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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설[상실]
게시물ID : freeboard_13407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생허전
추천 : 1
조회수 : 18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8/03 05: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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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상실
 

 

 

#1
 

사방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길을 무작정 걷고있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지만 시계가 고장나지 않았다면 정신을 차린지 724일째 되는 날이다.
주위에 보이는 것이라곤 암흑으로 뒤덮힌 검게 그을린 벽뿐이다. 다리가 아프지만 여기서 멈출수는 없다.
'내가 왜 걷고있는거지?'
속으로 툴툴거리면서 계속 앞으로 걸어본다.
이제 더이상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게 느껴진다.
불연듯 뒤돌아서서 생각한다.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있는건 아니겠지??'
목적지는 모르지만 늙어지친 비루한 경주마같이 앞만보고 가고있는 나에대해 나 스스로 의심이 들기시작한다.
 

언젠가부터 들려오던 낯이 익은 목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오지만 이내 사라진다.
혼자 걷기시작한지 159일째였던 날부터 들렸던 소리.. 난 그 소리가 점점 커지고있다는 것을 알고있었지만,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무슨 소리지???'
 

답답하고 지친몸을 이끌고 얼마나 걸었을까 평소와는 다른 벽이 나타난다. 숨이가빠진다. 나도모르게 걸음이 빨라진다.
어딘가 많이 낡은, 그러나 위화감따위는 찾아볼수없는 포근한 주택이나타난다.
떨리는 손으로 무턱대고 초인종을 눌러보지만 반응이없다.
소리를 크게 질러 주인을 불러보고 싶지만 지친탓인지 목에선 아무 목소리가 나오지않는다.
문을 두들겨보지만 문은 미동조차 하지않는다.
그때 망부석같았던 문이 안쪽으로 열린다.
마당한켠에 놓여있던 양동이와 호수가 보인다.
'??? 여긴.... 내가 살던 집이잖아'
목적지에 도착한듯 기쁜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설렌 감정을 추스리고 집안으로 들어가본다.
거실에 보이는것은 낡은 쇼파와 즐겨앉아있던 흔들의자.
그옆의 탁상에는 725일자 신문이 펼쳐져있다.
내가 정신을 잃은 다음날 발간된 신문이다.
'이제 끝이야 쉴수있겠다.'
 

 

 

#2
 

하연은 멍하니 모니터를 보고있다.
작은 글씨들이 패턴없이 뒤죽박죽 섞여있는 듯한 기분에 머리가 아파온다.
'지이이잉...지이이잉....지이이잉...'
핸드폰에 '멋진내딸' 이라는 문구가 요란한 진동과함께 표시된다.
", ~!!!"
"엄마! 나야 오늘 서울가는데 한번들릴려고, 아빤 잘있어?"
"응 그럼~ 아빠 잘계셔, 오늘은 기분이 좋아보이시더라고"
"나오늘 저녁에 아빠보러가려고, 엄마도 같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 자고가지그래 바쁘니?"
"어쩔수없어. 나내일 출장있어서 금방 내려가봐야해, 엄마딸 바쁜거알잖아"
"그러니? 오늘 저녁에 거래업체 미팅있어서 끝나는 시간봐서 바로 갈께"
전화를 끊고 깊게 심호흡을 한뒤 정신을 차리고 일을 하기로한다.
 

 

