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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비정기 연재 소설: 이세계 생존학 1
게시물ID : animation_3959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자작익락
추천 : 4
조회수 : 30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8/09 01:4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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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이세계 생존학 개론강의를 처음 수강신청 목록에서 보았을 때, 현명은 이거다 싶었다. 채워야 할 학점은 애매하게 남았고 전공은 듣기 싫었는데, 뭔가 재밌어 보이는 강의가 필요한 그에게 이만한 게 또 있을까. 강의 개요에는 완전 진지한 어조로 이세계에서 조난당했을 때 살아남기 위한 조건에 관하여 학습하고, 실습한다.’ 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무언가의 비유인가? 아니면 유머인가? 설마 진심으로 이세계를 믿는 건 아닐테고.

그리고 개강 첫날, 이세계 생존학 개론 첫 수업시간.

현명은 낯선 세계에 와 있었다.

 

 

1.          

 

“…뭐야, 이거.”

현명 옆의 여학생은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겉보기엔 무엇 하나 달라진 게 없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초가을 한낮이라는 점도, 허술하게 생긴 플라스틱 책걸상이 널부러진 강의실이라는 점도. 그러나 그곳에 모인 전원이 느끼고 있었다. 방금, 그들에게 무언가 일어났다는 것을. 현명은 창문 너머, 지나치게 조용한 복도를 응시했다. 하다못해 옆 강의실의 교수님 목소리라도 들려야 마땅하건만.

오종혁 교수가 들어온 건 강의 시작 시간 14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살짝 비뚤어진 뿔테 안경을 쓴 채 허둥대며 온 그는 늦어서 미안하다며 강의실의 학생들에게 웰치스를 돌렸다. 강의 신청 인원수인 열 개였으나, 그중 세 명은 오지 않았다. 교수님은 그런 것엔 아랑곳않고, 교단 앞에 섰다.

학생들이 캔을 따고 음료를 한 모금씩 마셨을 때, 교수는 말했다.

-, 그럼지금부터 이세계 생존학 개론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하겠습니다. 우선자리를 옮기도록 하죠.

자리를 옮긴다고? 어리둥절한 것도 잠시, 순간 급작스런 현기증이 현명을 덮쳤다. 고개를 들고, 울렁이는 시야가 가라앉았을 때, 교수는 교단 앞에 없었다. 남겨진 것은 강의실에 모인 일곱명 뿐.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신경질적인 남자의 목소리가 뒤이었다. 유도 선수같이 우람한 체격에 몸에 딱 붙는 나시티를 입은, ‘나 체대생이요광고하고 다니는 남자였다. 그는 무엇이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불쾌한 시선으로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강의실 문을 향해 걸었다. 철컥. 손잡이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남자가 문을 신경질적으로 흔들어봐도 부서질 것 같은 소리만 날 뿐, 바뀌는 건 없었다.

뭐야 이거, 장난하냐?”

 윽박과 다름 없는 남자의 목소리에 누군가는 움츠렸고, 누군가는 심각한 표정으로 노려봤다. 현명은 남자를 멍하니 바라봤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거지. 손끝에 무언가 바스락거리는 것이 걸렸다. 책상 위에 놓인 우편봉투였다. 봉투 위에는 정자로 그의 이름, ‘이현명이 쓰여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것을 지표 삼아, 자신의 우편봉투가 놓인 책상 앞에 앉았었다.

우편봉투를 들어보았다. 생각보다 묵직한 것이, 안에 단순한 종이만 들어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봉투를 찢어 뒤집으니, 책상 위에 무언가 툭 하고 떨어졌다. 이건, 알약하고시계? 시계는 스마트워치인듯 보였고, 알약 위에는 포스트잇이 한 장 붙어 있었다. ‘Abyssium No.1’

영문 모를 내용물이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상황은 확실히 의도된 것이라는 점. 그리고 아마도 그 교수가, 이 상황을 계획했을거라는 점. 눈을 뜨자마자 사라진 걸로 보아 도움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그는 우선 시계를 팔목에 차보았다. 전원을 켜자, 개성 없는 로딩 화면 뒤에 바탕화면이 떴다. 화면에는 네 가지 앱이 있었다. 스탯, 스킬, 아이템, 퀘스트. 스탯 앱에는 그의 이름과 힘/ 민첩/ 지능 같은, 온라인게임의 능력치 같은 정보가 있었고, 스킬 앱과 아이템 앱은 텅 비어있었다. …뭐야 이건? 퀘스트 어플을 터치하자, 까만 화면에 무미건조한 흰 글자가 떠올랐다.

-학교 정문까지 도달하시오.

그는 이 우스꽝스런 문장이 이렇게 해석되었다. 교수는 우리들을 이곳에 가둬두고 굶겨 죽일 생각은 아니다. 무엇이 되었든, 이곳을 나갈 수 있는 단서를 분명 남겨두었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저기.”

열두 쌍의 눈동자가 단숨에 그를 향했다. 그는 움츠러들며, 찢어진 그의 봉투를 가리켰다. 뭘 어쩌라고, 하는 시선.

