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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노행장
게시물ID : readers_260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스파게티조아
추천 : 6
조회수 : 77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8/15 21: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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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채 씨 노인이 누구인가. 나는 잘 모른다. 끽해야 넉 달 남짓을 일 때만 보아온 이다. 내 사람이 야박해 오간 말도 적다. 그의 일을 남겨줄 의리가 없는 것이다. 이미 말이니 글이니 하는 것들이 얼마나 헛되던가. 듣는 이 없을 때는 더욱 그렇다. 나도 노인도 아는 바다.
 그러나 나도 일단 살로는 삼아진 놈이라. 지푸라기로 뭉친 정에나마 맞으면 움찔하는 것이다. 그 놈의 정... 말은 생각에 멀고 글은 말에 멀다지만, 서러운 신세들이 뒷길에 남길 것도 어쨌거나 그 정도 밖에는 없는 것이다. 채노는 재주도 생각도 짧은 위인이었기로, 스스로 저의 글을 남길 깜냥은 없었다. 진작 낯이라도 잘 찍어 영정을 삼았으면 좋으련만, 그마저도 해 놓지 아니하였다.

 그런 전차로 내 여기 이런 글을 남긴다.


1.

 지난 가을이었다. 마침내 아버지의 세 번째 사업이 흩어졌다. 겨울 날 돈이라도 벌어야지, 이래저래 막일도 전전하다 머문 게 드라마 보조출연이었다.
 방송 일이라지만 일하는 시간 대부분은 앉아 기다리기만 했다. 무릎 갉을 일도 없이 책이든 공상이든 하고 있으니 딴에는 편한 일이다. 그럼에도 촬영장 들고 나는 열 중 아홉은 죄 하루살이들이다. 지리한 기다림과 얄팍한 일당에 쉬이 떨어져가는 것이다. 피로에 찌든 방송국 나리들께 죄스런 욕받이가 되는 것은 덤이다.
 문경 세트장에 이렇다 할 편의시설이 없어놓은 것도 고역이다. 더러운 화장실은 숨을 참으면 그만이지만, 마실 물 없는 것이 괴로웠다. 해서 다음 일때부터는 가방 한 켠 콜라를 대여섯 개씩 챙겼더랬다. 괜찮은 즐거움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으레 안 쓰는 초가 대청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그 날도 그랬다.

 “콜록, 콜록!”

 기침 소리에 옆을 보니 웬 늙은이가 성큼 앉아 온다. 시커먼 얼굴에 낡아빠진 금테 안경. 눈가가 구겼다 편 화선지 마냥 자글하다. 짙은 눈썹, 머리숱이 듬성하니 소갈머리가 번질하다. 새까만 쾌자며 밑에 바친 저고리는 품이 어지간히 남아놨다. 꼴랑 바람 한 점에도 소매랑 바짓단이 깃발처럼 펄럭이는 것이다. 노인은 ‘어험, 어험.’하고 헛기침을 했다. 나는 누운 채 고개만 세워 옆에 있던 콜라를 꼴깍했다.

 “에에이, 버릇없는 놈 같으니...”

 먼 데만 보며 노친네, 그렇게 나귀처럼 응앙질이었다. 그 모냥을 나는 빤히 바라만 보았다. 노인의 귀가 벌개진다.

 “하여튼 요즘 젊은 새끼들은 말이야...”

 이제는 허공에 삿대질을 하기로, 나는 눈가를 찌푸려 주었다.

 “뭐요?”
 “이놈이!”

 노인이 홱 돌아본다.

 “야, 이 새끼야! 너는 집에 애비 애미도 없냐? 조부모도 없어? 으른이 와서 앉았는데 드셔보십시오, 말이나 붙일 줄도 모르고 말야. 이이런, 호로자슥 같으니라구. 어디 배워처먹질 못한 새끼가 아주 버르장머리까지 없어놔서... 야, 야. 느이 부모는 아주 생각도 없이 붙어먹어서 너 같은 새낄 낳았나부다, 응? 오라질 새끼, 화냥년의 자식, 똥물에 튀겨죽일 놈 같으니라고, 아주...”
 “아이, 뭐라는 거야...”

