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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보완] 욕을 '먹는' 섬 이야기 (17+)
게시물ID : panic_898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비_
추천 : 25
조회수 : 2423회
댓글수 : 15개
등록시간 : 2016/08/06 03:5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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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글에는 거친 욕설이 다량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동해바다 어딘가,

 

지도에 없고 레이더에도 포착되지 않는 섬이 있다.

 

 

독도로 이르는 항로 중 가장 어둑한 물결 너머,

 

그림자 드리우는 외진 그늘 아래.

 

음산하고 눅눅한 섬이 있다.

 

심연 깊숙한 섬엔 그만큼이나 암울한 이들이 산다.

 

그들은 거칠고 난폭했으며 웃을 줄 몰랐다.

 

살아가고 있었지만 활기라곤 없다.

 

숨 쉰다는 건 호흡 이상의 아무 의미도 없다.

 

 

섬에 이름은 없다. 그저 섬.

 

석유 같은 바다가 사방을 휘돌고

 

짐승처럼 파도가 엉겨 붙은 곳.

 

타르 찌꺼기가 뭉쳐진 듯 거무죽죽한 토지 위

 

햇볕은 차마 닿기도 전에 증발해 버린다.

 

그곳엔 작물이 자라지 않는다.

 

동물이 살아남지 못한다.

 

 

다행히도, 섬에 그런 것은 필요 없다.

 

채식이나 육식 없이도 식량이 넘쳐났다.

 

섬사람들은 보다 특별한 것을 먹었다.

 

재배도 사냥도 관리도 가공도 필요 없는 이상적 식품.

 

섬 주민 모두의 입맛에 부합하는 보편적 식품이자

 

유통기한과 잔반 없는 깔끔한 식품.

 

주방 없이 요리되고, 식탁 없이 둘러앉아,

 

식기 없이 담아 먹는 효율적 식품.

 

기아와 빈곤 없이 섬사람 모두를 먹일 수 있는

 

평화적 식품이 존재하였으므로.

 

 

''

 

 

그래,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욕을 먹는다'

 

혹은 '욕먹을 짓 했다'의 그 욕.

 

다만 우리의 어휘에서 욕을 '먹는다'

 

귀를 통해 '듣다'가 되지만

 

섬에서의 '먹는다'는 말 그대로 배를 불린다는 의미다.

 

 

섬 주민들은 욕을 먹고 살아왔다.

 

욕이 그들의 주식이자 간식이자 야참이다.

 

아침이면 그들은 욕을 주고받는다.

 

기지개를 켜며 욕으로부터 하루를 시작한다.

 

 

입맛과 기호에 따라 욕도 다양한 메뉴가 존재한다.

 

요즘은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을 하지는 않는다고 들었다.

 

섬에도 웰빙 열풍이라 소식과 몸매 관리가 대세라나?

 

저녁 6시가 넘으면 어떤 욕도 주고받지 않는 아가씨들이 있는데

 

그녀들은 밤이 깊을수록 배고픔을 참기 힘들었다.

 

그럴 땐 가벼운 비속어로 요동치는 위를 살짝 달래고

 

다음 날 아침 거친 욕을 거하게 주고받는다.

 

자고로 아침이 든든해야 하루가 튼튼할지니.

 

 

간혹 이루어지는 회식은 욕의 천국이다.

 

얼근하게 취한 사람들은 갖은 욕을 주고받으며 만찬을 즐긴다.

 

섬의 술은 마음 깊이 담아둔 끈적한 앙심을 뱉어내어 빚는데

 

미움의 골이 깊을수록 도수가 높다.

 

때로 사람들은 취해서 토하고 쓰러질 때까지 헐뜯었다.

 

 

욕은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여 시중에 다양한 욕 요리법 책이 나와있다.

 

가장 고급 음식은 살의를 담은 욕으로

 

과거 궁중음식이자 왕만이 먹을 수 있던 귀한 요리다.