이 안에, 이런 게 들어있었는데요.”

무언가의 단서가 아닐까요? 라는 말을 할 필요도 없이, 사람들은 자신의 책상에 놓여진 봉투를 각자 찢기 시작했다. 내용물은 동일해 보였다. 알약 하나와 시계하나, 그리고 포스트잇 한 장. 한동안 알약을 들여다보고, 포스트잇의 앞뒤를 유심히 관찰하고, 시계를 차서 어플을 본 뒤에야 반응이 튀어나왔다.

씨발뭔데, 이거.”

이 강의실을 나가서 교문 앞으로 가라는 건가.”

, 저기…”

와중에 바들거리며 손을 드는 여자가 한 명 있었다. 정갈하게 정리된 단발머리, 현민의 명치에는 올까 말까 한 작은 키와 작고 마른 몸. 새끼 토끼를 연상시키는 여자였다.

, 그러면. 여기서 나갈 방법이 있다는건가요?”

여자의 말에 일동의 표정이 변했다. 그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지. 현명이 속으로 궁시렁거릴 때, 누군가 앞으로 나섰다. 멀끔한 인상의,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은 남자였다. 이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오나.

그럼 일단 분담해서 이 교실 안을 뒤져보죠.”

그의 말에 따라, 21조씩 총 세 개 조로 짝지어 교실의 구석구석을 뒤져보기로 했다. 현명은 무뚝뚝한 남자 한 명하고 같은 조가 되어, 벽과 창문을 조사했다. 그와 남자는 서로 다른 벽을 분담하여, 아무 말 없이 문이 잠겼는지, 문틈 사이에 틈은 없는지 조사했다. 간혹 마주칠 때에도 남자는 시큰둥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곤, 도로 조사를 계속할 뿐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뒤져서 나온 거라곤 방 안에 열쇠는 고사하고 열쇠 대용으로 쓸 수 있는 것도, 무슨 수수께끼 퍼즐 같은 것도 일절 없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여 교실에서 발견한 낡은 볼펜을 문틈과 창틈 사이에 끼워보려 했지만, 그만큼도 들어갈 틈조차 없었다. 그들은 막막한 심정으로 둥글게 모여, 테이블 위에 쌓인 먼지쪼가리와 낡은 펜 같은 것들을 보았다.

누구 좋은 생각 없어?”

체대생이 추궁하듯 전원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나 하나같이 입을 합죽이처럼 닫고 있을 뿐이었다. 오직 한 명, 아까 그 실실 웃던 남자만이 글쎄요.” 하고 웃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 약.’

한 시간여를 일곱 명이서 뒤져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남은 가능성은 하나뿐이었다. 바로 그 약.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는 몰라도, 그 교수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 그 약을 먹길 바라는게 자명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한 명쯤 먹으면 여길 탈출할 단서를 얻을지도 모르지만, 먹은 사람은 죽기라도 할지 누가 아는가.

가위바위보로 정하죠.”

실실 웃던 남자의 말이었다. 타당한 말이었지만, 누구도 섣불리 동의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내가 걸린다면 그러나 결국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긴장된 눈으로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주먹을 쥐었다. 그중에 제안한 녀석만 뭐가 즐거운지 은근히 웃음 띤 눈으로 말했다.

, 가위 바위…”

 

현명은 원망스런 눈으로 가위를 낸 자신의 오른손을 봤다. 젠장, 내가 왜 이걸 냈지. 그는 긴장된 시선으로 약봉투를 보았다. 그래, 녀석은 우리가 죽길 바라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살아서 두 발로 학교 정문에 도달하길 바라는 거지. 약봉지를 뜯고, 손앞으로 가져갔다. 알약은 새까맣고 반들반들 윤이 났다. 마른 침이 꿀떡,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쉽게 먹으려면 탁자의 웰치스를 함께 마실 수 있었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그는 몇 번 심호흡을 한 뒤, 눈을 질끈 감고 단숨에 약을 털어넣었다. 꿀꺽, 하는 소리. 눈을 감은 채로 숫자를 셌다. 하나,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약은 쓴맛은 커녕, 방금 전 삼켰다는 것도 잊어버릴 만큼 아무런 존재감이 없었다. 눈을 뜨자, 긴장된 눈으로 그를 쳐다보는 시선들이 보였다. 그는 조금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 일도없네요.”

안도감과 실망감 섞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대체 이건 뭐 하자는 건지.

뭐야, 뭐 새로 얻은 거 없어? 막 힘이 갑자기 세졌다던지, 머릿속에 이상한 지식 같은 게 생겼다던지, 그것도 아니면 좀어디로 갑자기 가고 싶어졌다던지.”

그는 고개를 저었다. 혹시 몰라 스마트워치를 조작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었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었다. 현민은 한숨을 쉬며 문앞으로 다가갔다. 확인이나 해보자는 심정으로.

철컥.

열렸다.

“….”

