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이제 10월이라니 뭔가 어색하다.
이른 아침 모텔에서 나왔다.
오늘은 잘 곳을 미리 정해두고 걷는데
어제 휴대폰으로 거리를 재보니 40km를 넘는 거리였다..
난 40km가 얼마나 긴 거리인줄 상상도 못한 채 그냥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물론 나중에 알게 됬지만 40km는 무지하게 길었다.
바다를 끼며 노래를 들으며 포항 시내를 걷는데 도보가 생각보다 잘되어 있어서
여행이 크게 어렵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며 기분이 좋아졌다.
도보여행을 하며 가장 크게 걱정 했던 건
도보가 없는 길이 나오거나
도보가 너무 좁아서 차에 치이면 어떻게 할지 그런 거였는데
아직까진 괜한 걱정을 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도보가 이렇게 차선과 분리되어있음.
난 무언가를 노력 없이 얻는걸 좋아한다.
'노력 없이 얻으려고 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그런 말들과는 다르게 노력 없는 기대를 자주 하고
혼자 멋대로 치켜 세워 올린 커다란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섭섭한 마음에 남몰래 아쉬워 하는 경우가 번번하다.
그래서인지 내가 살아온 세월 속엔 이유 없는 아쉬움이 많았던 것 같다.
조금 걷다 보니 길가에 태극기가 이곳 저곳 달려있다.
국군의 날이구나.
1 년전 국군의 날이 생각난다.
군대에서 국군의 날이라고 제초를 했었지...
걷다 보면 엄청나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저기 있는 가로등은 뭘로 만든 걸까?
쇠로 만든 거 같은데 저 쇠는 누가 만든 걸까?
꼬리에 꼬리를 잡고 생각하면 가로등과는 전혀 관계없는 또 다른 생각들이 나오게 된다.
이렇게 저렇게 이것저것 생각하며 걷는다.
걷다 보면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듯한 공원들이 나온다.
누군가가 쉬어가라고 만들었을 공원이지만
아무도 다녀가지 않았는지 세월의 흔적만 간직한 그런 공원들이다.
여행도중 벌써 몇몇 공원을 지나왔는데
공원마다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 나에게는 일종의 휴계실 이다.
아무도 쉬어가지 않았을법한 공원에서 홀로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한 시간을 걷고 십분 을 쉬기로 정하고 걷지만 정확히 시간을 재면서 걷지는 않고 그냥 감으로
이정도 걸었으면 1시간이겠지?
이 정도면 십분 정도 쉰 거겠지 하며 내 맘대로 걷는다.
그러다 심심하면 지금 내가 어디쯤 왔는지 수시로 확인한다.
그냥 걷기만 하면 재미없으니 얼마나 걸었는지 확인하는 거지만
남은 거리를 확인할 때마다 "으악 이렇게 많이 남았어?" 하며 놀라게 된다.
내가 가는 길로 계속 걷다 보면 영덕이 나온다
이때는 잘 몰랐었지만
내가 걷는 길이 동해 고속 국도였다.
바보같이 그것도 모르고 팔 차선으로 이틀이나 더 걸어 다니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고가 안난게 천만 다행인것 같다.
그리고 그걸 몰랐던 난 눈치가 정말 없는 거 같다.
아침과 마찬가지로
한 시간을 걷고 십 분을 쉬며 걸음을 옮기지만
힘들면 한 시간 걷고 한 시간 쉬기도 한다.
사실 내 맘대로다.
여행을 하고자 준비할 때 제일먼저 본 게 바로 7번 국도였다.
바다를 따라 걸으며 시원한 바람을 맞고 싶어서 7번 국도를 정한 거지만
포항을 제외한 바다는 전혀 보지 못했다.
사실 난 7번 국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도 모르고
7번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지만.
그냥 7번 국도가 바다를 볼 수 있다 하기에 7번 국도를 택했었다.
감나무에 감이 잔뜩 열려있다
하나 먹어보고 싶었지만.
도둑질 하는 것 같아서 그만두고 계속 걸었다.
걷다 보면 평소에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도 아름답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여행이라는 목표를 세워서 그런 거인지
아니면 걷는 게 무료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 이었구나 하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걷는다는 건 생각보다 지루하기도 하지만
막상 걷다 보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냥 걸으면 된다는 한가지 목표를 가지며 움직인다는 것이.
다른 이런 저런 복잡하기도, 혹은 골치 아프기도 한 문제들을
머리 속에서 비워내 주는 것 같다.
코스모스를 보며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발이 후끈거린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고생하는 건 아마도 못난 주인 만난 내 발이 아닐까?
발이 후끈거리고 열기가 올라온다 싶을 땐 아무도 오지 않는 낡은 버스정류장에서
양말까지 다 벗어버리고 휴식을 취하는 게 제일이다.
그렇게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걷는다.
걷다 보니 음식점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이 12시가 넘었으니 점심을 먹어도 괜찮겠지?"
혼자 질문하고 혼자 답변하며 음식점에 들어갔다.
된장찌개 정식을 시켜서 먹었는데, 너무 푸짐하게 나와서 깜작 놀랐다.
6000원으로 이렇게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은 정말 드물 거 같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막상 찍으려니 뻘줌하다.
맛집 블로거들은 정말 대단한거 같다.
밥을 먹고
계속 걷는데 목이 마르기 시작했다.
물도 다 떨어졌고 , 어떻게 하지 고민하다
주유소에 들어가서 물을 얻어보기로 했다.
마침 주유소가 보이기 시작했고
들어갈까 말까 100번은 고민하다, 용기를 내서 들어갔다.
