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관동대지진이 무슨 사건인지 알고 계십니까?
관동(간토)대지진
: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관동(간토)지방에 일어난
대지진과 이에 반하여 발생한 학살사건.
1923년 도쿄 일원의 관동지방은 대지진이 일어나 큰 인명, 재산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민심과 사회질서가 혼란스러워지자 일본정부에서는 악의적으로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 약탈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트려 일본인들의 관심을 조선인들의 학살에 초점을 맞추게 했습니다.
"그 사람은 절간 마루 아래 몸을 감추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쉰 목소리로 말헀다.
......
사람들에게 들키면 죽임을 당하게 될테니 살려달라며 애원했다.
그 때 밖에서 사람들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조선인이 묘지 쪽으로 들어갔다며 잡아서 죽여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자경단원들의 발자국 소리가 절간 안으로 들어왔다.
......
그리고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노 엘 부쉬의 <12시 2분전> 중에서-
"도쿄로 가는 길에 우리는 자경단원들 때문에 여러 번 차를 세워야 했다.
이들은 칼과 죽창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이었는데 매우 흥분한 모습이었다.
......
한번은 이들 자경단원들이 우리 운전기사를 가리켜 한인이라고 소리치면서 끌어내려고 했다.
다행히 자경단원들 가운데 한 명이 영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에,
운전기사는 즉석에서 살해당할 위기를 모면헸다."
-조슈아 해머 <불타는 요코하마> 중에서-
관동대지진 당시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일본 사진들
<출처 - 미국지질연구소. AP.브라운 대학 등이 소장>
관동대지진 사건 당시 일본자경단원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사람들 사진
<출처 - 재일한인역사자료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출처 - 일본국립역사민속박물관>
올해 도쿄도 교육위원회에서는
'대지진의 혼란 와중에 수많은 조선인이 학살됐다.'라는 문장을
내년부터는
'조선인이 귀중한 목숨을 빼앗겼다.'라고 바꾸기로 했다 합니다.
'학살'이란 표현이 오해를 일으킬 수 있어서 바꾸었다고 하는데, 명백한 학살 사건임이 분명한데,
무엇이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건지 의문입니다.
일본 교과서 7종 중
교육출판, 일본문교출판, 청수서원은
학살주체는 있었지만 피해 범위에 대해서는"많은 조선인과 중국인이 살해됐다."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고,
동경서적, 육봉사, 자유사는
학살주체가 일본 군경과 자경단이었다는 사실과 조선인 학살숫자를 누락하였으며,
제국서원은
아예 관동대지진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관동대지진 사건이 일어난 지 90년 동안 일본 정부는 진상규명과 사죄는 커녕,
사실을 왜곡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사실은
관동대지진 사건이 일어난 그 해 12월 독립신문의 상해 임시정부 사장 김승학이
조사 후 희생자 수가 6661명이라고 밝혀낸 것을 끝으로
한국정부는 한 번도 관동대지진 사건을 공식적으로 거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정부는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당한 중국인에 대해서 자국민철수와 보상금까지 받아내었는데도 말입니다.)
더군다나 일본 여배우 구로다 후쿠미씨가
SBS 8.15특집 다큐멘터리 <아!관동대지진 - 조선인 참살의 영상증언>에 출연하여
한국의 독립기념관에는 관동대지진에 대한 코너가 없음이 신기하다고 얘기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저희 씨펀에서는 여러분의 후원을 받아
1) 국회의 진상 규명 특별법 제정 요청
2) 관동대지진에 대한 국민의 관심유도
3) 일본의 공식 사과 촉구
를 위해 관동대지진 관련 영상을 제작하여
국회 및 일본 대사관 등에 전달하고
유튜브를 비롯 각종 SNS에 배포하고자 합니다.
관동대지진 사건 영상 제작 프로젝트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