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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내가 살인자라고?
게시물ID : panic_900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굶주린상상력
추천 : 46
조회수 : 3461회
댓글수 : 25개
등록시간 : 2016/08/17 08:2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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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인자라고?

 

 

나는 친절한 사람입니다. 어릴 때부터 곤란한 처지의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제가 친절을 베풀었을 때 기뻐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좋습니다. 그 사람들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 여자아이였습니다. 공부도 못하는 편은 아니었고,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는 왕따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왕따라고 해봐야 만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물을 끼얹거나, 신발을 감추거나, 교과서를 찢거나 하는 물리적인 폭행은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똑같이 이야기하고 점심급식 같이 먹고, 장난치고 놀았지만 방과 후 패거리들이 가는 비밀아지트에는 데리고 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지트를 발견할 당시 마침 함께 있던 아이들이, 이곳은 비밀 아지트이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알리면 안된다는, 어린아이의 약속을 하고 다른 친구들에게는 알리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우리들에게 비밀 아지트가 있다는 것은 알게 되었고, 함께 가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처음 약속을 굳게 지키며, 비밀아지트에 관해서는 완강하게 그 친구를 따돌렸습니다. 비밀 아지트라고 해봐야 망해서 문을 닫은 공장의 사무실이었습니다만, 사장이 야반도주한 듯 집기들이 거의 그대로 있었고, 심지어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도 두 대나 있는 공간이어서 초등학생들에게는 최고의 놀이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그곳을 아지트로 삼은 지 열흘도 지나지 않아 모든 집기와 컴퓨터는 사라졌습니다. 아마도 채권단이 처분한 것이겠지요. 당연히 우리들의 발걸음도 끊어진 을씨년스러운 공간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런데 비밀아지트에 관해 따돌림을 당하던 그 친구가, 저에게 아지트의 위치를 알려 달라고 졸랐습니다. 이미 우리들은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이었지만 그 친구 에게는, 아지트에 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일이었나 봅니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의 맹세를 깨고 아지트의 위치와, 사무실 열쇠가 숨겨져 있는 위치까지 다 알려 주고 말았습니다.

 

고마워.”

 

너무나도 밝게 웃던 그 친구의 미소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 미소를 보는 나는 너무나 뿌듯했습니다. 바로 그날 혼자 아지트를 찾아간 그 친구는 공장에 숨어 살던 노숙자에게 강간당하고 살해되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 근처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던 할머니였습니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는 팔지 않는 아폴로나 쫀드기 등의 주전부리를 종류별로 거의 모든 품목을 팔고 있어서 학생들에게 은근히 인기가 많은 가게였습니다. 두 평 남짓하여 거의 길거리 좌판이나 다름없는 규모의 그 가게에 통학시간에는 항상 학생들로 붐비곤 했습니다.

그 평화스러운 공간에 이상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TV나 영화에서 보던 깡패들이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모습이 종종 보이곤 했습니다. 아이들은 그 구멍가게와 할머니에 관해서 이상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재개발이라던가 알박기라는 말을 했는데 당시의 저는 그런 일들에 너무 무지해서, 구멍가게 할머니가 개발을 방해하는 무언가 나쁜 일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마저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제가 주번이었습니다. 자신의 일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는 다른 주번들 보다 무려 30분이나 일찍 등교 하곤 했습니다. 학교로 가는 중 구멍가게 할머니가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섯 걸음 걷고 한번 쉬고, 세 걸음 걷고 한번 쉬고 하는 모양을 모니 보따리가 상당히 무거운 것이었나 봅니다. 저는 망설임도 없이 할머니에게 다가가 짐을 들어 들이겠다고 했습니다. 사양하는 할머니의 짐을 빼앗다시피 들었는데 남자인 제 손에도 묵직함이 한껏 느껴지는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힘겹게 할머니의 가게까지 짐을 옮겨 드리자 할머니가 웃으며 과자 몇 봉지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이때 받은 과자의 맛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고마워. 할미 혼자 저걸 들고 왔으면 아직 반도 못 왔을 텐데, 학생 덕분에 다른 때보다 훨씬 일찍 왔네. 고마워.”