#3
 

안마의자에 앉아 잠을청한지 몇시간이 흘렀을까?
겨우 잠에서 깨 정신을 차리려고 안간힘을써보지만 다리가 움직이지않는다.
이대로 누워있고싶다.
'역시 이 안마의자는 정말 편해. 할인할때 사길 잘했어'
얼마만에 느끼는 안락함에 스스로 칭찬을 해본다.
불연듯 허기가지다. 밥을안먹고 걸은지 724. 이 비정상적인 생활이 이해는 안되지만 한번도 배고픔을 느껴본적은 없었다.
간신히 몸을 가누고 부엌으로가 냉장고를 뒤적여본다.
반찬통들과 생일초가 꼽혀있는 케익이보인다.
'? 내가 좋아하는 초코케익이네?'
케익한조각을 잘라 거실의 안마의자로 돌아와 한입 크게물고 달콤한 맛을 음미해본다.
내가 좋아하는 쉬폰케익이다 분명 내 취향을 정확히 알고있는 사람이 사다 놓은게 분명하다.
케익의 달달함을 음미하면서 탁상에 올라와있는 달력을 펼쳐본다.
메인페이지의 커다란 사진엔 잿더미가 주택가가 보인다.
'서울 주택가 난대없는 방화소동, 쉬쉬하던 치안문제 수면위로 부상'
사망 4, 2도이상 화상환자 포함 중상12명이라는 사상자들의 내용이 들어있다. 사망한 환자중엔 전신이 불에 타 형체를 확인할 수 없을정도로 불쌍한 운명을 달리한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다음 구절을 읽을때 난 미친듯이 뛰는심장을 멈출수없었다. 손이 마구떨려온다. 기억이 돌아왔다.
'서울시 동대문구의 주택가에서 일어난 이 사건으로...'
신문의 무너진 집은 바로 내가살던 집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4
 

6..
"엄마 오늘따라 아빠가 많이 힘들어해, 이상해 빨리와줘, 무서워"
우는 딸의 전화를 받고 하연은 미팅을 미루고 허겁지겁 택시를 잡아탄다.
"한양대병원으로 가주세요"
2년을 무심하게 누워만있던 이젠 나를보며 웃지 않는 그사람이 힘들어한다는 말이 왜이렇게 가슴찢어지게 아픈것일까? 이젠 벗어나고싶다...
병원에 도착해서 병실까지 몇초가 걸렸을까 급하게 뛰어들어간 병실엔 많이 당황했는지 창백한 딸이 나를 찾는다.
"엄마 아빠가..아빠가.. 울어, 많이 아픈가봐 어떻게해"
딸이 울먹이며 애아빠 손을 잡는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있다.
2년만에 처음으로 그의 몸에 신체적인 변화가왔다.
물론 그동안 눈동자가 희미하게 움직인다거나 하는 움직임은 있었지만 이렇게 생리적인 반응을 한것은 처음이다. 하연은 그의 손을 꼭잡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준다.
2년만의 응답이 눈물로 돌아온 것이 뭐가 그리 기쁜지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여보..내말 들려?? 잘하고있어...우리가 용서해줄께.... 오랜시간 놔두고 누워있던것도 다 용서해줄께.... 이제 그만 우리한테 돌아와줘 응? 꼭 돌아와줬으면 좋겠어, 항상 우린 믿고 기다리고 있으니까 포기하지 말고 꼭 돌아와"
 

딸과 함께 그저 나무막대기같이 굳은 그의 손을 잡고 흐느낀다.
 

 

#5
혼자 어둠을 걸어 724일만에 도착한 이곳에서 난 내 기억을 되찾았다.
그렇다 난 와이프의 생일을 맞이해 가족들과 집에서 조촐한 생일파티를 하고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와 우리둘의 사이에서 태어난 그 무엇과도 바꿀수없는 보석같은 건실하게 잘커준 딸아이와 함께.
그날 난 모든것을 잃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이룬 결실들. 나의 삶은 그날 무너져버렸다.
행복은 한순간에 좌절과 슬픔으로 바뀌었고, 누군가 말했던가 행복은 늘 주위에있는것이라고, 하지만 이젠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다.
펑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고 화마는 우리의 안식처를 불태웠다.
가족을 살려야 한다는 집념으로 이불에 물을 적셔 온몸을 감싸고 와이프와 딸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빠저나가던 도중...기억이 나질않는다.
내가 이 어둠속을 걷기 시작한건 그날 이후였다.
내 몸속의 장기가 뒤틀리는 기분과 함께 오열한지 한시간.. 정신을 차리고 난 거침없이 집을 나선다.
내가 왜 그 어둠속을 앞만보고 걸었는지 이제야 이유가 분명해졌다.
 

가끔씩 들리던 익숙한 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온다.
 

"여보..내말 들려?....포기하지 말고 꼭 돌아와"
 

난 더이상 멈출수 없다, 날 기다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걸 알기에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
 

'....금방갈께 기다려.....'
출처 내 머리통과 빛보다 빠른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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