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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집 여고생과 우리집 귀신 - 에필로그
게시물ID : love_76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나를믿지마요
추천 : 42
조회수 : 1437회
댓글수 : 47개
등록시간 : 2016/08/03 10:4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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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을 앞에서 서성이기만 하던 동사무소에 들어왔다. 평일 오전임에도 동사무소 안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번호표를 뽑고 등받이가 없는 불편한 의자에 않았다. 내 순서를 기다리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띵동~"


손안에서 구겨져버린 내 번호표의 번호가 나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동사무소 직원에게 번호표를 내밀었다. 업무에 지쳐있는 담당 여직원은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어떤거하러 오셨어요?"


"사망신고하러 왔습니다."


잠시 나를 올려다본 동사무소 직원의 말꼬리가 내려갔다.


"관련 서류 가져오셨죠.."


"네.."


"서류랑 사망자분 신분증, 신청하시는분 신분증이랑 같이주세요. 신청하시는분 도장도 주시구요.."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남편입니다….."


그 한마디를 하고 나는 동사무소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나를 말리지 않았고 나도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한참을 울다가 이제는 내가 울때 다독여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혜연이는 없다.



앞집 여고생과 우리집 귀신 - 에필로그


원룸에서 시작한 혜연이와 나의 신혼은 행복했다. 우리는 월급의 대부분을 모아 결혼할 준비를 했다. 부모님들 께서는 부족한 부분들을 도와주시겠다고 했지만, 우리는 되도록 하나씩 만들어 가는 기쁨을 누리고 싶었다. 시간이 나면 여행을 다니며 웨딩사진을 찍고, 잘나온 사진들은 인화하여 처음 만들었던 스튜디오 액자 옆에 걸어 두었다. 벽에 걸리는 액자가 늘어 나는 만큼 집안의 살람들도 하나씩 생겨났다. 중고로 사서 팔걸이가 맨질 맨질해진 2인용 원목 쇼파와 스프링이 다망가져서 매트리스만 새로 구입한 9년된 침대와 부모님께서 몰래 사서 보내주신 주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양문형 냉장고까지 이제 누가봐도 가족이 사는 집처럼 보였다. 이제 직장도 어느정도 안정이 되어 둘이 함께 사는데 금전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없었다. 우리는 천천히 결혼식 준비를 했다. 그리고 야근을 하는 나를 두고 먼저 퇴근한 혜연이가 부모님과 함께 예단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혜연이가 타고 오던 택시가 빗길에 미끄러졌다. 그리고 다음날인 2006년 6월 22일 오전 6시 10분에 혜연이는 내품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토록 입고 싶어하던 드레스를 고른지 10일 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날은 우리의 결혼식을 60일 앞둔 날이였다.


"우리 오빠.. 나 없다고 게을러지지 말고, 내 몫까지 열심히 살아줘요."


"보고 싶으면 어떻게해.."


"괜찮아 우리오빠는 잘 이겨낼꺼야.. 세상 이쁘고 좋은거 많이보고 나중에 와서 얘기 해줘요.."


"못할것 같은데…"


"아니야.. 착한 우리 오빠는 내 말 잘들어 줄꺼야.. 약속할꺼죠?"


"응…."


숨쉬는 것조차 힘들었던 혜연이는 마지막까지도 나를 걱정했다. 그리고 꼭 잡았던 내손을 놓았다. 장례를 마치고 혜연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항상 혜연이가 앉아 분주한 아침을 맞이하던 화장대 위에 혜연이가 들어있는 상자를 올려 두었다.


"다녀왔습니다…."


이제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병원에서 들려준 사체검안서를 들고 신고기간이 끝나는 2006년 7월 21일 내손으로 혜인이의 사망신고를 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내 삶은 멈췄다. 집안에는 혜연이의 것들도 가득했다. 그것들은 빼고나면 집안에 있어야 할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행거에는 혜연이의 옷들이 가득했고, 냉장고에는 혜연이가 만들어 놓은 반찬들이 그대로 있었다. 뚜껑이 열려있는 화장품을 몇벗이나 닫으려 했지만 한참을 만지작 거리다 내려 놓았다. 나는 아무것도 정리할 수 없었다. 그저 매일 집안에서 혜연이가 남겨놓은 것들 속에서 가만히 있을 뿐이였다. 회사에서는 괜찮으니 쉬고싶은 만큼 쉬고오라고 했지만, 더이상 다른 사람들을 만나 보통의 나처럼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한동안 연락이 안되자 부모님이 집으로 찾아오셨다. 술병으로 가득차서 발디딜틈 없는 현관문을 보고 부모님도 할말을 잃으셨다. 냉장고에 반찬 몇가지를 넣어주시고 청소를 하신후 돌아가셨다. 부모님께 불효하는 것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누군가를 배려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혜연이를 만나고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었다. 몸을 혹사시켜 기절하듯 잠드는 것 말고는 혜연이를 잠시 놓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혜연이가 떠난지 3개월, 나를 걱정해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집에 다녀갔다. 하지만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1년전 혜연이와 내가 전공실에서 결혼식을 올렸던 그날 미옥씨가 찾아왔다. 내 모습을 본 미옥씨는 내 따귀를 때리고 욕실에 집어 넣은후 내보내주지 않았다. 혜연이가 사준 면도기로 오래간만에 면도를 했다. 겨우 봐줄만 해진 모습으로 미옥씨의 손에 이끌려 회사에 복귀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내게 이제 괜찮은지 물어본다. 괜찮은 척하며 괜찮다고 하지만 괜찮지 않다. 이제 항상 슬픈것에 익숙해져 마음속으로 우는법을 알았을 뿐이다. 보통 사람인척 지내다 집으로 돌아오면 벽에 걸려있는 혜연이의 사진에게 혼자말로 인사를 한다.


