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누나
많은 친족 어휘 가운데 '오빠'와 '누나'는 어원 연구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어휘에 속한다. '오빠'의 경우는 논의 자체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어원을 본격적으로 다룬 논의가 없고, '누나'의 경우는 논의 자체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렇듯 '오빠'와 '누나'가 친족 어휘의 어원 연구에서 소외되어 있는 것은 어원 설명이 다른 친족 어휘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
그런데 이들 '오빠'와 '누나'의 어원 설명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들과 형태론적 계열 관계에 있는 다른 친족 어휘와 비교해 보면 단어 형성이나 형태 변화 과정을 그런대로 설명할 수 있고, 친족 어휘 전체에 적용되는 명명의 원리를 고려한다면 그 지시 의미나 의미 변화의 문제도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위의 두 가지 사항을 염두에 두고 졸저(1996)에서 '오빠'와 '누나'의 어원론을 소략하게 다룬 바 있다. 그런데 '오빠'의 형태 변화 과정 설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고, '누나'의 지시 의미를 밝혀줄 새로운 자료를 발견하게 되어 다시 두 단어의 어원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다.
<'오빠'에 관련된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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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와 관련된 단어는 후기중세국어는 물론이고 근대국어의 얼마간도 문헌에 나타나지 않는다. 19세기 말의 <한영자전>(1897)에 '누나'로 처음 보인다.
(1) 누나 妹 A sister. (Low) <한영자전 378>
20세기 이후에는 사전에 등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 많은 용례를 보인다.
(2) ㄱ. 누나 : 弟の姉に對する稱呼 <조선어사전 172>(1920)
ㄴ.누나 : 사내 동생이 손위 누이에게 대하는 칭호 <조선어사전 301> (1938)
(3) ㄱ.그게 무슨 낙(樂)이애요? 그 낙(樂)을 누나야 알 수 잇나. 한 모금 두 모금 적에 짓짓 타들어 가는 것도 자미(滋味) 잇고 <지새는 안개 46>(현진건, 1923)
ㄴ.한동안 답답한 침묵(沈黙)이 잇슨 후(後) "누나!" 문 창섭(昌燮)은 소리를 엇다. <지새는 안개 47>(현진건, 1923)
ㄷ.막내둥이 어린 누나! 어버이를 일즉이 여의고 제 손으로 길러내고 제 힘으로 공부를 시켜 논 귀여운 누나! 사십이 넘어 슬하에 일덤 혈육이 업고 사막가티 쓸쓸한 그의 가뎡에 오즉 한 송이 인 어여 누나! <荒原行>(현진건, 1929)
그런데 이 '누나'라는 단어는 후기중세국어에서는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는 평칭의 '누의'와 존칭의 '누의님'만이 존재하였다. 평칭의 자리에 하나의 단어만 배정되고 이것이 지칭과 호칭의 기능을 아울러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
