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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든든한 식사
게시물ID : panic_901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굶주린상상력
추천 : 27
조회수 : 3240회
댓글수 : 17개
등록시간 : 2016/08/20 19:5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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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식사
 
 
“세계 각지의 주요인사가 원인불명의 폭발사고로 사망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이 폭발사고에는 국제연합에서 조직한 조사단이 원인규명을 위한 조사를 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테러에 의한 공격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나오고 있지만 폭발현장에서는 그 어떤 폭탄의 잔여물도 발견된 바 없습니다. 최근 국제조사단의 발표에 따르면…….”
 
 
우울한 소식. 차라리 시끌벅절한 광고가 낫겠다.
 
 
“영양만점! 간편한 식사! 하루 한 알로 모든 식사를 해결하는 ‘든든’!”
 
 
신경을 긁는 시끄러운 알람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것은 언제나 고역이다. 세면대에 얼굴을 씻으며 거울을 바라보니 남자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다.
 
 
“출근하기 전, ‘든든’ 한 알이면 하루 종일 뱃속이 든든. 바쁜 현대인의 필수품 ‘든든’.”
 
오늘은 기온이 30도가 넘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구태의연한 꼰대들이 좌지우지하는 남자의 회사에는 언제나 정장을 입고 출근해야 한다. 또 얼마나 땀을 빼야 할까?
 
 
“당신에게 필요한 영양소만 제공. 불필요한 지방질은 날려 버립니다.”
 
 
남자는 TV에서 미친 듯이 선전하고 있는 ‘든든’ 하나를 꺼내들었다. 든든은 남자가 다니는 회사에서 만드는 대체식품이다. 어릴 적 공상과학 만화에서나 나오던 물건, 한 개의 알약으로 식사를 대체할 수 있다는 물건이 진짜 개발되어 상품으로 나왔다.
 
 
“‘든든’과 함께 한 달이면 당신도 몸짱! 에스라인과 식스팩을 만들어 보세요.”
 
 
탁구공만한 든든 하나를 비스켓처럼 씹어 먹으면, 하루 필요한 열량과 칼로리를 제공받고 신경의 자극을 부분적으로 완화 시켜서 공복감도 없애준다. 만연한 영양 불균형도 완전히 해소하여 영양실조 환자에게 탁월한 효과 보이고, 영양과잉인 비만환자의 다이어트에도 눈에 띄는 효과를 보여준다. 치아로 느끼는 식감과 혀로 느끼는 미각을 위해, 스테이크맛 든든, 과일맛 든든 등 다채로운 상품을 개발하여 배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따위 물건을 누가 사먹을까? 당신이라면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고 즐길 수 있는 포만감을 간단히 포기 할 수 있는가? 당연히 든든의 발매 초창기에는 판매량이 형편없었다. 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한 영세민들의 구호 물품으로 팔려 나가거나 다이어트 식품으로 소모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이 든든의 유통을 국가에서 관장하고, 반 강제적인 소비를 부추기자 그 위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주 3회, 든든 의무섭취.”
 
 
물론 이 사항은 권고사항일 뿐 법적인 강제사항은 아니다. 그래도 이 말도 안되는 권유가 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나라가 군사독제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다지 평화롭지 못했던 나라에서 군장성이 주도한 쿠테타가 벌어졌고, 이후 들어선 군사정권은 강성민족의 성장을 주장하며 국민들에게 든든을 복
용하는 것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많은 민주투사 들이 나타나고 사라졌다. 먹을 것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선택에 강제를 가하는 것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반발하고 저항했다. 거의 모든 대학과 단체가 시국선언을 하고,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광장에는 촛불들이 집결했다. 보통 이런 행동을 보이는 국민에게 군사정권이 보여주는 반응은 물대포와 최루탄이다. 하지만 이 군사정권의 기가 막힌 참모장은 국민들이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당근을 휘둘러 수천만명의 국민이 고작 3년 만에 거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든든 장기복용자, 대학 특례입학제도 신설.’
‘든든 장기복용자, 국가고시 가산점 부여.’
‘든든 장기복용부부, 임신출산육아휴직 확대.’
 
