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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한 부자 관계 - 조선의 왕과 왕자들 : 조선후기 선조~숙종까지
게시물ID : history_265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walkholic
추천 : 13
조회수 : 2026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6/08/11 02:39:58
저번 포스트에 이어 이번에는 조선의 후기, 14대 선조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전반기는 막장의 가능성이 있긴 했으나, 우리의 호프 연산군을 제외하면 뭐 그정도는 준수하다고도 볼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만, 이번에 후반기는 정말 막장의 킹왕짱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권력이라는 놈은 가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러한 것을 생각해 보는 시기가 되겠습니다.
 
14대 선조 - 견공자제분들의 아버지
 
선조는 덕흥 대원군의 아들입니다. 덕흥 대원군에게는 세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왕이 된 것은 막내 선조였죠. 나머지 두 형은 별로 존재감이 없긴 하지만, 선조의 아들 중 한명이 우리 선조의 첫째형님의 이름을 후세에게까지 전합니다. 아주~ 안 좋은 방향으로요. 그럼 그 부분은 천천히 얘기해 보도록 하죠.
 
적통
영창대군 - 귀여운 막내였으나 태조의 아들 방석과 같은 처지가 된다. 광해군 개Seki...
 
서자
임해군 - 권력을 등에 업은 마피아 두목
광해군 - 전쟁을 수습한 임진왜란의 영웅, 아버지에게 미움받고 왕이 되자 비뚤어짐
정원군 - 인조의 아버지라서 원종까지 추존되었으나 알고 보면 임해군이나 도긴개긴
순화군 - 평민과 노비를 상대로 매를 얼마나 맞아야 사람이 죽는지 생체실험을 한 사이코 연쇄살인마
 
*정명공주 - 선조의 자손중 오래오래 살면서 막대한 재력으로 홍씨 가문을 명문가로 만든 공주
위로 언니들(옹주)이 10명이나 있으나 존재감은 매우 희박함
 
선조는 명종의 첫째아들이 14살에 비명횡사하자, 대왕대비가 찍어서 왕이 되었습니다. 명종은 죽기 전까지 선조를 딱 찍어서 "니가 내 후계해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선조의 정통성은 그리 강하지 않았습니다만, 선조는 일단 정치력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특히 신하들을 붙잡고 흔드는 능력만큼은 최고급인 선수이기도 합니다.
 
만약 전쟁만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왕이었을 테지만 전쟁이 일어나자 백성들을 버리고 튀는 행위를 저지릅니다.(가까운 후손은 그것도 제대로 못해서 튀다가 잡히고 말지요. 바로 손자인 인조) 아주아주 먼 훗날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자 대통령이 "국민들은 안심하고 수도에 있으라." 하고 튄 경우가 있는데 아마 선조를 벤치마킹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아래 댓글이 있어 수정했습니다. 우리의 Prince Lee 씨는 양녕대군의 후손이라는 군요. 역시 적통인지는 가계보를 따져봐야겠으나 말이죠.
 
그리고...이 전쟁 때 어떻게 굴었느냐에 따라 훗날 왕이 되느냐 아니면 개같은 역사의 기록을 남기느냐가 결정괴게 되었죠.
 
선조는 첫째인 임해군과 순화군은 함경도 방면으로 보내고, 광해군은 전라도로 보내고, 정원군은 자신을 따르게 합니다. 임해군과 순화군은 함경도에서 깽판을 치다가 우리나라 사람인 국경인에게 사로잡혀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에게 넘겨집니다. -_-; 왕자들이 얼마나 미웠는지 국경인은 왕자 둘을 포승줄로 묶어서 넘기는데, 가토가 깜짝 놀라서 "조선 사람은 자신들의 왕을 그렇게 다루는가?" 하면서 손수 풀어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광해군은...아시다 시피 선조와는 달리 백성들을 위무하고 전라도의 병사들을 보내 왜군들의 뒤통수를 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웁니다. 결국 이것때문에 광해군은 인정을 받아 세자가 되게 되지요.
 
정원군은 선조가 영 못미더웠는지, 아니면 보험으로 데려갔는지 모르지만 임진왜란 끝까지 선조를 따르고, 이 덕분에 공신의 반열에 오릅니다. 한 거 아무것도 없이 그냥 선조를 따라다녔다는 이유로...
 