누의'의 지칭 기능은 문헌 자료에서 쉽게 확인된다. 호칭 기능은 문헌에서 확인이 되지 않지만, '누의님'에서 보듯 이것이 존칭의 단어를 만드는 데 이용된 것을 보면 호칭 기능이 있었다는 것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국어 친족 어휘의 존칭형은 평칭의 호칭어에 존칭 접미사 '-님'이 결합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의'의 일차적인 기능을 호칭으로 보기는 어렵지 않나 한다. 평칭의 호칭 자리는 構造上 빈칸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그 자리는 '누나'가 들어갈 자리이나 '누나'는 근대국어 이후에서나 보이기 시작한다. 이 '누나'의 단어 형성 과정은 설명이 쉽지 않다. 아울러 '누의'의 어원도 밝히기 어렵다. '누의'나 '누나'의 어원을 밝히기 어려운 것은 이들이 다른 여성 관련 친족 어휘와 형태상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祖母'의 '할미'와 '할마', '姑母'의 '아미'와 '아마' 등은 '母'의 '어미'와 '어마'를 포함하고 있는 형태 구조인데 반해 '누의'나 '누나'는 '母'의 친족 어휘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말하자면 형태 계열상 아주 이질적인 것이다. 계열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하여 설명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누나'의 경우는 <조선어사전>(1938)에 보이는 '누니'라는 단어를 참고하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6) 누니 : '누나'와 같음 <조선어사전 301>(1938)
이 '누니'는 존칭형 '누님'에서 제2음절의 말음 'ㅁ'이 탈락한 어형으로 추정된다. '어마님'에서 '어마니'가 변형되어 나오고, '아바님'에서 '아바니'가 변형되어 나오듯이 '누님'에서도 '누니'가 변형되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누니'라는 단어가 실제로 사용된 예는 확인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전에 표제어로 등재되어 있는 단어를 크게 의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누나'는 이 '누니'에 호격의 '아'가 결합된 '누니아'가 줄어든 어형이 아닌가 한다. 기존의 친족 어휘에 호격의 '아'가 결합되어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지는 조어 과정은, 방언이지만 '누이'에 호격의 '아'가 결합된 '누이야'가 줄어든 '누야'라는 단어가 존재하므로 아주 어색한 것은 아니다. '누니'와 '누나'가 문헌에 등장하는 시기가 비슷하다는 점도 '누니'를 기반으로 '누나'가 나왔을 가능성을 높여 준다. '누나'가 '女兄弟'의 친족 어휘 체계에 합류함으로써 평칭의 구조적 빈칸이 채워지고, 따라서 안정된 어휘 체계를 이루게 된다.
이렇게 해서 '누나'의 단어 형성 과정은 그런대로 밝혀진 셈이다. 그런데 '누나'의 경우도 단어 형성 과정 못지 않게 주목되는 것이 그 지시 의미와 의미 변화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아쉽게도 전혀 논의된 적이 없다. 그리하여 '누나'가 본래부터 '女兄'의 의미를 지녀온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예문 (2)의 <조선어사전>(1920)과 <조선어사전>(1938)에는 '女兄'의 의미만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 예문 (3)을 보면 '누나'에 '女弟'의 의미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ㄱ, ㄴ은 사촌 오빠와 사촌 여동생 사이의 대화인데, 사촌 오빠가 그 여동생을 '누나'로 지칭하거나 호칭하고 있다. (3)ㄷ은 여동생에 대한 서술자의 기술인데, '여동생'을 '누나'로 표현하고 있다. '누나'가 손위의 여자 동기가 아니라 손아래의 여자 동기에 적용된 것이다. '오라바'가 손아래의 남자 동기에게 적용된 것과 양상이 같다. 20세기 전반기의 '누나'에 '女弟'의 의미가 있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누나'에 '女兄'과 '女弟'의 의미가 있었다면 그것을 아우르는 '女兄弟'의 의미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女兄'과 '女弟'는 총칭적 의미 '女兄弟'에서 분화된 의미이기 때문이다.