 

그건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감정을 거짓 없이 내뱉으며

 

갖은 상소리를 지껄여 만드는데,

 

요리를 하는 사람의 목구멍이 녹아내리고

 

입 속은 죄다 헐어서 종국엔 벙어리가 된다는 위험한 요리다.

 

 

하지만 그것도 다 옛날이야기인지

 

최근 섬 주민들은 대중화된 궁중요리를 부담 없이 즐기는 추세다.

 

이쪽 분야 유명인사로는 섬안에 30개의 요릿집 체인을 가진 백종간나 셰프가 있다.

 

 

 

 

#.2

 

어쨌든,

 

그렇게 평화롭던 - 적어도 그들 스스로에겐 - 섬에 한 아이가 태어난다.

 

 

아이의 어머니는 평생을 소식하며 과한 욕을 멀리한 사람이었다.

 

아이를 가진 당시 여인은 태교를 위해 산책을 하러 갔다.

 

생기 없는 나무들이 말라비틀어진 산책로를 걸으며

 

여인은 씨,발디의 클래식을 들었다.

 

충만한 짜증으로 터벅터벅 길을 걷던 그녀는

 

잠시 지친 다리를 쉬려

 

아까워서 주지 않는 나무둥치에 않아 숨을 돌렸다.

 

 

그때, 어찌 된 일인지

 

미처 증발되지 못한 한 줄기의 햇살이 그녀 위로 내렸다.

 

생전 처음 맞는 불쾌한 따스함과

 

소름 돋는 찬란함에 그녀는 몸서리쳤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시름시름 않다가 2달 후 애처로운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다.

 

어미의 시체를 스스로 가르고 아이는 고개를 내밀었다.

 

잿더미 같은 어미의 뱃가죽과 달리 아이는 하얗고 투명했다.

 

사람들은 아이들 보고 불길한 태양빛을 받아 태어났다 하여

 

흉광이라 이름 지었다.

 

 

 

빛으로부터 태어난 아이는 섬 주민들에게 거부의 대상이었다.

 

모두가 꺼려했고 멀리했다.

 

흉광은 외로웠다. 너무 배고팠다.

 

 

흉광은 아무리 욕을 먹어도 배 부르지 않았다.

 

어떤 심한 욕을 해도 야위어만 갔다.

 

주민들은 그런 흉광을 내심 두려워했다.

 

함부로 죽였다간 어떤 재앙이 닥칠 것만 같아

 

어쩌지도 못하고 매일 욕만 퍼부었다.

 

 

이내 주민들은 섬에서 가장 모욕적인 처벌을

 

흉광에게 내리기로 했다.

 

자신들도 못 견딜 것을 알지만

 

흉광이의 마음에 고통을 주기 위해

 

굳은 결심을 한 것이다.

 

흉광에겐 섬 최고의 모욕인

 

칭찬의 벌이 주어졌다.

 

 

주민들은 교대로 흉광에게 칭찬을 했다.

 

한마디 한마디 칭찬을 할 때마다

 

자신들도 머리가 부서질 듯 아팠지만

 

기꺼이 참아내며 시간마다 흉광의 집을 찾았다.

 

 

매 시각마다 한 사람씩

 

흉광의 귀에 대고 부드러운 칭찬을 속삭였다.

 

한번 칭찬을 한 주민은 이틀을 앓아누웠기에

 

사람들은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해야 했다.

 

 

훗날 죽음 앞에 선 흉광은

 

그때를 인생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회상한다.

 

왜냐하면 흉광은 사실 칭찬을 들을 때 비로소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칭찬의 벌이 시작된 이후 오래지 않아 흉광의 전신에 살이 피둥피둥 올랐다.

 

그제야 섬사람들은 흉광이 칭찬으로 배부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

 

흉광은 사실 으리으리한 저택에 살았다.

 

섬 지도자의 저택이었는데 흉광은 그의 서자였다.

 

생전 흉광의 어미는 지도자의 첩실이었다.

