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서 이 세상에 아직도 여자들에게 가혹한 부분이 남아 있음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러나 제가 느껴온 그런 가혹하고 불합리한 부분을, 남자들은 조금 다른 면에서 느끼며 살아온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둘 나이를 먹어가며, 반려자가 생기고 시야가 넓어져가며 느낀 것은 서로 다른 부분에서 경험해온 그런 불합리한 부분들에 대해 누가 더 피해다, 누가 더 약자다 따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나는 여자이니 여자의 경험에 조금 더 공감할 뿐이지요. 그런 불합리함들이 좀 더 옳은 방향으로 고쳐지기를 아주 많이 바라고 있지만, 그건 메갈의 방법을 통해선 이룰 수 없습니다.
메갈이 그리는 세상은 제가, 그리고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그려온 세상과는 많이 다를 겁니다. 저는 남자 여자, 성별이라는, 우리가 어찌 할 수 없는 조건에 따라 다른 위치에 놓이기보다는 같은 곳에 서서 나란히 걷기를 원하고 있으니까요. 저의 남편이 길을 걸을 때 한국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자인 양 움츠리고 다니고, 저의 아들이 성적인 평가의 대상이 되거나 모욕적인 말을 듣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세상 모든 남자를, 나의 아들과 남편을 깔아뭉개고 올라가면 나아지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런다고 여자가 더 행복해지기라도 할까요? 좋은 세상이란 누가 누굴 깔아뭉개고 올라가는 게 아닌 같이 걸을 수 있게 해주는 세상 아닌가요?
예를 들어볼까요. 출산과 육아로 인해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가 심각합니다. 기혼여성으로서 주변에서 보고 느끼는 바, 육아 후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식당과 마트뿐이라는 말이 그저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더군요.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자를 욕하고 죽이고 깔아뭉개는 게 답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보육 문제를 재정비, 보완하고, 남자들이 육아 휴직을 쓰고도 눈치 안 보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여자들이 결혼과 임신으로 퇴사 안 해도 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하는 거죠. 그리고 그 기저에는 직원을 부품이 아닌 인간으로, 공동체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기업 윤리가 바탕이 돼야 할 거구요.
메갈이 외부로 드러내는 것들은 일견 그럴 듯해 보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엔 근접하지도 못할 뿐더러 감정적 동조만을 얻어 혐오만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런 그럴 듯한 눈속임에 언론 뿐 아니라 정치인들도 동조하는 걸 보니 정말 참담하네요.
단순하고 직관적인 혐오 노름에 놀아나는 게 아닌, 기저에 박혀 있는 것을 찾아 뿌리를 뽑아야죠. 정치하는 사람이라면 제발 큰 그림을 그리세요. 메갈이 그리는 세상, 그 끝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