 노친네 입에 걸레를 물었나. 하품이 나와서 하품을 했다. 노친네 까만 얼굴이 홍시로, 이내 썩은 감으로 돌아온다. 그 와중에 계속된 욕들이 제법 찰졌다. ‘내 팔자야, 아이구 내 팔자야.’ 하며 노친네가 자기 가슴을 칠 때 쯤에야 나는 가방에서 콜라 한 캔을 더 꺼냈다. 노인이 말을 멎었다.

 “흠, 흠. 그래, 이제...”

 톡, 캔을 따서 보란 듯이 내용물을 들이켰다. 늙은이의 얼굴이 재미있다. 새파란 가을 하늘에 맞잖게 불그레죽죽하다.

 “이놈이...”
 “이거?”

 마시던 콜라를 코 앞에 들이댄다. 노인은 흠흠 헛기침을 하고 눈을 휘어내더니, 마지못한 듯 두 손으로 캔을 감싸쥐었다.

 “자식이, 진즉에...  새끼들이 꼭 으른한테 한 마딜 듣구 나서야 예의범절을 차린단 말이야, 참...”

 도로 마루에 벌렁 누워버렸다. 후루룩 콜라 드는 소리가 영 성가시다. 그러면서 노친네, 중간중간을 저 혼자 마구 떠든다. 자기는 어디어디 모모공 파의 몇 세손되는 채 씨라는 둥, 에쿠소토라 일이 고되다는 등등의 이야기들. 제 멋에 입을 털게 나는 내버려 두었다. 굳이 상대하기도 귀찮다.
 그런데 그게 노인으로서는, 어쨌든 군말없이 제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오랜만였던 모양이다. 그 날 일만으로 대단한 면식이 있는 양, 그 후로도 ‘얌마, 왔냐.’ 하고 시비를 털어댔다. 아무래도 상관 없었으므로 나는 신경을 꺼 두었다. 종종은 한 두마디 핀잔을 주며 받아치기도 했지만, 그게 다였다. 어차피 일당 오 만원짜리 인생이다. 오고가며 부딪고 말아버리는, 그야말로 새털같은 면식이었던 것이다.



2.

 “야야, 요거 함 봐 봐라.”

 여느 때처럼 밥 먹고 대청에 앉았는 날이었다. 노인은 제 왼쪽 소매를 걷어 내 코 앞에 들이밀었다. 장작개비 같은 손목에 묵주며 염주, 은 십자가에 조그만 플라스틱 쪼가리에 넣은 부적때기까지가 헐겁게 댈룽거렸다. 평소 같으면 슥 한번 보고나 말을 걸, 마침 쀼루퉁한 기분에 나는 굳이 장단을 붙여버렸다.

 “쓸딱없는 짓거리, 참. 치우쇼, 응?”
 “얌마, 너 이게 뭔 줄이나 알어? 하나하나가 임마...”

 그러고는 자랑질이 한참이다. 육이오사변에 목숨줄을 붙여줬다느니, 교통사고로 마누라, 아들며느리 부부며 세 살 난 손주까지 다 죽었을 때도 자긴 살았남았다는 둥... 입 냄새가 지독해 나는 고갤 돌리고 있었다. 한참을 말이 안 멎기에 노인을 보고,

 “제 식구 다 죽었는데 사는 게 복이야? 나 같음 칼 물고 자빠져 죽고 말겠다.”

 하고 쏘아붙였다. 노인은 움찔움찔한 낯빛이 되어 원숭이처럼 구레나룻을 긁었다.

 “자아식이... 거, 말뽄새하고는.”

 햇볕이 처마를 피해 저 담벼락까지를 길게 들기에, 에라이 하고 누워 버렸다. 그제 가을비가 내렸다는데 오늘은 글쎄, 조각구름 한 티끌도 없다. 국밥집 대접에다 살뜰히 쪽이라두 칠해 엎은 듯 하늘은 마냥 파랗다.  ‘똑, 똑’하고 혀로 목탁을 친다. 바람이 실금 불어오는 게 목 뒤가 으스스하다.

