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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날 밤
게시물ID : military_637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백은랑
추천 : 2
조회수 : 62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7/31 02:03:01
'끼이익'
문이열린다. 
'이병 이태권'
뒤이어 들리는 물에 젖은 군화소리. 점점 내게 다가온다.
취침수는 적당히 뿌리라고 말했을텐데 엄청나게 뿌려댔나보다.
나를 깨우려고 다가왔지만 이미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깨어있었다.
'강현 상병님 근무..헙'
'일어났어.'
창문은 흔들리며 뼛속까지 시린 냉기가 바닥을 타고 내려온다.
시계를 보고 하품을 한다. 12시 40분. 애매한 시간대다.
옆에선 이제 전입온지 2주된 신병이 급하게 옷을 입는다.
저거 저러다가 성질 나쁜 우리 분대장한테 한소리 듣겠는데
어둠속에서도 서로의 눈빛이 교차한다.
내가 옷을 얼마나 입었는지, 탐색하려고 하는듯한 눈치지만
그럴시간이 있었으면 덜그럭거리는 저 보급형버클 소리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분명 첫근무니까.. 긴장좀 하라고 압력을 넣어놓은 것같은데..
그 순간 다시 문이 열린다.
'이병 김태권'
다시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아마 까칠한 선임들이 많아 더욱 더 조심하나보다.
'강현 상병님. 현재 외부온도 영하 25도라 옷 단단히 챙겨입고 나오시랍니다'
얼척이 없었다. 영하 2.5도도 아닌 영하 25도라니..
생활하면 할수록 매번 놀란다.
하긴 실내온도도 5도에 가까운 정신나간 날씨니 예상은 했었다.
입어야 할 옷이 늘어난다. 내복에 전투복, 야상에 깔깔이, 스키파카에 스키바지, 
양말은 다한증이 있으니 적당히 3겹만 신고 가자.
다 입고 나니 마치 눈사람처럼 뒤뚱뒤뚱 걷게 되는 마법의 옷들이다.
옆을 보니 급하게 전투화를 신는 막내가 보인다.
천천히 다가가 눈을 마주치며 말한다.
'급할거 없으니 천천히 해. 올라갈때 치고올라가자. 근데 장구류는 빼놓고 신어라'
당황한 얼굴이 취침등 사이에서도 보인다. 
일부러 20분이나 일찍 깨운건데 이것저것 알려줄것도 있고 해서.
아 이건 말 안했나?

'우리 지금 20분 일찍일어난거라 급하게 안해도돼. 일단 알려줄게 있으니까 좀 빨리 일어난거야'
'네. 알겠습니다..'
이런 날씨에는 수통에 물을 떠가도 소용이 없다.
오히려 녹이는데 시간만 더 들테니 아예 비워놓고 가야할텐데
오늘당직인 깐깐한 부소대장은 그런거 죽어도 못보겠지. 특히 나는.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는데 드디어 준비를 다 한 막내가 일어선다.
이 이상 시끄럽게 하면 분명 한소리 들을 것 같아 짧은 눈짓으로 밖을 향한다.
이내 눈치를 챘는지 아직은 잠이 덜깬 표정으로 따라나온다.
행정반으로 향하는 도중 불침번과 눈이 마주친다.
도데체 근무표를 어떻게 짰길래 우리소대랑 1소대랑 같이 근무를 서게 하는거지
"충성 상병 강현 행정반에 용무있어 왔습니다."
"충성 이병 임하늘 행정반에 용무있어 왔습니다."

