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당원 여러분, 상임대표 심상정입니다.
한 게임회사의 성우교체와 이에 대한 문예위 논평으로 당이 때 아닌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당이 커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성장 통으로 이해합니다. 또 다른 정당들과 달리 정의당이 유독 이 문제로 시끄러운 것은 우리당이 건강하다는 증표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당의 하부단위에서 부적절한 논평이 나가고, 또 논평으로 야기된 당 안팎의 파장에 대해 중앙당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당원들과 지지자들의 질책을 겸허히 수용합니다. 당의 최종관리책임자로서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걱정과 실망을 끼쳐드리게 된 점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이번 혼란과 갈등을 지켜보면서 저는 많이 당혹스러웠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저는 총선 끝나고부터 지난 주 까지 약 두 달간 전국을 돌며 지역당원을 만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체력적으로 벅찬 일정이었지만, 또한 마음이 벅차오르는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헌신하는 당직자들과 당의 미래를 굳게 신뢰하는 당원들의 모습에서 당의 밝은 미래를 보았습니다. 당원들에게 힘을 드리겠다고 나선 길이지만, 정작 힘을 받은 것은 대표인 저였습니다. 그런데 당 게시판에 드러난 또 다른 당의 모습에 난감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당이 훨씬 더 허약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당이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하는가를 다시금 곱씹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 게시판을 보니, 지도부가 이번 일을 대충 넘기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신이 큰 것 같습니다. 또 당이 표방해 온 성 평등과 같은 중요한 가치들에 대해 무원칙하게 타협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도 있는 것 같습니다. 상임대표로서 둘 다 그렇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번 논란을 단순히 넘기지 않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날카로운 의견 충돌을 상처와 분열이 아니라, 당의 단합과 성장의 기회로 만드는 방법을, 또 당이 지켜온 중심 가치들을 단순히 재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확장하는 방법을 숙고하고 있습니다.
저는 상임대표로서 이번 논란과 관련해 세 가지 문제에 대해 당원여러분과 함께 고민해 봤으면 합니다.
첫째, 사회갈등에 대한 정당의 역할입니다. 정당은 사회운동 조직들과 달리 문제제기 집단이 아니라 문제해결 집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책임질 테니 권력을 달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존의 갈등 라인을 재확인하고 자신의 신념으로 대중을 계몽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당이 성평등 가치실현을 중심과제로 삼고 있는 정당이고, 또 모든 혐오에 반대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할 수 있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혐오적 방식에 반대한다는 선언에는 동시에 만연해 있는 성차별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우리 당의 책임이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당이 성평등 사회를 위해 앞장서 실천하고, 우리와 함께하면 여성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줌으로써 극단적 방법을 제어해 나가는 것이 책임 있는 정당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젠더 문제는 진보정치의 핵심가치이며 또 우리 당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될 수 있는 의제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당이 물론 다른 분야도 부족하지만, 특히 젠더 문제와 관련해서 아직 뚜렷한 실천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 대표로서 이 점에서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젠더 의제에 대해 조직적 논의와 실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둘째, 정의당은 더 이상 실패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정의당이 성숙한 민주주의자의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느냐 에 당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 당은 숱한 진보정당의 역사를 온몸으로 헤치고 온 분들도 있지만, 정의당원이 첫 번째 정치이력인 분들이 절반이 넘습니다. 또 연령과 직업, 그리고 사회경험에서 아주 다양한 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당내 존재하는 다양한 선호와 이견은 다른 거대 정당이 갖지 못한 정의당의 자산입니다. 이견을 적대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해야 합니다. 작은 의견과 취향의 차이가 아니라, 정의당을 선택하게 만든 공동의 지향과 목적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저는 늘 우리 당의 가장 큰 장점인 다양성을 어떻게 하나의 정치적 에너지로 바꿔낼 수 있을 것인가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바탕으로 정체성을 형성해가기 위한 첫 번째 사업으로 전당적 교육 사업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과거 진보정당의 실패는 외부의 요인보다는 내부의 요인에서 주로 일어났습니다. 옳고 그름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사소한 의견충돌로 조직적 분열을 키웠던 과거 진보정당의 실패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당원들 간 차이를 인정하고, 이견을 존중하고, 치열하게 한 팀이 되기 위해 노력할 때 정의당이라는 우리공동의 목표는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정치적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저는 상임대표로서 당원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승리의 길을 일궈낼 것입니다.
셋째, 총선 이후 추진하고 있는 조직혁신 작업을 서두르겠습니다. 당의 자원을 최적화하고 각급조직과 기관의 권한과 책임을 제도화해서 시스템에 의한 당의 운영체계를 확립하겠습니다. 제가 대표가 되면서 강하고 매력적인 정당을 만들어 내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저의 임기 절반은 통합과 총선준비에 쓰였습니다. 총선이 끝나고 나서야 밀린 숙제더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가까운 것부터 또 작은 것부터 풀어가는 중이었습니다. 당의 상임집행기구를 정책미래내각으로 개편하고, 당원 교육과 활동가 육성을 전담할 기구와 사업을 마련하고, 시민사회와 협력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등 어느 하나 간단한 일은 없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이제 정비를 시작하고 있는 부문위원회 영역에서 문제가 발생해 참 아쉽고 아픕니다. 이번 과정에서 드러난 개개인의 당적 책임의 문제가 사소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인에 대한 징계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 권한에 따른 책임을 제도화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 작업을 서둘러 추진해서 권한과 책임의 구조를 혁신해나가는 과정에서 바로잡겠습니다.
사랑하는 당원여러분,
저는 이번 논란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정의당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합니다. 지난 두 달 당원들을 만나며 당에 대한 애정과 헌신을 몇 번이고 확인했습니다. 지금 정의당은 변화의 과도기에 있습니다. 어쩌면 갈림길에 서 있는지 모릅니다. 당원과 지지자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종류의 정당, 정의당이 실패하면, 한국정치가 바뀌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 바뀌지 않습니다.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변화의 속도를 맞춰 봅시다. 분노와 서운함은 잠깐 내려놓고, 각자 정의당 입당원서를 썼던 첫 마음을 기억해봅시다. 강하고 매력적인 정당을 만들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꿈을 다시 떠올려봅시다. 이번 일로 많이 실망하고 서운하셨겠지만, 다시 한 번 당과 지도부를 믿고 힘을 모아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
2016년 7월 29일,
상임대표 심상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