 

 

어둠의 기운이 가장 강한 자,

 

욕을 누구보다 상스럽게 내뱉는 자가

 

지도자로 추앙받는 섬에서

 

빛으로부터 태어난 흉광은 지도자의 약점이었다.

 

 

칭찬의 벌이 실행된 배후에는 지도자가 있었다.

 

헌데 그 덕에 흉광이 비옥해지자

 

죽이기를 포기한 채 꽁꽁 숨기어 가둬 버렸다.

 

물론, 물리적으로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겠지만

 

빛을 받은 아이를 함부로 찔렀다가는

 

재앙이 닥쳐온다는 무당의 말이 떠올랐다.

 

 

지도자는 모두가 꺼리는 장소인

 

저택 마당 가장 양지바른 곳에 나무집을 지었다.

 

그곳은 흉광의 어미가 산책 중 빛을 받은 곳으로

 

그때 한번 새어든 빛이 거두어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내리쬐었다.

 

아주 작고 엷은 빛줄기였지만 섬사람 누구도 그곳에 접근하기를 꺼려했다.

 

음지에서 지은 나무집을 옮기다 인부 세명이 빛에 노출되어 즉사했다.

 

 

그 무렵 칭찬릴레이에 참여했던 섬 주민 대부분이

 

기력이 쇠해 몸져누워 버렸다.

 

칭찬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영리한 흉광은 사람들이 찾아오던 시절,

 

칭찬 소리를 작은 테이프에 녹음시켜 두었다.

 

흉광은 아버지의 마당 한 켠,

 

개 집보다 조금 큰 나무집 속에서

 

카세트를 들으며 식사를 했고 배가 부르면 누워 잠을 잤다.

 

 

흉광은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곳에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살았다.

 

오래지 않아 사람들은 흉광의 존재를 차차 잊어갔다.

 

 

 

 

#.4

 

 

그로부터, 10.

 

흉광을 기억하는 섬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이 흉광을 잊어가는 동안 그는 어느새 청년으로 자랐다.

 

좁은 나무집에서 웅크려 지낸 흉광의 허리는 꼽추였고

 

머리는 한 번도 자르지 않아 온몸을 뒤덮었다.

 

 

 

걸어 다니는 덩굴이 되어버린 그에게서

 

어떤 활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설상가상 하루에도 몇 번씩 돌려 듣던 테이프가 늘어졌다.

 

몇 달 전부터는 재생조차 불가능했다.

 

 

흉광은 죽을 날만 기다렸다.

 

풍요로운 욕 속에서 만인이 비옥한데

 

흉광만이 메말랐다.

 

 

 

만일 그가 죽는다면

 

아마도 섬 최초 굶어 죽은 사람으로 기록될 것이다.

 

 

 

 

#.5

 

 

그렇게 아사의 날을 기다리던 어느 오후.

 

흉광을 다시 살아나게 만드는 사건이 벌어진다.

 

지도자에게는 어미가 다른 자식이 여럿 있었는데

 

흉광을 제외하고는 모두 으리으리한 대저택 안에 살았다.

 

다만, 흉광이 지내는 양지바른 곳 가까이 오는 형제는 없어서

 

그는 아버지의 다른 자식들을 본 적 없었다.

 

 

그 어느 날, 아사직전에 이른 흉광이 욕이라도 먹어볼까 해서

 

스스로 습하고 어두운 저택 가까이 기어가던 순간,

 

그만 보고 말았다.

 

 

해골이 잔뜩 그려진 검은 드레스를 입고

 

칠흑 같은 머리를 찰랑이며

 

쉴 새 없이 욕을 내뱉는 한 여자.

 

 

 

그녀는 지도자의 막내딸 이었는데

 

어찌나 앙증맞고 예쁜지

 

섬 주민 모두가 그녀를 미워했다.

 

지도자 또한 그녀를 유독 싫어해서

 

섬의 모든 욕은 그녀 혼자 들어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흉광은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다.