그는 멀뚱히 자신의 손을 쳐다봤다. ? 저 약을 먹어서? 약이랑 문이랑 무슨 상관이라고? 얼빠진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환각이나 함정이라도 되는 양, 복도 앞으로 살포시 손을 내밀어보거나 볼펜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문이 열린 건 분명했다.

“…어쨌든 나가보죠.”

웃는 남자의 말에 따라, 일행은 강의실을 나섰다. 세상은 무엇 하나 달라진 건 없었다. 오래 되어 때가 탄 벽도, 강의실 안의 낡은 책걸상도. 단 하나, 그들 외에 다른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자리를 옮기자고 했던 그 교수조차도. 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린 건지. 한 발짝 한 발짝 신중하게 떼던 걸음도 갈수록 긴장이 풀려, 이곳저곳을 관찰하며 터벅터벅 걷게 되었다.

왜 아무도 없는 거지?”

“…무슨 이유로 건물을 임시 폐쇄한 거 아닐까요? 경비 아저씨가 저희는 미처 못 보고 문을 잠궜고.”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건 어처구니없는 우연이 만들어낸 별 것 아닌 해프닝일 뿐이라고. 그러나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우리는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뭐야 이게.”

아무도 없었다. 햇볕이 쨍쨍하게 내리쬐는 평일 한낮인데, 학생회관 앞에도 중앙도서관 앞에도 가로수길에도, 아무도 없었다. 그 이전에, 차 소리나 매미 소리를 포함하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세상에서 그들을 뺀 모두가 증발해버린 것처럼. 현명은 한기를 느꼈다. 팔에는 닭살이 오소소 돋아있었다. 교수는 장소를 옮기겠다고 했다. 그러면 대체 여긴어디지?

끼이이-

멀리서 울려퍼진 소리에 퍼뜩, 일행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앞쪽에서 들린 소리였다. 마치익룡의 울음소리 같은. 서로의 눈길이 마주쳤다. 너도 들었어? 그리고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가 들린 쪽, 학교 정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소리는 두 가지가 섞여 있었다. 끼이익, 하는 높다랗고 째지는 소리와 간혹 들려오는 으르렁대는 낮은 소리. 두 소리 모두, 현실에서 들어봤음직한 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비슷한 걸 영화에서 들었었는데. 그래, 이를테면… ‘쥬라기 공원같은.

정문 앞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말을 잃었다. 정문 앞 도로에서는 휘황찬란한 깃털로 온 몸을 치장한 새 한 마리와 전신이 유리로 뒤덮인 듯, 반짝반짝 빛나는 사자 한 마리가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두 마리 모두 사람보다 월등히 큰 덩치였다.

크헝!

사자가 울음을 토해내며 앞발로 새를 후려쳤다. 새는 날아오르며 앞발질을 피해, 사자를 향해 날개를 훅, 휘둘렀다. 오색 찬연한 깃털이 사자의 몸을 후려쳤으나, 쩡 하는 소리와 함께 깃털은 힘없이 튕겨나갔다. 영화와 다름없는 광경이었다.

그때, 등 뒤에서 딩동댕동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학교 방송이 나오기 직전 울리는 벨소리였다. 일동은 무의식중에 뒤를 돌아봤다.

-, 거기 정문 앞에 서 계신 여러분. 퀘스트 완료를 축하드립니다.

사라진 교수였다.

-보시다시피, 이곳은 평범한 세계가 아닙니다. 정해진 명칭 같은 건 없지만, 우리 과목 명도 있고 하니이세계라고 부르죠.

-여러분은 앞으로 3개월간,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순간, 뒤에서 콰직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끼이익하는 새의 째지는 비명.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런 곳에서, 살아남으라고?

“…미친새끼.”

이번만은 체대생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 참고로 정문에선 가능한한 빨리 떨어지는 게 좋을 겁니다. ‘갈리온은 새 한 마리 잡아먹는다고 만족할 사냥꾼이 아니거든요.

눈을 돌린 일동은 새의 몸뚱이에 주둥이를 쳐박고 으적으적 씹어먹는 사자를 보았다. 턱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새의 몸에선 울컥울컥 피가 솟아나왔고, 새는 움찔움찔 경련을 일으켰다. 현명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어느새,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리고 있었다. 최대한 가까운 건물로, 놈의 눈에 띄기 전에…! 그런 그들의 등 뒤로 교수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대로 오리엔테이션을 끝내는 것도 좀 그러니까, 간단한 퀘스트를 하나 주도록 하죠.

간신히 건물 현관에 들어섬과 동시에, 손목의 스마트워치가 부르르 떨었다. 현명은 가쁜 숨을 삼키며 스마트워치를 들여다봤다. 퀘스트 앱에 알람이 하나 떠 있었다.

 

칼립을 사냥하시오. (0/10)

 

『남은 시간: 1시간 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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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소설입니다. 여기에 올리는게 맞을까 모르겠습니다 ㅇㅅㅇ... 만약 게시판이 어울리지 않는다 하시면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셨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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