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간은 제가 무슨 말만 하면 시시비비를 따지며 제 잘못도 있다며 똑똑한 척을 했습니다. 근데 이게 사실 따지고 보면 제 잘못이 크진 않은데... 맨날 "너도 ~한 잘못이 있으니까 그 부분은 반성해야지." 이럽니다.
예를 들어, 버스에서 할머니가 내 머리를 보고 왜 날라리 같이 염색했냐고 뭐라 그런다. 그런데 할머니가 계속 욕설을 해서 화가 나 나도 그만 하시라고 따졌다. 이런 이야기에서요.
대부분 사람들은 "헐 뭐야ㅡㅡ 짜증;;"이러고 넘어가요. 근데 꼭 남친은 거기서 "어른한테 왜 따져~"합니다. 알바 얘기 할때도 꼭 "그 손님은 ~해서 그랬나보지" 합니다. 제가 손님 사정 몰라서 하소연하겠어요? 손님 다 이해하는데 그래도 짜증은 나니까 한숨 푹푹 나오는거죠.
결국 제가 빡쳐서 "아니 내가 화를 내면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면 안돼?! 내가 지금 잘잘못을 몰라서 너한테 물어보는게 아니잖아!!!"하고 화를 내면 후려치기가 시작됩니다.
"후... 여자는 무조건 공감만 바라지만 남자는 이성적인 해결을 원한다고. 남녀의 화법 차이야. 공감을 원했다면 나 말고 친구든한테 말해야지."
...? 그러면서 은근 이성적인게 좋고 감성적인 건 까는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왜 이성은 좋고 감성은 나쁜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이게 좋고 나쁨을 가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남친이 더 이성적이라는 부분도 납득이 안 갔어요. 늘 어린애처럼 구는 건 남친인데? 맨날 게임만 할라 그러고 해야할 일 하라고 하면 짜증내고. 시험기간에 공부 미뤄놓고 전날에 닥쳐서 애먼 나한테 짜증내고. 부모님 생각이라곤 코빼기도 안하고 속 썩이면서 술먹고 자기 부모 불쌍하다고 울고.
웃긴건 저는 매번 남친 하소연에 열심히 남친 편이 되어 줬습니다. 그랬구나!!! 저런!!!!!!!! 걔가 너무했네!!!!!!!!!!!! 명백히 남친이 잘못한 경우에는 아아~ 응~ 이라도 했고 나중에 진정되면 조금씩 타일렀죠. (동갑 남친을 타일러야만 대화가 된다는게 개탄스럽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턴 남친이 하소연 할때마다 똑같이 시비 따지는걸로 복수해줬어요. 훈수 두는 듯한 말투로 "이성적으로 생각해봐~ 거기서 너도 어느 정도 잘못이 있는거야~" 한 세 번 그랬나? 남친이 제가 변했다고 합니다. 자기를 귀찮아 하고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고...
역지사지가 안되는 남친. 저는 그 때 얘가 사회성이 심각하게 덜 발달했구나. 대화의 방법을 모르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하지만 며칠 뒤 남친의 동아리 모임에 따라가서 알게되었습니다. 남친은 내가 귀찮아서 그랬단 것을요. 선후배나 친구들이 여러 고생담을 늘어 놓자 "저런~ 어휴 어쩜 그러냐~"제가 남친에게 해줬던 그대로 막 맞장구를 쳐 주는 겁니다. 심지어 다른 여사친이 무려 네일아트 얘길 하는데도 막 공감을;;
남친은 맞장구 칠 줄을 몰라서 그랬던게 아니었어요. 나한테 맞춰주기 싫었을 뿐... 생각해보면 남자는 이성적이라 해결만 하고 공감 안한단 말은 완전 뻥이었어요. 제 5살 조카도 자기 형이 학교 친구 뒷담까면 진지하게 공감하고 달래주는데;; 저는 동아리원들보다 덜 중요한 존재였나봐요.
그 날 크게 싸우고 차였어요. 끝까지 나를 가르치려 들던 그 녀석... 이틀 뒤 네일아트 여사친이랑 사귀던 녀석... 그 녀석이 방금 카톡으로 저만큼 이해심 많은 여자는 없는 것 같다며 밥먹자더군요. 1년만에요. 읽씹하고 차단했어요.
연게 여러분. 그녀/그가 성별을 가지고 유세를 부린다면 단호히 약 팔지 말라고 하세요. 제 경험 상 남녀가 다른 부분은 생식기 모양이랑 생리 하는거 밖에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