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정국 이후로 김구선생은 이승만과 대립하면서
반탁(미군정 신탁통치 반대) 및 남북 단일정부 수립을 주장한 독립 운동가로 알려져있지요
가장 존경받는 독립운동가중 한명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현재 알려진 김구선생의 흑역사들에 대해서는
어떤식으로 평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첫 번째로는 치하포 사건으로 알려진 쓰치다 일본인 살해사건
이 사건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백범일지를 통해 알고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쓰치다가 일본군 장교라는 증거는 백범일지를 제외한 어디에도 없으며
사건 조서에 따르면 김창수(김구)가 새벽에 여관을 나오는길에
아침상을 받는 순서가 정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칼을찬 왜인이 먼저 밥상을 받아가
분한 마음에 발로차 고꾸라뜨리고 때려죽인후 얼음이 언 강에 버렸다고 되어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김구선생은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감형되었고 이내 탈옥하게됩니다.
두번째는 독립운동가 김립 암살 사건..
당시 임시정부산하 독립운동 정당인 한인사회당(고려공산당의 전신)이
소련 국제공산당(코민테른)측으로 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받아오는 과정에서
그 자금을 임시정부로 보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김립이 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했다고 판단하고
암살단을 보내 상해거리에서 김립을 암살한 사건입니다.
당시 임시정부내에 이념노선을 달리하는 여러 정당이 존재하였는데
김립은 그중 한인사회당(후에 고려공산당으로 바뀜)을 창립한 창립맴버였습니다.
암살현장에서 김립과 동행했던 김철수에 의하면
공금 횡령에 대한 증거는 없고 당시 소련에서 넘어온 독립운동 자금은
고려공산당을 위한 지원금이었며 그것은 임시정부의 공금이 아니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주장은 실제 소련의 훈령을 통해 교차검증이 되는데
지원금 60만 루블은 모두 고려공산당에게 지급된것으로 되어있고
결산보고 의무 역시 고려공산당에 부여하고있었습니다.
즉 소련의 공식문서들은 이 자금의 처분권자가 임시정부가 아니라
고려공산당이라고 명시하고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대한민국 정부에 다양한 정당이 있고
각 정당의 운용자금을 중앙정부에서 요구하는 상황에서 이를 거절한 김립이 살해당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김립은 아직도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제외하고도 궁금한것이
해방정국 이후 백의사 관련 요인암살 의혹입니다.
대표적으로 여운형, 장덕수, 송진우 등등..
이것 역시 사실이라면 도저히 실드가 불가능한 내용들이죠.....
소련 군정의 해방정국 보고서에 의하면
백의사는 직접적인 김구의 지휘하에 있다고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김구 자신도 백의사에게 결국 암살당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안두희가 백의사 암살요인이라는 설)
어찌보면 굉장히 불편한 내용들일수 있습니다만
김구선생이 건국훈장을 수여한 시점은 박정희가 군사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직후인 1962년 입니다.
박정희각하 께서는 여러분이 아시는것처럼 일제 만주군 출신으로
일제에 혈서로 멸사봉공 견마(개와 말처럼)충성을 맹세한 인간으로
당시 이승만 정권에 부패에 군사쿠테타를 일으켰다고 하였으나
그 시기는 이미 이승만이 4.19혁명으로 하야된 이후였습니다.
따라서 쿠테타에 대한 정당성이 필요한 시점이었고
그 일환으로 이승만과 대립관계에 있던 김구선생의 미화작업을
시작하지 않았나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에 대하여 더 자세하게 아시는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김구선생을 공격하면서 함께했던 독립운동을 함께한 이봉창의사, 윤봉길의사 같은 분들의 이름에 먹칠을 해보자는 것이 아니라
정말 관심이 있다면 이러한 흑역사도 역사의 일부로 좀더 정확하게 알고있는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