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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이야기
게시물ID : humorstory_4464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성성2
추천 : 25
조회수 : 4497회
댓글수 : 16개
등록시간 : 2016/08/19 18: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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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삼삼이를 어린이집에 모셔다드린 뒤 항상 그러하듯 자연스럽게 소파와 혼연일체의 자세로 누워 채널 CGB와 OCM 등 영화 채널을 돌려 봐도
딱히 볼만한 게 없었다. 선풍기 바람이나 세게 할 생각으로 잠시 일어섰을 때 소파의 내 궁둥이가 항상 닿는 부분이 유독 푹 꺼져 있는 것을 봤다.
분명 내가 백수가 되기 전에는 탱탱함을 유지하던 소파였는데 백수가 되면서 나와 소파의 체형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백수 생활을 청산할 때가 왔다!"
 
와이프에게는 추석까지 나의 시간을 가진다고 했지만, 이제는 다시 가장으로 귀환할 시간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여기 놀고 있는 전문 인력이 있어요! 라고 선배들에게 전화를 넣어야 하나 아니면 제갈량의 출사표와 같은 이력서를 작성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래.. 일단 설거지부터 하자.."
 
설거지를 하고 돌아와 다시 소파에 누워 어떤 구직활동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우아한 자태로 잠들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삼삼이를 다시 어린이집에서 데려올 시간을 알리는 알림이 울렸다. 여전히 나를 보고 반기는 아들을 데리고 오며 물어봤다.
 
"삼삼아 아빠 일을 해야 할 거 같은데 뭐부터 할까?"
 
"아이스크림 먹자!!"
 
그래.. 일단 아이스크림 먹자.. 금강산도 식후경 고민에는 역시 달콤한 비비빅이지..
 
시간이 흘러 저녁, 와이프가 퇴근하고 일상적인 생활(저녁 식사, 아이와 놀고 재우기)을 마친 뒤 진지하게 물어봤다.
 
"아무래도 내가 이제 다시 일해야 할 시기가 온 거 같아."
 
"와! 오빠 백수 되고 나서 가장 기특한 말을 하네! 내가 얼마나 이 말을 기다렸는지 알아?"
 
이 여자.. 나한테는 푹 쉬어라.. 쉬는 동안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 (단 바람 피면 전신에 구멍을 뚫어 바람이 솔솔 나오게 해주겠다고 협박을..)
라는 말은 역시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오빠 이력서, 자기소개서도 업데이트하고 머리도 좀 다듬어야지.."
 
"이력서? 그런 거 제대로 써 본 적이 없는데.."
 
생각해보니 그동안 학연으로 취직하고 인맥으로 이직했던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였다. 학연 지연 혈연이 없어져야 한다 강조했던 내가
이런 사회의 암적인 존재였다니..
 
와이프는 내게 선배들에게 연락하기 전에 먼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부터 작성하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인생의 첫 제대로 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양식의 이력서를 작성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자격증 항목의 한 줄을 채워준 운전면허증에 처음으로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조용히 토익 항목은 삭제했다.
 
문제는 자기 소개서 였다. 내 "자기" 인 와이프 소개서는 멋지게 쓸 자신이 있는데, 막상 나 자신에 대한 글을 쓰려니 시작부터 막혔다.
결국 인터넷에서 자기소개서를 검색해 봤다. 구체적으로 작성해라, 간결한 문장을 사용해라, 팩트에 기반을 둔 글을 써라.... 등의
조언과 샘플 몇 개를 읽으면서 내가 대학 다닐 때 기억나는 자기소개서 첫 문장은 "인자하신 아버지와 현명하신 어머니 슬하에서.." 였는데
격세지감을 느꼈다. 그래도 다행히 내가 신입은 아니어서 경력자는 경력 중심으로 기술하라는 말에 자신을 얻어 글을 써 나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저녁 와이프가 도착해 회초리만 들고 있지 않지 마치 아이의 숙제 검사하는 어머니처럼 내게 "어디 온종일 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가져와 봐.." 라고 지시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노트북 전원을 켜고 와이프에게 보여줬다.
 
먼저 이력서를 살펴본 와이프는 내게 대뜸
 
"오빠 이 사진 몇 살 때야?"
 
"이때가 아마 29살인가 30살일걸.."
 
"이때는 그래도 좀 많았네.."
 
"뭐가?"
 
"뭐긴 머리숱이지.. 그런데 10년도 더 된 사진을 써도 되나 모르겠다. 면접관들이 보고 성성씨는 어디 가고 아버지가 오셨어요?
이럴 수도 있잖아?"
 
내가 와이프보다 힘만 세다면.. 이 여자 간절하게 한 대만 때리고 싶었다.
 
"뭐.. 남들은 이력서 사진 포토샵도 한다는데 이 정도는 봐주겠지. 그리고 저 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잖아..."
 
와이프는 "별 차이? 심각한 차이가 있다! 이 대머리야.." 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래도 나름 글로 먹고사는 직업이었으니 자기소개서는 잘 썼겠지 하며 보는 순간....
글을 읽는 와이프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 읽지도 않은 상태에서 내게 말했다.
 
"오빠 이게 자기소개서라고 쓴 거야? 아니면 10년 치 업무일지를 한 번에 쓴 거야?"
 
"아.. 내가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구체적이고, 간결하게 그리고 팩트만 쓰라고 했어. 우리 때는 문장으로 서술하는 거였는데 요즘 트렌드는
바뀌었나 봐! 왜? 구체적이잖아.."
 
"그래서 택배 포장 한 것도 썼냐? 이 인간아!! 당장 다시 써!!"
 
그날.. 난 받아쓰기 10점 받아온 뒤 엄마 옆에서 무릎 꿇고 받아쓰기 연습하던 9살 시절로 돌아가 와이프 옆에서 무릎 꿇고 자기 소개서를
작성했다. 뭐.. 별 차이 없는데.. 왜 뭐라고 하는건지..
모르겠다 취직이나 되길..
 
출처 과연.. 날 받아줄 회사가 있을까..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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