 
입시와 취업과 육아에 던져진 이 떡밥을, 사람들은 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수험생과 취업준비생과 신혼부부들이 든든을 먹기 시작했고, 곧 든든의 뛰어난 효과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든든을 주기적으로 3개월이상 장기 복용한 사람들은 체지방이 크게 줄고 근육량이 늘어 거의 대부분 날씬하고 탄탄한 몸매를 가지게 되었다. 더구나 피부트러블도 완전히 해소되고 머릿결마저 좋아져 모두가 반짝거리는 미소를 자랑한다. 젊은 사람들이 급속도로 든든에 빠져드는 것을 마땅치 않게 여기던 중장년과 노인들에게, 든든이 정력증강과 회춘에 도움이 된다는 소문이 돌자 드디어 모든 국민들이 든든을 찬양하기 이르렀다.
 
 
오랜지맛 든든을 씹어먹은 남자는 서둘러 출근준비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등교하는 학생들과 출근하는 사람들 중 든든을 들고 있는 사람 한 두명이 보이는 것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남자는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 든든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든든 말이야. 다 좋은 데, 몸을 너무 단단하게 만들지 않니?”
“지방이 없어지고 근육이 늘어나니까. 그런 거지.”
“그게 정도가 심한 거 같기도 하고, 나봐. 겉으로 보기에는 날씬해 보이는데. 체중은 엄청 나가. 넌 몇 키로냐?”
“근육이 지방보다 무거우니까 당연한 거 아냐?”
“그래도 이상하기는 해. 내가 봐도 나는 군살이 전혀 없는데 몸무게는 57kg이야. 내 체형의 평균 체중보다 10kg나 무겁다고.”
“든든으로 키운 근육은 밀도도 훨씬 높다고 하잖아. 몸매도 날씬하고 근력도 좋아지면 좋은 거 아냐?”
“그래도 좀 이상하잖아.”
 
 
남자는 피식웃었다. 여자들은 균형잡힌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아마 원래저런 몸매를 가진 여자라면 체중이 45kg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 여자들의 체중은 60kg을 육박한다. 든든을 먹은 사람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체형에 비해 체중이 더 나간다. 정부에서는 근육과 뼈의 밀도가 높아져서 그렇다고 얼버무리고 있지만, 남자는 그 진짜 이유를 알고 있었다. 든든의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 체 10명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왜 체형에 비해 체중이 늘어난 것일까? 그것은 든든을 먹으면 몸안에 조금씩 쌓이는 특수물질 때문이다. 남자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 특수물질을 개발 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연구소로 출근하자 대통령궁에서 남자를 부르는 차량이 와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정기보고 날이었다. 남자는 서둘러 보고자료를 챙기고 차에 올랐다.
 
 
“세계적으로 그러슘 충전율은 이미 10%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개체간의 차이가 커서 아직 작동가능한 사람은 그중 40% 정도이지만 군사적인 운용은 당장 가능한 수준입니다.”
 
 
든든을 먹은 사람들이 체중이 무거운 이유는 몸속에 남자가 개발한 그러슘이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슘은 중금속이다. 먹든, 마시든, 주사 하든 인체에는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는다. 다만 특정 주파수와 접하게 되면 1초에 2,500m 떨어진 곳에 충격을 줄 정도의 속도로 팽창한다. 다시 말하면 고성능의 폭탄인 것이다.
이 나라에는 벌써 2천만명 이상의 살아있는 폭탄이 거리를 걷고 있다. 든든을 3년 이상 장기 복용한 사람의 폭발력은 다이너마이트 10개분의 위력을 상회한다. 남자는 그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 든든을 먹고 있다. 먹지 않으면 어쩔 건가? 이런식으로 충성심을 보이지 않았으면 남자는 진작에 행방불명자로 사라졌을 것이다. 지금 남자는 한쪽 팔만 터트려도 반경 20m를 초토화 시킬 수 있는 폭탄이 되어있다.
 