 

할머니의 선물을 받고 다시 학교를 향해 걸어가는 데 등 뒤에서 큰소리가 들렸습니다. 내리막길에 주차된 트럭 중 한 대의 브레이크가 풀려, 아래로 질주 하다가 할머니 가게를 덮친 것이었습니다. 사고를 구경하는 사람들 중 깡패처럼 생긴 아저씨가 뭐야! 왜 저 할망구가 벌써 여기 와있어라며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크게 다친 할머니는 병원으로 실려가 일주일간 고생하다가 죽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인도의 어린 남자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였습니다. 당시의 저는 여름방학 중 배낭여행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3이 팔자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말하기 쑥스럽지만 저는 공부를 아주 잘하는 편이었습니다. 수능 모의고사에서 3회 이상 상위 1%를 받아내어 부모님께 하사 받은 특전이었습니다. 여행지는 예전부터 꿈꾸던 인도였습니다. 여행에 대한 부푼 기대는 인도에 도착하고 고작 하루 만에 깨졌습니다. 침대도 없는 숙소에서 비닐과 침낭을 깔고 자야 했고, 4시간이나 연착한 열차를 새벽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인도사람들은 아무 곳에서나 참 잘도 누워서 자더군요. 그렇게 바라나시 역을 출발 했습니다. KTX로 두 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이건만, 도착지인 아그라 역까지는 14시간이 걸린다고 하더군요. 중간에 몇 번이나 역에 정차하고, 한번 정차하면 최소 30분은 대기를 하니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 어느 역에 정차 했을 때였습니다. 너무 오래 침대칸에 누워있어 찌뿌듯한 몸을 잠시 풀어주려 플랫폼으로 내려와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역사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동안 갈고 닦은 영어실력을 발휘하여,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와 실랑이 하는 소리를 조심스럽게 들어보니 어떤 모자가 무임승차를 하다가 들킨 모양입니다. 강제로 모자를 끌어내리는 차장에게 엄마는 처음에는 큰소리를 지르다가 나중에는 애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듣고 보니 멀리 일하러 나간 남편이 크게 다쳤는데, 그 소식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돈도 기차표도 준비 못하고 무작정 기차를 탔다는 사연이었습니다. 하지만 차장은 막무가내로 모자를 기차에서 끌어내렸습니다. , 원칙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왜 그랬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가 그 모자의 운임을 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차장은 기차가 손님이 꽉 차서 더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기차표를 불쑥 차장에게 내밀었고, 그 모자를 제 자리에서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धन्यवाद.”

 

고맙다고 하는 말 같은데 힌디어라서 알아듣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발음은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머리를 숙이며 기차를 타고 가는 모자를 보내고 저는 다음 기차를 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목적지인 아그라 역으로 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되돌아 와야 했습니다. 모자가 타고 간 그 기차가 엄청난 사고에 말려들어 탈선하고 전복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모자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저는 대학교 2학년입니다. 여전히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탁받은 일은 거절하지 못하고 항상 웃으며 해결해 드리고, 때로는 부탁받지도 않은 일을 자청해서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친구들은 너무 호인 노릇하는 것도 좋지 않다는 둥 호인이 아니라 호구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날 거라는 둥 질책과 걱정을 해주고 있지만 이 친절은 쉽게 멈추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 대학 주변 원룸에서 자취를 하고 있습니다. 촌놈이 서울로 유학을 왔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엄마가 해주던 식사준비와 세탁, 청소를 직접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 한동안은 힘들었지만 곧 적응 했고, 새로운 친구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옆방 여학생은 상당한 미인이었습니다. 가끔 찾아오는 남자친구도 상당한 훈남입니다. 글자 그대로 선남선녀인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저도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상당한 샌님이었던 저는 아직 여자친구를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옆방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여자에 미인이기까지 한 그녀에게 거의 말을 걸지 못했습니다. 가끔 복도에서 만날 때 눈인사를 하는 정도입니다.

어느 날 그녀가 받아야 할 택배를 제가 받게 되었습니다. 조립식의자 인 듯 싶었습니다. 평상시처럼 괜한 오지랖이 발동한 저는 그녀의 허락도 받지 않고 멋대로 의자를 조립해 버렸습니다. 마음대로 택배를 열어봐서 그녀가 불쾌해하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그녀는 오히려 미안해하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어머, 고마워요. 그렇지 않아도 남친이 오기 전에 어떻게 조립을 할까 걱정했는데, 정말 고맙네요.”

 

제가 의자를 전해 줄 때 나시티를 입고 있던 그녀가 브래지어를 하고 있지 않아, 옷 위로 볼록 솟아나온 유두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합니다. 다음날 여자는 그 의자를 발판으로 삼아 목을 매고 자살 했습니다. 임신했지만 남자가 도망가 버린 것이 이유인 듯 했습니다.

 

 

제가 친절을 베푸는 이유는 따로 없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친구가 내가 아끼던 지우개를 부러뜨린 일과는 관계없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구멍가게 할머니가 거스름돈 200원을 덜 준적이 있다는 것과도 관계없습니다. 인도에서 엄마가 데리고 있던 어린아이가 제 발을 밟고 지나갔던 일과도 관계없습니다. 제 옆방 여자가 쓰레기봉투를 아무 곳에나 버려 악취를 풍기던 일과도 관계없습니다.

최근 윗집에 사는 남자의 층간소음이 너무 짜증납니다. 최대한 빨리 가서 친절을 베풀어야겠습니다.

출처 http://www.jooc.kr/contest/note.detail.html?nn=1003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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