아저씨 한 분이 의자에 기대어 주무시고 계셨는데, 내가 들어오는 소리에 깨셨는지
인상을 찌푸리시며 등산복 차림인 날 쳐다봤다.
이때다 싶어서 미리 준비해둔 멘트를 던졌다.
"안녕하세요 ? 실례지만 물 조금만 얻어갈 수 있을까요?"
남들에게 쉬울 수도 있는 말이겠지만
이 말을 하기 위해 엄청나게 고민하고 또 수정하며 들어왔다.
그렇게 100번은 넘게 고민하고 수정한 말이지만
막상 입으로 뱉어 내보니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아저씨는 단잠을 방해한 내가 못마땅 하셨는지 좁아진 미간을 유지하신 채
"들어오지 말고 기다려봐." 하시더니 물통을 가져가서 시원한 새물로 가득 채워주셨다.
"감사합니다" 라며 나오는데, 기분이 이상하게 좋지는 않았다.
물도 주셨고 고마운 분인데 인상을 쓰셔서 ??
자는걸 깨운걸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행동인데
또 스스로 이따 시 만큼 커다란 기대를 쌓아두고 이에 미치지 않자 혼자 아쉬워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을 마시며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어가는데
영덕군이 보인다 .
아직 영덕군의 가장 끝 바지 이지만
뭔가 힘이 나기 시작했다.
슬슬 바다도 보이고 시원한 바람도 불어오니 걸을 맛이 난다.
그때 어딘가 차림새가 나와 비슷한 사람이 사 차선을 무단 횡단해서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게다가 사 차선에는 바리게이트 까지 있는데 훌쩍 뛰어넘는 묘기까지 보여준다.
넘어온 사람은 말없이 내 앞에서 걷고 있다.
왜 일로 넘어온 거지 ?
아마 도보여행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 아는 체 하고 싶었던 걸까 ?
내가 먼저 인사를 해볼까?
난 소심한 편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다는 건
나에게는 복잡한 수학문제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사람들과 친해지지 못하는 사교성이 부족한 사람은 아니다.
한번 말문이 트이면 금방 친해지는 그런 성격이다.
하지만 그렇게 친해지는데도 한계가 있다.
어느 정도의 선을 둔 후 그 이상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조절하고 행동한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던 조금 많은 고민하다 인사를 건네기로 결심했다.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한마디의 효과는 굉장했다.
단순한 말 한마디였지만, 금방 말문이 트였고 서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무단횡단을 한 사람은 김해에서 왔고 나처럼 포항에서부터 출발한지 1일차 되는 도보여행가였다.
도보여행 하는 사람을 뭐라고 부를지 몰라서 그냥 도보여행가라고 부르기로 했다.
태규형은 40일간 국토를 이리저리 다니는 게 목표고 일단은 강릉까지 가서 꺽는다고 했는데.
나와 목적지 출발지도 같고 두발로 강릉까지 간다는 게 비슷해서 놀랐다.
금방 친해진 태규형은 29살 이였고 도보여행은 처음이라고 했다.
태규형 배낭은 텐트와 매트가 매달려있고 그걸 제외하고도 엄청나게 크고 무게도 엄청났다.
태규형은 건축일 을 했었는데 일이 끝나서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여자친구가 말렸지만 , 가겠다고 하다 결국 싸운 상태로 왔다고 한다.
( 이 글을 쓰는 시점에 태규형은 결국 그 여자친구분이랑 결혼해서 잘살고 있다. )
이유야 어쨋든 일단 목적지가 같으니 같이 다니기로 하고 출발했다.
새로운 동행자가 생겨서 그런지 자신감이 붙었다.
엄청나게 멀게만 느껴지던 영덕이 11Km 앞으로 다가왔다.
걷다 보니 슬슬 밥 시간이 되고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난 여행을 하면서 걷는데 나오는 힘은 밥에서 나오는 거라 생각한다.
해수욕장에서 바로 코펠과 버너에 물을 넣고
라면을 끓였다
물은 근처에 있는 건물에서 얻었는데
혼자가 아닌 둘이서 동냥을 하니 창피하지도 겁나지도 않는 것 같다.
배고픔에 서둘러 태규형과 라면을 끓여서 밥까지 말아먹으니 허기는 어느 정도 가셨다.
그렇게 바다를 보며 조금 쉬다가 다시 목적지인 강구 찜질 방을 향해 출발했다.
영덕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세상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하늘은 내 마음을 급하게 만든다.
울진이 처음으로 보였던 구간.
여행을 계획하면 울진을 큰 지점으로 보며 하루 만에 울진까진 갈 거라고 생각했었다.
축지법을 쓴다면 갈수도 있겠지만.
걸어서 하루 만에 울진을 간다는 건 절대 무리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지칠 때즈음 드디어
강구 찜질 방이 보였다 !
숙소가 정해지고 나니 긴장이 풀렸는지 피로가 몰려 오는 것 같았다.
저녁에 라면으로 대충 때운 허기는 금방 꺼졌고,
일단 뭐 좀 먹고 들어가자는 태규형 말에 따라 강구시장을 방문했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 누구나 좋아하는 치느님 치킨과 맥주를 먹기로 결정 !
태어나서 먹은 모든 치킨 중에 가장 맛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네 인생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이 뭐더냐 물으면
강구에서 먹은 치킨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 정도로 맛있게 먹고 배부른 김에 계산하러 나오는데
태규형이 사준다고 전부 계산했다...
배부른 배를 감싸고 강구시장을 나와 찜질 방에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한다.
출처 |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