 “너 아까, 그 최 팀장인지 최 씹창인지 하는 애가 소새끼 말새끼, 하는 말에 골 났나 보구나?”
 “아이, 왜 또 오지랖은 풍년이쇼.”
 “아서라, 그냥 두어. 그래 봤자 애는 애다. 여적 철 없어 그렇지.”
 “애? 나이 쉰 먹은 걸 애라고 하나?”
 “얌마. 내 낫살을 얼마나 먹어놨는데, 내 볼 땐 그 새끼나 너나 다 더벅머리지. 스물이든 오십이든 망둥이 같은 게 그냥 애인거라. 너두 임마, 잘 알아둬. 그 치 하듯이 으른한테까지 새끼새끼하는 놈들은 다 지옥 가게 돼 있어. 너 공자 알지? 공자 맹자 하는 유교 경전에두 다 나와 있단다. 장유유서, 어른 공경을 잘 해야 천당엘 가는 거야. 성경에도 나와 있고, 부처님 말씀도 그렇단다. 뭣보다두 부처님 말씀이 그 중에서도 끗발이 참 좋은 거거든. 또, 어릴 적부터 부모한테 꼭꼭 효도하고, 응? 조실부모, 사과나 배나 맛난 과실 뭐든 있으면 내 배 고파도 부모한테 먼저 깎어 바치고 하는 거, 그게 이치에두 들어맞는 거야. 다아 으른들 말씀이지, 이게. 알었냐?”
 “별 미친 개소리야. 콜라 먹다 사레 대신 노망이 들렸나?”
 “거, 새끼. 야, 너 그러다 진짜 지옥 간다니까?”
 “부처님이고, 예수님이고 이름만 다 갖다 붙이면 꼴리는 대로 기도질인가, 같잖게.”
 “버르장머리는 아주.. 에잉.”

 노인은 또 입술을 미웁게 삐죽인다.

 “요건 뭔데, 요거?”

 댈룽거리는 부적을 나는 버선발로 툭툭 쳤다.

 “아이, 자식이! 더러운 발로... 부정 타 임마!”
 “개뿔, 부적같지도 않은 걸 갖고 그래.”
 “새끼야, 이래뵈도 귀한 부적이야. 이게 아주 영험한 스님이 써 준 건데, 들고만 있어도 돈이 불개미처럼 몰려온다는 거라.”
 “다 늙어 거지 분장 해갖고 밥 타먹는 인간이 뭐 이제 와서 돈타령이쇼. 티끌만큼 벌어 놔두 다 쓰기 전에 향냄새 맡겠다.”
 “호로새끼, 아주 악담을 해라, 악담을 해. 쯧.”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하늘을 보고 똑, 똑 입천장을 찼다. 늙은 당나귀는 끝까지 구시렁이다.

 “두고봐라, 자식아. 아주 내가 말년에 돈 열매가 주렁주렁 열릴 테니까.”

 채노의 목소리가 마루 아래 모인 먼지들 사이로 흩어졌다. 때마침 상놈 거지 다 모이라며 최 팀장이 욕지거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괜히 흰소릴 들을까 나는 얼른 짚신을 신었다.


3.

 한 날은 촬영이 다 끝난 날이었다. 곧 서울로 출발할 줄로 믿고 나는 버스 안에서 잠이 들었댔다. 꿈결에 시동 거는 소리도 들었었는데 글쎄, 최 팀장이 느닷없이 우릴 밖으로 불러냈다. 억지로 바로 서 봐도 땅이 기우뚱하다. 고개를 흔들고, 마른 세수를 몇 번 한 후에야 밤하늘이 까매진다. 서늘한 별들이 가득 박혀 있다. 잠이 짙구나, 밤이 깊어. 나는 아직 비몽사몽이었다.

 “자, 잘들 들어. 일정이 변경되서 내일 아침 일찍 촬영이 있을 거야. 오늘 문경 시내서 자고, 일어나서 딱, 오전까지 찍고 그대로 끝낼 거거든? 일당은 풀일당으로 똑같이 오 만원. 찜질방서 자구 낼 아침도 줄 거니까, 일할 사람은 이쪽으로 와 남어. 자, 선착순 스무 명!”