 

온몸 충만한 사랑을 느끼는 순간

 

들러붙었던 뱃가죽이 팽팽해지고

 

치렁거리던 머리카락은 두피 속으로 빨려 들어가

 

단정히 자리 잡았다.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고

 

굽었던 허리는 곧게 서

 

당당하고 위풍 있는 골격을 갖추었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청년으로 변모한 흉광은

 

황홀한 눈빛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도 이내 눈부신 빛을 내뿜는 흉광을 발견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짐을 느꼈다.

 

그리곤 수줍게 혼잣말했다.

 

 

- ... 뭐야 씨,.

 

 

마침 저택을 나오던 지도자의 눈에 그 광경이 발각되었다.

 

그러나 지도자는, 막내딸이 얼굴 붉힐 만큼 아름다운 청년이

 

흉광이라고는 차마 상상치 못했다.

 

 

다만 그 고색 찬연한 빛에 압도당해

 

선명한 불길함을 느꼈다.

 

 

이내 지도자의 뇌리에 잊혔던 지난날의 저주가 떠올랐다.

 

마당에 묻어두었던 하얗고 맑은 저주.

 

무당은 지도자에게 흉광이 빛을 찾는 순간

 

섬이 몰락할 것이라 예언했었다.

 

 

지도자는 그 자리에서 딸의 복부를 강하게 걷어찼다.

 

경비원을 불러내어 흉광을 흠씬 두들겼다.

 

흉광은 개처럼 끌리어 헌 나무집에 다시 처박혔다.

 

 

경비를 더 삼엄하게.

 

나무집을 빙 둘러 도사견을 배치하도록.

 

지도자의 명이었다.

 

 

 

 

#.6

 

며칠 후 서로에게 온 힘을 다해

 

욕해주어야 하는 섬의 축제

 

'헐뜯음의 날'이 찾아왔다.

 

 

흉광은 잠시 빛을 찾는가 했더니

 

며칠 새 더 야위었다.

 

이상하게도 사랑에 빠진 순간부터

 

욕을 들을 때마다 온몸이 아파 왔다.

 

전에는 배가 부르지 않았을 뿐 고통은 없었는데

 

이제는 욕만 들리면 머리가 부서질 지경이었다.

 

섬 전체에 울려 퍼지는 축제 축하 공연 노래 속 욕지거리 가사들.

 

흉광은 웅크리고 귀를 틀어막았다.

 

 

사방이 욕으로 충만한 하루,

 

견디기 힘든 시간들에 고통받으며

 

흉광은 죽어가기 직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지붕을 뜯어냈다.

 

흉광은 놀랄 기력도 없었지만,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지도자의 막내딸이 서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흉광을 부축해 일으켰다.

 

사방의 도사견이 거품을 뿜고 쓰러져 있었다.

 

 

- 좆만 한 개,새끼들. 저녁밥에 독을 탔거든.

 

 

그녀는 주위를 살피고는 말을 이어갔다.

 

 

- 아버지와 그 애새끼들 전부 광장에 있어.

 

논다고 븅신들이 헤벌레 있더라고.

 

경비들도 깡그리 축제에 갔어."

 

 

 

얼빠진 얼굴로 흉광이 답했다.

 

 

- 그렇군요...

 

 

 

- 속 터진다, 개불알 같은 놈. 지금이 기회라고 상병신아.

 

 

그제야 말귀를 알아먹은 흉광이었지만

 

여자에게서 몸을 떼며 바닥에 도로 털썩 주저앉았다.

 

 

- 뭐해! 야 이 미,친새끼야! 내가 지금 얼마나 쫄리는 줄 알어?

 

진짜 이 씨부럴 탱탱부럴 같은 븅딱을 봤나? 이 미,친 또라...

 

 

그녀가 말을 할수록 흉광의 표정이 어두워져 갔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며 머리를 부여잡는 흉광의

 

이마 위로 힘줄이 점점 불거졌다.