"다녀왔습니다…"

혜연이와 함께 도장을 찍었던 집의 전세 계약을 2년 연장한후 혜연는 햇빛이 잘드는 납골당으로 이사를 했다. 항상 곁에 두고 싶었지만, 부모님과 장모님이 반대를 하셨다. 이제 내가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은 내가 결혼을 했었다는 걸 모른다. 다만 약지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보고 사귀는 사람이 있는데 안 보여주는 줄 알 뿐이였다. 그리고 나는 혜연이에 대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이제 혜연이와 함께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만나지 않는다. 그렇게 사람들에게서 혜연이는 잊혀져 갔다.

퇴근후 혼자된 시간에는 혜연이를 잊지 않기 위해 추억들이 가득한 물건들 속에서 함께했던 지난 이야기들을 문장으로 적어갔다. 한 단어를 적고 울고 한 줄을 적고 울고 한장을 쓰는데도 한참이 걸렸지만 나는 내가 꼭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혜연이와 함께 일기를 쓰기위해 사 놓았던 노트에 한줄 한줄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혜연이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갔다. 몇권의 노트가 헤지고 빛이 바래졌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3년을 목걸이로 하고 다니던 혜연이의 반지에 스크레치가 많이 났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반지를 빼서 금은방에 맡겼다. 반지를 끼고 있던 손가락이 반지 자국에 까맣게 되어있었다. 그리고 반지를 잠시 빼두었을때 내가 반지를 만지작 거리는 버릇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며칠뒤 반지가 돌아왔을때 나는 목에 거는 대신에 조그만한 비닐 포켓에 담아 지갑에 넣어두었다. 이제 더는 스크레치가 나지 않았다. 혜연이를 보러가야하는 날이 왔지만 가지 않았다.


신입이었던 내가 이제 한팀을 이끄는 팀장이 되었다.  회사도 많이 커지면서 사무실을 옮기기로 하였다. 집에서 멀어졌기에 전세 계약이 끝나고 이사를 했다. 이사짐 회사에서 포장 이사를 무료로 해주겠다고 했지만 괜찮다고 했다. 짐들을 포장하고 상자에 매직으로 이름을 적었다. 아직도 내 것 보다 혜연이 것이 더 많았다. 조금더 큰 집으로 이사를 했지만 집안에 있는 것은 그대로 였다. 이사를 하다가 군대를 가기전에 혜연이와 찍었던 사진의 액자 프레임에 금이갔다. 액자집에가서 새로운 액자로 바꾸었다. 며칠전에 찍은 사진처럼 빛이 났다.


그리고 혜연이가 떠난지 10년이 지났다. 이제 혜연이를 보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만나면 아무말도 할 수 없을것 같아서 편지를 썼다. 2016년 6월 22일 혜연이가 떠났던 그날이 돌아왔다. 프로젝트 때문에 한달내내 회사가 바쁘다 보니 팀장인 나도 월차를 내는데 눈치가 보였다. 오래간만에 내보는 월차라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자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오빠~ 일어나요~~"


"응?? 벌써 아침이야??"


"일어나요~ 오늘 가기로 한거 잊었어요?"


"가야지~ 얼른 씻고 나올께~"


한참전부터 약속했던 일이였기에 이불을 걷어내고 욕실로 향했다. 혜연이가 사주었던 낡은 면도기로 말끔하게 면도를 했다. 며칠전 주말에 미용실에 들려 오랬만에 짧게 정리한 머리카락이 많이 낮설었다. 평상시면 한번으로 끝날 세팅이 마음에 들지않아 다시 머리를 감고 세팅을 했다. 오랫만에 만나는 혜연이를 허트러진 모습으로 만날 수는 없었다.


"오빠~ 짐 잘 챙겼어요?"