'누나'보다 앞선 시기에 존재한 '누의'나 '누의님'도 '누나'와 같은 지시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7) ㄱ.그 누의 병커든 반기 친히 위야 블 일어(其姉病必爲然火) <내훈 3:46>
ㄴ.아와 누의와 각각 어드러 가니오(弟妹各何之) <두시언해 8:28>
(8) ㄱ.네 아리 각각 어마님내 뫼고 누의님내 더브러 즉자히 나가니 <월인석보 2:6>
ㄴ. 만히 깃게다 누의님하(多謝姐姐) <번역박통사 상:49>
예문 (7)ㄱ의 '누의'는 '女兄', (7)ㄴ의 '누의'는 '女弟'의 의미로 쓰인 것이다. '女兄弟'의 의미로 쓰인 예는 보이지 않지만 개별적 의미 '女兄'과 '女弟'가 확인되므로, 이들을 아우르는 '女兄弟'의 의미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예문 (8)ㄱ의 '누의님'은 '女兄弟', (8)ㄴ의 '누의님'은 '女兄'의 의미로 쓰인 것이다. '女弟'로 쓰인 예는 발견되지 않으나 '누의님'에 '女兄弟'와 '女兄'의 의미가 있는 것을 보면 '女兄'에 대응되는 '女弟'의 의미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렇게 보면 '누의'와 '누의님'의 기본 의미는 '女兄弟'이고 여기에 포함되는 '女兄'과 '女弟'의 의미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정리된다. 이는 '누나'의 지시 의미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현대국어의 '누나'나 '누의님'에서 변한 '누님'은 '女兄弟'나 '女弟'의 의미로는 쓰이지 않고 '女兄'의 의미로만 쓰인다. 어느 시기인지는 모르지만 의미 축소가 일어난 것이다. 20세기 초 사전인 예문 (2)ㄱ, ㄴ을 참고하면 '누나'가 1920년대 초에 의미 축소를 경험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그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누나'나 '누님'이 지니는 총칭적 의미 '女兄弟'는 개별적 의미 '女兄'과 '女弟'에 분산, 흡수되어 먼저 사라지고 '女弟'의 의미는 아랫사람에 대한 예법이 퇴색하여 호칭어가 쓰이지 않게 되면서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女弟'의 자리는 '이름'이 대신하고 있다. 한편 '누이'는 '女兄弟'나 '女兄', '女弟'의 의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상기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①'누나'는 근대국어 이후에 조어된 단어로 추정된다. '누니'에 호격의 '아'가 결합된 '누니아'가 축약된 형태로 간주된다.
②'누나'의 본래 의미는 '女兄弟'이며, '女兄'과 '女弟'의 의미도 갖는다. 그런데 지금은 의미가 축소되어 '女兄'의 의미만 보인다.
③'女弟'의 의미가 20세기 초반의 문헌에서 확인되므로 의미 축소는 20세기 이후에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B. 언니
‘형’의 의미로 ‘언니’ '형'의 원어는 '兄'으로, 고유어가 아닙니다. '형'을 나타내는 옛말로는 현대 국어의 '언니', '맏'에 해당하는 말이 쓰였을 것이라고 논의된 바가 있기도 합니다. 다만 ‘21세기 세종계획’ 누리집에서는 아래와 같이 ‘언니’의 어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언니’의 어원
‘언니’는 20세기에 들어서서야 나타난다. ‘언니’의 어원을 ‘앋/앗, 엇’에 접미사 ‘-니’가 결합하여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이 때 ‘앋/앗, 엇’은 ‘처음’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앋니, 앗니, 엇니’는 ‘초생자(初生子)’의 의미를 갖는다. 이것이 손위 여자형제나 손위 여자를 이르는 말로 변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견해의 문제점은 전 세기에 걸쳐 ‘앋니, 앗니, 엇니’가 전혀 문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헌 자료의 제약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설득력이 없다. ‘언니’가 20세기 문헌에서만 보인다는 것은 그 이전 시기에는 ‘언니’라는 어형이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도 있다. ‘언니’에 해당하는 ‘姉’가 일관성 있게 ‘누이’ 로 번역되고 있는 것도 이를 밑받침한다.
“姉 누의오 妹 아누의라<1459월인석,21,162a>, 姉 누의 , 妹 아누의 <1527훈몽자,상,16b>, 姉妹 누의들, 姐姐 누의, 妹子 아누의<1778방언유,신부방언,13a>, 姉 맛누의 자, 妹 아누의 <1916통학경,5b>” 등. 전 세기에 걸쳐 ‘姉’는 ‘맏누의’로, ‘妹’는 ‘아우누의, 아래누의’로 나타난다. 그런데 20세기 자료에 ‘姉’를 ‘웃누의’로 훈을 붙인 것이 보인다(姉 웃누의 자<1913부별천,6b>). ‘웃누의’가 음운변화를 겪어 ‘언니’로 변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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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하자면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를 놓고볼때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추노에서 손위 남성을 대상으로 언니라는 표현이 쓰인것은 부적절하다게 사실입니다.
물론 사극을 통틀어 언니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은 20세기 이전의 시대상을 기준으로는 남녀를 불문하고 전부 문제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