임진왜란 후처리를 보면 열이 뻗치는 일이 있는데 각지에서 공을 세운 의병장들 보다 한 거 없이 선조를 따라다닌 신하나 내시들이 더 높은 공신반열에 오릅니다. -0- 그리고 원균도 공신입니다. 선조의 특징은 한번 꽂히면(이순신을 제외하고) 그 사람이 일을 잘하건 못하건 능력이 있건 없건 주구장창 밀어주는 편입니다. 훗날 임해군에게 슥삭당한 도승지 유희서, 군사를 이끌고 강화도로 튄 후 병사들을 굶어죽이거나 얼어죽이고, 진주성 공방에서는 수많은 병사가 있었으나 구원을 하지 않아 진주성이 털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최원 등을 끝까지 민 일이 그러합니다.
 
거기에 선조는...개차반 왕자들을 끝까지 비호합니다. 다만 광해군만큼은 들들 볶습니다. 선조는 늘 백성들을 버리고 혼자 튄 부분에 대해서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선조에게 "이거이거 좀 문제있는 거 아니냐?" 하면 "내가 왕좌에 앉아 있는 게 눈꼴시냐? 응? 내가 그냥 세자한테 양위할게,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게 그렇게 싫어?" 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뻑하면 세자한테 양위하고 말겠다 하니 광해군은 그때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무릎꿇고 "아버지 제발 그러지 마세효 ㅠㅠ" 하고 빌었다고 하네요.
 
어쨌든 전쟁이 끝나고, 왕자들은 깽판을 저지르고, 선조는 그러한 깽판을 열심히 실드쳐 줍니다. 그러던 가운데 선조는 새장가를 드는데, 새장가든 여인은 우리 광해군보다 어린 분이네요~ 와!
 
그리고 적통이 태어납니다. 훗날 인조대에 재벌이 되시는 정명공주, 그 동생 영창대군이 태어납니다. 야리야리한 어린 마누라에게서 나온 적통이 생기니 선조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러나 광해군의 빠와는 이미 대단했습니다. 영창대군과 나이도 많이 차이날 뿐만 아니라 신하들 대부분이 광해군을 밀고 있었고, 전쟁을 극복한 세자였기에 영창대군이 적통이긴 하였으나 이제 와서 명나라에 "세자를 적통으로 바꾸겠어요~" 라고 할 수도 없었기에 선조는 아들들을 불러, 특히 광해군한테
 
"야, 영창대군 저놈 나 죽으면 불쌍한 동생이다. 니 아들뻘인데 잘 보살펴라. 내가 다른 거 말고 그거 하나만 부탁할게, 응?"
 
하고 달랬습니다. 그리고 광해군은 죽은 선조에게 빅엿을 날려줍니다.
 
아, 임해군은 다른 포스팅에 설명했으나, 다른 왕자들의 대표적인 비행을 간단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정원군 - 방납, 군역을 하기 싫어 도망친 사람들을 돈받고 숨겨줌, 큰어머니 하원군 부인을 감금한 일 등
순화군 - 노비, 평민을 대상으로 한 살인. 해마다 10명 남짓 죽였음. 수원부에 귀양 보냈으나 귀양지에서 뛰쳐나와 지나가는 사람을 죽여 수원부의 인구가 줄어들음.
 
15대 광해군 - 쫓겨난 전쟁영웅, 치욕의 장수왕
 
드디어 우리 광해군이 등극을 합니다.
광해군이 등극하자마자 한 일은, 같은 어머니에게서 난 형 임해군을 처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임해군이 워낙 막장 마피아 두목급의 행위를 한지라, 신하들이 임해군을 귀양보내라 난리를 쳤으나 감싸고 돌았죠. 그리고 임해군은 진도->강화도로 이어지는 귀양살이 중 의문사를 당합니다.
광해군은 무척 슬퍼하는 척 했으나 실제로는 별로 슬퍼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냥 개차반 하나 없어진 거로 여긴 듯 합니다. 그리고 동생 정원군은, 왕실의 종친으로 여기저기 자주 불려다닙니다. 마지막으로 순화군은, 선조 때 이미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귀여운 막내 영창대군은, 광해군이 직접 죽이지는 않았습니다만, 신하들을 부추겨서 역시 슥삭을 합니다....
 
임해군은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무척 미움을 받았고 워낙 흠결이 많았기에, 신하들이 원한은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왕권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창대군은 적통에다가, 선조가 신하들에게 영창대군을 세자로 삼으면 안되는지 언급한 일도 있는 등 그대로 두면 뒤통수가 근질근질한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광해군은 신하들을 은근히 압박해서 아직 어렸던, 초등학생 정도였던 영창대군을 죽이고 맙니다.
 
