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할거라고 생각하며 미루던
나에게는 가장 길었던 여행을 이제야 정리하게됬다.
스물넷에 시작한 솔직한 도보여행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뭘까?
잠시 고민해보고 결론지었다.
"컴퓨터 게임이지."
이유는 간단하다.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아무런 생각도 안 할 수 있으니깐.
그럼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건 뭘까?
이것 저것 떠오르지만 그 중 하나 고르라면 무작정 걷는 거다.
걷는다는 건 컴퓨터 게임과는 다르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니깐
난 무언가 생각할 때 걷는다.
걷는 방법도 다양한데 어떤 때에는 한자리를 빙글빙글 돌기도하고
또 어떤 때에는 무작정 아무 곳이나 걷기도 한다.
군복무를 하며 불침번 근무 중 역시나 빙글빙글 제자리를 계속해서 돌고 있었다.
"전역하면 뭐하지?"
전역한 후에 뭘 해야 되지 바로 취업을 해야 되나?
아니면 남들처럼 여행이나 한번 가볼까?
그런 생각들로 머리 속이 꽉 찰 때쯤 문뜩 떠올랐다.
"아! 한번 걸어보자"
어디가 되든 한번 원 없이 걸어보자
그 생각이 조금씩 , 조금씩 머리 속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나중엔 걸어서 여행을 해보자는 결심을 세우게 되었다.
태어나서 혼자 여행을 해 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가볍게 뒷산에 올라가는 것 마저도 나에게는 큰일 이였고,
방에 박혀서 컴퓨터만 뚜들기고 있는 게 내 주된 일상 이였다.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나중에 후회할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해보고 싶었다.
"한번 걸어보자"
성공하던 실패하던 도전은 해봐야 되겠다.
먼저 어디부터 어디까지 걸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무작정 걸을까 생각도 해보고
이곳 저곳 꺽어서 가볼까도 생각도 했지만
처음 하는 걷기여행이니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결국 걷기에 가장 좋다는7번 국도를 골랐다.
여행코스는 일단 포항에서 출발해서 강릉까지 가는 건데
처음엔 반대로 강릉에서 출발해서 포항까지 가려고 했다.
근데 어차피 집은 강릉에서 더 가깝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 가는 건 집에서 멀어지는 것 같아서
아래서 위로 가기로 정했다.
준비물은
지고 다닐 배낭 1개
휴대용 코펠 , 버너 , 가스 1개
입고 다닐 겉옷으로
등산복 바지 2벌
등산복 겉옷 1벌
속에 입을 옷으로
반팔 2벌
속옷3벌
양말3켤래
예비 옷으로
긴 팔1벌
긴 바지1벌
긴 팔 것 외투1벌
샤워 및 세면 용품 1세트
스포츠타월 1개
손수건 3장
침낭1개
라면5봉지
육포1개
두루마리휴지 1개
휴대용 휴지 1개
발톱 깍이 1개
우산1개
휴대용 손전등 1개
생각보다 짐이 많아진 것 같지만
나중에 아! 그때 챙겨올걸 하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챙겼다.
9월30일 걷기여행 1일차.
집에서 출발하기 전 어제 미리 싸둔 짐에서 침낭을 두고 가야 했다.
쉬울 것 같았던 침낭 매달기가 이리저리 해봐도 말썽 이였다.
어쩔 수 없이 침낭을 두고 출발했다.
출발할 때의 내 모습.
난 겁이 무지하게 많다.
창피하지만 사실인걸 어쩌랴.
침낭 하나 두고 가면서 오만 가지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노숙 해야 되면 어쩌지..
침낭 없이 노숙을 하면 얼어 죽을 텐데..
10월에 얼어 죽을 걱정을 하며 강남 센트럴 시티로 출발했다
앞서 말했지만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는 속초에서 시작해서 포항까지 가려고 했는데.
막상 여행이 다가오니 이런저런 쓸데없는 걱정에 결국 포항에서 출발해서
양양, 강릉 쪽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등산복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언제나 다니던 길이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새롭게 느껴진다.
등산복차림으로 지하철을 타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내가 여행을 잘 끝낼 수 있을까?
오늘은 어디서 자야 되지?
밥은 어떻게 먹지?
이런저런 잡 생각을 하다 결국 지하철을 잘못 타서
센트럴 시티에는 12시가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센트럴 시티에서 포항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보니 12:30분 버스가 있어서 바로 표를 끊고
갈 때 목마를 까봐 물을 샀는데, 강남 물 이라 그런지, 물 하나에1000원이나 했다.
난 엄청 짠돌이다.
엄마랑 누나도 그런 소리를 많이 했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좀 그런 것 같다.
이유가 뭐냐고?
나도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그냥 돈 쓰는게 아깝다.
버스를 타고 포항으로 내려가는 도중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여행 진짜로 시작했네 라는 친구의 격려의 말 이였지만.
"피곤해서 다음에 전화할게~"
피곤하다 핑계를 대며 빠르게 끊어버렸다.
사실 난 대인관계가 그렇게 원만하게 이루어지는 성격이 아니다.
어떤 사람과도 금방 친해지고 쉽게 접근하지만
친한 상태 딱 거기서 머물어 버린다.
친한 사람도 항상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그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나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고,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요번 여행의 목표중 한가지는 내가 왜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지 찾아내는 거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포항에 도착해보니 5시가 다되어갔다.
겁 많은 나는 또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잠은 어떻게 자지..
저녁은 또 어떻게 해결하지..
등
포항 해수욕장을 따라 걸으며 숙소를 휴대폰으로 검색해봤다.
일단 찜질 방을 찾아 무작정 가봤는데.
가는 곳마다 24시간영업을 안 하는 곳이다.
찜질 방까지 가느라 한 시간 동안 걸어서인지 서럽기까지 했다.
"꼬르르르륵~"
배속에서 꼬르륵 소리를 듣고 당장 보이는 국밥 집 에서 내장국밥을 먹었는데.
맛이 너무도 없었다....
너무 싱거워
그렇게 찜질 방을 찾아 돌아다보니 점점 어두워 지기 시작하고
걷다 보니 점점 지치고 빨리 잠잘 곳을 찾아야 된다는 압박감이 들기 시작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두려웠다. 오늘 잠잘 곳을 찾지 못하면
노숙을 해야 되는 건가.
그냥 숙소를 찾아 들어가면 되지만
첫날부터 호화로운 곳에서 자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한참을 찾았지만 찜질 방은 보이지 않았다.
"첫날부터 불안하다."
결국 찜질 방에서 자는 건 포기하고 가격대가 낮은 모텔을 찾기로 마음을 정했다.
다행히 포항에 모텔은 무지하게 많았고
몇 군데 돌아다니다 3만5천원이라는 거금을 내고 모텔 방을 구했다.
방에 들어온 후 당장 빨래부터 하고
휴대폰을 충전시키며 옆에 있는 컴퓨터로 일기를 썻다.
여행 시작하기 전부터 생각했던 목표 중 다른 한가지는
여행하면서 생긴 모든~ 일을 기록하자! 였는데.
이렇게 기록해두면 나중에 여행하면서 느낀 감정과 생각을 다시 꺼내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누워서 내일 묵을 숙소를 정하고 그 길이를 계산해보니
무려 40km를 걸어야 된다.
"군대에서 했던 행군이 40km였던가?"
내가 그 먼 길을 무사히 걸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일을 위해 미리 할 수 있는건 빨리 자는것 같다.
출처 | 나. |