 

 

 

그녀는 무엇이 문제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손톱을 물어뜯으며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이내 결심이 선 듯 결연한 표정으로 흉광의 두 볼을 움켜 잡았다.

 

 

- ,, ,새끼. 이빨 닦은 지 존나 오래됐을 텐데? 아후...

 

 

그녀의 검은 입술이 흉광의 시궁창 내 나는 입 위로 포개졌다.

 

키스가 시작되자 흉광의 전신에 빛이 살아났다.

 

입에선 꿀 내가 풍겼고 혀는 달고 부드러웠다.

 

 

두 사람의 키스는 오래전부터 그래 왔듯 자연스러웠다.

 

터질 듯 두 방망이질 치는 심장이 맞닿았다.

 

흉광은 잠시 키스를 멈추고 한 발 떨어져 그녀를 바라보았다.

 

실크처럼 부드러운 흑발과 까맣고 깊은 눈동자.

 

매끈한 콧날과 검고 작은 입술.

 

무엇보다 하늘거리는 몸매의 숨 막히는 곡선이 흉광을 미치게 했다.

 

그녀를 품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흉광은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바닥에 뉘었다.

 

그녀는 욕도 못하고 얼어붙어서

 

흉광이 하는 데로 가만있을 따름이었다.

 

어느새 두 사람은 벌거벗은 채 하나가 되어 서로를 탐했다.

 

 

그녀도 더 이상 절제할 수 없었다.

 

사랑의 기쁨으로 충만한 순간마다

 

그녀는 담지 못할 욕을 뱉었고

 

귓전에서 울리는 상소리에 흉광은 머리가 깨질 듯했지만

 

사랑이 모든 것을 이겼다.

 

 

흉광은 다만 키스를 멈추지 않았다.

 

키스의 순간만큼은 어떤 욕도 입 밖으로 흐르지 못하였으므로.

 

 

 

 

 

#.7

 

젊은 남녀의 위험한 사랑은 한동안 지속됐다.

 

흉광은 그녀에게 빠질수록 두통이 심해졌고

 

그녀는 흉광을 사랑하게 될수록 야위어만 갔다.

 

 

섬의 토종 사람들에게 사랑은 실로 위험한 것이었다.

 

아름다운 감정은 따뜻한 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 가장 문제였다.

 

사랑의 언어가 섬을 뒤덮는다면 주민들은 굶어 죽을 게 분명했다.

 

때문에 섬에서의 결혼은 강간과 다툼과 치정뿐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불쌍하게도 사랑에 눈 떴으니

 

마음은 의도치 않게 따뜻해지고 착해지고 아름다워져서

 

하루하루 말라가고 야위어 곧 죽을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자신은 어찌 되든 아랑곳없이 그녀는 흉광을 사랑했다.

 

사랑이란 그런 거니까.

 

 

그녀는 흉광을 위해 무엇이던 해주고 싶었다.

 

섬에서 배척받고 유린당하는 가여운 사랑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결론은 권력이었다.

 

흉광이 높은 지위를 갖게 되고 명예를 얻는다면?

 

나아가 섬의 수뇌부를 차지한다면?

 

아니, 지도자가 된다면?

 

 

그녀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리곤 아주 정중하게 부탁했다.

 

 

 

- 아버님, 송구스럽지만 소녀 작은 소망이 하나 있사와요.

 

 

크게 노한 목소리로 지도자는 딸을 꾸짖었다.

 

 

- 아이, ,친씨,발년 깜짝이야!

 

워서 그 따우 붕신 말투로 조사대고 난리여?

 

쓱을 년이 미,친놈이랑 마주치더니 헤까닥 돌았나?

 

 

 

사랑으로 다시 태어난 그녀는 굳건했다.

 

 

- 아버지, 그 사람은 미치지 않았답니다.

 

저는 그이를 사랑해요.