 쭈뼛쭈뼛하며 너댓이 나선다. 촬영장 오가며 서너 번씩은 마주한 이들이었다. 다들 꾀죄죄했다.

 “아니, 씨발. 더 없어? 재워주고 먹여주고 돈까지 준다는데, 왜 안 나와? 더 없어? 오전만 일하고 일당 똑같이 받아가라니까? 나와! 안 나와?”

 다른 때만 같아도 일고여덟은 더 나왔을 테다. 그러나 오늘은 너무들 지쳐놨다. 겨울 초입이래두 산골 세트장이란 여간 춥지가 않은 법인데, 막 두 시간 여를 살수차가 뿌리는 여름 장마에 살다 온 참이다. 감독은 ‘조금만 참자, 한 번에 끝내자.’며 사실적으로 패잔병과 피난민이 될 것을 주문했다. 부러 그러지 않아도 이미 다들 그러했다.

 “없어? 진짜 없냐고? 아니, 존나 이해가 안 되네. 꽁돈 벌어 가라는데 왜 안 나와? 몰라, 인원 채워질 때까지 못 가! 연대책임이야. 그냥 서서 밤을 새든지, 사람 맞춰 나오든지 몰라, 나는!”

 최 팀장은 고어텍스 코트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불을 붙여 찹찹하고 빨았다. 파리하게 담배 연기가 흩어오른다. 반대로 사람들 정수리서 오르던 김은 하마 멎어갔다. 덜 마른 머리칼들이 식어가다, 이제는 얼 차례인 것이다. 아무도 말이 없다.

 “아니, 그래. 너 말마따나 평소 일당으로 퉁치면 어쩌나 몰라!”

 어깨를 짚는 목소리에 나는 옆을 돌아봤다. 채 노인이었다.

 “뭐?”
 “오돈차 운전수두 짐 실어놓구 하룻밤 세워 놓을라믄 그래, 대기료 얼마라두 더 찔러줘야 하는데 말이야, 참. 서울두 아니구 지방까지 와서는, 응? 막무가내로 남으라믄 누가 남느냐 말이지, 혹여나 얼마래두 더 얹으믄 더 남을지 어떨지 또 모르는 일인데, 그래.”

 나는 그의 손을 떼어내려 했으나 고 마른 손이 워낙에 단단하게 내 어깰 붙잡았다. 최 팀장은 ‘아이, 썅.’ 하고는 반도 못 태운 담배를 바닥에 던졌다. 불이 꽃처럼 피어났다. 그러고는 코트 안으로 손을 넣었다. 더듬는 게 제 젖꼭지의 두께는 아니겠지.

 “인당 만 원씩 더 쳐줄게. 됐어? 나와.”
 “한, 이삼 만원이면 모를까...”

 어느새 채노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 쥐는 허공에다 말을 걸고 별에다 짹짹대는데, 돼지는 어찌 그리 귀 밝은지 찰떡같이 다 알아듣는다.

 “아, 씨발! 이만 원, 됐지? 남을 사람 빨리 나와, 얼른!”

 비 멎은 땅에 죽순이 움죽거리듯 십여 명이 나섰다. 채 노인도 거기 있었다. 그래도 끝내 두세 명은 부족했다. 최 팀장이 담배를 한 대 새로 꺼냈다.

 “아, 빨리 나와! 돈 더 준다니까?”

 또 다들 말도, 표정도 없다. 애들이랑 몸집 작은 노친네들이 먼저 떨었다. 간간히 기침도 나온다.

 “얌마, 야. 일루 와라, 일루. 야, 얼른.”

 채 노인이 날 보며 손짓했다. 나는 눈도 피하지 아니하고 가만 있었다. 또 땅이 기울기 시작했다.

 “아, 좀! 나옵시다, 진짜. 남을 사람 빨리 남고, 갈 사람 가든가. 사람들 존나 이기적이네!”
 “이 새끼... 너 말 다 했어?”

