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홍콩이 한국 정부와 의료계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대응에 불만을 제기하며 한국에서 오는 여행객에 대한 검역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메르스 관련 정보 제공을 거부하는데다 감염이 의심되는 한국인들이 해외에서 시설 격리 조치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보여 해외 여론도 한국에 대해 싸늘하다.
렁팅훙(梁挺雄) 홍콩 위생방호센터 총감은 1일 “우리는 메르스 환자로 확진 판정을 받은 한국인 K씨가 현지에서 치료를 받았던 두 의료시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줄 것을 한국 정부에 수 차례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답이 없다”며 “따라서 어제(지난달 31일)부터 한국에서 입국하는 모든 여행객을 상대로 메르스에 대한 관리를 강화했고 특히 발열 등 이상 증세를 보이거나 한국에서 병원을 방문한 경력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격리 등) 집중 관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렁 총감은 또 “한국이 병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의료관리당국 등 관련 부서 관계자들과 논의를 거쳐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메르스 늑장 대처는 물론, 관련 정보 제공 거부에 대한 불만을 관련 조치 강화로 대응한 것이다. 위생방호센터의 다른 관계자는 “메르스 의심 환자의 경우 병원에 보내져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올 때까지 격리된다”고 설명했다.
렁 총감은 이어 “1일부터 모든 병원에서는 (전염병에 대처하는) 응급 대응 체제를 가동하고 병원에 가는 모든 시민은 외과용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토록 했다”고 덧붙였다. 1일 현재 중국과 홍콩에서는 모두 86명이 격리돼 있으며 이중 한국인은 11명이다.
위생방호센터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를 거쳐 홍콩에 들어온 홍콩인 남성(68)이 메르스 감염 의심 증세를 보여 격리됐다고 2일 밝혔다. 이 남성은 지난달 29일 스웨덴을 출발해 두바이에서 환승해 홍콩에 도착했으며 기침과 콧물 등의 증상을 보여 홍콩 마거릿 의원에서 격리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또 두바이 체류기간 중 낙타는 물론 낙타와 연관된 식품이나 제품과도 접촉하지 않았으며 현지에서 의료기관도 찾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의 상태는 현재 안정적이다. 이 남성은 메르스 환자인 한국인 K(44)씨 외에 중국 및 홍콩에서 의심 증세를 보여 격리 조치된 현지인으로는 두 번째다. 앞서 두바이를 다녀온 30세 홍콩 여성은 지난달 말 고열과 기침 호흡곤란 등 메르스 의심 증세를 보였지만 음성 판정을 받았다.
메르스 사태가 확산하면서 한국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고 중국인들의 한국 여행 취소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여행업계는 물론 국내 항공사들도 비상이다.
베 이징의 K 여행사는 이달에만 1000여 명의 중국인의 한국 여행이 예약돼 있는데 1일 두 팀 100여 명이 예약을 취소했고 2일에도 취소를 문의하는 전화 수건이 걸려왔다. 이 여행사 관계자는 “현재 상황이 2003년 중국 사스 발생 초기와 비슷하며 이대로 가면 상당 기간 중국인들의 한국 여행이 큰 폭으로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항공업계도 울상이다. 아시아나 항공의 경우 1일과 2일 이틀 동안 중국인 단체 여행객 수백 명이 항공편 예약을 취소했다. 아시아나 관계자는 2일 “1일에는 '한국을 여행해도 되느냐'는 문의와 함께 개인 승객들이 주로 예약을 취소했으나 2일에는 단체로 취소하고 있어 이번 사태가 중국인들의 한국 여행 공황 사태로 확산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1일 3건의 단체 항공표 예약이 취소됐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문제는 한국 여행은 물론 한국 항공기를 이용한 외국 여행도 꺼린다는 데 있다”며 “한국이 아닌 제3국의 단체 예약도 많은데 이번 사태로 영향을 받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홍콩 봉황망(鳳凰網)이 이번 사태와 관련 네티즌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93%(11만 7438명)가 “자신의 질병을 숨기고 중국에 입국한 것은 매우 무책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 대응에 대해서도 82%(10만4158명)가 “중대한 실수이고 마땅히 해명해야 한다”고 답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일 “한국에서 메르스 진단이 늦어지고 의료기관이 제대로 감염 대책을 세우지 않아 2차 감염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며 “병원 내 감염 예방과 환자 발생에 관한 정보 공유를 철저히 하라”고 전국 자치단체에 긴급 지시했다. 또 의심 환자가 발견되면 보건소 등에 즉시 통보하도록 했다. 한국에서 메르스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일본 유입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후생노동성은 한국에서 들어오는 입국자들 중 발열 등의 증상이 발견되면 상담을 받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일본 내 공항 검역소 등에서는 중동으로부터 들어오는 입국자만을 대상으로 발열 등의 검사와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감염이 의심되면 지정 의료기관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게 되며, 담당 의사는 반드시 후생노동성에 신고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월 메르스를 조속한 신고가 필요한 ‘2류 감염증’으로 규정했다.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검사 시약도 전국 지방위생연구소에 이미 배포한 상태다.
오시타니 히토시(押谷仁) 도호쿠(東北)대 바이러스학 교수는 “가장 우려되는 것은 메르스 바이러스가 변이 과정을 거쳐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감염을 일으키는 것”이라며 “중동을 비롯한 유행국들과 일본을 오가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유입 위험이 높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또 “일본에서도 한국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일본 언론은 이날 한국에서 메르스 감염 사망자가 2명으로 늘었다는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한국에서 감염이 급속히 확산된 데 대해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1일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전파력에 대한 판단과 접촉자 확인 등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고 지적한 뒤, 환자와 접촉한 사람의 확인 등 대책을 철저히 하도록 지시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