낡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행정반에 들어섰을 때, 사관이 말한다.
인솔자는 이미 총까지 꺼낸 상태로 의자에 널부러져있다. 아니 자는건가 저거.
"깡. 수통에 물 넣어가라. 안넣어가면 죽는다. 그리고 내가 10분간격으로 전화할꺼야"
저인간은 날 괴롭히기 위해 편제에도 없던 부소대장 전령을 소대장한테 졸라 만들고
날 선택해서 수색/매복 나갈때마다 날 괴롭힌다. 앞으로 저 꼬장을 9개월이나 더 봐야한다니
"제가 언제 그런적 있습니까. 부소대장님 섭섭합니다."
"X랄, 넌 내가 아는 놈들중에 가장 폐급이야."
말로만 저렇게하지 신형장비 보급나오면 싸이코같은 성격으로 무조건 자기걸로 만든다음
원래 쓰던걸 나한테 던져준다. 어감이 이상하지만 의외로 깔끔떠는 사람이라 분명히
장비 질은 좋다.
어자피 손질은 내가 다하지만.
"하늘아 쟤 조심해. 초소에 올라가서 뭔 짓하면 바로 전화해"
"네 알겠습니다."
긴장한 막내가 굳은 얼굴로 답한다. 첫 근무 서는 애한테 잘하는 짓이다.
"아 부소대장님. 누가 보면 제가 잡아먹는 줄 알겠습니다. 제가 얼마나 착한데"
"데? 데는 반말이고"
하며 앉은자세에서 포승줄을 던지는 시늉을 한다.
"부소대장님 사랑합니다"
"꺼져 임마. 난 너 싫어"
기회는 이때다 싶어 말을 꺼낸다.
"그럼 저 전령 안해도 되는겁니까?"
하지만 부소대장은 얼굴색하나 변하지 않고 싸이코같은 말을 한다.
"안돼 넌 내가 두고두고 조질꺼야"
지루한 레파토리. 벌써 3개월째 똑같은 말이다.
뒤에선 막내가 어찌할 줄을 몰라 당황한 눈으로 나랑 부소대장을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아마 자기가 생각하던 것과는 너무 틀려 저러는 거겠지.
말은 험하지만 얼굴엔 서로 장난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주고받으며
막내한테 하나하나 알려준다. 라고 해봤자
근무나갈때 뭘 쓰는지, 어디서 꺼내는지 이런것들 뿐이여서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다.
"근무투입 하겠습니다."
인솔자인 동기가 말했다. 진짜 뭐라해야겠다. 누군 인솔자고 누군 사수고 억울해서 살수가 있나.
"야 깡. 잠깐 뒤돌아봐"
하며 내 탄띠에 묶여있는 수통을 흔든다.
'찰랑 찰랑'
의외의 소리와 묵직함에 놀라기를 잠시, 막내의 수통을 흔들어본다.
'찰랑 찰랑'
이럴줄 알고 잠깐 한눈파는 사이 수통에 물을 채워놓았다.
"음 그래. 투입"
아쉬운 눈치다. 망할 부소대장

뒤따라오던 막내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옷을 겹겹히 껴입었더니 걷는 모양이 꽤나 우스꽝스럽다.
그 수많은 일이 있었어도 아직도 1시 05분. 초소까지 거리는 대략 10분정도지만
바깥날씨는 예전에 보았던 '투모로우'라는 영화에 버금갈 정도로 춥다.
바람은 미친듯이 창을 흔들고, 눈발이 미세하게 흩날린다.
지통실에는 당직사령은 화장실에 갔는지 순찰을 갔는지 타 중대의 당직부관만 있다.
꽤나 친한 아저씬데, 아니 이제 전우님이라 부르라고 했던가.
"어? 근무나가요?"
"네. 정훈장교님은 어디 가셨어요?"
"여기계시네 정훈장교님"
웃으면서 놀린다. 정훈장교가 나랑 닮은건 알고 있지만.. 그렇게 말해도 되나?
"야 내가 더 잘생겼지 어딜봐서 나랑 닮은거야"
짙은 눈썹, 하얀 피부, 약간 옅은 눈, 그리고 작은키
솔직히 내가 이런말 하긴 싫지만 내게 형이 있다면 딱 저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밤에 보면 구분도 안갈꺼고 닮기도 닮았다.
게다가 인정하기 싫지만 나보다도 잘생겼다. 빌어먹을.....
"밖에 춥다. 부사수 잘 챙기고"
총기 검사대에서 삽탄을 하고, 근무길에 나선다.
취사장 옆으로 간다면 5분만에도 갈 수 있지만 거긴 지금 얼어붙어 폐쇄되었다.
어쩔 수 없이 뒤롤 돌아가는 길로 가야하는데.. 빌어먹을 동기놈은 천천히 가자니까
자기 마지막 인솔이라고 빠르게 치고 올라간다.
이건 분명 며칠 전에 했던 족구내기에서 져서 날 엿먹이려고 하는거다.

"정지 정지 정지"
불빛이 켜지며 소리가 들린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연초?"
"...기자"
"누구냐?"
당황한 막내가 아무말도 못한다. 뭐 첫근무니까 머리로 알고 있어도 행동하긴 어려웠을거다.
나도 그랬으니까.
"후번 근무자"
재빠르게 내가 대답한다. 인솔자로 왔던 내동기는 '왜 니가 하냐'라는 눈빛을 보낸다.
"용무는?"
"근무투입"
"신원을 확인하기위해 5보 앞으로"
 아마 별생각이 다들꺼다. 분명 경고도 들었을 거고 부소대장도 겁줬으니.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김광민 병장님.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재빠르게 부사수가 내 말을 따라한다.
"야 엄청추워. 고생해라."
"고생하십시오"
도데체 근무를 어떻게 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왜 병장-일병이랑 상병-이병이 같이 근무를 서는걸까
문을 닫고 서서히 멀어져가는 불빛을 바라본다.
옆을 흘깃 보니 막내가 풀이 죽은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방탄은 벗지 말고. 벗었다가 쓰면 더 추워지니까. 비니는 가져왔어?"
"저..그게.."
얼버무리듯 말한다.
"아직 없습니다.."
아. 휴가 나간 사람이 없었구나. 하긴 얼마전까지 전쟁날것 같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으니
비니를 꺼내서 준다. 맘같아선 몰래가져온 발리클라바를 주고 싶지만.. 
이건 분명 침냄새가 날 것 같아 검정색 비니를 준다.
"감사합니다.."
"얌마. 그런걸로 풀죽으면 어떻게 하냐. 으.. 그나저나 진짜 춥네"
비탈길을 빠르게 올라오면서 두텁게 입었던 옷 사이로 흘렀던 땀이 엄청난 기세로 식기 시작한다.
무거운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말문을 연다.
원래대로라면 안되겠지만.