 

우리는 이미 깊은 정분을 나눈 사이인걸요.

 

부탁이어요. 그 사람에게 권력을 주셔요.

 

그이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지도자는 뒷목을 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한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가만히 서랍을 열어 권총을 꺼냈다.

 

성큼성큼 걸어나가 막내딸을 밀치고는 마당으로 향했다.

 

나무집을 향해 가며 멀리서부터 총을 쏘아 댔다.

 

 

- ,새끼야! ! 버러지 같은 새끼야! !

 

곧 뒈질 거, ! 씨밤, 그래도, ! 핏줄이라고, ? !

 

지 동생을 따먹어? ! ! 너이 씨,발새끼 봐라, !

 

사지육신을 씨,, ! 갈가리 찢어 놀 거야, 내가 씨,, !

 

 

갑작스러운 총성에 뒤도 안 보고 도망치는 흉광이었지만

 

어두운 밤이라 그런지 지도자는 단 한 발도 맞추지 못했다.

 

저 멀리 흉광이가 대문을 지나 사라졌음에도

 

지도자는 아직까지 낡은 판자 위에 총을 쏘며 씩씩댔다.

 

 

- , ,친년아. 도망치는 거 보이냐?

 

저 씨,발 패배자 같은 뒤꽁무니가 보이냐고!

 

결국 저 정도 새끼야. ?

 

내일 당장 수배령을 붙일 거다.

 

저 근친 새끼 대갈통을 들고 오는 사람한테!

 

,, 존나 돈 많이 줄 거라고, ,발련아!

 

 

그녀는 지도자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질질 끌려 방으로 내몰려야 했다.

 

 

그녀는 새벽 내내 울었다.

 

울음소리 덕에 저택의 다른 형제자매들은 숙면이었다.

 

아침이 다 되도록 울다 지친 그녀는

 

아버지 침실로 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반성했다.

 

 

지도자는 흡족해하며 딸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에구 미,친년, 에구 미,친년, 하며 측은한 딸의 모습을 흡족해했다.

 

 

그녀는 지도자 가슴에 묻혀 고동치는 심장소리를 들었다.

 

훌쩍이며 어깨를 들썩이다가

 

지도자가 풀 스윙으로 뒤통수를 후려치는 순간

 

털이 수북한 살찐 가슴 깊이 칼날을 박아 넣었다.

 

칼은 오차 없이 심장에 들어앉았다.

 

지도자는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짜내어 힘겹게 딸을 향해 말했다.

 

 

- 그래도 아빠는 널 사랑한다.

 

 

쓸데 없는 말을 내뱉은 지도자의 육체는

 

그대로 검은 재가되어 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흉광의 귀한 사랑이자

 

아버지의 씨,발스런 귀염둥이였던 막내딸은

 

그 밤 모든 식구를 살해했다.

 

 

수법은 같았다. 신속하게 각 방을 돌며,

 

울며 가슴에 묻히고 뛰는 심장소리를 듣다가

 

그대로 칼을 들이박았다.

 

 

 

그녀의 다섯 언니와 일곱 오빠들은 모두 꺽 소리도 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후 그녀는 섬의 지도자가 되었다.

 

 

주민들은 되려 기뻐했다.

 

그토록 악독하고 잔인하다면

 

훌륭한 지도자가 될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나아가 그 정도 마귀 같은 여자가 선택했다면

 

흉광에게도 남모를 잔혹함이 숨어있을 거라는 기대.

 

 

그녀와 흉광은 큰 저항 없이 섬의 권력을 차지할 수 있었다.

 

욕설로 풍요로운 섬 안에서 흉광과 아내는 오래도록 행복하게...

 

 

 

 

#.8

 

 

살았으면 좋으련만 사랑은 끝내 재앙이었다.

 

 

사랑에 빠진 막내딸은 욕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흉광을 위해 아름다운 말만 건넸다.

 

사랑에 빠진 그녀의 마음은 행복과 충만함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근본은 섬의 자식인 그녀에게

 

그것은 치명적이었다.