"응 다 챙겼어~ 근데 혜연이 만나러는 나 혼자 다녀와도…."


"아닙니다~ 같이 가기로 약속 했잖아요~"


"정말 괜찮아?"


"정말로 괜찮으니까 얼른 가요~나도 만나고 싶어요~"


"응"


"혜준아~ 아빠한테가요~ 아빠한테 안아달라고 해요~"


"우리 아들 이리와~"


혜준이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150km가 넘는 장거리 운전을 했다. 역시나 혜준이가 견디지를 못했다. 휴게소 마다 다 들리면서 2시간이면 갈 거리를 4시간이 걸려서 겨우 혜연이가 있는 납골당에 도착했다. 8년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왔었지만 혜연이가 어디에 있는지는 햇갈리지 않고 찾을 수 있었다. 혜연이는 언제나처럼 밝은 미소로 나를 맞이하여 주었다.


"혜연아~ 오빠왔다~"


"왜 이렇게 오래걸렸어요. 오빠~~"


"미안.."


"우리 오빠 또 울어요?"


"아니... 햇살이 눈부셔서 그래…."





26살의 혜연이에게


안녕 혜연아! 글씨를 너무 못쓴다고 군대 있는 동안 글씨 연습 열심히해서 나오라고 혜연아의 글씨체로 적어준 가나다라 노트를 보고 연습한 글씨체로 너에게 10년만에 편지를 쓰고 있어. 몇년동안 만나러 가지 않아서 오빠가 많이 미워지? 너를 보내던 날, 따라오지 말고 너의 몫까지 힘껏 살다오라는 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지만, 자꾸만 혜연이가 보고 싶어서 정말 참을 수가 없었거든 이건 너그러운 혜연이가 이해 해줘야 하는거 알지?


그런데 왜 보러 왔냐고?

너를 보내고 7년이라는 시간동안 툭하면 울고, 술이 아니면 잠들지 못하는 날들을 보내며 만신창이의 삶을 살던 오빠를, 혜연이처럼 보다듬어 주고 토닥거려주는 사람을 만났단다. 오빠야 당연이 혜연이 이야기를 했지.  더 이상 오빠의 삶에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없을거라고 얘기했지. 그래도 괜찮다는 사람을 만났어. 오랜 시간이 걸려도 괜찮으니 기다리겠다는 사람을 만났어. 너에게 받았던 만큼 과분한 사랑을 주는 이 사람을 오빠는 혜연이가 힘들어 하는 오빠를 위해 보내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일부러 그 날을 골랐던 건 아니지만 오빠는 2년전, 혜연이를 떠나보낸던 그 날에 그 사람과 결혼을 했어. 그리고 이제 혜연이가 봐도 너무 이쁘다고 말해줄 아기도 생겼단다. 아마 혜연이가 봤다면 정말 이뻐했을 꺼야.


너의 기일을 일주일 남겨 놓았을때, 이 사람이 먼저 너를 만나러 다녀오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했어. 오빠는 많이 놀랬어. 이 사람과 만난후에는 한번도 혜연이의 이야기를 한적이 없었거든. 이 사람과 만나 후에는 혜연이에 대한 일은 생각하지 않기로 오빠 나름대로 마음을 먹었었고, 정말 잘 지키고 있었거든. 그런데 이 사람이 먼저 혜연이의 이야기를 꺼냈을때 이 사람이 그동안 내 얼굴에서 혜연이를 보았을거란 생각에 너무나도 미안했단다. 하지만 아니였어. 오히려 아무일도 없던 사람처럼 자기와 아이의 사랑해주는 남편이자, 아빠인 모습을 보고 혜연이에게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래. 다 혜연이 덕분이라고, 그래서 이 사람과 오빠는 결혼기념일날 너를 보러 온거야. 야~ 결혼기념일날 남편 전 여친 보러가자는 그런 사람이 또 어디있냐? 혜연이도 잘 봤지? 혜연이가 봐도 정말 좋은 사람이지? 오빠가 혜연이 잊고 사랑할만 하지?


혜연아. 너를 만나고 사랑하면 지냈던 8년이라는 시간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을 만큼 오빠에게는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소중했으며, 사랑스러운 시간이였어. 혜연이가 오빠에게 남겨준 시간들 앞으로도 열심히 그리고 소중히 살아갈께.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  열심히 사는 모습 다봤다고 잘했다고 기특하다고 언제나 오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이야기 했듯이 "역시 우리 오빠야~"라고 칭찬해주길 바랄께.


내 삶에서 그렇게 아름답게 살아줘서 너무 고마웠어 혜연아.


2016년 6월 22일 오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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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앞집 여고생과 우리집 귀신 이야기를 읽어주시고 추천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나를믿지마요 그리고 우릴잊지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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