"그거 알어? 원래 우리중대. '감사합니다'랑 '죄송합니다'를 말로 못했던거?"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조금은 긴장이 풀렸는지 전보단 밝은 목소리로 물어본다.
"일단 계속혼나. 그리고 이제 끝나면 마지막에 '충성'만 하는거야"
"그러면 '감사합니다'는 어떻게 합니까?"
"음.. 방금 내가 너한테 비니를 줬잖아? 그러면 또 '충성'을 하는거야"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긴 했다. 두어달쯤 전 전역한 아버지군번이 없애버리고 나간 부조리.
그래. 하나하나씩 바꿔 나가는 거겠지. 나도 그리고 얘도.

잡념을 떨쳐버리며 전방을 바라본다. 이미 감각이 없어진 발끝.
이제 겨우 근무시간의 30분이 지났을 뿐이지만 체감상으론 거의 2시간이 지난듯한 느낌이다.
불현듯 막내의 수통이 생각났다.
"야 하늘아. 너 수통 물 버려"
"잘 못들었습니다?"
"아씨. 아까 버리려고했는데 까먹었네. 그거 부소대장이 나때문에 그런거니까 버려. 뭐라하면 내가 먹었다고 할께"
당황한듯한 눈, 하지만 이정도 날씨에선 뜨거운 물을 떠와도 얼어버린다. 혹시나 누가 볼까 문을 살짝 열고
그 틈 사이로 수통을 비운다.
'팍'
정시가 되면 해야하는 온도보고 때문에 온도계를 보는 순간 작게 들려오는 소리
깜짝 놀라 얼른 손을 뗐을 때, 온도계의 중간부분에 금이 간 것이 보인다. 추워서 깨져버린걸까.
마지막으로 본 온도는 영하 33도.
여긴 정말 미친 땅이다. 속으로 되새기며 행정반에 전화를 건다.
내가 아는 부소대장이라면.. 상상하기도 싫다.
"통신보안 7중대 당직사관 하사 이경희입니다. "
"통신보안. 2초소 근무자 사수 상병 강현입니다. 부소대장님. 현재 온도 영하 30도입니다."
전화기 뒤에서 들려오는 한숨소리. 아마 당직하사가 적고있나보다.
"아 그리고 온도계 혹시 여분 있습니까? 온도계가 얼어서 깨졌습니다."
"수거해서 내려오고. 다음번 근무자 통해서 올려보낼께. 봤을때 니가 깨트린거면 죽는다 진짜"
"네 고생하십시오"
옆에 서있는 부사수는 덜덜 떨고 있다. 그렇다고 나는 안떠는 건 아니다.
정말 얼어서 죽을수도 있겠다라고 느낄때쯤 저 멀리서 불빛이 보인다.
재빠르게 비니와 발리클라바를 벗는다. 물상병인 나는 아직 이걸 쓸 짬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지 정지 정지.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연초"
"기자"
불안불안하다 싶었는데 역시나였다. 다음번 근무자는 우리소대 상꺾이라 재빠르게 이어받는다.
"누구냐"
"후번근무자"
"용무는"
"근무자교대"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3보앞으로.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드디어 살았다 싶다. 정말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였다. 이미 발은 존재의 의미가 없고 얼굴은 찢어질 것 같다.
조용히 경례자세를 취한다. 
"유남호 상병님. 지금 영하 33도랍니다."
"날씨 미쳤네 진짜. 으 추워. 근무중 전달사항은?"
"온도계가 깨질정도로 춥습니다. 그 이외엔 딱히 없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조심히 내려가"
"네 고생하십시오"
"고생하십시오"
이번에도 재빠르게 내 말을 따라하는 막내. 그나마 아예 눈치가 없는 것보다는 나은데..
내려가면서 물어본다.
"첫근무 어땠어?"
덜덜 떨리는 턱을 애써 감추며 말하지만 굳어버린 턱은 알아듣기 힘든 발음만 할 뿐이다.
"됐다. 내려가자."

얼어붙은 나무들과 바람들 사이로 수많은 별이 보인다.
이곳이 딱 하나 좋은 점이 있다면 무수히 많은 별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나도 언젠가 지금의 힘든 이 순간을 추억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이 있겠지.
아직은 까마득하지만 말이다.
출처 5년전 경험담을 토대로 한 내 머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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