여기까지는 신하들도 인정할 수 있었겠지만...광해군은 큰 실책을 저지릅니다. 바로 자신보다 어렸던, 대비. 영창대군의 어머니를 폐하고 서인으로 만든 것이죠. 왕권 강화를 위해 유력한 후계자들을 죽이거나 귀양보내는 것은 신하들도 그러려니 합니다만, 명목상 어머니를 폐서인으로 만드는 것은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에서 "불효"라는 막대한 나쁜 타이틀이었기에, 나중에 인조반정 때 중요한 명분이 됩니다. 인조반정의 명분은 "폐모살제" 였는데, 살제는 영창대군과 임해군을 죽인 것, 그리고 폐모는 광해보다 어렸던 선조의 왕후를 폐한 게 되겠죠.
 
사람들이 광해군을 외교를 잘했다고 치켜세우지만, 광해는 좋은 임금은 아닙니다. 왕이 앞장서서 뇌물먹고 벼슬을 팔았으며...-_-; 궁궐을 다시 짓기 위해서 신하들을 갈궈서 백성들에게 돈을 뜯어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한테 좋지 않은 것만 배웠습니다. 신하들을 협박하고 대북쪽의 손을 들어줬던 거죠. 결국 이이첨이 세력이 너무 커져서, 광해군은 인조반정 때도 인조가 아닌 이이첨이 반란을 일으킨 게 아닌지 의심했다고 합니다.
 
광해군은 이지라는 세자가 있었는데, 이지는 귀양가서 탈출하다가 잡혀서 죽고 맙니다. 그 탈출 방법이 광해군이 죽였던 임해군과 같은 일이라...-_-; 신하들에게 금방 들켜서 잡혀 죽습니다. 딸은 따로 없었고, 이지에게는 딸이 하나 있는데 그 딸은 인조가 불쌍하게 여겨서 결혼은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딸의 후손들이 광해와 광해의 아들의 제사를 지냅니다.
 
광해군은 그렇게 인조에게 왕위를 넘기고 60대까지 장수하다가 사망합니다. 그 중에 나라가 정묘-병자호란으로 망하는 꼴을 전해들었을 테니 그의 속은 어떠했을까요...
 
16대 인조 - 할아버지의 마이너 버전
 
소현세자 - 청나라와 관계개선을 시도한, 아비 대신 고생하다 죽은 불쌍한 첫째
봉림대군 - 막중한 책임을 떠안은 둘째
인평대군 - 존재감 제로 막내
 
인조는 정원군의 아들입니다. 즉 대원군의 아들이죠. 인조는 조카가 삼촌을 슥삭한 케이스로, 수양대군과는 정 반대의 경우가 되겠습니다. 다만 수양대군 세조와는 달리 반정의 주요세력은 아니고, 반정 세력중 하나이긴 합니다. 어쨌든 조카가 삼촌한테 당했으니 그 반대의 경우도 일어날 수 있죠.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덜덜덜...
 
광해가 아버지 선조에게 미움받더니 인조 역시 자신의 첫째 아들 소현세자를 미워합니다. 미워할 수밖에 없는 게, 청에서 사신이 오면 첫째부터 찾습니다. 거기에다가 무슨 일만 있으면 "인조 너 이 쉐키 그 자리에 있는 거 운좋은 줄 알아. 확 니 세자로 갈아치워버릴까보다." 하고 협박했기에 아들을 미워할 수밖에요. 결국 야사에서는 소현세자를 벼루를 던져 죽였다느니 하는 일이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세자에게 손을 덜덜 떠는 어의에게 침술을 시술하라고 보냅니다. 그렇게 첫아들은 비명에 가고, 어쨌든 사고로 죽었으니 세손이 왕위를 물려받았어야 하나...
 
세자빈이었던 강빈이 복수를 입에 담고, 우리 인조는 그 강빈에게 친히 "개Seki 같은 년!" 이라는 말을 퍼부우면서 세자빈을 죽입니다. 그리고 세자빈이 죽었으니 연산군 Ver 2.0 이 될 수 있는 세손들마저 죽여버리게 되는 거죠. 아들도 죽이고, 손자도 죽인 우리 멋진 아버지 인조입니다.
 