 
“해외로 파견되는 돌진대의 활약은 주목할만 합니다. 본국의 정치사항에 대한 비판여론을 선동하는 매체의 대표와 적국의 경제발전을 주도하는 기업의 대표 등은 확실히 처리되고 있지만 아직 어느 곳에서도 돌진대의 활약이 인위적인 공격이라는 것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돌진대란, 아무것도 모르고, 국가에 의해 외국으로 파견되어, 그저 희망찬 내일을 꿈꾸며 매일을 열심히 살던 청년들이다. 그들은 국가가 지원하는 해외파견에 자신들이 엘리트의 반열에 들어섰다고 기뻐하며 조금의 의심도 없이 비행기에 몸을 실은 희생양들이었다. 목표물의 주변에 잘 배치했다가 필요한 순간 개인주파수를 방출하면 그만이다.
이제 든든은 전 세계적으로 수출되고 있고, 이 나라의 독재자는 든든을 수입하는 모든 지역에 불기둥을 솟아오르게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남자의 프리핑을 받고 있는 독재자는 2억 8천만명의 사람들을 단번에 날려 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남자가 보고를 마치자 독재자는 만족스런 미소와 함께 남자를 치하했다.
 
 
“훌륭해! 아주 좋아. 이제 곧 세계를 재패할 날도 멀지 않았군. 그러슘의 충전율이 50%를 넘었을 때. 전세계이 이 사실을 알리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네. 그러면 이제 자네가 이 프로젝트에서 할 일은 마무리 된 셈이로군. 이제 국가의 지원을 듬뿍 받으며 호화로운 은퇴생활만 즐기면 되는 건가? 부러운 노릇일세. 하하하!”
 
 
이 돼지가 개소리를 하고 있다. 남자는 바보가 아니었다. 이것은 남자를 향한 사형선고다. 이제 쓸모는 없지만,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남자의 앞날이 어찌될까? 남자는 가볍게 어금니를 사려 물었다. 왼쪽 어깨가 아프다.
 
 
“그러면 말일세. 이대로 OO기업의 회장을 만나서 우리의 프로젝트를 브리핑 해주게. 그 친구가 조금 반항적이기는 한데, 우리의 업적을 알게 되면 고분고분해 질 걸세. 자네에게 주어지는 국가의 마지막 부탁이니 최선을 다해주게.”
 
 
뻔했다. 말 안듣는 기업의 수장을, 팽(烹)당할 토끼와 함께 날려버릴 셈이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거부할까? 달아날까? 방법이 없었다. 남자는 기운 빠진 모습으로 관용차에 실려 OO기업으로 향했다. 그러나 남자는 가벼운 미소를 끝까지 잃지는 았았다. 특히, 심한 통증이 느껴지는 왼쪽 어깨를 매만질 때는 그 미소가 더욱 진해 졌다.
 
 
집무실에서의 독재자는 전화 통화 중이었다.
 
 
“그래, 지금 만나서 브리핑 중인가? 좋아 그럼 당장 주파수를 쏴서 그놈을 그 병신과 함께 날려 버려. 건방진 놈 대통령이 재산을 바치라면 바치는 거지 어디서 장사꾼 주제에 건방지게 반항이야. 그래, 주파수를 쏘았나? 언제 폭발하나? 30초 후? 알았네. 결과 보고를 기다리도록 하지.”
 
 
독재자는 비웃음과 함께 의자에 앉았다. 이제 그 건방진 기업의 총수와 일가는 싹 날아갈 것이다. 그러면 상속인이 없는 그놈의 재산은 국고에 귀속, 혹시 상속을 주장하는 놈이 나타난다 해도 날려 버리면 그만이다.
만족스럽게 팔다리를 벌리며 기지개를 켜는 독제자의 발에 무언가가 걸렸다.
 
 
‘뭐지?’
 
 
책상아래 숨겨진 물건을 꺼내보니 그것은 누군가의 잘려진 왼팔이었다. 피도 흐르지 않고 차갑게 식은 것이 절단된 지 이미 며칠 지난 듯 싶었다.
 
 
그 흉측한 물건에 독재자가 놀라기도 전에, 그 팔은 엄청난 빛과 열과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출처 http://www.jooc.kr/contest/note.detail.html?nn=1003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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