 넘어간 몇이 지른 삿대질에 험한 말이 오가고, 이쪽 아저씨 몇은 또 뭐라하고... 그리 대거리가 오가다, 가만 있던 젊은 애 둘이 ‘에이씨’하고 넘어갔다. 최 팀장이 새로 꺼낸 담배가 거진 다 타들어가 있었다.

 “끝났어? 정리 된 거지? 아니, 진작 빨랑빨랑 나오든가, 좀. 괜히 시간 낭비하고. 이래서 조선 놈들은... 탑승! 버스 탑승!”

 다들 비틀대며 돌아섰다. 어깨너머로 ‘돈을 더 벌려줄래도, 자식이, 거. 말을 안 듣네. 쯧.’하며 채노가 혀를 차는 소리가 넘어왔다. ‘처음 나온 사람들은 돈 추가로 안 줘도 되지? 아, 농이야, 농담! 썅, 존나 까칠하네, 진짜.’하고 최 팀장이 버럭하는 소리도 함께였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냥 서울 갈 때까지는 푹 잤으면 했다. 문이 닫히고 시동 거는 소리가 곧 아련해졌다. 내일 아침에는 그냥 겨울 같지도 않게 비나 왕창 내려버려라 똥개 자식들, 하고 까만 공간에다 혼잣말을 뱉었다. 그게 다였다.


4.

 삼 주를 내리, 채 노인은 일을 나오질 않았다.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인생인 걸 모르지 않으니 걱정이 될 법도 하건만, 사실 안 나온 줄도 나는 몰랐더랬다. 낯을 마주한 그 때야 깨달았던 것이다. 대청마루 기둥 옆에 기대 웅크리고 앉았는 때였다. 채노는 내 처음 본 중늙은이도 달고 와 옆에 앉았다.

 “그래, 건강은 괜찮습니까?”
 “괜찮어, 괜찮어. 몸이 뭐, 별 수 있나.”
 “아무리 암이니 종양이니 해두 요샌 기술이 좋아놔서, 열심히 치료하구 그러면 괜찮댑니다.”
 “내 말이. 안 그래두 다들 그렇다더라고.”

 항간에는 채노가 최 팀장에게 찍혀놔, 나오고 싶어도 일을 못 난다며 흉흉했던 모양이다. 허나 최 팀장한테는, 노친네도 까짓 귀찮음 툭툭 털어내지 싶은 모래알일 뿐이다. 쥐구 있음 쨌든 돈이 되는데 뭐, 굳이 원한을 삼아 일을 못 나게 할까.

 “내 말한 게 얘야. 야, 야. 어른 보구 인사를 안 하니? 일어나 봐라, 야.”

 내 발치를 툭툭 치기로, 감은 눈을 떴다. 오죽이면 자는 척을 했을까, 여간 귀찮지가 않았다.

 “얌마, 인사를 해야지.”

 채노는 더 작고 더 까매졌다. 옆의 중늙은이가 뚱뚜루해 더 그래 보였는지 모른다. 대충 내 아버지뻘은 될까. 머리가 짧고, 얼굴이 크고... 나름 촬영장서 오래 뭉갠 양, 수염이 자르르하다.

 “거, 인사를 하라니까. 어른한테 인사를...”
 “귀찮게... 꺼지쇼, 쌍으로 거슬리지 말고, 좀.”

 중늙은이는 별 내색이 없었으나, 채노는 난감한 낯이었다. 접때처럼 욕지거리로 달려들지도 아니하고 늙은이가, 약을 먹었나 저 덩어리한테 빚이라도 졌나 싶게 얌전했다.

 “거, 자식이... 그, 자네가 이해를 좀 해. 얘가 아주 버릇이 좀 없어놔서. 또, 평소엔 이렇게까진 좀 그렇지가 않은데 낯이 선가 봐. 야, 야. 저, 음료수 좀, 둘만 내어 놓거라. 자, 자, 얼른.”

 코 앞에다가 얼른, 얼른거리는 노인의 손을 나는 탁 쳐내었다.

 “내가 자판기야? 얻다 대고 음료수 운운이야?”
 “야이... 자식이, 거. 어른 앞인데 말 가려 해라, 응?”
 “어른이 구걸도 하든가!”

