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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을 당하는 당사자의 시선
게시물ID : wedlock_39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참참참참
추천 : 4
조회수 : 1222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6/08/15 14:5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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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외국에서 살고 있는 여징어고요, 현지에서 남자친구를 만나서 4년 넘게 사귀고 있는 중입니다. 아무래도 연애하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슬슬 결혼 이야기도 나오고 있고, 특히나 남자친구 부모님께서는 요즘 부쩍 적적해 하시는 것 같아요. 농담삼아 손주 보고싶다는 이야기를 가끔 하십니다 ^^;; 저희 부모님께서도 처음에는 사위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솔직히 탐탁지 않게 받아들이셨지만, 지금은 반 체념 (곱게 키운 딸을 외국으로 시집보내는게 아쉽기는 하지만 지들이 좋다는데 뭐...) 반 긍정 (그래도 자상하고 알아서 집안일 척척 잘 하고 딸을 아껴주는 걸 보니 그래도 고생은 안 시킬 것 같다)의 상태로 접어드신 것 같습니다.

요즘 부양 문제로 결혼게시판에서 몇 번의 논의가 있었던 것 같아요. 딱히 결혼게시판이 아니더라도 고민게시판이나 자유게시판에서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시는 분들도 종종 보였고... 그래서 남자친구에게도 이 문제에 대해서 한 번 물어보았어요. 특히 남자친구 아버지께서 심한 허리디스크를 앓고 계셔서, 큰 수술도 여러번 받으셨습니다. 게다가 남자친구 어머니 쪽으로는 암 가족력이 있고... 아무래도 두 분 다 환갑을 훌쩍 넘기신 분들이다 보니 이런 문제들이 이제는 예사로 다가오지 않더라고요. 

이 다음부터는 대화체로 쓰겠습니다. (영어로 진행된 대화를 한국어로 옮기다 보니 맞춤법이 틀리거나 한국어로 읽기에 어색할 수도 있습니다.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나: 자기야, 혹시나 만약에 자기 부모님께서 많이 편찮으시거나 해서 움직이시는게 불편해지거나 하면 어떡할 지 생각해 본 적 있어? 한국에서는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가족들이 나이드신 부모님들을 모시고 살았는데 요즘은 그게 점점 힘들어지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거든. 아직 요양시설같은게 부족하기도 하고.

남자친구: 그거에 대해서 부모님이 예전부터 하신 말씀이 있는데...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게 자신의 몸을 스스로 케어하지 못하게 되는 날이 언제건 올 거라는 사실이래. 두 분 모두 심하게 아프실 때도 있지만 늘 활동적이시고, 늘 사람들 만나는 거 좋아하시는 분들인데 나이가 들면 필연적으로 거동이 불편해지거나 심한 경우에는 치매가 올 수도 있잖아? 더 이상 내가 알던 나 자신이 아니게 되고 내 몸을 내 마음대로 못 움직인다는 게 너무너무 무섭다고 하시더라고.

나: 그렇구나... 그럼 그런 때가 되면 자기는 부모님하고 같이 살면서 돌봐드리고 싶어?

남자친구: 아니! 나는 부모님 요양시설로 모실거야. 아니,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 해 달라고 미리 부탁하셨어.

나: 왜 그렇게 생각하신대? 가족들이랑 같이 노년에도 행복하게 사시는 게 좋다는 분도 계시잖아.

남자친구: 우리 부모님이... 자식들한테는 늘 듬직하고 자상한 부모님으로 남아있고 싶으시대. 그런데 만약에 거동이 불편해지고 화장실 가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고, 그래서 자식들이 자기들을 일일히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떨어지는 것 같고 마음이 아프대. 물론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늙어서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순간이 오는건 피할 수 없지만, 그 순간이 오게 되면 차라리 힘들때는 전문적인 제3자의 도움을 받고, 자식들과 가족들을 만나는 순간에는 늘 행복한 모습만 보이고 싶으시다는 거야. 그게 마음이 더 편하실 것 같대. 마지막까지 가족들과도 즐겁게 지내다 가실 수 있을 것 같고.


이 이야기를 듣는데 솔직히 조금은 충격적이었어요. 지금까지는 제 부모님의 부양문제를 생각할 때도, 늘 돌보는 입장인 자식들에 대해서만 생각했지 돌봄을 당하는 우리 부모님의 심정에 대해서는 크게 헤아린 적이 없거든요. 그저 저는 자식된 입장만 생각해서, 아무리 우리 엄마아빠라 그래도 힘들겠지? 그래도 자식인데... 이런 생각만 하고, 정작 우리 엄마아빠는 자식들에게 돌봄받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실까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길 듣거나 심지어는 신문 기사, 정부 정책을 들여다 봐도 가족들이 져야 할 부담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도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나... 이런 것들만 있었지, 정작 또 다른 당사자인 어르신들 본인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 것 같고요. 단순히 책임감이라거나, 도리라거나, 이런 것 말고, 환자 본인이 사람의 인간인 이상 느낄 수 밖에 없는 상실감이라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누릴 권리가 있는 행복이라거나 이런 이야기들이요. 

그리고 또한 문득 든 생각이,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이야기들이 적극적으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요양시설을 비롯해서 보육시설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탄생과 사회화, 죽음을 책임지는 기관에서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양시설에서는 어르신, 보육시설에서는 어린이, 또 예를 들어 장애인 복시시설에서는 장애인... 이들은 단순히 어떠한 서비스를 받는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인간이고 주체인거잖아요. 그렇다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입장 만큼이나 돌봄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의 권리나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 아직은 그런 고려가 균형있게 되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때로는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 같고요.

여하튼 결혼게시판에서 시작된 논의 덕분에, 평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게 바로 논의하고 때로는 콜로세움을 쌓기도 하는ㅋㅋ 일의 긍정적 효과인 것 같아요. 종종 감정적인 대립을 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게라도 해서 서로의 입장을 표현하고 조금이라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우리는 서로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사는 곳도 복지 좋기로 유명한 나라 중 하난데, 사람들이 진짜 토론하는거 좋아하거든요. 정작 토론의 결론이 '그래... 그럼 우리 이건 다음에 얘기하도록 하자'가 되더라도,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발언권이 돌아가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한 번 얘기하면 정말 살벌하게 하더라고요. 처음엔 저게 뭐야... 했는데 조금 익숙해 진 지금은 이렇게 서로 싸우고 치고박고 하기 때문에 사회가 잘 돌아가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마무리를 하기가 참 어렵네요. 여하튼 다시 한 번, 생각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습니다.
출처 나와 남자친구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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