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말을 어디 인강에서 하던 분이 있어서 짤로 돌아다니는 것을 봤습니다.
그럼 지랄하지 않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닌가?
지랄하지 않는 것은 충분히 열심히 산다고 볼 수 없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해봤음.
상식이나 논리로 가늠하여 생각하자면, 그분이 '위험하고 맛이 간 인물'이라는 생각을 한 사람들은 이미 많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상황으로봐서는 훨씬 심각한 상황이 빚어질지 모름. 왜냐면 이미 권력이 있기에, 감방 안가기위해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그 한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그런 종류의 사람들을 겪어봤을 것이고 그 결과가 어떠한가를 겪어왔을 것이라고 생각함.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을 찍은 손을 자르겠다면서 박근혜를 찍은 분들처럼
아마 그분들은 또 윤석열도 찍었을 것입니다.
반복된 의사결정과정에서 실패를 맛보았다면 자신이 뭔가에 씌였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터인데 그렇지 않게 되는 이유는
우리의 삶과 인생 자체가 지랄맞기 때문일 거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됨.
그리하여 지랄맞은 삶 속에 스스로 빚어가는 관점이,
지랄의 구렁텅이라는 대롱으로 본 세상에서 구원의 빛으로 비춰져 보이는 것을 붙잡고 놓지못하는 것은
원숭이가 나무 속으로 넣은 움켜줜 손을 놓지 못하여 잡히는 것과 같음.
많은 사람들은 고요하게 자기 삶과 세상을 관조하는 여유로운 인생이 아니기에
결국은 자기 탐욕의 결실을 거두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그건 진실을 보도하지 못하는 언론도 마찬가지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예를 들자면, 검찰이 진급에 목매며 스스로 누군가의 개와 하수인이 되길 자청하며 눈에 보이는 사실과 진실을 묻어버리는 바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 자리에서 관조를 하며 살아가기는 어려운 일일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지랄하는 인생 길에 접어드는 거겠죠. 이런 잣대에는 이렇게, 저런 잣대에는 저렇게 오락가락하며, (이 대목은 '꼬리도 치고 딩굴기도 하고'라고 표현해야 좀 더 지랄이라는 단어가 와닿을 거 같습니다. 짠물도 마다많는 정치인도 그렇지만 결국 그게 수많은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과 같지 않을지...)
그렇지만 그게 사적인 삶이 아니라, 공적인 지위라 수많은 사람에게 민폐라는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