 

 

 

욕과 미움 없이 살아간다는 건 아사를 의미했고

 

나아가 사랑으로 아름다운 말을 뱉는다는 건 고통을 야기했다.

 

그녀는 흉광과 사랑의 밀어를 속삭일 때면

 

깨어질 듯 머리가 아파오고 온몸이 욱신댔지만 굳세게 참아냈다.

 

흉광을 위해 자신을 버렸다.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갔고 병약해졌다.

 

그녀는 오래 살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사랑하다 죽는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운명이었다.

 

문제는 그녀가 죽은 뒤 혼 자 남을 흉광이었다.

 

 

그녀는 남은 시간 동안 흉광을 위해 섬을 바꾸겠노라 결심했다.

 

그녀가 죽더라도 흉광이 살아갈 수 있도록.

 

법률부터 재정했다.

 

 

 

욕 금지 특별법, 시기 금지 특별법,

 

미움 금지 특별법,

 

질투, 악의, 살인 금지 등

 

갖은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당연히 섬 주민들의 불만이 쌓여갔다.

 

매일 민원과 시위의 연속이었다.

 

 

마침내 칭찬 장려운동과 사랑 헌법이 발표되었을 때

 

민중은 들고일어났다.

 

 

 

그런 것들을 먹고 살다 간 머리가 터져 죽을지도 모르는데,

 

국민의 실생활도 모르는 지도자가 무슨 정치를 하겠느냐고.

 

고위층 간부들조차 그녀의 정책에 불만을 품었던 터이고

 

흉광이 권력을 지니고 있음이 내내 맘에 들지 않았던 무리들도 많았기에

 

반란의 불씨는 금세 타올랐다.

 

 

 

 

#.9

 

 

검은 달이 스산히 비추는 어느 밤

 

반란군은 저택에 침입했다.

 

 

저항은 없었다.

 

조용히 문을 연 사람은 흉광이었다.

 

 

흉광의 손에는 이미 야위어 주검이 된 그녀,

 

지도자의 시체가 들려 있었다.

 

 

흉광은 가만히 반란군 사이로 들어가 포박당했다.

 

모든 것을 체념한 눈빛에는 초점이 없었다.

 

 

한 가지, 흉광은 그녀의 시체를 묻을 시간을 부탁했다.

 

반란군은 단칼에 거부하고,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 불태웠다.

 

 

반란군은 흉광을 광장 한복판으로 끌고 갔다.

 

섬의 모든 주민이 그를 에워싸고 한 마디씩 차례로 욕을 내뱉었다.

 

 

쉴 새 없이 들려오는 욕들과 거칠고 상스런 소리에

 

흉광의 머리가 부풀며 이마에 수많은 힘줄이 불거졌다.

 

욕은 점점 구호처럼 여러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쏟아졌다.

 

흉광은 머리를 쥐어 싸고 바닥에 쓰러졌다.

 

 

 

전신을 감싼 빛이 바래고

 

다시 꼽추의 덩굴 머리 거지가 나타났다.

 

 

흉광을 에워싼 섬 주민들이 반란군 리더의 외침에 따라

 

욕을 제창하기 시작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제 몸보다 크게 부풀어 오르던

 

흉광의 머리가 터져버렸다.

 

 

 

 

#.10

 

 

나중에 시체를 치우던 청소부 말로는

 

그의 머리를 검은 봉지에 넣을 때

 

찢겨나간 흉광의 입술 조각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 ,, 존나 엿 같은 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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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nangbi입니다.

 

닉을 한글로 바꾸었어요.

 

 

좀 더 쉽게 기억되고 싶어서.

 

  

_

 

    

올해 초 올렸던 이야기였어요.

 

소소하게 수정해 보았습니다.

    

 

더 나아졌다고는 자신 못하겠네요.

 

아무쪼록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https://brunch.co.kr/@nang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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