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엘룬 어머니의 막내 아들 옷치긴, 정이 깊고 일찍 자고 늦게 일어 나는 자
하지만 언제나 안 보이리만치 뒤처지는 일이 없고 대오에서 낙오하는 법이 없다
그런 바투르 옷치긴이 간다.
- 몽골비사, 자무카
사실 몽골제국의 탄생에는 이 옷치긴을 빼놓을수 없습니다, 옹칸을 물리친 이후 나이만부와 연대하여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던 그 때 모두가 경솔한 행동이 불러올 결과를 우려해 당장 전쟁을 벌이는 것은 불가하다 목소리를 모을때 오로지 옷치긴 만이 결전을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징기스칸은 그의 말을 따라 전쟁을 벌였고 마침내 몽골은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일수가 있었습니다.
옷치긴이 바투르라 불리는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황금씨족이지만 그는 전쟁에서 가장 앞장서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징기스칸이 형제들중에 옷치긴에 가지는 감정도 각별했지요,
다른 형들보다 상석에 앉힐정도이니 오죽했겠습니까, 사실 카치운은 일찍 사망했고, 카사르는 징기스칸이 살인 미수를 범할 정도로 지독한 경계의 대상이었으며, 벨구테이는 이복동생으로써 뭐랄까 딱히 눈에 들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끽해야 천호장 중에 그래도 쓸만하다 싶었으니 뭐 당연하다면 당연할것입니다.
이는 그에게 맡기는 일 들로도 증명해볼수 있습니다,
유목민에게 제사장은 부족장에 버금가는 직위입니다, 사생활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까지도 그 들의 입김을 피해갈수 없었지요, 이는 300여년 간의 분쟁을 종식시키고 몽골을 통일한 징기스칸도 피해갈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늘과 같이 드높은 자 라는 뜻으로 해석할수 있는 쿠케추 텝 텡그리는 징기스칸이라는 칭호를 내린 자이며 징기스칸에게 유일하게 부족했던 정당성을 확보해준 자입니다, 그는 어전에 설때마다 항상 하늘은 당신에게 세계를 손에 쥐라 하셨소 같이 신이 내린 사명을 행하는 자로서 징기스칸을 대했기 때문에 모두가 징기스칸과 함께 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지요.
그러나 하늘은 결코 두개일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제아무리 징기스칸이 믿고 의지하고 있는데다 그에게 부족한 정당성을 채워주는 이라지만 징기스칸의 개혁조치에 반발하는 이 들이 텝 텡그리의 주위에 몰려들며 하나의 도당을 더 나아가 무시할수 없는 세력을 형성하자 부담을 느낄수 밖에 없었습니다,
몽골비사에 따르자면 아홉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자들이 텝 텡그리 주변에 모여들었다 하니 얼마나 큰 세력을 형성했을지는 능히 짐작할수 있을 일입니다, 이런 그와 함께 가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이 기정 사실화 되자 징기스칸은 그의 막내 동생을 불러 이렇게 넌지시 말을 건넵니다.
이제 곧 텝 텡그리가 올것 이다, 그에게 너가 할수 있는 일 중 어떤 것을 해야 할지는 네가 (알아서) 찾아서 해라
- 몽골 비사
옷치긴은 축제의 한복판에 늘 함께하는 씨름판으로 제사장을 불러들여 척추를 폴더폰을 포개 접듯 고이 나빌래라 접어 버려 형의 기대를 충족시켰지요,
즉 옷치긴이 아니었다면 신생 몽골 제국은 탄생한지 몇 해 가지도 못하여 긴박한 내전에 휩싸였을지 모를 일입니다, 만일 옷치긴이 없었다면 그의 선택이 달랐다면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많은 역사가 달라졌겠지요.
사실 천신이자 모든 텡그리 즉 무당들의 우두머리나 다름 없었던 이라 징기스칸이 손을 댈수도 없는 노릇이라 옷치긴이 어쩔수 없이 대신한 것이겠습니다만 아무튼 그의 선택은 역사를 우리가 아는 방향으로 틀어놓았습니다.
이러한 공을 세운 옷치긴에게 징기스칸은 신뢰로서 보답합니다, 서방 원정 7년여간 몽골 제국을 통치한 이는 징기스칸의 아들이 아닌 옷치긴이었듯 말입니다, 이렇듯 옷치긴은 징기스칸의 기대를 충족시키며 많은 공을 세웠고 그만한 보답을 받았습니다,
그 보답이라 할수 있는 기이할정도로 많은 상속은 다만 단순한 말자 상속 원칙이나 애정만이 아닌것이 징기스칸과 옷치긴 간의 관계를 고려해볼때 금나라 정벌에 수반되는 동방 경략의 일환으로 보아야 할것입니다.
즉 징기스칸은 옷치긴을 동방 원정의 선봉이자 거점, 관문 등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 과정을 살펴보자면 징기스칸의 금국 원정부터 살펴보아야 하는데 그 것은 다음 글에서 시작해보겠습니다, 이제는 제목도 바꿔야 할때가 온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