 검게 쭈글은 낯이 주름을 꾹 쥔다. 노친네 입이 동그랗게 오므라든 탓이다. 귀는 빨간데 얼굴은 본 적 없이 새까매지니 이것도 조화다. 사람이 죽어가니 이런 낯도 되는 걸까?

 “너... 너...!”

 채노는 삿대질을 똑지게 하지도 못하고 후들거렸다. 중늙은이는 눈치를 좀 보다 ‘이따 뵙겠습니다, 어르신.’하고 꾸벅 인사를 했다. 채 노인의 삿대질이 멎었다. 그러고는 뚱뚱이가 사라진, 그 먼데를 향해 몸을 돌리고 앉아 제 가슴을 팍팍 두드렸다.

 “내 팔자야... 어이구, 내 팔자야.”

 마당에 덜 녹은 눈 위로 햇볕이 노랗게 물든다. 그 정도 빛깔이면 빈말로라도 등판이 뜨시달 법 하나, 정작은 아주 동장군이 완연해버렸다. 내 숨 길게 닿는 꼬리로 입김이 푹푹 피어난다.

 “어른 얼굴 한 번 세워주는 게 그리 힘드냐? 이 새끼야, 그게 그리 어려워? 무정한 놈, 이 무심한 놈아!”
 “대관절 세상이 어느 땐데 허구헌 날 그딴 소리야? 어른이구 애라구 남이 얼굴 세워줍디까? 공으로 먹고 살려줘요? 제 얼굴 제가 알아서 세우지도 못하구 남 탓이야, 남 탓은! 여적 죽지 못한 게 대체 뭔 유세거리라고!”
 “그래두 말이 그런 게 아니야. 자식아, 말이...”

 축축해지는 채노의 눈 밑을 나는 빤히 바라다 봤다. 그러다 팔짱을 움츠리고 어깨 새로 목을 묻었다. 엊그제는 눈도 왔고 그리고, 날이 너무 추웠다. 그냥 그런 날일 뿐이었다.


5.

 법원 입구를 나서니, 순간에 안경으로 허연 김이 서린다. 나는 차들이 넘나드는 횡단보도까지를 바라보며 부러 휘적휘적 걸었다. 석조로 잘 다듬어진 입구를 나자마자, ‘야!’하는 소리가 귀에 든다. 담배연기도 제 때 코를 챈다.

 “젊은 사람이 그리 살면 안 되는 거야.”

 나는 흠칫 놀랐다. 욕이라도 한 바가지는 들어먹을 줄 알았는데 목소리가 참 덤덤하다. 최 팀장이 허, 웃었다.

 “말은 그래도 뭐...하기사, 사람 살다보면 다 제각각 사정인 거지. 그래두 젊은 사람이 그래, 벌써부터... 다 같이 사는 세상인데, 산 사람은 살어야지.”

 산 사람은 그래, 살아야 한다. 노인이 죽고나서 들은 얘기였다. 내게 역정을 내고 이 주도 안 되어서였다. 노인의 죽는 모습, 그 바로 옆에 나랑 같이 섰던 중늙은이가 그랬더랬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응?”

 구급차에까질 실려가서 결국은, 사인이라는 것이 심장마비였다는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종양이니, 암이니 하는 노인의 증상이란 다들 아는 사실였다. 껀덕지도 없는 걸 굳이, 피디는 안전빵으로다가 해야 한다니 해서 오십 얼마 씩을 나랑 중늙은이한테 각각 얹어줬다. 무슨 대단한 계약씩은 아니고 괜시리, 세트가 어찌 됐느니, 사고사니, 하며 없는 말 만들지만 마시라 그런 돈이었다. 열흘 치 삯이니 괜찮은 벌이였다.

 “그래, 그 쪽에선 얼마 주디?”

 찹찹, 하구 최 팀장은 진짜 담배를 어지간히도 맛나게 빨았다.

