 것이며, 이 세계의 성현은 아마 유민과 같은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저 ‘1주년이다. 원래대로라면 어제가 바로, 선배와 성현의 1주년이었어야 하니까.

그는 초조한 눈빛으로 핸드폰 시계를 바라봤다. 나오기 전에 선배에게 이곳에서 기다리겠다고,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카톡을 보내놓았다. 하지만 한시간 반 째, 선배가 나타나긴커녕 카톡의 1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기다려야 했다. 그때처럼, 한 순간의 망설임 때문에 모든걸 망쳐놓긴 싫었다. 비록 그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부웅-

그때 전화기가 울었다. 황급히 쳐다보니, 나가기 전에 따두었던 천사의 번호였다.

“…?”

-유민씨, 알아봤어요. 그런 경우가 몇몇 있대요. 원래 연인의 운명과 대체된 사람들.

맞구나. 그러나 중요한 건 그 다음이었다.

다음 거는?”

천사는 잠시 침묵했다.

-…규정을 알아봤어요. 가능해요. 하지만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어요?

대가가 뭔데…?”

-수명… 10년이요.

유민은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그러나 그정도는 각오했던 바이다.

그렇게 해줘.”

-…이해가 안 돼요.

언제는 이해됐던 적 있냐.”

-그치만세상에서 자기 목숨 10년치하고 맞바꿀만큼 소중한 게 있는 건가요?

천사의 말에 유민은 웃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어이없었다.

글쎄다내가 모쏠이라 그런가보지.”

전화는 끊겼다. 그는 학교 정문이 잘 보이는 벤치에 앉아, 선배를 기다렸다. 드문드문 학교를 걸어다니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건물의 불이 꺼질 때까지. 그는 멍하니 앉아 까만 하늘을 올려다봤다. 가로등 불빛 사이로 별이 드문드문 반짝였다. 이곳의 선배는 그날의 기억을 갖고 있을까? 그 날의 기억만은 성현이 아닌, 자신의 것이면 좋겠는데.

“…왜 기다리고 있어?”

그는 퍼뜩 고개를 돌렸다. 명치에 겨우 올까 말까 한 조그만 키, 폭신한 밤색 머리카락. 울먹이는 눈동자. 선배였다.

선배…”

그냥 가지…”

선배의 목소리는 떨렸다. 이 세계의 그에 대한 분노인지, 무엇 때문인지. 유민은 쓰게 웃었다.

“…어떻게든 만나고 싶어서요.”

선배는 유민을 쳐다보지 않았다. 시선은 땅바닥에 박혀 있었다. 그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분노와 체념이라고 해도, 그것은 충분히 가슴아픈 일이었다.

“…할 말이 뭐야?”

유민은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그녀의 상처받은 얼굴 위로 1년 전의 실망한 얼굴이 겹쳤다.

나한테 할 말 없니?’

죄송해요. 그동안 아프게 해서.”

그때 용기를 내지 못해서. 선배 혼자만 아프게 한 채, 방 안에 혼자 웅크려 있어서.

선배는 자신의 구두코만 내려다 보았다.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눈시울에선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질 것만 같았다. 유민은 주머니에서 준비해온 물건을 꺼냈다. 차르륵 하고, 은빛 목걸이가 그의 손에서 늘어졌다. 그는 그걸 깨지기 쉬운 도자기처럼 조심스럽게, 선배의 목으로 가져갔다. 그가 선배의 목에 목걸이를 채워주는 동안 선배는 움찔 몸을 떨었지만, 거부하지 않았다.

“…이게 뭐야?”

“1주년 선물이요하루 늦었지만.”

투명한 유리로 세공된, 별사탕 같은 별 하나가 선배의 목 언저리에서 반짝였다. 선배의 손가락이 별을 멍하니 쓰다듬었다. 혹시라도 그녀가 이 별의 의미를 안다면, 그가 이 세계를 떠나더라도 그 별을 보며 조금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으면 했다. 그녀가 자신에게 주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빨리 주지.”

선배의 목소리는 미약하게 떨렸다. 이 세계에서 그녀가 입은 상처는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겠지만.

죄송해요, 선배. 그동안 혼자 힘들게 해서.”

다음번엔 그렇게 놔두지 않을게요.

유민은 그녀를 꽉 껴안았다. 히끅- 하는 소리가 들리고, 선배의 몸이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공원 위로, 그의 등자락이 선배의 눈물로 얼룩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삐비빅- 하고, 유민의 핸드폰이 울기 시작했다. 그가 열두시 정각으로 맞춰놓은 알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연애 체험의 종료를 알리는 알람이었다.

 

 

 

-------------------------------------

 

 

유민은 감았던 눈을 떴다. 방금 전과 같은 까만 밤하늘, 그리고 그 사이에서 빛나는 가로등 불빛. 그의 앞에 서 있는 선배. 그러나 달랐다. 선배는 그의 품에 안겨 울고 있지 않았다. 걱정스러운 듯, 그를 살펴보고 있을 뿐이다.

유민아? 괜찮아?”

, . 괜찮아요.”

부웅- 핸드폰이 진동했다. 열어보자, 발신인도 적혀있지 않은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계약 성립되셨어요, 유민씨.

현민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가 천사를 통해 인연 엔터테인먼트에 요청했던 내용. 기존 계약의 중도 해지와, 새로운 계약의 성립. 계약의 내용은 간단하다.

-유민씨의 요청대로, ‘2015715~717로의 회귀 체험이 성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체험으로 인한 인과의 뒤틀림은 유민의 수명 10년을 대가로, 교정되지 않고 유지된다.

, 이건 더 이상 체험이 아니다. 수명 10년을 대가로 그의 운명을 바꾸기 위한 투쟁이지. 그런데, 17일 까지라니…? 그가 요청한 건 단 30분의 회귀 체험 뿐이었다. 그 이후에는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가고.

그 말을 듣기라도 한 듯, 문자가 한 통 더 왔다.

-서비스예요.

픽 하는 웃음이 나왔다. 보낼 수 없는 답장 대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고맙다. 다음에 만나면 크림치즈 와플이든 뭐든, 배터지게 먹여줄게.

그는 핸드폰을 닫았다. 더 이상 핸드폰을 보고 있는건 예의가 아니다. 이제는 정말로 해야 할 일을 할 때다. 그는 선배를 보았다. 아마도 그의 표정은 잔뜩 굳어있겠지. 선배는 그 표정을 보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할 지 알아차렸을 테고. 선배의 조금 당황한 표정과, 살짝 붉어진 볼과, 떨리는 눈동자가 똑똑히 보였다. 그는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선배. 할 말이 있어요.”

따뜻한 가로등 빛이 그들을 감쌌다.


-----------------------------------


난생 처음으로 글이란 걸 완결까지 써봤습니다. 쓰고 싶은 게 많았는데, 생각대로 되진 않네요.


그래도, 읽으시는 분들께서 잠시 지루함을 잊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