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면서 한때 폭력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화염병과 쇠파이프 전문가였습니다. 그럴 수만 있었다면, 광주학살자들에 맞서 총도 들었을 겁니다. 그래야 평화가 온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그 힘을 바탕으로 대학을 열고, 거리를 열고, 광장을 열고, 골목과 장터를 열고, 공장을 열고... 국민들이 안심하고 외칠 수 있도록 해서, 군사독재시대를 종식시켰습니다. 그 역사가 있었기에 김대중,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고 지금의 정의당이 원내정당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지요.
때론 폭력에 맞선 폭력이 필요했듯, 때론 혐오에 맞선 혐오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자왈 맹자왈 고상한 소리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정도로 한국사회의 여혐문제, 그렇게 간단치 않습니다.
메갈리아를 진심으로 멈추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아닌 메갈리아 자신들일 것입니다. 그들도 인간이기에 고상한 단어들을 쓰면서 우아하게 행동하고 싶을 것입니다.
메갈리아를 멈추게 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메갈리아를 질타할 시간에 메갈리아를 만든 그 혐오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면 되지 않을까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여론조사와 언론기사가 나왔네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여론조사에서 조사층인 20~50대 국민 74.6%가 '여성혐오는 실제로 존재하며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던 성차별의 문제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라 응답했습니다.
남성인 나와 당신, 우리는 솔직히 알고 있지 않습니까. 남성들만의 자리에서 성폭력발언, 성희롱발언, 여혐발언이 얼마나 만연한지를.... 당신과 나, 우리는 그런 발언에 친분이나 직책압박 따위를 이유로 외면하거나 동조했다는 것을... 지금도 그러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의 태도가 일베 같은 극단의 여혐을 부추기는 결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IN의 <'메갈리안'... 여성혐오에 단련된 '무서운 언니들'> 기사는 메갤 담론 지도를 그렸네요. 이 글에 첨부파일로 달아놓았습니다. 메갈리아에 대한 찬반을 떠나 일독을 권합니다.
그것이 메갈리안의 심리를 제대로 분석하고 있는지, 남성인 저는 솔직히 모릅니다. 가해자층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일본, 베트남과 한국의 사례처럼, 역사에서 가해자(층, 국민)과 피해자(층, 국민)의 의식구조가 다르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남성들은 메갈리안의 심리를 두뇌로는 이해해도 마음으로는 체화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메갈리안의 절망감과 절박감은 읽을 수 있을 겁니다.
거칠고 날선 토해냄의 뒷면 마음 깊숙한 심연에서 공포로 옥죄어 웅크린 채 떨고 있는 슬픈 여성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한때 우리가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들고 뛰쳐나가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떨었던 것처럼요.
훈수와 비난에 앞서 연대의 손길부터 내밀어 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가 그렇게 연대해서, 사회의 밑바닥까지 뿌리깊게 만연한 여혐문제의 해결고리를 잡는다면, 메갈리안들이 스스로 메갈리아를 멈추지 않을까요. 우리가 더 하라고 등 떠밀어도 스스로 멈추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