 “이기면 성의는 어떻게, 표시한다 그러드만... 합의하구 취하했다니 당최 어찌 될지, 뭐...”
 “요즘 세상이 다 그런 거지. 자식도 아닌 게 자식 노릇한답시고 어른 팔아 그렇게 하구 뭐, 그 입장에선 한 몫 잡은 거지. 계약서는 써 놨냐?”
 “아뇨, 큰일 날라구... 위증이니 뭐니 하면요.”
 “그렇지, 하긴.”

 재판은 잘 흩어놓고도 최 팀장, 속이 쓰린 표정을 짓고 있으니 세상 모를 일이다.

 “주말에 일 나오냐?”
 “뭐, 그냥...”

 쭈뼛하는 모양새에다 ‘에이.’하구 최 팀장은 바닥에 담배똥을 떨었다. 용접봉 찌꺼기처럼 불똥이 또르르 바닥을 뛴다.

 “애두 아니구 뭐, 어색하니 어쩌니 말고 나와. 젊을 때 빠릿빠릿하게 벌어라, 응? 늦든 빠르든 몸 나가기 시작하면 훅 가기 마련인데. 거, 좆두 설 때 많이 써먹어야지.”
 “안 서요, 아재?”
 “쉬에끼.”

 최 팀장은 킥 웃었다. 천진한 웃음였다. 그러고는 인사도 없이, 초록등 깜빡대는 횡단보도를 건너 버렸다. 반도 못 가 벌써 빨간불인데 끝까지 어기적대며 거 냥반, 넉살인지 허세인지.
 그가 가는 것을 보고 나도 곧 횡단보도 앞에를 섰다. 길 건너에 다닥다닥 붙은 법무사 사무실, 병원과 식당 간판들이 무수하다. 법원 앞에 비뇨기과며 보신탕 집은 또 웬 말인가. 판검사에 변호사까지 엄숙한 얼굴로 싸워는 두고 그래, 밥 때에는 같이 개라도 잡아 먹는 걸까. 재미있는 생각이 들어 나는 하하 웃었다. 그러다 퍼뜩, 고갤 돌리니 신호등이 끔뻑거렸다.

 ‘그러고보니, 사람 죽기란 참 쉬운 일이야.’

 하고 초록불 속에 든 건물의 잔상을 나는 살폈다. 다음 신호가 올 것임에도 구태여, 나는 뛰었다. 첫 걸음에 벌써 빨간 불이었다. 그럼에도 멈추질 못했다.



6.

 때가 벌써 시작한 봄이라, 들어가는 길가로 작게 봉오리 진 함박꽃이며, 버드나무, 엄나무 순도 눈에 뵌다. 납골당이 꽤 외진 곳에 있지 싶다. 자유로 근처라더니, 막상 와 보니 장항에서 빠지고도 이십 분은 더 들어온 참이다. 버스가 있어 다행이지, 하는데 어느 새 눈 앞이 훤하다. 지붕 낮은 집들이 끝나고 주차장이 확 트여 있는 것이다. 까맣고 긴 차들이 군데군데 섰다. 가까운 벽제 화장터에서 왔지 싶은 차들이다.
 나는 어쨌든 채노의, 아니 채씨 노인였던 잿가루에 관해서는 아주 잘 몰랐으므로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이름과 신상을 띄엄띄엄 뱉으며 탐문해야 했다. 안장된 지가 얼마 안 되어 다행히 찾기는 찾을 수 있었다. 혹시 가족이시냐 묻기에 그저 아는 사람이라 했더니, 한숨이 돌아온다.

 “그, 가족 되시는 분이 저... 잔금을 아직 덜 치르신 게 있어서 혹시 연락이 되시면...”

 모른다, 하고 고갤 저었다. 소송 건 그 치는 벌써 재판 끝난 날부터도 잠수였다. 받을 것들 다 정산받고서야 시신을 찾아갔다더란 얘기는 얼핏 들었었다. 그러고는 영 잊었던 것을 최 팀장이 얼마 전 귀띔을 해준 것이다. 일 안 나간지도 한참인데 부러 전활 해서는, 상도 안 치르고 도둑묘 쓰는 양 납골당에 넣었다든데, 하고. 그 얘길 듣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온 참이었다.