중종과 인조는 비교할 수 없는게, 중종은 적통 자손의 손을 들어주기 위했다는 의심은 받지만 모함을 받아 죽었고 중종이 직접 나서 죽인 것은 아니지만, 인조는 지금으로선 거의 확정적으로 인조가 아들을 죽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본인이 손을 써서 아들을 죽인 첫번째 케이스라고 하겠죠. 그리고 손자들도 처리한 건 좀 너무해 보입니다...
 
이렇게 개인사가 개판이면 다른 거나 좀 괜찮았으면 괜찮으련만, 인조대의 굵직한 큰일을 보자면
 
1) 인조반정
2) 이괄의 난 - 논공행상을 개판으로 해서 반정공신 이괄이 북방수비군을 이끌고 쳐들어와 수도가 함락되는 사건
3) 정묘호란, 병조호란 - 이괄을 털면서 정예군 2만명을 털어먹고 장수들을 못믿어서 감시만 하다가 털린 사건
 
뭐 이정도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정묘호란, 병조호란 때 나라가 털린 건 김자점를 너무 믿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김자점은 뭐 희대의 개seki 인데 이 놈에게 군권을 맡긴 덕분에 아주 허무하게 멋지게 털린 거기도 합니다.
 
결국 인조는 임금짓도 개판이고 개인사도 개판이고...뭐 그렇습니다. 그래도 선조-광해군 동안 개판되었던 내치를 조금이나마 개선한 점은 있는 왕이라 연산군보다는 낫다고 평가되긴 합니다만...
 
17대 효종 - 인자한 아버지
 
세자 - 현종
공주 5명
 
옹주 1명
 
효종은 좋은 부모였습니다. 효종은 금슬이 좋아서 서자는 숙녕옹주 1명 뿐이었어요. 부모들이 개판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어려서부터 타지에서 개고생을 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효종 부부는 자애로왔다고 합니다. 매 명절때마다 세자와 공주들을 불러 선물을 주곤 했는데, 막내 옹주는 왕후 눈치를 보느라 주지를 못했는데 왕후가 옹주를 따로 불러 선물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거 보면 부부 모두 좋은 사람이었나 봐요. 참 오래간만에 훈훈합니다.
 
그리고 효종은 숙명공주에게 "니네 언니는 벌써 임신해서 태교한다고 난리인데, 넌 어떻게 된 게 결혼하고 나서도 아이 낳을 생각은 안 하고 고양이만 끼고 노느냐(집사라서 그렇습니다 아버지.._)"란 서간문이 있기도 하지요. 이런 거 보면 결혼한 자식들에게도 신경쓴 좋은 아버지라고 할 수 있겠네요.
 
18대 현종 - 금슬 짱짱
 
세자 - 숙종
명선공주, 명혜공주 - 혼례 직전 급사
명안공주 - 결혼 후 출산. 20세 사망
 
현종은 첩 같은 거 없습니다. 부부가 금슬이 워낙에 좋아서 적통 자식만 있었습니다만, 문제는 자식들이 모두 단명했다는 거. 현종도 나쁜 임금은 아니었지만 존재감은 희박합니다. 뭐 큰 잘못한 것도 없고 크게 잘한 것도 없는 왕이라, 대부분 현종은 잊곤 하죠.
 
19대 숙종 - 아내를 슥삭한 정치 9단 왕
 
장희빈
세자 - 경종
 
숙빈 최씨
연잉군 - 훗날 영조
 
숙종은 효종-현종에 이은 정통성의 끝판왕입니다. 그리고 숙종 대에 왕비의 파워 게임이 한번 일어나죠. 인현왕후 vs 장희빈의 빠와 게임이 말이죠. 이게 아주 재미있는데, 인현황후는 아이가 없어서 경종을 임신한 장희빈에게 밀립니다. 결국 인현왕후는 쫓겨나고 장희빈이 왕비가 되지요. 그러나 장희빈이 다시 쫓겨나고 인현화후는 왕비로 복귀합니다. 왕비가 쫓겨났다가 복귀하는 매우 특이한 케이스인데 이걸 빌미삼아서 숙종은 한번 신하들을 물갈이까지 합니다...
 
어떻게 봐도 성종대의 연산군의 재림이 아닐까 하시는 분들이 있을 텐데, 성종이 아내를 슥삭할 때는 연산군 고작 2살이었습니다. 그러나 장희빈이 죽임을 당할 때, 장희빈의 아들 경종은 나이가 제법 있는 상황이었죠. 그러나 경종은 본인이 살기 위해 인현왕후를 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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