 “제가 뭘, 아나요.”
 “한 오십 만원 남았는데 그게, 생전에 친분이 있으셨으면 말이죠. 저... 이번 달까지 들어오질 않으면 저희가 규정상 폐기처분이랄가, 좀... 그렇거든요.”
 “저도 뭐라 말씀드리기가...”
 “아, 네.”
 “... ...”
 “일단 저, 안내해 드릴가요? B동에 110번이신데 이 쪽으로 가시면...”
 “예, 예.”

 군데군데 흩어진 건물들 사이에서도 제일 후미진 곳이었다. 직원이 알려준 번호를 찾았다. 벽 한쪽에 번호가 순서대로 되어 있어 찾기는 아주 쉬웠다. 채 모모하는 이름이 거기 붙어 있었다.
 그래, 노친네. 결국엔 한 뼘 겨우 되는 아크릴 상자에 안 타는 쓰레기가 되어 앉았단 거지. 것두 하필이면 구둣발 스치는 맨 밑바닥, 엎드려야 손이 닿는 곳에다가. 남들 자리엔 사진이며 꽃이며 과자도 드는데 덩그러니 번호판에 항아리 꼴랑은, 참. 부적이 다 뭐냐, 자식이 별 거야. 그런 게 정말 댁 말마따나 복이라니?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 내려 놓았다. 인조 대리석이 냉냉하다. 울기도 웃기도 하려다 관두었다. 살아 움직이던 사람은 이미 없다. 다 닳은 싸리비를 태운 거나 똑같은 재가 싸구려 항아리에 담겼을 뿐이다. 뭐에 술을 따르고 누구에게 말을 할까. 하면서도 나는 그래, 피도 나고 살도 있어 미신에 휘둘리는가 보다.

 “이런 천하에 미련한 작자 같으니라고...”

 괜찮은 사람이면 눈물이 날 법도 한데, 나는 하나도 그렇지가 못했다. 어제 술을 워낙 마셔놔, 눈물이 술이라 그런가도 싶다. 천당이 어디 있나, 극락 왕생이 어디 있어. 술이라도 마셔보든가. 나 세상에 속았다고 질질 짜기라도 해 봐야지.
 터미널 보관함 같은 걸 똑똑 두드려도 결국 응답은 없기로, 잔은 내가 들이켜버렸다. 도깨비같은 허상을 보자고 술을 따른 건지, 내가 날 위해 따른 건지 애매하다. 그 소주 한 잔에 퍼뜩 생각해보니, 이제사 눈 앞의 광경이 차갑다. 누가 뭐라든 채노가 참, 사람은 사람이었는데. 미신을 믿길 좋아하고, 욕심이 많고 미련한 피와 살로 삼은 사람, 죽을 때 죽는 사람이었는데.

 “에이.”

 괜히 재수가 없어놔서, 하고 나는 팽 돌아섰다. 죽는 건 죽는 거, 죽은 것은 죽어 있는 거야. 싱싱한 회도 죽은 생선의 살점인데, 몰래 태워진 뼛가루야, 말을 해서 또. 그러고 말아야지, 그래야지.
 안내 데스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안 주머니에 손을 넣어 꼼지락거려 보았다. 진작 월세에라도 보탤 걸 이제 와 뭐하러 공으로, 하고 생각도 들었으나 까닭은 스스로도 알 길이 없다. 다만 그게, 이미 없는 채노를 위한다거나 내 대단한 즐거움을 누리려는 것은 아닌 듯 했다. 
 올 땐 금방이더니 가는 길이 멀다. 자리가 외진 탓인가, 바람이 여적 서늘하다. 얼마를 걸어야 끝이 나려나. 꽃샘추위라 그런가. 벗겨진 살껍질 위에 찬 공기 드리우니 왜 이리 따가운가. 왜 이리 무덤덤한가. 그러다가도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냥 날이 그런 거지. 겨울이든, 봄이든 뭐든, 그냥.

 고갤 들었다. 아스팔트가 까맣다. 그 위로 아주 노랗게, 선명하게 볕이 들어 있었다. 여느 봄날이면 매일 들 법한, 평범한 볕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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